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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편지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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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의 개정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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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도입과 주제

첫째 편지 편지를 시작하며
둘째 편지 아름다움을 주제로 선택함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에 도달하기에

제2장 경험적 관찰[아름다움의 작용에 대한]

셋째 편지 물리적 품성과 도덕적 품성,
그리고 제3의 품성
넷째 편지 품성의 총체성
다섯째 편지 시대 비판
여섯째 편지 문화 발전의 도구가 된 개인: 분업과 소외
일곱째 편지 어떻게 우리 인성의 총체성을 회복할 수 있나?
여덟째 편지 지혜로워질 용기를 가져라
아홉째 편지 순수하게 살아 있는 원천
-아름다운 예술, 그리고 젊은 예술가에게
열째 편지 경험적 예들의 관찰:
비관적 결과→선험적 관찰로 넘어감

제3장 선험적 관찰[아름다움의 작용에 대한]
-칸트의 용어와 사유를 기반으로

열하나째 편지 개성과 상태
열두째 편지 두 가지 충동-감각충동과 형식충동
열셋째 편지 두 충동은 서로 제한한다
열넷째 편지 두 충동이 동시에 상호작용을 하는 놀이충동
열다섯째 편지 세 충동의 대상
-인간은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다
열여섯째 편지 진정시키는 아름다움과 활력을 주는 아름다움
열일곱째 편지 진정시키는 아름다움의 작용
열여덟째 편지 감각과 사변을 명료하게 구분하기와
아름다움 안에서 다시 결합하기
열아홉째 편지 용어 총정리: 비어 있는 무한성,
두 기본 충동, 의지와 자의식, 인성의 출현

제4장 실러 미학: 미적 상태와 미적 가상

스무째 편지 자유와 미적 상태
스물하나째 편지 미적 상태는 가득 채워진 무한성
스물두째 편지 미적 상태와 예술 장르의 특성
스물셋째 편지 미적 상태에서만 도덕적·윤리적 상태가 발전되어 나옴
스물넷째 편지 자연 상태. 이어서 이성의 첫 발현
-삶과 웰빙만을 무한히 갈구함
스물다섯째 편지 물리적 상태에서 미적 상태로 넘어가기,
아름다움이란? · 186
스물여섯째 편지 가상을 기뻐함-문화의 발전 단계 산책
스물일곱째 편지 문화의 발전 단계 산책.
아름다운 가상의 왕국-미적 국가

옮긴이의 해설 2 목적 없음의 목적: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에 도달한다
철학 용어 풀이
부록: '겨울 나그네' 원문

저자 소개 2

프리드리히 폰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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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von Schiller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년에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1781년에 익명으로 첫 번째 드라마 『군도(群盜, Die Rauber)』를 자비로 출판하고, 그다음 해에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질풍노도’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군도』의 혁명적인 내용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실러는 1782년 9월에 공국을 탈출해서 만하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튀링겐 지방의 바우어바흐(Bauerbach)로 피신해 리터(Ritter)라는 이름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한다. 1787년 7월 실러는 바이마르로 가서 괴테의 친구들인 헤르더와 빌란트를 만나고 이들의 영향으로 역사학과 그리스 고전 연구에 빠진다. 1788년 9월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괴테와 만나고 괴테의 주선으로 예나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게 된다.

사회적 신분을 얻게 된 실러는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에게 구혼해 1790년 2월에 결혼한다. 실러는 열정적으로 역사 연구에 매진해 [30년 전쟁사(Geschichte des dreißigjahrigen Krieges)](1791∼1793)를 비롯한 많은 역사 논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1791년 1월에는 심한 발열로 중병이 들어 그해 여름까지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태에 빠진다.

병으로 교수직을 내놓은 실러는 칸트 연구에 몰두한다. 1794년 초에는 예나로 거주지를 옮긴다. 1795년 『호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호렌』에는 헤르더, 피히테,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요한 하인리히 포스와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하자 괴테와 함께 자신들을 비방하는 문인들을 공격하는 2행시 모음집인 [크세니엔]을 실러가 1796년부터 발행하는 『문예 연감(Musen-Almanach)』에 발표하게 된다.

1797년은 실러의 “발라드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많은 발라드(담시)가 나왔다. 그 가운데 [장갑(Der Handschuh)], [잠수부(Der Taucher)], [종(鐘)의 노래(Lied von der Glocke)], [폴리크라테스의 반지(Der Ring des Polykrates)], [이비쿠스의 두루미들(Kraniche des Ibykus)]이 유명하다.

1799년 바이마르로 이사한 실러는 30년 전쟁(1618∼1648)의 비극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 『발렌슈타인(Wallenstein)』과 시 [종의 노래(Das Lied von der Glocke)]를, 1800년에는 『메리 스튜어트(Maria Stuart)』를, 1801년에는 『오를레앙의 처녀(Jungfrau von Oreans)』를 연이어 완성한다. 1802년에는 귀족 칭호를 수여받아 프리드리히 폰 실러로 불리게 되었다. 1803년에 실러는 『메시나의 신부(新婦)(Die Braut von Messina)』, 1804년에 『빌헬름 텔(Wilhelm Tell)』을 차례로 완성하고 『데메트리우스(Demetrius)』를 작업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한다.

실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실러가 죽었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실러는 1805년 2월부터 실제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실러는 5월 1일에 극장으로 가는 길에 괴테를 마지막으로 만났고, 9일에 폐결핵으로 인한 폐렴으로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1805년 5월 12일에 바이마르의 성 야곱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1826년 이장을 위해 발굴한 유골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1827년 12월 16일 바이마르에서 새롭게 건설된 공동묘지의 ‘군주 묘역(Furstengruft)’에 매장하지 않고 안치되었으며, 나중에 괴테도 본인의 바람에 따라 실러 옆에 놓이게 되었다.

실러는 평생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했고,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명예심과 열정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에게 이런 의지를 부여한 것은 뜨겁고 격렬한 감정으로, 더 높이 비약함으로써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실러는 비극적 운명을 도덕적 행위나 영웅적 행위 또는 범죄적 행위라도 인간의 위대함을 행해 가는 의지와 현세적 정의의 회복으로 생각되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비극적 운명은 그의 드라마에서 역사적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러는 이 역사적 현실에 의해 운명적인 인간의 삶의 현실을 보여 주려고 했던 위대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간계와 사랑』(1784), 『군도』(1781), 『발렌슈타인』3부작 (1799), 『마리아 슈투아르트』(1800), 『오를레앙의 처녀』(1801), 『빌헬름 텔』(18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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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이자 도이치어권 대표 번역자. 북유럽 신화, 유럽의 문화와 역사 등 여러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밤베르크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는 『데미안』 『돈 카를로스』 『파우스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국번역가협회 번역대상)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한독문학번역상) 『트리스탄과 이졸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그림 전설집』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전3권)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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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41g | 150*225*20mm
ISBN13
9788958624899

출판사 리뷰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 프리드리히 실러
그가 칸트의 철학을 바탕으로 쓴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실러는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훌륭한 극작가이자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칸트의 철학에 심취한 미학자였다. 이 책 《미학 편지》(원제: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는 그의 대표적인 미학 논문으로, 칸트의 철학 체계를 토대로 ‘인간의 미적 형성’을 다루고 있다.

독일 문화권의 대표적인 번역자이자 인문학자 안인희는 1995년 이 책을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다(당시 제2회 한독문학번역상을 받았다). 그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정교한 번역을 통해 새로운 제목으로 내놓았다. 프리드리히 실러라는 어려운 고전 작가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의 곤혹스러움을 잘 아는 그가 재차 이 책을 번역한 이유는, 《미학 편지》가 1795년 발표 당시 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 것은 물론, 오늘날까지 여전히 중요한 사상가와 예술가 들에 의해 새로운 맥락에서 수용되고 있는 고전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연구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에 도달한다”


실러는 1759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마르바흐에서 태어났다.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졸업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하급 군의관이 되었다. 사관학교 재학 중에 셰익스피어, 레싱, 호메로스, 괴테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고, 시와 희곡 쓰기를 시작했다. 그때 쓴 그의 첫 번째 희곡 《군도群盜》가 1782년 만하임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되면서 작가로서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그는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간계와 사랑》, 《돈 카를로스》, 《발렌슈타인》, 《빌헬름 텔》 등 9편의 희곡을 완성했다. 그는 또한 시인으로도 이름을 남겼는데, 그중 〈환희의 송가〉는 베토벤이 〈교향곡 9번(합창)〉에 이 시를 가사로 붙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살아생전에 괴테보다 유명했지만,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고단했다. 일찌감치 사관학교에 차출되어 가족과 헤어진 채 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고, 극작가로 데뷔한 후로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1789년에는 예나대학교의 역사학 객원교수가 되었고 결혼도 하지만, 이때부터 폐렴과 늑막염으로 앓아누웠다.

실러는 덴마크의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으로부터 3년 동안 매년 1천 탈러씩 후원금을 받게 되어 그 덕분에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원조를 받는 동안 그는 칸트 철학 연구에 몰두했고, 여러 미학 논문을 집필했다. 오늘날까지 실러가 고전 미학자로서 명성을 인정받는 것은 대개 이 시기에 쓴 논문들 덕분이다. 1793년 2월 그는 조건 없이 자신을 후원해 준 덴마크의 공작에게 ‘예술과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편지로 써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실러는 공작에게 보낸 이 편지들을 약간 손보아 1795년 1월 자신이 발행하던 잡지 《호렌Die Horen》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미학 편지》는 실러가 극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깊이 있게 역사학 및 미학 연구를 병행하고 논문을 남긴 학자였음을 증명해 주었다.

실러 미학의 난제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실러는 《미학 편지》에서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철학 체계를 토대로 자신의 미학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칸트 철학의 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실러의 미학 이론을 따라가기 어렵다. 칸트를 거쳐야 실러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진 첫 번째 난제이다.

두 번째 난제는 책의 문체에서 비롯된다. 실러는 미학을 다루는 산문은 건조한 학술적인 문장이 아닌, 감각성과 자유로움이 함께 구현된 미적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러를 옹호한 사람들조차 이 책이 지닌 난해한 문체를 비판했다. 편지의 수신자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마저 실러의 글을 이해하려면 “시적으로 발언된 것을 정밀한 철학적 언어로 옮겨 줄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했고, 철학자 피히테도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몽땅 번역해야 한다”고 말했다.

번역자 안인희는 이러한 난제들 속에서 일차적으로 번역을 마친 다음, 원서와 번역 텍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전체 내용을 파악했고 번역문에 나타나는 일부 용어들을 통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 파악이 쉽지 않아 마지막까지 용어 수정을 계속 했고, 결국 본문 앞뒤로 비교적 긴 ‘해설’을 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옮긴이의 해설 1’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실례로 들어 실러의 미학을 이해할 때 가장 핵심적 내용인 ‘미적 가상’을 설명한다. ‘옮긴이의 해설 2’는 《미학 편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보?준다. 작품의 발생사와 배경 설명, 그리고 이 책의 도식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옮긴이의 해설 2’에 이어서 나오는 ‘철학 용어 정리’는 안인희의 절친한 친구 브리기테 레더러Brigitte Lederer 박사가 작성한 것이다. 레더러 박사는 빈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여러 해 교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스피노자와 데카르트에서 시작해 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칸트에 이른 사람이다. 안인희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실러의 텍스트에 동원된 수많은 철학적 개념들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칸트의 철학을 넘어 실러의 미학으로
“대체 미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실러 미학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사건이다. 당시 독일의 지식인들은 왕의 절대적 권위가 무너지고 시민의 권리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이 난 혁명을 지켜보면서 실러는 내적 인간의 변화 없이 국가체제를 뒤엎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자유가 실현된 사회를 만들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체제가 아닌 인간의 내면을 먼저 변화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실러는 역사학자로서 30년 전쟁의 역사와 에스파냐 절대주의에 맞선 네덜란드 독립 전쟁의 과정을 탐색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들에서도 그는 사회 구조의 개선보다 먼저 내적 인간을 개선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내적 인간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실러가 《미학 편지》에서 내놓은 답변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에 도달한다.” 즉 미적 체험을 통해 인간은 먼저 미적으로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개선된 인간이 윤리적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고, 정치적 자유를 구현한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게 된다. 즉 그의 답변은 예술 체험을 통해 혁명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학 편지》가 오늘날까지 중요한 사상가들에 의해 인용되고 새로운 맥락에서 수용되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이 아름다움과 예술을 통한 이상사회 건설의 이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더라도 인간은 끊임없이 그 같은 꿈을 꾼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이미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나 교육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인간 개혁과 사회 개혁의 전망이 여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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