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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ifer L. H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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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할아버지와 함께 자신만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엘리
『세 번째 버섯』은 젊어지는 신약을 개발해 십 대로 돌아간 할아버지가 여행에서 돌아오며 시작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는 엘리의 엄마와 티격태격 다툰다. 중국음식을 시킬 때도 박사 학위가 두 개인 자신이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던 그 모습 그대로다. 조금 시니컬하고 많이 논리적이고 때로 디지털 세상을 못마땅해 하는 할아버지는 알고 보면 순정남이다. 돌아가신 엘리의 할머니를 일편단심 그리워하고, 할머니가 읽어주던 로맨스 소설을 지금도 읽곤 한다. 엘리는 연극을 하는 부모와 달리 예술적인 소질이 없어 의기소침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 십대로 돌아간 할아버지와 지내며 자신도 몰랐던 재능에 눈을 떴고 이제는 과학이 좋다.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돌아오자마자 함께 실험을 한다. 마치 천문학자였던 허셜남매처럼 말이다. 격세 유전을 떠올리게 하듯 엘리는 엄마보다 할아버지를 더 닮은 듯하다. 좀처럼 새로운 걸 시도하려 들지 않는 할아버지처럼 엘리 역시 두려움이 많다. 늘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짧은 치미를 입고 다니는 엄마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엘리는 어려운 순간이 닥치면 함께 손을 잡고 위기를 헤쳐 나간다. 할아버지, 엄마, 엘리 이렇게 삼대가 한 집에서 펼치는 드라마가 유쾌하고 정겨운 동화다. 십 대의 삶과 과학이 만난 동화 여행을 떠났던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는 건 무엇보다 실험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엘리는 할아버지에게 팀을 이루어 과학전람회에 참여하자고 제안한다. 할아버지는‘십대들이나 참여하는 과학전람회’가 못마땅했지만 엘리는 최신 실험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물론 할아버지가 과학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노화를 역행해 십대로 돌아간 이유를 밝혀야만했다. 그러자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사용했던 아흘로틀을 살피고 실험할 곳이 필요했다. 할아버지는 실험실에서 손녀 엘리에게 과학자의 삶과 과학의 세계에 대해 들려준다. 작가인 제니퍼 홀름이 정교하게 짜놓은 서사에는 그래서 과학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엮어져있다. 동화를 읽다보면 모기가 황열병을 옮긴다는 사실을 밝혀낸 제임스 캐럴와 제시 라지어,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혜성을 발견한 캐럴라인 허셜과 윌리엄 허셜,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톤 판 레이우엔훅, 두 개의 이름으로 된 분류 체계 명명법을 만든 칼 폰 린네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마치 함께 실험실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니퍼 홀름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며 자랐다고 한다. 플레밍 같은 과학자가 현대인의 삶을 바꾸어 놓은 약을 우연히 발견해 내는 이야기에도 매료되었다. 작가는 마치 과학자들처럼 십 대인 엘리와 십대로 돌아간 할아버지가 동화 속에서 ‘과학자의 기대치 못한 순간’을 겪도록 이끈다. 엘리와 할아버지가 실험을 시작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엘리는 지루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대뜸 “할리우드가 과학을 다 망쳐 놓았다”고 말한다. 과학이란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살피는 일이며, 가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법이라고 말해준다. 엘리와 할아버지의 실험은 플레밍의 곰팡이 발견을 떠오르게 한다. 동화에서 과학 이야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버섯』은 과학을 소재로 삼은 보기 드문 동화이며, 과학자처럼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예기치 못한 세 번째 버섯의 마법 『열네 번째 금붕어』에서도 제니퍼 홀름은 과연 ‘열네 번째 금붕어’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열네 번째 금붕어’는 작품을 관통하는 상징이자 주제어였다. 엘리에게 그리 오래 살지 못하는 금붕어의 죽음은 슬픔이었다. 엘리는 삶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삶은 순간이기에 더 소중한 법이다. 모든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이 모든 걸 삶에서 보여준 사람은 바로 할아버지였다. 엘리는 열네 번째 금붕어는 할아버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 번째 버섯은 무엇일까? 동화는 버섯만큼은 먹지 않으려는 엘리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엘리는 한 번 그리고 두 번은 부모의 말을 따라 버섯을 먹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새로운 걸 먹어 봐”하는 부모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끔직한 맛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실험실의 햄 선생님이 나누어준 라자냐를 맛있게 먹은 후 그것이 버섯 라자냐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게다가 맛있다! 엘리의 세 번째 버섯은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와 달랐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실험처럼 말이다. 세 번째 버섯의 마법은 삶에도 일어난다. 돌아가신 할머니 말고 다른 여자는 만나지 않겠다던 할아버지에게도 예기치 못한 만남이 다가온다. 심지어 엘리는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지만 슬픔을 이겨내고 또 한 번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세 번째 버섯은 예기치 못한 가능성이다. 과학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삶에서도 종종 마법이 일어날 수 있다. 익숙한 것 보다 예기치 못할 일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로 한다면 누구나 삶에서 세 번째 버섯을 만날 수 있다. 엘리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