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몽테크리스토성의 뒤마
베스트
동물 에세이 top20 4주
가격
16,500
10 14,850
YES포인트?
82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내가 가진 개 한 마리와 내가 가졌던 닭 여러 마리
내 짐승들 헤아려보기
스코틀랜드 사냥개, 포인터
어치가 준비되다
바트랑과 그의 담배 파이프
프리차드의 갈비 사냥
루아레 포도주
설탕 훔치다 큰코다친 프리차드
잔꾀 부리는 프리차드
토끼로 가득한 호주머니
양은 어떤 개인가?
필자가 어떤 재앙을 내비칠 때
초록색 원숭이와 파란색 앵무새에게 매료되다
앵무새가 프랑스에서도 태어나는가?
내가 흑인임을 알려준 마부
데가르상 아가씨에게 남편 사주기
잠든 아기 고양이
미주프 1세와 어머니
마담 도르발이 꽃 밑에 숨긴 것
그럴싸한 추천서는 불리하다
흑인 헌병
알렉시의 귀환
2년 후에 날아온 편지
데가르상 아가씨의 애인
물병 따는 데가르상 아가씨
원숭이들의 반란
500프랑어치 식사
미주프 소송
돈 루스코니
드디어 양의 본색이 드러나다
서명 수집가
첫 토끼 사냥
알프레드와 메도르
데보랑의 아찔한 질주
내 돈 4만 프랑과 정부 돈 1만 프랑으로 데려온 독수리
프리차드, 백전백승하다
나는 정치 불한당으로, 프리차드는 도둑으로 몰리다
포도 서리하는 법조인의 닭
프리차드, 닭들을 출산시키다
프리차드의 불행
국회 사태
2월혁명이 인간과 동물에게 미친 영향
최대의 비극, 최고의 친구
카스토르와 폴뤽스
개의 인사법에 대한 역사 탐구
카틸리나 대학살
플로르의 죽음

저자 연보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2

알렉상드르 뒤마

관심작가 알림신청
 

Alexandre Dumas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뒤마는 1802년 7월 24일, 빌레르코트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06년 나폴레옹 군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가 죽자, 뒤마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린 뒤마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로빈슨 크루소』나『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성인이 된 뒤마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1823년 오를레앙 공작(후에 루이 필리프 왕) 가문에서 서류 작성하는 일을 얻게 되지만 곧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1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프랑스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뒤마는 1802년 7월 24일, 빌레르코트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06년 나폴레옹 군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가 죽자, 뒤마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린 뒤마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로빈슨 크루소』나『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성인이 된 뒤마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1823년 오를레앙 공작(후에 루이 필리프 왕) 가문에서 서류 작성하는 일을 얻게 되지만 곧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182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초는 패기 넘치는 젊은 뒤마에게 작가로서의 장래를 보장해 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1828년에 화려한 문체로 프랑스 문예 부흥을 묘사한『앙리 3세와 그의 조정Henri Ⅲ et sa cour』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시간, 장소, 행동의 3일치라는 고전주의 규칙을 무시하고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씌어진 전형적인 낭만주의 작품이었다. 1829년 이 작품의 공연은 첫날부터 대성황을 이루었다. 뒤마를 후원한 루이 필립은 매우 흡족해했으며 한때는 극단적인 왕당파였던 빅토르 위고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작가로서의 뒤마의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뒤마는 위고, 비니Vigny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한편 1820년대에는 많은 잡지가 창간되면서 <문예란>에 연재소설이 등장하였다. 뒤마는 연재소설에 매력을 느껴 차츰 극작품보다는 소설, 특히 역사소설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일만큼이나 삶의 자극에 탐닉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권태를 모면하기 위해 그는 연애, 음식, 잠, 쾌락, 여가, 운동 등 여러 방면의 자극을 원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마는 여자, 오페라, 그리고 지중해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그런 가운데 그의 대작들이 잉태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1944년에 리슐리외 시대의 모험담인『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를, 이어서『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출간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번역되고 차용되고 표절되는 등, 한마디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소설>이 되었다.

『삼총사』와『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성공 후에도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당시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지만 그의 사생활은 날로 황폐해 가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에 빠져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그는 발자크처럼 날마다 더 많은 글을 써내야 했고, 그 때문에 발자크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뒤마에게는 또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춘희La Dame aux camelias』(1848)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뒤마 2세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다른 상품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현재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책이 없어지는 시대’를 우려하면서 책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여러 차례 도서관과 서점을 드나들고, 한국 독자와 같이 나눌 책들을 모색하며 생활하고 있다. 뼛속까지 무신론자라고 자칭하던 시절에 프랑스로 와서, 예수는 외계인이라고 여기던 시절을 지나고, 이 삶은 언젠가는 깨어나게 될 하나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옮긴 책으로 『몽테크리스토성의 뒤마』, 『가자에 띄운 편지』, 『연금술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가 있다.

이선주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5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42g | 128*188*30mm
ISBN13
9791185153292

책 속으로

내가 흑인임을 마부가 알려주다
“아! 빌레코트레, 거기도 아시오?”
빌레코트레는 내 고향인 만큼 이제 마부의 기를 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빌레코트레나 코스트드레츠 같은 면 소재지를 알고 있느냐고요?”
나는 “아! 작은 마을”이라고 말하려다가 “면 소재지”라고 따라 했다. 마부가 하도 의기양양한 터라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반복했다.
“면 소재지 아니면…….”
“아! ‘아니면’도 필요 없습니다요. 빌레코트레에는 숲이 2만5천 헥타르, 주민 2천692명, 프랑수아 1세 시절에 지은 오래된 성도 있는데 지금은 걸인들의 안식처가 되었지요. 『신화에 대해 에밀리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샤를 알베르 드무스티에의 고향이기도 하죠.”
“그러면 알렉상드르 뒤마는?”
나는 약간 수줍게 끼어들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 말인가요?”
나는 그렇다는 표시로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였다.
“아닙니다요.”
“아니라니요?”
“아니라고요!”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곳 출신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오?”
“네, 거기 출신이 아닙니다.”
“아! 대단하시네요!”
“원하시는 대로 보십시오. 어쨌든 알렉상드르 뒤마는 빌레코트레 출신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는 흑인이잖습니까요?”
고백하건대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엔 지역에 대해 그처럼 모르는 게 없어 보이는 남자가 하는 말이기에 어쩌면 내가 틀릴까 봐 겁이 났다. 그곳을 속속들이 알고 모든 것을 확언하는 그의 태도로 보아 어쩌면 그의 말대로 나는 콩고나 세네갈에서 태어난 흑인일 수도 있었다.
--- p.96~97

새장의 새들을 잡아먹은 고양이 미주프 소송, 변호사의 변론
“동물은 인간에게 가까워지면서 나쁜 영향을 받았지요. 미주프 스스로 그런 나쁜 범죄를 저지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고 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바로 눈앞에 그런 장면이 펼쳐져 있었지, 그런 범죄를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반쯤 잠이 깬 채 다리를 뻗치고 그르렁대면서 깃발 속에 묘사되는 사자의 혀를 닮은 자신의 혀로 잠이 덜 깨서 여전히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이리저리 핥았겠지요. 그러고는 귀를 흔들며 주위에 귀를 기울였겠지요. 미주프는 자신 앞에 펼쳐진 유혹을 우선은 거절―변호사에 따르면 자신의 고객이 우선은 거절했다고 하니―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철이 없는 데다 그동안 요리사가 응석을 받아주는 바람에 입맛이 우유나 국물보다는 자연스럽게 고기 맛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원래 잔인하거나 포식가라서가 아니라 훈련이 안 돼 있어 막무가내다보니까요. 게다가 범죄가 일어날 당시는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몽롱한 상태였음을 참작해야 합니다. 반면 진짜 범인은 원숭이들입니다.”
--- p.166

자, 여러분. 여러분의 공정함에 호소합니다.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핑계를 댈 때는 새로운 단어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두 발을 가지고 털이 없는 동물에게는 자유의지를 높이 사며 광기라는 변명을 합니다. 바로 그런 새로운 표현으로 둘도 없이 끔찍한 죄인을 구해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 흥미로운 미주프에게 닥친 불행은 왜 본능의 이름이나 이방인의 제안에 이끌렸다는 상황을 참작하지 않는 것입니까? 배심원 여러분! 제 고객이 마지못한 상황 때문에 저지른 불가피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주시길 부디 요청하는 바입니다.”
--- p.169

문학계에서는 남성 친구보다 여성 친구가 훨씬 낫답니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세 명은 저마다 언론에 친구 열 명 정도는 있었다. 벌에게 쏘이듯 따끔한 맛을 보여줄 펜들로 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다행히 내게는 여성 친구가 있었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언젠가 여러분이 집안일 외 다른 일로 글을 쓰려고 펜을 들면 남성 친구 말고 부디 여성 친구를 가지기를.
내 여성 친구의 이름은 마담 델핀 드 지라르당[Delphine de Girardin 1804~1855 에밀 드 지라르당의 아내로 작가이자 기자]. 여러분이 벌써 잊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고귀한 존재는 얼마 전 무덤으로 떠났다. 아! 정신과 힘을 동시에 지닌 사람. 우아한 정신력과 은혜의 3옥타브를 넘나들면서 힘차기까지 한 그분을 여러분도 기억하리라.
어느 남자도 감히 하지 않은, 아니 하려고 하지 않은 일을 여자인 그분이 용감하게도 나섰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나를 거론할 때―따지고 보면 내가 그 주제의 주인공이고, 아니 적어도 내가 당사자인데도―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신중히 고심해 세 의원을 부르던 A, B, C 의원 하는 식도 아니었다. 그냥 짧게 ‘무슈’라고 불렀다. 때에 따라 ‘바로 그 무슈’라거나 ‘이 무슈’라는 식으로 약간 톤을 바꾸기도 했다. 공권의 불침해권이 공표된 후라 그들이 내키는 대로 불러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담 델핀 드 지라르당은 그 세 명의 의원 가운데 제일의 의원 목덜미를 분홍색 손톱이 빛나는 하얀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그렇다! 문자 그대로 흔들었다. 어떻게 흔들었는지 여기서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 보시라! 여자분이 쓴 산문을! 마담 델핀 드 지라르당과 마담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 프랑스 작가이자 기자로 여성의 권리를 표창하는 데 앞장섰다]가 우리에게 이런 식의 기적을 보여준 분들이다.

--- p.308~309

출판사 리뷰

나는 몽테크리스토성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뒤마다!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 뒤마가 말하는 ‘동물과 인간의 유사성’

동물로 가득 찬 고독, 몽테크리스토성은 지상낙원이었다


고독은 애인이라고 말하는 뒤마는 몽테크리스토성을 짓고 다섯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독수리, 세 마리의 원숭이, 한 마리의 앵무새, 공작새, 고양이, 꿩, 닭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개들과 함께 산다. 고독을 좋아한다는 뒤마는 단순히 고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천국의 고독, 다시 말해 동물로 가득 차 있는 고독을 좋아한다. 그래서 담이 없는 몽테크리스토성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다. 마치 하나의 동물원이기도 했다. 함께 거주하게 된 동물들에게 당시 유명한 소설가나 번역가, 여배우의 이름을 붙인 후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징적인 성격과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뒤마와 함께 살았던 이 동물들이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한번 따라가보자.

누구의 훈육도 거부한다. 다만 본능에만 충실할 뿐. 프리차드!

이야기는 뒤마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냥개 프리차드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책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존재는 사냥개 프리차드다. 누구의 훈육도 통하지 않는 자유 영혼의 소유자, 프리차드는 오로지 사냥개로서의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하다. 목걸이를 채워봐라, 먹어버리겠다. 어디라도 가둬봐라, 가뿐히 탈출할 테니. 하지만 사냥에 있어서는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프리차드. 뒤마는 남의 사냥감을 마구 훔쳐대지만 너무나 개성이 뚜렷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프리차드에게 더할 나위 없는 우정을 품는다. 정신력과 애정을 가진 인간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경이로움과 독창력을 가진 유일한 개였다고 회상한다. 다리 하나를 잃고 눈 한쪽을 잃어도 프리차드는 끝까지 뒤마의 곁자리를 놓지 않는다. 어쩌면 프리차드는 표절시비, 인종차별 등 온갖 시끄러운 풍문에 휩싸여도 늘 떳떳했던 뒤마 자신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열여섯 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간은 항상 권력의 편에 섰다

1802년생인 뒤마는 사는 동안 열여섯 번 정부가 바뀌는 것을 목격한다.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다시 군주정으로 또다시 공화정으로 격변하는 프랑스 혁명 시기를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두 번의 혁명은 그의 문학과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귀족과 서민, 이 두 가지 요소를 하나의 가슴에 응축했던 뒤마는 프랑스의 역동성에 감탄하는 한편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느낀다. 정치적 재난 덕에 그와 친한 사람들이 새로운 명성과 지위를 얻기도 했지만 그들이 몰아낸 이들 또한 뒤마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뒤마는 왕권이 존재하던 때 공화정을 한껏 외쳤던 것처럼 왕권이 사라지자 유배된 왕족을 옹호하는 논조를 펼쳤다. 신권력으로부터 거센 비난이 쏟아졌고 급기야 의회에서 연재소설 작가들한테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반면 동물들은 남의 왕관을 뺏거나 소설을 탓하지도 않았다. 뒤마에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 편에 서는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미를 가진 존재였던 셈이다. 남의 새끼(달걀)를 먹어치우는 프리차드를 보며 “권력을 위해 자신의 후손을 삼켜버리는 사투르누스보다 낫다”고 말한 이유다.

“우리 아버지는 흑인 혼혈, 조부는 흑인, 증조부는 원숭이었소.
보시오. 우리 가족은 귀하의 가족이 끝나는 데에서 시작한다오.”


뒤마가 자신을 말하는 문장이다. 뒤마의 아버지, 알렉스 뒤마는 1762년 설탕 무역으로 유명했던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흑인 노예였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계급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성을 거부하고 어머니의 성인 ‘뒤마’로 바꾼 후 프랑스군에 입대, 나폴레옹군의 장군까지 오른다. 하지만 끝내는 나폴레옹에게도 버림받는 뒤마 장군의 인생은 현기증이 날 만큼 부침이 심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라는 코드는 바로 아버지가 모티브가 되었다. 그렇다면 작가 뒤마의 시대에 와서는 차별이 달라졌을까? 동료 소설가 발자크는 “저 검둥이”라고 불렀고,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엄청난 성공을 했음에도 비평가들은 그의 아프리카 흑인 혈통을 조롱하며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그런 배경에서 뒤마는 이 에세이를 쓴다. 뒤마는 혁명에 의한 사회계층의 혼합뿐 아니라 흑인혼혈 즉 인종혼합의 표본으로 그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지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예술 속의 흑인 모델’이라는 전시회를 하는데, 거기에도 뒤마가 있다. 지금도 뒤마는 흑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강조되는 현실이다.

추천평

이 세기의 그 어떠한 유명세도 알렉상드르 뒤마의 유명세를 넘지 못했다. 그의 성공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고 열광적인 성공이었다. 알렉상드르 뒤마라는 이름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적이다. 아니 유럽을 넘어 보편적이다. 그의 극작품은 전 세계에서 상연되었고, 그의 소설은 세계 곳곳에서 번역되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문명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 빅토르 위고
노예의 후손, 혼혈아로 인종차별의 희생자였던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혼혈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를 인정하는 것은 곧 프랑스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 르몽드
1870년 12월 4일 사망 전날, “내가 죽고 나면 남는 게 있을까”라며 알렉상드르 뒤마는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1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건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음을 몽테크리스토성의 정원에서 칼싸움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알 수 있다. - 르파리지앵
뒤마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사회참여 작가의 직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 통치자와 통치받는 자라는 영구적인 대립 관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다. 나폴레옹군의 장군이었지만 나폴레옹에게 배신당한 아버지를 두었고, 군주였지만 공화정을 주창하던 오를레앙 가문의 친구였고, 보수주의자인 동시에 혁명주의자였던 뒤마는 내밀한 갈등을 잔뜩 품은 프랑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프랑스인이 뒤마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다. 오늘 드디어 뒤마는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 옆에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공화국도 ‘삼총사’를 가지게 되었다. - 자크 시라크 대통령 (2002년 11월 뒤마 판테온 이장식에서)
뒤마의 작품 속 영웅은 우리의 영웅이 되었다. 총 3만7천267명의 인물, 그들 중에는 실제로 생존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뒤마가 각색한 인물도 있다. 기막힌 상상력으로 그들을 피와 살을 가진 생생한 인물로 만들어냈다. - 알랭 드코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

리뷰/한줄평18

리뷰

8.6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4,850
1 14,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