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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누가 길러요
서이슬
후마니타스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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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1? 짝짝이 신발을 신는 아이
‘케이티’와의 첫 만남
니큐 베이비의 폭풍 성장
케이티, 그건 너의 일부
짝짝이 신발을 신는 아이
아이의 말, 반갑고도 속상한 이유
고마워, 꼬마 니콜라
신발이 닳도록, 카르페 디엠
아이 주도 배변 연습, 그 13개월의 기록
만 세 살, 때가 왔다
착한 어린이는 울지 않는다고?
‘배꼽 인사’만 인사인가요?
즐거운 인생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세상에 안 아픈 주사란 없다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에 관하여

2? 각자의 하루를 살아갈 뿐
조금 다른 시작
모성애 그까짓 거, 좀 없으면 어때!
사람 만들기
남편과 둘이서, 우리끼리 산후조리
애송이, 그대 이름은 애 아빠
남편 없으니 집안일이 두 배
엄마로 살며 나를 잃지 않기
내보내기 위해 잠깐 품는 것
그 남자, 그 여자의 취미 생활
페파 피그 육아법: 엄마도 아빠도 같이 놀자
유아기 아이와 사는 법
욱하지 말자, 그냥 화를 내자
교구가 아니라 철학
로렌조와 케이티, 다르지만 같은 이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
*KT 증후군 한국 모임에 관하여

3? 그래서 아이는 누가 길러요?
99만9천 원 육아기
모든 아이에게 무상 의료를
누가, 무엇이 아이의 행복을 결정하는가
장애-비장애, 경계를 넘어
10만 분의 1, 수영장 가다
인형 같은 아이, 아이 닮은 인형
자폐, 그건 어쩌면 우리의 이름
우리 균도, 우리 KT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리를 잃는다 해도 겁나지 않을 세상
불편함과 마주 보기, 다른 것과 함께 살기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도 달라!
교과과정에 ‘육아’를 넣는다면
나를 먹여 살린 ‘사회적 육아’
사회적 육아, 그게 뭔가요
또 하나의 사회적 육아, 아동 전문 병원
이런 의사, 그런 사회
짝짝이들, 모여!
엄마가 간다, 맘스 라이징
바람이 분다, 정치하는 엄마들
*한걸음 더, 함께 걸어요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작가이자 활동가로 사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 다섯 살 아이에게 붙들려 놀이터 순방을 다니는 아이 엄마. 미국 중부 작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남편, 희소 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의 병명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인 KT(케이티)를 아이의 애칭으로 삼아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에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언젠가 이름 석 자 찍힌 책 한 권 내고 싶었는데, 엄마가 되어 생각보다 빨리 해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를 함께 잘 길러 내는 사회를 만들고
작가이자 활동가로 사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 다섯 살 아이에게 붙들려 놀이터 순방을 다니는 아이 엄마. 미국 중부 작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남편, 희소 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의 병명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인 KT(케이티)를 아이의 애칭으로 삼아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에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언젠가 이름 석 자 찍힌 책 한 권 내고 싶었는데, 엄마가 되어 생각보다 빨리 해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를 함께 잘 길러 내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앞으로도 그런 글, 그런 삶을 꾸리고 싶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82g | 148*210*20mm
ISBN13
9788964373026

책 속으로

--- p.17~18
그날 아침, 의료진이 갓난아이를 들어 특수 인큐베이터에 넣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당장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동용 인큐베이터의 생김에 압도되고 말았다. 마치 아이와 연결된 선들이 실수로라도 떨어지면, 그래서 계기판에 찍힌 숫자들이 들쭉날쭉해지면 아이가 곧 죽을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내내 덤덤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에 어찌할 바 모르는 나를 보고, 옆에 섰던 신생아 담당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엄마.”(He’ll be fine, Mom.) 바로 그 순간, 그 ‘맘’이라는 한마디 말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아, 내가 저 아이의 엄마구나. 저 울긋불긋한 얼룩과 볼록 올라온 발등을 가진 아이가, 내 아이구나.

--- p.58
타고난 몸 때문에, 때때로 심하게 아플 몸 때문에 언제라도 깊은 슬픔과 외로움, 분노와 고통을 겪게 될 아이이기에, 나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그에 따라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리 생김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당할 때, 다리 때문에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다리 때문에 극심한 통증에 힘겨울 때, 다리 때문에 사람을 잃고 사랑을 잃게 될 때. 그럴 때 아이가 마음껏 울고 실컷 화내며 자기 마음을 잘 다독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울어도 돼. 아이도 어른도, 누구든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거야”라고.

--- p.98~99
엄마들이 임신·출산·육아에서 느끼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은 엄마 자신의 자기 검열에 걸려 여전히 잘 꺼내어지지 않고, 어쩌다 어렵게, 용기 내어 속 이야기를 꺼냈는데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세상은 그런 엄마들을 힐난하거나 조롱하거나, 때로 혐오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잘 알아야 아이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희로애락의 감정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사는 사람인 이상, 어느 부모도 육아하면서 언제나 웃기만 하거나 인내할 수는 없다. 늘 온화하고 다정한, 그런 완벽한 부모, 혹은 그런 완벽한 부모 역할을 연기해 낼 수 있는 부모란 없다.

--- p.161
특히 한 루푸스 환자가 쓴 글한 편이 만성 통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는데, 이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게으르다’라거나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등의 오해를 받기 쉬운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나는 공격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마치 전쟁 전략 짜듯이 해야 겨우 할 수 있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그런 생활 방식에 있다. 미리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그건 정말 복이다.”

--- p.163~164
드러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숨겨지고 잊힌 것들에 대한 예민한 감각.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설픈 지식과 경험으로 지레짐작하지 않고, 편견을 버린 시선으로 조금 더 진실하게 다가서는 것. 타인의 고통을 민감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교감하되, 감정 과잉이나 과장된 수사만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 이 밤, 아이의 이번 통증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놓치고 있는 또 다른 것들에는 뭐가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본다. 내가 눈을 열고 조금 더 진실하게 다가서야 할 곳은 어디인지, 민감한 마음과 냉철한 머리로 다가서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 p.192~193
실질적으로는 비장애인이면서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차별받을 수 있는 아이, 또 신체 기능상 지금은 비장애인이지만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경계를 긋게 되었을까? 많은 장애인 시설과 특수교육 시설이 장애인 보호와 치료, 학업 보조를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그 많은 경계는 비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비장애인의 학업을 보장하고, 비장애인만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아닐까?

--- p.226~227
그 청년의 엄마가 내게 보여 준 사진 몇 장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허벅지까지 절단한 뒤에도 의족도 없이 놀이공원에 가 자이로드롭을 타고, 춤추고, 스포츠를 즐기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아, 이 친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다리 한쪽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겠구나. 적어도 놀이공원에서 쫓겨나듯 나오거나 학교를 못 다니는 상황에 내몰리지는 않겠구나.


장애인 시설을 들이느니 ‘차라리’ 원전을 들이겠다거나, 쓰레기 매립지를 들이겠다는 등의 막무가내한 대응은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지경까지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일들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연 지금보다 얼마나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낯섦과 불편함을 마주할 줄 알고, 모든 존재의 존엄을 헤아릴 줄 아는 감각.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 ‘공존’의 감각을 물려줄 수 있을까.

--- p.231~232

출판사 리뷰

선천성 희소 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을 앓는 아이와 함께 사는 엄마의 에세이. 아이의 자존과 양육자의 공존과 나아가 사회와 공생하는 육아를 제시한다.
1부에서는 희소 질환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관찰하며 얻은 깨달음을, 2부에는 주 양육자로서 아이를 기르며 품게 된 철학을 담았다. 3부에는 아이와 함께 만나게 된 세상과 사회에 대한 생각과 그 너머의 바람을 담았다. 단순히 ‘아픈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이야기, ‘힘든 여건 속에서도 씩씩하게 사는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육아’라는 영역을 관통하며,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세상에 품었던 질문들을 담았다.

엄마이면서 또한 나로 살기 위해 던지는 질문
“양육자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어느 부모도 늘 웃거나 인내할 수는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는 부모, 혹은 그런 완벽한 부모 역할을 연기해 낼 수 있는 부모란 없다. 흔히 ‘모성애’를 엄마가 된 이들이 갖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간주하지만,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특정 호르몬 분비의 결과일 뿐이다. 저자는 내 아이에게만 유독 크게 작용하는 모성애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엄마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며 경계한다. 그래서 자신이 엄마가 되면서 느끼게 된 필연적인 감정을 ‘모성애’가 아닌 ‘인간애’ 또는 ‘생명애’라고 이름 붙인다(89쪽).
‘아이에겐 저마다 때가 있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존중하라’라는 잘 알려진 육아 철학의 원칙들을 반복해 듣다 보면 아이에게 치우치는 것으로, 양육자의 삶이 중요하지 않단 뜻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저자는 양육의 중심이 ‘아이’가 아니라 개개인의 실제적 ‘삶’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육자의 돌봄은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152쪽). 가사 분담과 ‘교대 휴식제’ 등 가정에서 직접 적용해 본 경험뿐 아니라 책, 애니메이션, 영화, 놀이터, 모임, 병원 등 삶의 순간순간, 곳곳에서 길어 올린 육아의 노하우들을 책에 담았다.

육아의 굴레에 갇혀 살다 보면 시간이 참 더디 간다 싶을 때가 많지만, 아이는 분명 조금씩 자라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차차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서로에게 너무 얽매이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는 일. 그렇게 각자의 삶에 놓인 의미와 원동력을 찾아가는 일. 우리는 그저 이번 생에 주어진 각자의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_153쪽

장애-비장애의 경계에서 던지는 질문
“다리를 잃어도 겁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나요?”
오른쪽 발과 다리가 왼쪽보다 2.5배 큰 아이. 오른쪽 허리부터 발끝까지 포도주 빛 얼룩이 있고, 군데군데 파란 정맥이 도드라진 다리와 볼링 핀처럼 생긴 발가락을 가진 아이. 지금은 신체 기능상 비장애인이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외모로 차별하는 사회에서는 당장이라도 장애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아이. 아이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아이의 다리 수술을 권유받고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괜히 수술했다가 상태가 나빠져 다시 걸을 수 없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아이가 정말 ‘장애인’이 되어 평생 ‘다리병신’ 소리를 듣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과 연결되어 있다. 같은 시술을 받았다가 끝내 다리를 잃게 된 미국 청년의 사례를 알게 된 저자는 청년의 엄마가 보여 준 사진을 보고 놀란다. 사진 속 청년은 한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절단한 몸으로도 의족 없이 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타고, 춤과 스포츠를 즐기며 지낸다(226쪽).
두려움과 불안감의 근원은 어쩌면 살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인지 모른다. 이를테면, 언젠가한국의 TV 다큐 방송에서 본 에피소드들(199쪽). 선천적으로 두 다리가 없는 아이를 수영 선수로 키운 엄마가 “물 더러워진다”는 멸시를 이겨내기 위해 수영장 청소를 자처하고 관계자에게 통사정하며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쳤다는 일화, 비장애인 연인과 공원에서 데이트하던 장애인 남성이 관리인으로부터 의족 좀 가리고 다녀라, 부끄럽지도 않냐는 힐난을 받았다는 일화.
저자는 아이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아이의 병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비정상’임을 인정하게 되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라져야 할 것은 차별적 언어나 혐오표현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라는 것. 장애인 차별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도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를 이뤄야 한다는 것. 누구나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법과 제도가 모든 사람을 보호하게 되면, 그래서 저마다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면, 불운하게 다리를 잃는다 해도 두려움 없이 살아가지 않을까?

실질적으로는 비장애인이면서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차별받을 수 있는 아이, 또 신체 기능상 지금은 비장애인이지만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경계를 긋게 되었을까? 많은 장애인 시설과 특수교육 시설이 장애인 보호와 치료, 학업 보조를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그 많은 경계는 비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비장애인의 학업을 보장하고, 비장애인만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아닐까?_192,193쪽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아픈’ 사회에 던지는 질문
“우리에게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평생 지닐 통증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저자는 어느 루푸스(만성 자가면역 질환) 환자의 글을 읽게 된다(161쪽). 그는 타인으로부터 ‘게으르다’거나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오해받기 쉬운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나는 공격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마치 전쟁 전략 짜듯이 해야 겨우 할 수 있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그런 생활 방식에 있다.” 저자는 겉보기에 아파 보인다고 해서 모든 방면의 약자가 아니고,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서, 드러나지 않는 것, 숨겨지고 잊힌 것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2015년, 서울 성동구의 일반 중학교에서 시작된 발달장애인직업센터 공사가 주민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 호소했다. 그러나 ‘다른’ 부모들은 자식의 안전을 위한다면서 끝내 외면했다.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도 특수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와 ‘다른’ 아이의 부모가 마주 무릎 꿇었다. 저자는 과잉 행동의 잠재적 위험성이 문제가 아니라, 발달장애 아동의 특성을 고려한 생활 지도와 교육 자체를 할 수 없는 여건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른’ 아이들이 미친 사교육의 굴레에서 병들어 갈 때, 장애 아동들은 최소한의 의무교육마저 마치지 못하는 현실. 부모가 무릎 꿇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가 ‘다른’ 존재의 존엄을 헤아릴 줄 아는 ‘공존’의 감각을 물려주지 못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까(230~232쪽).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재 자체로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 사람을 각기 다양한 생김과 능력을 갖춘 존재로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장애인 시설을 들이느니 ‘차라리’ 원전을 들이겠다거나, 쓰레기 매립지를 들이겠다는 등의 막무가내한 대응은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지경까지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일들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연 지금보다 얼마나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낯섦과 불편함을 마주할 줄 알고, 모든 존재의 존엄을 헤아릴 줄 아는 감각.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 ‘공존’의 감각을 물려줄 수 있을까._231,232쪽

돌보는 모든 존재의 존립을 위해 던지는 질문
“‘여성’만, ‘생물학적’ 엄마만 엄마인가요?”
2006년, 미국에서 “맘스 라이징”(Moms Rising)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미국 여성, 미국 가정의 문제와 관련된 공공 정책을 개선하고, 국가 수준의 논의를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은 ‘남녀 모두를 위한 유급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도입’을 시작으로, 먹거리, 의료보험, 보육, 남녀 임금격차, 총기 규제 등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있다.
2017년 봄, 한국에서도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먼저 ‘엄마’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엄마 역할이 ‘여성’만의 것, ‘생물학적’ 엄마만의 것이 아님을, 아빠·조부모·이웃, 친구·사회가 ‘모두 엄마’임을 선언했다. 엄마 아빠의 초과 노동과 조부모의 황혼 육아, 보육 교사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하나로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정책 동향을 살피고, 각종 토론회장과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 내며, 치열한 논의를 거쳐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277쪽).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운동가 하워드 진의 말처럼, “누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지가 아니라 거리에 나와 소리 높이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거리에 나와 소리 높이는 데는 누구보다도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구처럼, 여성의 행진은 여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니 말이다._274쪽

가보지 못한 길을 걷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
“지금 함께 걸어 줄 사람이 있나요?”
10만 명의 한 명꼴인 희소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처음 만난 부모는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희소성 그 자체에서 오는 공포와 싸우며, 운 좋게 병을 아는 의사라도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안도하며, 응급실에라도 가면 병을 모르는 의료진에게 처치법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사정이 이러하니 희소 난치성 질환을 겪는 사람과 그 가족은 전문가가 된다.
미국에는 희소 난치성 질환과 관련된 다양한 서포트 그룹이 있는데, 그 중 ‘KT 서포트 그룹’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KT 아이를 둔 엄마 주디와 멜리니가 시작한 모임이다. 현재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 인도, 중국, 브라질 등 세계 여러 나라의 KT 환자와 가족들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특히 이 모임은 미국 내에서 가장 경험 많고 권위 있는 곳으로 알려진 몇몇 병원의 혈관 전문의들과 연계해 2년에 한 번 대규모 콘퍼런스를 연다. 이 자리에서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만나 연구 자료를 공유하고 상담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뜻깊은 건 같은 병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이 한데 모인다는 점이다. 2012년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저자는 아이가 난생처음 제 발과 똑같이 생긴 발을 가진 또래를 만난 일과 그 감동을 전한다(264~268쪽).

10만 명에 한 명꼴로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보는 건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양쪽 다리에 압박 스타킹을 신고 절뚝이며 걸어 들어오는 젊은 여성, 한쪽 손에 검붉은 얼룩과 울퉁불퉁한 손가락을 가진 잘생긴 청년, 양다리에 압박 스타킹을 신고 목발을 짚고 걸어오는 중년의 남성, 무슨 사연이었는지 끝내 절단술을 하고 휠체어를 타게 된 십 대 소년.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 쥐고 곁에 앉은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그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게 참으로 편안했다._266~267쪽

“KT 증후군 한국 모임”을 꿈꾸는 저자는 2014년 말부터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170~172쪽). 초기에는 혈관 질환 관련 환우회를 찾아다니며 안내문을 올리고, 유사 증상이 있는 사람을 검색해 쪽지와 이메일을 보냈다. 2018년 초 현재, 모임에 가입한 사람 수가 150명, 이 중 실제로 KT 혹은 유사 질환으로 확진 받은 사람이 1백 명 가까이 된다. 그의 꿈은 10년, 20년 뒤에 ‘한국 KT 콘퍼런스’를 여는 것이다.

모두에게 묻고 싶고 답하고 싶은 질문
“그래서 아이는 누가 길러요?”

타인의 고통이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책임이고, 그 책임을 공유하려는 것이 인권감수성의 기초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책임을 무시해 온 대표적 사례가 ‘돌봄 책임’의 회피와 전가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뭔가를 대주는 게 아니라 ‘ 사람을 만드는’ 성장에 참여해야 한다. 성장은 아이의 것만이 아니라 기르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_류은숙, ‘추천사’에서

이 대화에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싶다.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초대 대상이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 모든 아이를 보듬고 지켜야 할 의무와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_서효인, ‘추천사’에서

아이들을 ‘누가’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강조될 것은 ‘책임’과 ‘성장’이다. ‘어떤’ 아이를 ‘얼마나’ 도와줄 것인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책임’이 모호해진다. 부모가 자국민이 아니라서, 부모의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라서, 장애와 질환의 정도가 일정 기준 이하라서, 시술의 종류가 기준에 맞지 않아서……. 이렇게 되면 상대적이고 제한적인, 명분뿐인 돌봄이 된다. 아이의 ‘성장’에 따르는 비용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
책에 따르면, 집 앞 놀이터도, 동네 이웃 모임도, 학교도, 교회도, 병원도 죄다 사회적 육아의 공간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뭔가를 대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성장에 참여해야 한다. 성장은 아이의 것만이 아니라 기르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만약 아이들을 잘 길러 낼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아이를 보듬고 지켜야 할 의무와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을 이 질문의 장에 초대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아이들을 ‘누가’ ‘어떻게’ 기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그보다 먼저 ‘어떤 아이를’ ‘얼마나 도와줄 것인가’를 따진다. 부모가 자국민이 아니면 안 되고, 이주민이나 불법 체류 중인 아이는 안 되고, 부모의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안 되고, 장애와 질환의 정도가 일정 기준 이하면 안 되고, ‘미용 시술’은 안 되고…… 등등을 따지면서 말이다. 어디에서 왔든, 어디에 살든, 부모가 누구든, 얼마나 아프든 상관없이 아이들만큼은 모두 우리 아이라는 마음으로 돌봐 주면 안 될까. (……) 지지부진하기만 한 아동의료비상한제와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 그리고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생각하며, 답답한 한숨을 내쉰다._185쪽

추천평

누구나 경계에 서있다. 평범함과 특별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허다한 구별짓기 속에서 저마다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10만 명 중 하나라는, ‘KT’라 불리는 낯선 이름의 희소 질환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의 주 양육자로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또 미국 유학 중인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아이를 대하는 서로 다른 사회적 태도와 환경의 경계에서 흔들거린다. 그 경계에서 저자가 되뇌는 다짐은 이렇다. “ 사람들과 함께, 어딜 가나, 10만 명 중 단 하나여도 외롭지 않은, 로봇 다리로 활보해도 괜찮은,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
타인의 고통이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책임이고, 그 책임을 공유하려는 것이 인권감수성의 기초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책임을 무시해 온 대표적 사례가 ‘돌봄 책임’의 회피와 전가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뭔가를 대주는 게 아니라 ‘ 사람을 만드는’ 성장에 참여해야 한다. 성장은 아이의 것만이 아니라 기르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자기에게만 집중하거나 이상적인 모델에 집착하거나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일체감만을 쫓는 삶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능력,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삶을 제시한다. 그래서 성장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초대하는 얘기이지 장애아를 키우는 가정의 극복담이 아니다. - 류은숙 (인권활동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고 있을 때 딸아이가 다가와 훼방을 놓았다. 목을 끌어안고 볼을 부비고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 하고 부르더니, 거실 한쪽으로 돌아가 장난감을 집어 든다. “미안해. 오늘 아빠는 너 말고 다른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거든? 이 아이는 ‘KT’라는 이름의 병을 안고 태어났어. 짝짝이 신발을 신어야 한대.” 딸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알겠다는 듯 시선을 옮긴다. 다운증후군인 녀석은 동요를 좋아한다. 한 곡만 끝없이 반복해 듣는다. 타고난 장애 때문일까? 딸을 만난 지 벌써 오 년이 되어 가지만, 이토록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아이는 누가 길러요』는 이런 내게 믿음직한 동료 같은 책이다. 남과는 조금 다른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는지, 부모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는지, 책은 단호하면서 친절하게, 반듯하면서 따뜻하게 답한다. 나와 내 아이 곁에 저자와 같은 이웃이 있다면, “아이는 누가 길러요?”라는 질문을 두고 밤새 즐겁고 든든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대화에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싶다.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초대 대상이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 모든 아이를 보듬고 지켜야 할 의무와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덮을 즈음에 아이 혼자 잠들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아이는 여전히 동요 삼매경이다. 이제 그림책을 읽어 주어야지, 자장가를 불러 주어야지. 딸을 만난 지 오 년 만에, 이 책을 만나 조금은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아 다행이다. -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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