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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 자기감정에 솔직한 삶을 꿈꾸다
1부 숨겨진 감정을 만나다 분열: 실레, 또 다른 나를 만나다 _[이중 자화상] +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기만: 렘브란트, 자기 마음을 가리다 _[탕자로서의 자화상] + 발자크 『고리오 영감』 연민: 프리다, 상처로 상처를 치유하다 _[엘로에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절망: 쿠르베, 시대의 통증을 느끼다 _[절망하는 남자로서의 자화상] + 위고 『레 미제라블』 욕구: 프로이트, 욕망을 마주하다 _[반영, 자화상] + 마르케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상상: 마그리트, 정신에서 희망을 만나다 _[통찰력, 자화상] + 로브그리예 『질투』 2부 새로운 감정을 찾다 열망: 이쾌대, 미래를 품다 _[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 강경애 『인간문제』 투영: 들라크루아, 감정을 연기하다 _[햄릿으로서의 자화상] + 셰익스피어 『햄릿』 허무: 키르히너, 상처로 세상을 보다 _[군인으로서의 자화상] +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 수용: 콜비츠, 죽음에서 삶을 찾다 _[죽음에의 초대, 자화상] + 린저 『생의 한가운데』 우월: 뒤러, 인간 세상을 꿈꾸다 _[장갑을 낀 자화상] + 괴테 『파우스트』 울분: 아르테미시아, 복수를 승화시키다 _[류트를 연주하는 자화상] + 하디 『테스』 3부 뒤엉킨 감정을 보듬다 상실: 이중섭, 갈증의 나날을 보내다 _[연필로 그린 자화상] + 최인훈 『광장』 고독: 고야, 정적 속에서 희망을 찾다 _[자화상] + 그라스 『양철북』 공포: 누스바움, 두려움에 몸서리치다 _[유대인 증명서를 든 자화상] + 케르테스 『운명』 인내: 르누아르, 고투 속에서 꽃을 피우다 _[하얀 모자를 쓴 자화상] + 부스케 『달몰이』 결벽: 드가, 불화의 길을 걷다 _[참빗살나무문 앞의 자화상] +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일탈: 고갱, 낯선 원시를 품다 _[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 볼테르 『랭제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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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남자로서의 자화상]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자화상의 시선이 감상자를 향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자신을 그리기 위해 거울을 향한 시선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잔잔한 눈길이든 쏘아보는 눈길이든 한동안 고정된 자세로 응시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쿠르베의 자화상은 전혀 다르다. 절망하는 모습이되 보통 절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 p.74
상상은 감정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감정 가운데에서 상상에 의존성이 아주 강한 대표적인 경우가 질투다. 대부분 질투는 처음에는 아주 작은 단서에 불과하지만 점차 상상을 먹고 자라난다. 감정과 상상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질투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곤 한다. 어느 순간에는 둘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일체화되어 생각의 통제를 벗어나 자기 맘대로 성장한다. --- p.123~124 이쾌대의 문제의식은 식민지 침략자와 그들의 앞잡이들 때문에 고통 받는 조선 민중의 삶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민족의 아픔이란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식민지 백성의 신음이다. 그가 갖고 있는 민족의식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공감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 p.144 이중섭이든 소설 속 주인공 이명준이든 당시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은 구속하는 사회적 족쇄에 발이 묶여 무력감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이들처럼 북한과 남한 모두에서 정신적 활동 경험을 가진 사람은 더욱 무력감이 컸다. 예술가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해당 사회의 자유나 억압을 측정하는 촉수 역할을 한다. 예술가들이 갈증과 상실감을 느낀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 역시 시기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핍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 p.261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1746~1828)의 [자화상]은 평생 따라다닐 절대 고독의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을 담는다. 캔버스 밖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화가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전체적으로 사물이나 이목구비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지만 눈이 그림을 뚫고 나올 듯 강렬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이마에 빛이 쏟아지고, 오히려 눈 아래는 그늘 속에 배치되어 있어 거친 느낌이 더하다. 일시적인 감정 표출이 아니다. --- p.264 고야나 오스카가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 것은 그들만의 특별하거나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본래 빠르게 움직이는 거대한 물체에 몸을 싣고 있을 때는 속도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엄청난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는 지구에서 속도를 느끼지 못하듯 말이다. 빠르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 터에서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흐름에 순응해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때는 관성이 삶을 지배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사태의 본질을 보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인식할 기회가 늘어난다. --- p.277 러셀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맞이할 때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다. 다른 일을 생각하고 다른 방향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문제는 회피가 두려움 극복은커녕 오히려 두려움을 더욱 키우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상태대로라면 공포를 유발시킨 세력의 의도는 대성공을 거둔다. --- p.293 어쩌면 예술의 변화는 드가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처럼 외로운 늑대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타협하지 않는 고집으로서의 결벽 때문에 생긴 갈등이나 불화가 전통적 질서에 균열을 내기 때문이다. 관성은 본래 사회의 모든 장치를 이용해 권위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비판 정도로는 자리가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 p.328~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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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통해 만나는 인간, 그리고 나
흔히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규정되어지면서, 이성만이 인간의 본질적 성격으로 여겨져왔다. 그 반대편에 위치한 감정은 열등한 지위로 전락하면서, 감정은 가급적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는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인공지능의 발달은 단순 논리와 계산은 물론, 인간의 고유능력이라고 하던 합리적, 창의적 판단능력 면에서도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오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인간의 감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풍부하다. 인류의 역사와 사회, 인간관계의 확장과 다양한 개인의 경험에 의해 발현되는 감정은 인공지능은 물론 그 어떤 다른 동물과도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의 자화상》은 인간과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감정의 속살과 대면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안내자로 자화상을 택했다. 자화상은 감정을 표현하는 풍부한 표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화가가 직접 겪은 삶의 내력까지 스며들어 있다. 소설 역시 훌륭한 안내자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고뇌와 갈등이 깊은 감정의 수원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숨결이 담겨 있는 생생한 간접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림 속 화가의 표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화가의 자화상만으로 그 속에 보이는 감정의 다양하고도 복잡한 측면을 파악할 수는 없다. 또한 어떤 자화상은 당시 화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화가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투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화가의 인생을 찾아가고, 그의 경험과 인간관계를 분석하며, 당시 시대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연결해본다. 프리다 칼로의 [엘로에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은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등장시킨 다른 작품들처럼 끔찍하지는 않다. 다만 무언가 할 말을 꾹꾹 누르고 있는 표정과 꽉 다문 입술, 순교자를 연상케 하는 가시나무 목걸이가 상심의 무게를 짐작케 할 뿐이다. 남편 디에고의 복잡한 여자관계 때문에 결국 프리다 칼로는 남편 디에고와 이혼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리기 1년 전이다. 저자는 사랑의 상처로 생긴 자기 연민의 내향적 특징에 주목한다. 같은 자기 연민이라 하더라도 외적 사건으로 인해 생긴 연민과 마음 안에서 비롯되는 연민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비슷하게 사랑의 상처로 인한 자기 연민의 내향성을 보여준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로 [안나 카레니나]를 소개한다. 상대에게 들키기 싫은 자신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표현한 것이 프리다의 자화상이라면, 그 감정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불행에만 동정심을 가진 나머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있음을 환기시킨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절망하는 남자로서의 자화상]에서는 절망과 경악이 교차하면서 강한 에너지를 풍기는 것에 주목한다. 1819년에 태어나 프랑스 혁명 시대를 살아간 쿠르베는 공화주의에 공감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 받아들였다. 실제로 “자화상을 통해 내 삶의 이야기를 써온 것이다”라고 말했던 그의 자화상에는 혁명과 쿠데타, 왕정과 공화정 등 프랑스 혁명의 출렁이는 물줄기의 흐름이 나타나 있다. 그런 면에서 [절망하는 남자로서의 자화상]은 1830년과 1848년 혁명 사이에 완성된 작품으로, 당시 느꼈던 벅찬 희망과 고통스러운 절망이 묘사되어 있다. 혁명 속 절망의 상황은 소설 [레 미제라블]과 연결된다. 혁명의 쇠퇴와 함께 찾아오는 회피와 자포자기를 피부로 느낀 빅토르 위고는 혁명의 배반이 초래하는 왜곡된 사고방식과 비겁함을 절절히 묘사해냈다. 《감정의 자화상》은 우리가 절망의 감정으로 인해 좌절하더라도, 그로 인한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희망은 절망을 피하지 않았을 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과 겹쳐 보이는 일상 《감정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자화상과 소설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화가의 일상과 심리 속으로 들어가보고, 소설 속 다양한 상황과 인간군상을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화가가 몸으로 살아내고 그림으로 표현한 시대와 인생이 그림과 겹쳐 보이고, 예술과 문학이 시대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술관 옆 인문학》(1,2)《생각의 미술관》《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일인분 인문학》 등을 통해 인문학을 일상의 사건과 삶에 밀착시키는 작업을 해온 저자의 또 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