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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삶의 터전으로서의 미국의 영혼 2장 벤저민 프랭클린 3장 헥터 세인트 존 드 크레브쾨르 4장 페니모어 쿠퍼의 백인 소설 5장 페니모어 쿠퍼의 가죽 각반 소설 6장 에드거 앨런 포 7장 너대니얼 호손과 『주홍 글자』 8장 호손의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9장 데이나의 『2년간의 선원 생활』 10장 허먼 멜빌의 『타이피 족』과 『오무』 11장 허먼 멜빌의 『모비 딕』 12장 휘트먼 옮긴이의 말 |
David Herbert Lawrence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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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국의 시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또는 적어도, 아직 해돋이도 시작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미국의 시대는 헛된 기대였다. 즉, 진보적 미국인의 의식 속에는 한 가지 지배적 욕망이, 낡은 것을 제거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지배자들을 제거하고 민중의 의지를 찬양하라. 민중의 의지라는 것은 단지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찬양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민중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지배자들을 제거하라. 당신이 지배자들을 제거했을 때 당신에게 남는 것은 민중의 의지라는 이 단순한 구절이다. 그때 당신은 멈추어 서서 숙고하고, 당신 자신의 온전함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미국의 영혼」중에서 이 모범적 미국인은 무미건조하고 도덕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작달막한 민주주의자로, 그 어떤 러시아의 허무주의자보다도 낡은 유럽을 파괴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했다. 그는 집에 머물면서 양친에게 복종하는 아들처럼 내내 조용히 양친의 권위를 증오하고 내내 조용히 자신의 영혼으로 양친의 권위뿐만 아니라 양친의 전 존재까지도 파괴하고 있는 아들처럼 시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마모되는 방식으로 유럽의 파괴 문제를 끝내려고 했다. 벤저민은 정신적으로는 유럽의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적 고향은 과거에도 유럽이었고, 지금도 유럽이다. 비록 미국이 엄청난 양의 금을 쌓아 올렸지만, 이것은 정말 짜증나는 유대 관계다. 엄청난 양의 금은 단지 분뇨 더미일 뿐이다. 미국이여, 미국이 미국 자신에게 진정한 실체가 될 때까지 아마 금은 계속 분뇨 더미로 남아 있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중에서 ‘크레브쾨르는 우리가 만난 수많은 사람처럼 지적인 야만인이 되고 싶어 했다. 자연의 달콤한 아이들처럼. 자연의 야만적이고 피에 굶주린 아이들처럼. 백인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지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특히 백인 여자 미국인들이 그렇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고난이도 곡예는 다시 이 “야만인”의 고난이도 곡예다. 자동차, 전화, 물질적 돈과 이상 등을 버리지 못하는 하얀 야만인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야만인들이여! 그럼에도 충분히 야만적이 아닐까, 당신 신들이여! ---「헥터 세인트 존 드 크레브쾨르」중에서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유럽에서의 자유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유럽에서 자유는 위대한 삶의 약동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반생명적이었다. 아브라함 링컨 같은 미국의 최고의 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언제나 희생적이고 자기 살해적인 어조를 띠고 있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자기 살해적인 형식이었다. 아니면 타인을 살해하는 형식이었다. ---「페니모어 쿠퍼의 가죽 각반 소설」중에서 에드거 앨런 포는 다만 사랑, 사랑, 사랑만을, 강렬한 진동과 고양된 의식만을 알았다. 마약, 여자, 자기 파괴 등에 몰두했지만, 어쨌든 고양된 의식의 오색찬란한 황홀경과 사랑의 감각과 의식 흐름의 몰입의 감각을 추구했다. 그의 내면에 있는 인간의 영혼은 이성을 잃었다. 그러나 길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의 영혼이 어떠했는지 숨김없이 이야기했고,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영혼의 모습을 마주해야만 했다. ---「에드거 앨런 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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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비평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고전문학
미국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의 심리적 기원을 살펴보다 로렌스는 흔히 ‘신세계’로 표현되는 미국 문학 자체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구세계인 유럽에 대해서 그 출발점에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미국의 문학작품들이 과연 유럽을 사상적 차원에서 진정으로 극복했는지를 점검한다. 유럽의 문학 작품들보다 미국 고전문학에서 자신의 문학적 사상을 확인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로렌스는 기대했다. 『D. H. 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강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문학 사상에 입각해 미국 문학을 비판적으로 논하는 이 책에서 로렌스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자신의 논리를 이끌어간다. [1] 온전한 인간성의 회복 로렌스는 현대화가 몰고 온 기계화가 인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고, 그 부정적인 영향을 매우 우려했던 작가였다. 기계화는 로렌스에게 현대적 인간의 지적 의식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지적 의식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는 생명 의식, 말하자면 로렌스가 말하는 ‘무의식’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렌스는 현대 문명에 의해서 상실된 생명 의식을 회복하고자 했다. 미국 작가들이 이 생명 의식(“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있는지를, 미국 고전문학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로렌스는 주의 깊게 살핀다. [2] 미국 사상의 본질, 미국 문화의 모순적 성격 로렌스는 미국 문화의 모순적 성격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면밀히 탐구한다. 로렌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오늘날의 ‘미국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의 심리적 기원’을 확인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이미 내재적으로 모순을 잉태한 미국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고, 그것이 고전문학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로렌스는 밝히고 있다. 미국인이 진정한 삶의 터전을 미국에 마련할 때 미국의 이상은 성취될 수 있다는 점을 로렌스는 분명히 지적한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로렌스는 미국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삶의 터전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싶어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유럽을 극복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로렌스가 보기에는 희망도 있는 반면 공포도 존재했다. 문학은 자기반성의 거울이자 자기구원의 매개다 영문학 읽기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고전문학 감상 길라잡이 로렌스의 재기 넘치는 문체는 이 책만의 감출 수 없는 매력과 재미다. 논쟁적이면서도 긴장감과 박진감이 가득하고, 수많은 은유와 풍자를 사용하고 있는 로렌스의 문장은 시종일관 몰입하게 하는 동시에 흥미로운 미국 고전문학 읽기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존 드 크레브쾨르, 페니모어 쿠퍼, 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 허먼 멜빌 등 그 이름만으로도 무게감 있는 작가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탐색의 여정을 밟아나간다. 문학가로서의 애정과 그들을 향한 인간미도 놓치지 않는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일 정도로 솔직하고 강력하게 퍼붓는 독한 면모에서도 로렌스의 참신한 글쓰기는 빛이 난다. 로렌스가 다룬 여덟 명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 사상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온전한 인간성, 진정한 자유와 평등, 인권 등의 가치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된다. 1920년대에 미국(문학)을 배경으로 쓰인 책이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이 비단 미국에만 있지 않으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그때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시공간을 넘어 지금도 우리에게 귀한 통찰을 전해준다. ‘신세계’라고 불렸던 미국이 과연 구대륙인 유럽을 극복하고 새로운 나라로서 출발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새겨졌던 사상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을 글로벌 패권국 미국의 민낯을 20세기 영미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소설가 D. H. 로렌스의 예리한 비평을 통해 만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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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전문학 강의』는 호손, 멜빌, 휘트먼을 비롯한 미국 고전 작가 여덟 명의 작품을 해석하고 논평하는 책으로, 당시 로렌스가 문학비평 잡지에 투고했던 기존의 글들을 한데 모아 수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작업하여 1923년에 비로소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지극히 논쟁적이며, 긴장감과 박진감이 묻어 있다.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글쓰기 스타일에 있어서도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참신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는 주의력을 기울여 앞뒤를 자세히 살피면서 읽어야 한다. 수많은 인유와 은유, 패러디와 풍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글쓰기의 방식은 매우 시적이고 극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각 단어와 문장에 숨겨져 있는 의미와 의도를 놓칠 수 있다. 이러한 로렌스 특유의 기법을 유의하면서 읽는다면, 독자들은 미국 고전문학에 대한 로렌스의 날카로운 비평을 대할 때 잠에서 깨어나는 강렬한 기운을 느낄 것이다. 텍스트가 제공하는 드라마틱한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될 것이며, 강력하게 입맛을 돋우어주는 흥미로운 독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조일제 (한국로렌스학회장 역임, 부산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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