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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_ 우리 역사의 숨은 주인공, 가야를 만나요
초대하는 글_ 열 고개를 넘으며 알아 가는 가야 역사 이야기 한 고개 가야는 누가 세운 나라일까?_연맹 국가의 탄생 가야의 두 가지 건국신화│연맹 국가를 이룬 가야 Box. 수로왕의 왕비가 된 허황옥 두 고개 왜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부를까?_제철 기술의 발달 가야의 뛰어난 제철 기술│철로 만든 투구와 판갑옷│화폐처럼 쓰인 가야의 덩이쇠 Box. 한 걸음 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가야의 말 세 고개 임나일본부는 왜 거짓일까?_일본의 억지 주장 일본 사람들이 가야에 온 까닭│일본의 억지 주장과 진실 네 고개 금관가야는 어떻게 해상 무역이 발달했을까?_전기 가야 연맹 신라보다 앞섰던 금관가야의 힘│해상 무역이 활발했던 김해│포상 8국의 난과 고구려의 공격 다섯 고개 대가야는 얼마나 강력한 나라였을까?_후기 가야 연맹 가야를 대표하는 새로운 나라│거침없이 뻗어 나간 대가야의 힘│왕들이 누워 있는 지산동 고분군 여섯 고개 가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_가야인의 의식주 가야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는 법│시루를 이용한 단순한 조리법│가야인의 옷차림│땅 아래 움집과 땅 위의 다락집 Box. 수수께끼 같은 성형 관습, 편두 일곱 고개 가야 사람들은 어떤 토기를 만들었을까?_가야 토기의 특징 단단하고 아름다운 가야의 토기들│지역마다 달랐던 토기의 특징 Box. 땀과 정성으로 빚어낸 가야의 토기 여덟 고개 커다란 무덤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무덤과 순장 왕들의 저세상 궁전, 왕릉│가야인의 순장 풍습 Box. 제천 의식과 소도 아홉 고개 가야는 왜 삼국보다 먼저 사라졌을까?_가야의 멸망 고대 국가로 발전한 삼국│흔들리는 가야│신라에 항복한 금관가야│대가야의 멸망 열 고개 나라가 망한 후 가야인들은 어디로 갔을까?_가야의 후손 신라의 악성이 된 우륵│신라에서 활약한 가야의 후손들 작별하는 글_ 가야를 느끼고 싶다면 박물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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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판갑옷은 철판 두께가 1밀리미터를 넘지 않도록 얇게 만들었어. 철판이 1밀리미터를 넘으면 무거워서 입고 움직이기 힘들거든. 가장 넓은 철판을 사용하는 등판을 중심으로 양옆 두 군데에서 몸통을 감싸게 만들었지. 알맞은 크기로 잘라 낸 철판을 철로 만든 못으로 연결하는 거야.
칼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 몸에 딱 맞는 철갑옷을 만드는 것도 보통 기술이 아니었지. 생각해 봐. 아무리 얇은 철판이라지만 철판을 몸에 두르면 얼마나 불편하겠어. 그런데 가야 사람들은 몸의 곡선을 따라 철판을 가공할 정도로 철을 다루는 솜씨가 좋았던 거야. 그야말로 철판을 옷감처럼 주물러 모양을 만들어 낸 셈이지. - 36쪽, 『왜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부를까?』에서 가야에서 만든 철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어. 경상남도 김해 앞바다에는 가야의 철을 사 가려는 배들이 수시로 모여들었지. “어라? 김해에 어디 바다가 있다는 거지?” 김해에 가 본 적이 있거나, 김해를 아는 사람은 바다 얘기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어. 오늘날의 김해는 너른 김해평야가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런데 가야 시대 때에는 김해평야 자리가 온통 바다였단다. (……) 금관가야는 이렇게 잘 정비된 김해의 항구를 통해 해상 무역이 크게 번성했단다. 가야는 이웃 나라인 백제, 신라뿐 아니라 멀리 고구려, 바다 건너 중국과 일본과도 활발하게 무역을 벌이고 문화를 주고받았어. ― 58~60쪽, 『금관가야는 어떻게 해상 무역이 발달했을까?』에서 가야는 이렇게 백제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부지런히 힘을 키웠지. 먼저 경상남도 합천을 거쳐 거창, 산청, 함양을 넘어 전라북도 남원과 임실, 장수 지역까지 진출했어. 또 백제 땅이었던 경상남도 하동 섬진강 하구를 점령하고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어. 가야가 가장 힘이 셌을 때는 동쪽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맞서고, 서쪽으로는 전라도, 북쪽으로 충청도 지방까지 영토를 넓혀 나갔단다. ― 70~72쪽, 『대가야는 얼마나 강력한 나라였을까?』에서 가야인들의 요리 방식을 알려면 먼저 어떤 그릇들을 사용했는지를 봐야 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루야. 시루는 음식을 증기에 쪄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그릇이지. 가야 사람들은 곡식과 채소, 생선, 조개 같은 것들을 함께 시루에 넣고 쪘어. 곡식을 찔 때에는 알갱이를 그대로 찌기보다는 가루를 내서 찌는 게 더 잘 익고 맛도 좋았어. 쌀가루를 찌면 떡이 되잖아. 밥을 지어 먹는 것보다 훨씬 간편했어. ― 85쪽, 『가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서 옛날 사람들은 죽어서도 저승에서 또 살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읭 무덤을 왕의 저세상 궁전처럼 만들었어. 으뜸돌방은 왕을 모시는 공간인 거지. 딸린돌방은 부장품을 묻은 무덤이야. 으뜸돌방 가까이에 별도로 만들었어. 무덤의 주인공이 저세상에서 사용할 식량과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같은 곳으로 보면 돼. 순장덧널은 순장자를 묻는 무덤이야. 혹시 순장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건 아니니? 놀라지 마. 순장은 산 사람을 죽여서 함께 묻는 풍습이야.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부리던 사람과 사용하던 물건들을 같이 묻어 줬어. 고대 사회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거의 전 세계에서 순장 풍습이 있었어. ― 115쪽, 『커다란 무덤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에서 가야는 작지만 강한 나라였어.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금관가야와 대가야는 신라, 백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힘을 키워 나갔어. 하지만 금관가야나 대가야는 물론 함안 지방의 작은 강국 아라가야까지 가야의 소국들은 어느 한 나라도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며 정복 국가가 되지는 못했어. 결국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강력한 왕권을 발휘하는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나라의 운명이 기울게 되었단다. ― 126쪽, 『가야는 왜 삼국보다 먼저 사라졌을까?』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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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는 이제 그만~
가야도 함께, 사국시대라 불러 주세요! 오랫동안 우리나라 고대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심이었다. 이들 세 나라가 경쟁하며 발전하던 시기를 삼국시대라 부르면서, 비슷한 시기에 함께 번성했던 가야는 점점 잊혀졌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사기』도 한몫을 했다. 『삼국사기』에는 가야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오지만 책 제목에서부터 가야를 배제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강력한 고대국가로 발전한 세 나라와 달리, 가야는 여러 소국이 연합한 연맹 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그러나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비롯해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 함안, 창원, 진주, 부산 등지의 고분들이 발굴되면서 바야흐로 가야에 대한 재발견,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야는 삼국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역사와 영토를 확보했던 나라였고, 초기에는 신라보다 힘이 센 강국이었으며, 일본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외 교류로 존재감을 높인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단지 고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게 온당한 일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10여 년 전쯤 ‘통일신라 시대’를 ‘남북국 시대’로 보는 시각이 제기된 이후,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남북국 시대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고구려, 신라, 백제만의 ‘삼국시대’로 볼 것인지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볼 것인지 하는 문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반가운 소식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힘입어 가야사 복원이 2018년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되면서 가야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 가야를 포함해 사국시대라 부르게 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게 아닐까. 이렇게 한국사 안에서 소외되었던 가야인지라 가야사를 제대로 담은 어린이 책도 드물다. 『어린이 가야사』는 가야사 복원으로 조금씩 높아지는 관심과 호기심에 답하는 어린이 책으로, 가야의 건국신화에서부터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 연맹과 대가야가 이끄는 후기 가야 연맹, 제철 기술의 발달, 일본의 억지 주장과 임나일본부의 진실, 가야인의 의식주, 가야 토기의 특징, 무덤과 순장, 가야의 멸망과 후손들의 활약까지 가야의 역사와 가야 사람들의 생활을 폭넓게 알아볼 수 있다. 가야를 제대로 느끼려면 박물관으로! 박물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읽어요 신라를 알고 싶으면 경주에 가는 게 좋고 백제를 느끼고 싶으면 공주나 부여에 가면 좋듯이, 가야를 만나고 싶다면 김해나 고령을 방문하는 게 가장 좋다. 김해는 전기 가야 연맹을 이끌었던 금관가야가 자리 잡은 곳으로, 대성동 고분박물관에 가면 금관가야의 유물과 유적을 볼 수 있다. 고령은 후기 가야 연맹을 대표하는 대가야가 일어났던 곳으로, 가야의 왕릉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한 왕릉 전시관과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가야 박물관이 있다. 『어린이 가야사』는 두 박물관이 보유한 다양한 유물들과 유적들을 사진으로 미리 만날 수 있다. 철판을 옷감처럼 주물러 모양을 만들어 낸 가야의 판갑옷, 말에게 씌우는 철갑옷과 투구, 화려하고 정교하게 장식된 칼, 뜨거운 불에 녹여서 철기를 만들거나 화폐처럼 쓰이던 덩이쇠,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멋이 돋보이는 금동관,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 방패 꾸미개, 불꽃무늬 모양의 구멍을 뚫은 토기와 가야의 기마 무사를 표현한 기마 인물형 뿔잔 등 가야의 대표적인 유물들 수십 여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경주에 가면 커다란 무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것처럼 고령에도 동산만 한 무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어린이 가야사』에서는 이러한 지산동 고분군의 놀라운 풍경을 생생한 사진으로 보여 주고 있다. 박물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을 먼저 읽으면 책에서 본 유물과 유적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 더욱 반갑고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