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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사부다 팝업북 5종 세트: 인어공주+신데렐라+미녀와 야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
인어공주/신데렐라/미녀와 야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 팝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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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사부다 팝업북

이 상품의 구성 소개

책소개

목차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인어공주

저자 소개 4

루이스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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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is Carroll,Charles Lutwidge Dodgson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로 자리매김한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전 세계적인 동화작가 된 루이스 캐롤은 1832년 1월 27일 영국 체셔 지방의 유복하지만 엄격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공회의 지역 교구 주임 사제였던 아버지 때문에 16년 동안 사제 사택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말장난, 체스 게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립학교인 리치먼드 스쿨과 럭비 스쿨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열일곱 살 때 백일해를 앓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로 자리매김한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전 세계적인 동화작가 된 루이스 캐롤은 1832년 1월 27일 영국 체셔 지방의 유복하지만 엄격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공회의 지역 교구 주임 사제였던 아버지 때문에 16년 동안 사제 사택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말장난, 체스 게임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립학교인 리치먼드 스쿨과 럭비 스쿨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열일곱 살 때 백일해를 앓으면서 오른쪽 귀에 이상이 생겼으며 이후 말을 더듬게 되었다. 1851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 입학했고 1855년부터 188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은 탓에 그리 인기 있는 강사라 할 수는 없었다. 말을 더듬는 버릇과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유일하게 아이들과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등 창작과 편집에 소질을 보여, 1856년부터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여덞명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직접 삽화를 그린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은 이후 사진으로 옮겨갔고, 1856년 카메라를 산 캐럴은 주로 여자 아이들 사진을 찍으며 24년간 사진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실제로 캐럴은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특히 크라이스트처치대학 학장의 세 딸과 친하게 지냈고, 그중 각별했던 둘째 앨리스 리델을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 템스강에서 함께 피크닉을 갔던 열살 난 앨리스 리덜과 자매들(단과대 학장의 세 딸)에게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탄생했다. 바로 그 이야기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줄거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지하 세계의 앨리스』라는 이름의 자필로 쓴 이야기 책이었으나 후에 맥밀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로 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제목이 변경되었다.

순종과 도덕을 가르치는 기존 동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신기하고 허무맹랑한 캐릭터들과 만나 모험을 하는 파격적인 동화였다. 1865년 출판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가 됐다. 그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환상문학의 효시가 된다. 하지만 생전 그는 자신이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앨리스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거부했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루이스 캐럴은 그의 어린소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소아성애도착증 환자가 아니었는가 논쟁의 대상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은 수많은 나라에서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며 많은 이들의 창조적 영감에 불을 지핀 사랑스러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외에는 그 속편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1ice Found There』(1871) 등의 유머와 환상이 가득찬 일련의 작품으로써, 근대 아동문학 확립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난센스 문학의 고전이 된 이 두 작품 외에도 장편소설 『실비와 브루노』(전2권, 1889, 1893)를 비롯해, 난센스 시 『요술 환등 외』(1896), 『스나크 사냥』(1876), 『운율 그리고 이성』(1882)을 출간했고 『논리 게임』(1887)과 같은 퍼즐 및 게임에 관한 책들도 여러 권 집필했다.

옥스퍼드 대학 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어느 옥스퍼드 학생의 기록」(1874)을 비롯한 다양한 풍자 팸플릿을 쓰는가 하면, 『유클리드와 현대의 맞수들』과 『상징 논리』(1896) 같은 논리학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빅토리아 시대 유명 인사들과 아이들을 찍은 사진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성직자 서품을 받았지만 1881년 강단에서 물러난 뒤에도 설교단에 서지는 않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898년 『세 일몰』의 교정쇄와 『상징 논리』의 2부 원고를 마무리하던 중 길포드에서 숨을 거두었고, 조촐한 가족장 후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소설이나 시는 현대의 초현실주의 문학과 부조리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간주되며, 넌센스 문학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루이스 캐롤의 다른 상품

원저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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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hristian Andersen

덴마크 오덴세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대개는 혼자 집에서 공상하거나, 자기만의 작은 극장을 갖고 놀거나 인형 옷을 만들어 놀았다.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어 열네 살에 무작정 대도시 코펜하겐으로 가 여러 극단을 찾아다니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매번 퇴짜를 맞았다. 14세 때 코펜하겐의 덴마크 왕립 극장의 단원이 되어 배우의 꿈을 키우지만 변성기가 오면서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1822년 완성한 희곡 『알프솔』은 상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치가 요나스 콜린과 국왕 프레데리크 6세의 도움으로 본격적
덴마크 오덴세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대개는 혼자 집에서 공상하거나, 자기만의 작은 극장을 갖고 놀거나 인형 옷을 만들어 놀았다.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어 열네 살에 무작정 대도시 코펜하겐으로 가 여러 극단을 찾아다니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매번 퇴짜를 맞았다. 14세 때 코펜하겐의 덴마크 왕립 극장의 단원이 되어 배우의 꿈을 키우지만 변성기가 오면서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1822년 완성한 희곡 『알프솔』은 상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치가 요나스 콜린과 국왕 프레데리크 6세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1827년에는 시 「죽어가는 아이」가 코펜하겐 신문에 실렸다. 여행을 즐긴 안데르센은 유럽 곳곳을 누비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1835년 서른 살에 첫 소설 『즉흥시인』을 발표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발간했으나, 처음엔 비난받기 일쑤였다. 교육적, 계몽적 측면보다 환상적 묘사에 힘을 실은 동화는 외면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잇달아 기발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창작 동화를 발표하며 명성을 떨쳤다.

오늘날 안데르센은 구전 민담의 원형을 넘어서서 ‘동화’ 장르를 개척한 ‘동화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못생긴 새끼 오리』, 『눈의 여왕』,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나이팅게일』 등 생전에 남긴 200여 편의 동화는 ‘불멸의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100여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동화뿐만 아니라 소설, 시, 극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그는 자신이 관찰하고 상상한 모든 것을 현실로 불러들이고, 이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작가이자 예술가이다.

1875년 친구인 멜히오르가(家)의 별장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덴마크 국민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장례에는 국왕 내외도 참석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다른 상품

샤를 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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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Perrault

1628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페로 동화집』의 작가로 유명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왕실에서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하며 ‘신구논쟁’에서 근대파를 대표했다. 은퇴 후 자녀 교육을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한 그는 1697년 민간에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신데렐라」,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의 작품들이 수록된 『페로 동화집』을 출간한다. 이 책은 민담을 텍스트로 정리한 세계 최초의 동화집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페로는 ‘동화의
1628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페로 동화집』의 작가로 유명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왕실에서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하며 ‘신구논쟁’에서 근대파를 대표했다. 은퇴 후 자녀 교육을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한 그는 1697년 민간에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신데렐라」,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의 작품들이 수록된 『페로 동화집』을 출간한다.

이 책은 민담을 텍스트로 정리한 세계 최초의 동화집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페로는 ‘동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동화들은 “옛이야기를 문학의 한 장르로 당당히 끌어올렸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발레,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로 재탄생했고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몰리에르나 코르네유 등 당대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보다 명성이 훨씬 미약했지만 그의 집안은 거의 사단이라고 불릴만큼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페로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되기도 했으나 법조인으로 남지 않았다. 그는 여러 작품을 발표했으나 문단의 중심에 진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교계와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페로는 1660년에 두 편의 찬양 시를 발표해 왕실 측근들의 관심을 받는다. 콜베르에 의해 1663년 총무의 직책에 임명된다.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한 이래 궁정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한 콜베르의 비호와 배려로 페로는 왕실과 군주의 영광을 고취하는 다양한 임무에 종사한다.

1668년 콜베르의 추천으로 건설차관에 오른 샤를 페로는 1671년, 드디어 한림원 회원에 피선되어 공직 생활에서 얻은 명성에 방점을 찍는다. 한림원 회원으로 피선된 이듬해 44세가 된 페로는 당시 19세에 불과한 규수 마리 기숑과 결혼해 3남 1녀를 두는데, 그중 막내이자 셋째 아들인 피에르는 훗날 부친의 동화집 출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던 페로는 불과 6년 만에 부인과 사별해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자식 네 명을 양육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1683년 콜베르의 사망으로 페로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넌다. 20년 넘게 권세를 누린 콜베르 덕분에 정치권에 밀착했던 페로는 문학과 자녀의 양육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일단 회원이 되면 종신으로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한림원에서 페로는 프랑스 문단과 지성계를 양분시키는 일대 사건을 도발한다. 1687년 1월 27일, 한림원 회원들 앞에서 <위대한 루이 왕의 세기>라는 제하의 시를 낭송한다. 르네상스 시대 후 학문과 예술에 절대적인 모방의 대상이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 못지않게 당대의 작가들 또한 매우 높은 수준의 작품을 발표했다는 페로의 주장은 신구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발전에 기초하기 때문에 당대의 문학과 예술, 과학과 기술의 성과는 고대인들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부알로를 위시해 라신, 라 퐁텐 등 작가로서의 위상이 훨씬 두드러졌던 인사들은 고대의 작가들이야말로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 모델을 제시했다고 주장하며 근대파와 대립했다. 1694년 8월 30일, 아르노의 중재로 논쟁은 종식되었지만, 고대 문학의 절대적 권위에서 해방을 시도하며 발전에 대한 믿음을 보여 준 근대파의 진보적 역사관은 다음 세기에 출현할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신구논쟁의 파장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1697년 페로는 셋째 아들 피에르의 이름으로 『지난 시절의 이야기 혹은 콩트』를 간행해 독자들로부터 즉각적인 호응을 받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공직자이자 문인이었던 페로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겠다는 일념으로 『회상록』의 집필을 시작하지만 그 출판을 보지 못하고 1703년 5월에 유명을 달리한다. 페로가 편찬한 동화집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 어린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프랑스 최고의 판타지 문학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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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로버트 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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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Sabuda

삽화가이자 페이퍼 엔지니어입니다. 로버트 사부다는 미시건주의 작은 마을 핑크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사무실에서 가져다주신 낡고 두꺼운 종이 파일들을 가지고 팝업 카드나 책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사부다는 8살 때부터 주위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자신이 만든 놀라운 팝업 작품들을 선물했습니다. 일찍이 어린이책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치겠노라 결심한 사부다였지만, 처음에는 여성용 속옷 박스를 디자인하는 등 고생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1988년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이라는 책의 일러스트로 데뷔를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삽화 위주로 작업했지만, 언제나 좀
삽화가이자 페이퍼 엔지니어입니다. 로버트 사부다는 미시건주의 작은 마을 핑크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사무실에서 가져다주신 낡고 두꺼운 종이 파일들을 가지고 팝업 카드나 책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사부다는 8살 때부터 주위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자신이 만든 놀라운 팝업 작품들을 선물했습니다. 일찍이 어린이책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치겠노라 결심한 사부다였지만, 처음에는 여성용 속옷 박스를 디자인하는 등 고생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1988년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이라는 책의 일러스트로 데뷔를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삽화 위주로 작업했지만, 언제나 좀 더 혁신적인 스타일을 원했던 사부다는 1994년부터 그가 플랫 아트 북이라고 부르는 『투탄카멘의 선물』, 『아서와 칼』, 『종이용』 등을 펴냅니다. 현재는 팝업 북의 장인으로 더 이름이 높은 사부다는 1994년 자신의 최초의 팝업 북인 『크리스마스 알파벳』을 시작으로, 『12일간의 크리스마스』, 『오즈의 마법사』 『인어공주』 등을 작업했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맨해튼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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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10일
판형
팝업북 ?
쪽수, 무게, 크기
117쪽 | 210*260*20mm

리뷰/한줄평821

리뷰

9.8 리뷰 총점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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