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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프랑스 혁명 3
성자들의 전쟁
한길사 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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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주요등장인물
1 대귀족
2 신전
3 자코뱅 클럽
4 새로운 질서
5 신문
6 소개
7 악연
8 사제복을 입은 망자들
9 무너뜨리기
10 몽모랭의 보고
11 담합
12 대결
13 회견
14 아비뇽 문제
15 연맹제
16 고발
17 동지로서
참고문헌

저자 소개 2

사토 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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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ichi Sato,さとう けんいち,佐藤 賢一

1968년 일본 야마가타 현 쓰루오카 시에서 태어났다. 주로 중세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써온 소설가다. 야마가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도호쿠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쓴 『재규어가 된 남자』로 1993년 제6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받았다. 1999년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의 이혼사건을 다룬 『왕비의 이혼』으로 제121회 나오키 상을 받으면서 서양역사소설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구상에만 20년이 걸린 역작, 『소설 프랑스혁명』(전12권)을 Tm고 있으며, 일본사나 미국사 등으로도 집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용병 피에르』 『붉은
1968년 일본 야마가타 현 쓰루오카 시에서 태어났다. 주로 중세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써온 소설가다. 야마가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도호쿠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쓴 『재규어가 된 남자』로 1993년 제6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받았다. 1999년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의 이혼사건을 다룬 『왕비의 이혼』으로 제121회 나오키 상을 받으면서 서양역사소설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구상에만 20년이 걸린 역작, 『소설 프랑스혁명』(전12권)을 Tm고 있으며, 일본사나 미국사 등으로도 집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용병 피에르』 『붉은 눈』 『쌍두의 매』 『카이사르를 쳐라』 『카르티에 라탱』 『2인의 검객』 『옥시타니아』 『검은 악마』 『갈색의 문호』 『상아색의 현자』 『미국 제2차 남북전쟁』 『카포네』 『영불백년전쟁』 『프랑스혁명의 초상』 『달타냥의 생애』 『카페 왕조』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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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5권)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역자 후기 모음집 『번역가의 서재』를 펴냈으며, 1997년에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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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546g | 148*210*30mm
ISBN13
9788935668137

출판사 리뷰

역사가 마련한 무대에 영웅을 올려 혁명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다

'소설 프랑스혁명'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만 머물러 있던 프랑스혁명을 독자들의 곁으로 돌려준다. ‘프랑스혁명’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무게감을 덜어냈다. 대신 간결한 구어체 서술로 사건의 호흡을 빠르게 전개하고 우발적 사건 전개 속에서 혁명의 주역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설득력 있는 상상으로 채웠다. 따라서 '소설 프랑스혁명'은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인물 간의 대화가 중심이 된 서술과 치밀한 배경 설명이 입체감 있게 어우러져 극적인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 안에서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사토 겐이치의 서술은 프랑스혁명이라는 대사건에 묻힌 인간군상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며, 이들이 이끌어나가는 사건 전개가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키는 것임을 보여준다.

미라보는 지금이야말로 좋은 기회라면서 더욱 따지고 들었다.
아아, 귀하한테는 아무 자격도 없소. 여기에는 의석도 없고 발언권도 없소.
따라서 폐하의 말을 생각하라고 우리한테 강요할 수도 없소.
번지수가 틀린 이상, 당장 돌아가서 당신을 보낸 자들에게 전하시오.

“우리는 인민의 의지에 따라 여기 와 있소.
총검의 힘에 의하지 않고는 떠나지 않을 것이오.”(1권 238쪽)
불신과 공포의 혁명 전야
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혼란스러웠다. 왕과 관료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독립전쟁 참가로 인한 무리한 지출과 프랑스를 덮친 대기근은 민중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봉건적인 특권을 누리는 귀족과 성직자는 프랑스를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권층에 대한 민중의 불신과 불만은 커져만 갔다. 1789년 4월 27일~28일에 일어난 레베용 사건은 프랑스의 위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부르주아인 레베용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는 헛소문이 돌자 파리의 서민들이 그의 집을 습격했고 400여 명의 파리 시민들이 유혈 진압을 당한다. 게다가 귀족들이 돈을 주고 폭동을 일으키게 했다는 ‘귀족의 음모론’이 돌면서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졌다. 제3신분은 특권 계급에게 수탈당할 뿐 아니라 귀족들의 음모로 생명조차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밭을 망치는 것은 토끼와 사슴, 메추라기와 꿩 같은 숲 속의 새와 짐승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사냥이라는 귀족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함부로 잡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영주의 숲에는 무서운 얼굴로 으르대는 관리인이 있어서, 규칙을 어기면 다짜고짜 오랏줄로 묶으려든다. 새나 짐승이 밭에 나와서 농작물을 망쳐놓았다고 호소해도, 그것은 영주님한테 말씀드리라면서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다.(1권 66쪽)

권력은 불합리한 명령이 성실하게 이행될 때 비웃는 법이다
궁지에 몰린 루이 16세가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삼부회를 소집하자 민중들은 왕이 삼부회를 통해 왕이 민중들의 고초를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깨졌다. 국왕은 제3신분을 대놓고 차별했다. 삼부회 개회를 축하는 의원 행진에서 특권 신분들은 깃 달린 모자나 화려하게 치장된 옷을 입었으나 제3신분은 검은 복장에 장식 없는 옷을 입어야 했다. 제1신분 성직자와 제2신분 귀족은 집무실에서 국왕을 개별적으로 알현했으나 평민인 제3신분은 침실에서 단체로 알현했다. 회의장에서는 국왕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가 배치되었고 심지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특권 계급과 다른 차별을 받았다.

고압적인 권력은, 부조리하고 어리석은 명령이 신성하고 현명한 법과 마찬가지로
충실하게 실행되는 것을 바라볼 때야말로 실컷 웃는 법이다.
자유를 위해 태어난 인간이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치욕에 영합할 수 있는가.
(미라보의 '전국삼부회신문', 1권 127쪽)
3표냐, 1200표냐! 공전하는 삼부회를 벗어나 국민의회를 설립하라

삼부회는 제1신분, 제2신분, 제3신분이 모두 같은 수였다. 그리고 부회별 투표를 했다. 즉 각 신분이 한 표씩을 행사하는 것이다. 제3신분이 특권 계급을 이길 수 없는 구조다. 고위 성직자는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제1신분과 제2신분은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평민 출신 재무 장관 네케르는 1789년 삼부회를 선출할 때 제3신분 의원 수를 두 배로 늘릴 것을 요청한다. 특권층에게 세금을 부담시킬 작정이었던 루이 16세가 이를 재가하면서 제3신분 의원은 600명이 된다. 그러나 부회별 투표 방식을 머릿수 투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삼부회가 심의하는 것으로 넘긴다. 삼부회는 의원자격심사를 각 부회별로 하느냐 합동으로 하느냐를 놓고 공전하고 제1신분과 제2신분이 타협하지 않자 제3신분은 일방적으로 ‘국민의회’를 선언한다(1789년 6월 17일). 이에 놀란 귀족들이 회의장을 폐쇄하자 제3신분은 1789년 6월 20일 구희장에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한다. 역사적인 구희장의 서약이다.(* 학계에서는 ‘테니스 코트의 서약’으로 번역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원어 ‘Jeu de Paume’의 의미에 가장 적합한 ‘구희장의 서약’으로 옮겼다)

아아, 그래.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결의야.
“바꿔 말하면, 국민의회는 왕국의 헌법이 제정되어
강고한 토대 위에 확립될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는다는 것,
주위 상황이 요구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소집될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 한 사람이 엄숙하게 선서하는 건 어떨까요?”
구희장은 이번에야말로 주저 없는 박수갈채로 가득 찼다.
찬성하는 목소리도 잇따랐고, 의원들은 입으로만 선서할 것이 아니라
문서에 서명하여 불퇴전의 결의를 밝히자는 쪽으로 순식간에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1권 199쪽)

바스티유 함락과 베르사유 행진―앙시앵 레짐을 쳐라! 왕을 혁명의 포로로 잡아라!
루이 16세는 제3신분에게 굴복한 것 같았다. 귀족과 성직자 대표에게 국민의회에 합류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이로써 국민의회는 명실상부하게 프랑스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독일과 스위스 용병을 파리에 배치하면서 뒤로는 국민의회를 압박하고 있었다. 제3신분과 연계가 깊은 상비군보다 용병들에게 의존하려 했고 무력으로 국민의회를 위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민 출신 재무장관으로 인기가 높았던 네케르가 파면되자 파리는 끓어올랐다. 7월 12일 팔레-루아얄에서 말더듬이 변호사 데물랭의 연설로 봉기가 일어났고 이 봉기는 파리 전체로 퍼져나갔다. 독일 용병과의 충돌과 극심한 혼란 속에서 시민들은 무장할 필요를 느꼈고 무기를 찾기 위해 이들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스티유였다.

빵! 하는 메마른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건물에 부딪쳐 메아리가 아직 그치기도 전에 데물랭은 큰 소리로 외쳤다.
시민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제 1분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베르사유에서 확실한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예, 헛소문이 아니었습니다. 네케르가 파면당했습니다.
이 파면은 새로운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 사건의 전조입니다.
오늘밤에라도 스위스나 독일의 용병들이 우리를 몰살하려고
파리로 돌입할 게 분명합니다.”
(1789년 7월 12일 일요일, 팔레-루아얄, 2권 55쪽)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 끝에 바스티유는 함락된다. 제헌의회(7월 9일 국민의회는 제헌의회로 이름을 바꾼다)는 다시 힘을 얻고 개혁을 추진한다. 8월 4일에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8월 26일에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여전히 ‘프랑스혁명’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결국 베르사유 궁에서 플랑드르 연대가 혁명의 상징인 삼색모장을 짓밟는 일이 벌어지자 곡가 앙등으로 불만이 많던 파리의 부녀자들이 베르사유로 행진한다(1789년 10월 5일). 루이 16세는 군중들에게 떠밀려 베르사유를 떠나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프랑스 국왕이 파리 부녀자들의 포로 신세가 된 것이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의 제1막이 내려진다.
1789년 7월 14일을 기억하라―2012년 대한민국의 앙시앵 레짐

절대적인 권력자. 법을 피해 가는 특권 계층. 경제 위기. 재정 적자와 부채 증가. 무역 확대로 인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의 도태. 세수 증대를 위한 각종 세금 신설. 1789년의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은 정치·경제·사회적인 위기 속에서 한계를 맞았다. 그런데 위에 나열한 내용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제왕적인 대통령, 법을 어겨도 형식적인 처벌을 받고 바로 사면복권되는 재벌과 정치인, IMF 이후 계속되는 경제 위기, FTA로 인한 농업 경쟁력 약화, 유류세 및 각종 간접세 증가를 통한 세수 확보 시도 등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223년 전 프랑스와 닮은 점이 많다. 사회 전반의 각종 모순은 갈등을 촉발시키고 정치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정쟁에만 매몰된 의회는 민생에는 관심이 없다.

선전?강화의 권한을 둘러싼 심의는 완전히 암초에 올라앉은 꼴이었다.
좌파의 주장이 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파의 주장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3권 196쪽)

한쪽은 빛나는 미래를 논하고, 또 한쪽은 엄숙한 과거를 내세우며
양쪽 다 막연한 상상화로 시종일관할 뿐, 현실감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구체적인 현실만 제시할 수 있으면 우파는 당장 타협한다.
중도파는 안심할 게 분명하고,
이제 남은 좌파만 회유하면 된다.(3권 196쪽)

223년 전 프랑스는 권력과 부조리에 맞서 일어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전례 없는 혁명의 혼란 속에서 피 흘려 쟁취한 자유와 인권을 쟁취한 경험은 프랑스의 든든한 자산이다. 얼마 전 프랑스 대선에서 기록된 80%의 투표율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적극적인 투표 참가만이 프랑스에서 배울 점은 아니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인종주의자로 유명한 극우파 장 마리 르팽이 결선 투표에 진출하자 프랑스는 자성의 소리를 내며 반 극우 투쟁에 나섰다. 프랑스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앞서가는 까닭은 행동할 수 있는 높은 시민의식이 뒷받침되기 때문인 것이다. 2012년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프랑스는 더 이상 혁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200년 넘게 이어온 혁명정신은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성숙해지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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