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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패스 시리즈
빌헬름 텔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 읽는 여행, 스위스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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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구성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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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빌헬름 텔』
등장인물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실러의 참고 문헌들

해설 | 칼을 쥐고도 자제하는 성숙한 시민의 승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제1부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차라투스트라의 말씀
1. 세 가지 변화에 대해
2. 미덕의 강좌들에 대해
3. 뒤편 세상 사람들에 대해
4.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
5. 기쁨과 정열에 대해
6. 창백한 범죄자에 대해
7. 읽기와 쓰기에 대해
8. 산의 나무에 대해
9.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해
10. 전쟁과 전쟁 종족에 대해
11. 새로운 우상[국가]에 대해
12. 시장의 파리들에 대해
13. 순결함에 대해
14. 친구에 대해
15. 천 개의 목표와 한 개의 목표에 대해
16. 이웃 사랑에 대해
17.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해
18. 늙은 여자들과 젊은 여자들에 대해
19. 뱀의 물어뜯기에 대해
20. 아이와 결혼에 대해
21. 자유로운 죽음에 대해
22. 선물하는 미덕에 대해

해설 | 가치 뒤집기와 새로운 희망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머리말

클링조어
루이
카레노 소풍
클링조어가 에디트에게
몰락의 음악
8월의 저녁
클링조어가 잔인한 사람 루이에게 편지를 쓰다
클링조어가 친구 두보에게 시 한 편을 보내다
―그가 자화상을 그리던 나날들에 쓴 것
자화상

해설 | 탐미적 술꾼의 최후

『읽는 여행, 스위스』
들어가는 말

제1부 고독한 산책자 니체

제1장 젊은 날의 니체
제2장 ‘쪽빛 고독’ 속에 홀로 선 작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성공의 길, 유혹자 바그너

제1장 소년들을 유혹하다
제2장 여인들을 유혹하다, 바그너의 영원한 삼각형

제3부 프리드리히 실러와 스위스 민주주의

제1장 《빌헬름 텔》, 스위스 독립 이야기
제2장 프리드리히 실러
제3장 옛날 스위스 용병들의 길

제4부 생의 한가운데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헤세

제1장 두 번의 위기, 두 번의 도주
제2장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제3장 산 살바토레산의 푸니쿨라와 몬타뇰라 걷기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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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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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설과 시, 수많은 그림을 남겼고, 평생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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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폰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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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von Schiller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
의사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는 1759년 11월 10일에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 공국의 작은 마을인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나 군의관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슈바벤 지방의 로르히(1764), 루트비히스부르크(1766)로 옮겨 다니며 성장한다.

1773년 뷔르템베르크의 카를 오이겐(Karl Eugen) 공작의 명령에 의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트 사관 학교인 카를스슐레(Karlsschule)에 입학해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전공을 의학으로 바꾸어서 1780년에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1781년에 익명으로 첫 번째 드라마 『군도(群盜, Die Rauber)』를 자비로 출판하고, 그다음 해에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질풍노도’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군도』의 혁명적인 내용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실러는 1782년 9월에 공국을 탈출해서 만하임,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튀링겐 지방의 바우어바흐(Bauerbach)로 피신해 리터(Ritter)라는 이름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한다. 1787년 7월 실러는 바이마르로 가서 괴테의 친구들인 헤르더와 빌란트를 만나고 이들의 영향으로 역사학과 그리스 고전 연구에 빠진다. 1788년 9월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괴테와 만나고 괴테의 주선으로 예나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게 된다.

사회적 신분을 얻게 된 실러는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에게 구혼해 1790년 2월에 결혼한다. 실러는 열정적으로 역사 연구에 매진해 [30년 전쟁사(Geschichte des dreißigjahrigen Krieges)](1791∼1793)를 비롯한 많은 역사 논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너무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1791년 1월에는 심한 발열로 중병이 들어 그해 여름까지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태에 빠진다.

병으로 교수직을 내놓은 실러는 칸트 연구에 몰두한다. 1794년 초에는 예나로 거주지를 옮긴다. 1795년 『호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호렌』에는 헤르더, 피히테,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요한 하인리히 포스와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같은 쟁쟁한 작가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호응을 받지 못하자 괴테와 함께 자신들을 비방하는 문인들을 공격하는 2행시 모음집인 [크세니엔]을 실러가 1796년부터 발행하는 『문예 연감(Musen-Almanach)』에 발표하게 된다.

1797년은 실러의 “발라드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많은 발라드(담시)가 나왔다. 그 가운데 [장갑(Der Handschuh)], [잠수부(Der Taucher)], [종(鐘)의 노래(Lied von der Glocke)], [폴리크라테스의 반지(Der Ring des Polykrates)], [이비쿠스의 두루미들(Kraniche des Ibykus)]이 유명하다.

1799년 바이마르로 이사한 실러는 30년 전쟁(1618∼1648)의 비극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 『발렌슈타인(Wallenstein)』과 시 [종의 노래(Das Lied von der Glocke)]를, 1800년에는 『메리 스튜어트(Maria Stuart)』를, 1801년에는 『오를레앙의 처녀(Jungfrau von Oreans)』를 연이어 완성한다. 1802년에는 귀족 칭호를 수여받아 프리드리히 폰 실러로 불리게 되었다. 1803년에 실러는 『메시나의 신부(新婦)(Die Braut von Messina)』, 1804년에 『빌헬름 텔(Wilhelm Tell)』을 차례로 완성하고 『데메트리우스(Demetrius)』를 작업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한다.

실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실러가 죽었다는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실러는 1805년 2월부터 실제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실러는 5월 1일에 극장으로 가는 길에 괴테를 마지막으로 만났고, 9일에 폐결핵으로 인한 폐렴으로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죽었다. 1805년 5월 12일에 바이마르의 성 야곱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1826년 이장을 위해 발굴한 유골이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1827년 12월 16일 바이마르에서 새롭게 건설된 공동묘지의 ‘군주 묘역(Furstengruft)’에 매장하지 않고 안치되었으며, 나중에 괴테도 본인의 바람에 따라 실러 옆에 놓이게 되었다.

실러는 평생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했고,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명예심과 열정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에게 이런 의지를 부여한 것은 뜨겁고 격렬한 감정으로, 더 높이 비약함으로써 헌신과 희생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실러는 비극적 운명을 도덕적 행위나 영웅적 행위 또는 범죄적 행위라도 인간의 위대함을 행해 가는 의지와 현세적 정의의 회복으로 생각되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비극적 운명은 그의 드라마에서 역사적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러는 이 역사적 현실에 의해 운명적인 인간의 삶의 현실을 보여 주려고 했던 위대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간계와 사랑』(1784), 『군도』(1781), 『발렌슈타인』3부작 (1799), 『마리아 슈투아르트』(1800), 『오를레앙의 처녀』(1801), 『빌헬름 텔』(18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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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이자 도이치어권 대표 번역자. 북유럽 신화, 유럽의 문화와 역사 등 여러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밤베르크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는 『데미안』 『돈 카를로스』 『파우스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국번역가협회 번역대상)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한독문학번역상) 『트리스탄과 이졸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그림 전설집』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전3권)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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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924쪽 | 125*188*90mm

출판사 리뷰

‘자유의 시인’ 실러가 ‘자유의 영웅’들을 등장시켜 들려주는 《빌헬름 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실러는 스위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역사서를 탐독하며 스위스 독립사의 역사적 의의를 탐구했다. ‘텔의 전설’에 자신이 오랫동안 화두로 삼은 ‘자유’를 녹여 역사적 고증, 문학적 사료, ‘자유’라는 자신의 철학적 태도가 결합된 《빌헬름 텔》을 썼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세 고을 평민 대표들이 비밀리에 민회를 열어 결행하는 총궐기이고, 둘째는 혼자 움직이는 텔의 영웅담이다. 인물들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거나 홀로 깊이 생각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이는 《빌헬름 텔》의 주요 요소로써 실러는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민회를 열었던 평민 대표들은 상황이 변하자 귀족을 지휘자로 받아들이고, 궐기를 앞당기는 등 유연하게 대처한다(“갑시다, 우리를 지휘하시오. 당신을 따르겠소.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왜 내일로 미루지요?”). ‘민족의 아버지’라 불리는 귀족 아팅하우젠은 평민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을 마음을 다해 받아들인 뒤(“우리 뒤에도 민중은 살지 - 인류의 위대함은 다른 힘으로 자신을 지탱하려 하는구나.”) 낡은 것이 사라지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조카 ‘루덴츠’는 오스트리아 편에 서 있었는데 연인과 긴 대화를 나눈 끝에 스위스 민족 편(“이방의 속박을 영원히 끊고 내 민족의 편에 남겠습니다.”)에 선다.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인물은 텔이다. 처음에는 자신은 평화로운 자이니 평화가 허용될 거라면서 동맹을 맺자는 권유도 거절한다. “공동의 일을 그리도 냉정하게 버려두실 거요?”라는 호소에는 “각자 오직 저 자신만을 믿지”라고 응수한다. 하지만 태수 ‘게슬러’의 폭정으로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에 화살을 쏘아 맞혀야 했던 일을 겪고 포박된 채 끌려가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뒤 “가장 경건한 사람도 평화로울 수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생각을 바꾼다.


나는 조용히, 해롭지 않게 살았다 - 활쏘기는
오로지 숲의 짐승들만을 향한 것,
내 생각은 살인과는 무관했지 -
네가 나의 평화에서 나를 밖으로
끌어낸 거지, 경건한 사고방식의 젖줄을
네가 끓어오르는 맹독으로 바꾸었다. (202쪽)

실러가 제안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가는 길

안인희 번역가는 《빌헬름 텔》의 인물들이 내면의 발전을 이루기 때문에 “올바른 한계를 지킬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황제를 죽이고 도망치던 ‘파리치다’는 텔을 만난 뒤 “당신의 집에선 자비심을 보리라 희망”했다고 하지만, 텔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살인을 저지른 파리치다와 “아비의 정당한 자기방어”를 똑같이 볼 수 없다며 선을 긋는다. 프랑스 혁명을 자세히 관찰한 실러는 혁명으로 세워진 공화국 정부가 혼란을 겪은 끝에 왕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혁명의 열기에 편승해 “과격함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성숙한 시민, 계몽된 시민”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를 ‘미적 상태’(asthetischer Zustand)라고 부른 실러는 이에 도달하기 위한 ‘미적 교육(asthetische Erziehung)’을 강조했는데 《빌헬름 텔》의 등장인물을 통해 ‘미적 교육’의 과정과 결실을 보여준다. “칼을 주먹에 쥐고도 자제하는 민족은 정당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 장면은 실러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작품 속 인물들은 ‘꼭 필요한 행동’만 하면서 적들을 쫓아냈고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동안 개인적인 복수심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실러는 예술을 통할 때 ‘미적 교육’을 할 수 있고, “인간 내면의 참된 성숙과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좋은 작품을 보고 거듭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인희 번역가 역시 AI가 많은 영역을 대체하는 오늘날, 비록 “한가로운 대답”일지언정, “좋은 작품을 접하려는 노력”과 “성찰하면서 사유의 방법을” 익히려는 태도가 중요하 다고 역설한다.

온갖 기술을 익히는 바쁜 시간 사이로, 좋은 작품을 접하려는 노력도 꼭 필요하다. 미적 교육을 통해 인간은 복잡 미묘 한 지성과 인간만의 품위를 유지하고 인간의 고유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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