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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프 만드는 여자, 팬케이크 먹는 남자
: 길리언 플린, 《나를 찾아줘》 버터를 몸에 바르는 이유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사프란라이스, 따뜻한 삶으로의 초대 :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말에서 해방된 맛 : 뮈리엘 바르베리, 《맛》 신경외과 의사의 생선스튜 레시피 : 이언 매큐언, 《토요일》 이토록 맛있는 영국 음식 : 제인 오스틴, 《엠마》 요리가 아닌 먹이를 선택한 여자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치즈 토스트만으로도 충분해 : 도나 타트, 《황금방울새》 카스테라, 우주를 품은 맛 : 박민규, 《카스테라》 헤밍웨이의 이유 있는 파리 탐식 :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소심한 영국 남자의 선택, 파스타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육식공동체에 저항하는 법 : 한강, 《채식주의자》 음모자들의 프라이드치킨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왜 하필 가츠동? :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뱀파이어와의 위험한 거래 : 위화, 《허삼관 매혈기》 나만의 ‘진짜’ 플레이버 : 마르쿠스 사무엘손· 베로니카 체임버스, 《예스, 셰프》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야 : 밥 딜런, ‘One More Cup of Coff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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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스가 그 농가에서의 점심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가 경험한 맛과 농부들이 경험한 맛의 차이가 말에 있다는 것이다. 농부들의 말은 그들의 땅에서 그들 스스로의 땀으로 거둔 먹거리에 대해 진솔하게 음미하는 말로 가득했다. 그들의 말에 비해 아덴스의 말은 음식보다는 자신의 말솜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알맹이 없는 화려한 껍데기였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훨씬 더‘맛있게’느껴졌다.
--- 〈말에서 해방된 맛〉 중에서 시녀들이 버터를 로션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의 여성성을 억압하는 사령관의 아내들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태아를 담는 용기로 축소시킨 길리아드 정권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버터를 먹지 않고 몸에 바르는 것은 음식과 그녀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며, 사랑과 욕망에 대한 자유를 찾고자 하는 행위이다. 시녀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주체성을 지켜나가면 언젠가는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버터를 몸에 바르는 이유〉중 자신의 존재감보다 다른 것들과의 결합을 통해 빛을 내는 음식들이 있다. 밥과 빵은 물론이고 두부, 모차렐라 치즈, 무 같은 것들이 그렇다. 맛있는 게장을 흔히 밥도둑이라고 하는데, 사실 여기서 도둑은 게장이 아니라 밥이다. 밥은 게장의 맛을 흡수해 우리의 입에 전달하고, 우리가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혀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게 해준다. 밥이 아니라면 게장은 우리가 그 맛을 음미하기 전에 혀를 지나쳐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릴 것이다. --- 〈카스테라, 우주를 품은 맛〉 중에서 헨리가 오렌지 껍질을 갈고 마늘을 까고 홍합을 손질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마치 손끝이 향하는 방향까지 포함해 몸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요가를 연상시킨다. 현재 자신의 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절대적으로 각성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이나 요가처럼 요리는 헨리에게 정신적인 공간을 마련해준다. 그에게는 요리를 하는 공간이 혼돈의 세계 속에서 작은 오아시스가 된다. 요리는 치유의 행위다. --- 〈신경외과 의사의 생선스튜 레시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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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먹는 행위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는 작품 속 인물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가 하는 일상적 행위 중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가장 잘 투영되는 행위이다. 인간은 누구나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욕구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이 속한 사회의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다. 허삼관은 피를 판 후 살기 위해, 그리고 다시 피를 팔기 위해 돼지간볶음을 먹고(《허삼관 매혈기》, 위화), 엠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 위해 저녁 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베이츠 씨네 집에 돼지고기를 보낸다(《엠마》, 제인 오스틴). 영혜는 어느 날 기이한 꿈을 꾸고 난 후부터 고기를 거부하다 극단에는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채식주의자》, 한강), 오브프레드는 금지된 자유를 은밀히 즐기는 수단으로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서로 다름으로 인한 갈등이 음식을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살아온 배경과 경험, 추구하는 삶이 다르다는 것이 에이미의 크레이프와 닉의 팬케이크을 통해 대비된다(《나를 찾아줘》,길리언 플린). 데이지가 만드는 초록 빛 민트줄렙과 샤르트뢰즈는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꿈을 좇는 개츠비의 무모한 도전을 묘사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게 사용된다(《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마르쿠스 사무엘손이 ‘진짜’ 플레이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와 그가 자란 스웨덴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예스, 셰프》, 마르쿠스 사무엘손 외). 어머니를 잃은 후 식욕을 잃었던 시오는 호비가 만들어준 치즈 토스트를 먹으며 처음으로 식욕을 느낀다. 시오에게 호비의 음식은 엄마의 집밥을 먹을 때와 같은 위로를 선사한 것이다(《황금방울새》, 도나 타트). 그들이 먹는 음식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 그 이면의 이야기들은 작품 속 인물이나 상황에 입체성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품 속에 내재된 은밀한 의미의 층을 풀어놓는 저자의 입담은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는 물론 익히 책을 읽은 독자에게도 독서에 대한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 현상으로, 욕망과 유희의 대상으로, 때로는 위로와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하는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음식 이야기와 함께 각 작품의 사회적 배경이나 문화, 이야기에 얽힌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깃거리는 책 속에 거론된 작품을 떠나 정소영이라는 작가의 글 자체를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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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은 지적 허기를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깊이 사귀지 못한다. 대체로 미식가들은 미적 감각, 예술적 탐닉, 지적 욕망도 강렬한 편이다. 하나의 요리에는 그 지역의 풍토와 문화, 관습과 역사가 배어 있고 심지어 과거 계급사회의 전통이 내포되어 있다. 정소영의 《맛, 그 지적 유혹》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통해 작가의 무의식, 인물들의 본능을 맛깔나게 해석해낸다. 다양한 문화이론과 풍부한 여행 경험을 통해 다져진 정소영의 지적 편력이 책 속에 묘사되는 요리 과정을 통해 담백하지만 도도하게 전달된다. 이 책은 맛에 대한 욕망을 미학적으로 진지하게 탐구함으로써 분석 대상이 된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은 지적 허기를 불러일으킨다. - 김미도 (연극평론가,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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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한정식을 한 상 제대로 대접받은 기분”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소개하는 가벼운 책인 줄 알고 펼쳐 들었는데, 음식을 매개로 문학 작품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해주는 묵직한 책이었다.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백반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한정식을 한 상 제대로 대접받은 기분이랄까! 음식을 사랑하는 이든, 문학을 사랑하는 이든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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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는 차라리 ‘자기 배려’의 처음이자 마지막 길”
‘인류의 번영은 신학자의 섬세한 해석보다 오히려 식이요법에 달려 있다’(《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며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육체를 경멸하고 정신만 영원하다는 생각에 젖어 있던 동시대인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먹는 것이 우리를 구성하고 우리를 살게 하며, 결국 우리를 정의한다. 올림포스의 신들조차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에 불멸성을 빚지고 있으며, 어려서 섭취했던 야생 동물의 골수 덕분에 아킬레우스는 육신의 힘은 물론 강건한 정신도 함께 유지할 수 있었다. 폐쇄된 창고에서 항생제로 길러진 닭고기나 냉동 라자냐를 먹고 자란 고대의 영웅이 없었듯 정크 푸드가 지배하는 현대인의 삶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건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는 차라리‘자기 배려’의 처음이자 마지막 길은 아니었던가. 그리스인에게 먹는다는 것은 또한‘함께’먹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호메로스를 읽으면서 느꼈던, 진귀한 요리를 맛보고 포도주를 마시며 함께 존재하는 기쁨을 정소영의 책 《맛, 그 지적 유혹》을 읽으며 다시 발견한다. 동서양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얼마나 자주 먹는 것으로 자신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평범한 장소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만들었으며, 자기 삶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궁금하다면 정소영의 책을 지금 펼쳐보라. - 조재룡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