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한숨
2 결의 3 아슬아슬한 재주 4 삼두파 5 만찬회 6 탈출 7 뜻밖의 전개 8 페르센 9 솜벨 10 생트므누 11 바렌 12 여권 검사 13 소스의 집 14 반전에 또 반전 15 다른 의견 16 민중의 목소리 17 마중 18 낭보 19 파리의 소동 20 침묵 참고문헌 |
Kenichi Sato,さとう けんいち,佐藤 賢一
사토 겐이치의 다른 상품
김석희의 다른 상품
|
루이 16세는 왜 파리를 탈출해야 했는가?
루이는 다시 묻고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누구나 자유롭지 않은가. 어떤 사상이나 신조를 갖는 것도 자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자유다. 표현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외국으로 망명하는 것도 자유라는 것이 이 나라에서 새로 채택된 인권 정신의 진수가 아닌가. “그 자유가 짐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나?(제5권, 20쪽) 미라보가 “총칼에 의하지 않고는 해산하지 않겠다”고 외친 이유는 루이 16세가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건제가 폐지되고, 바스티유가 함락되는 상황에서도 루이 16세는 어떠한 무력도 동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루이 16세가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춘 개명파 군주였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도 혁명이 유혈충돌로 번지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나 혁명으로 모든 인민이 자유를 얻게 된 프랑스에서 루이 16세만이 자유를 박탈당했다. 파리 교외로 휴가조차 갈 수 없었던 그는 혁명이 자신의 가족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렌 사건, 익살극 속에 암시된 왕실의 불행한 운명 “이 남자예요. 코르프 남작부인에게 고용된 뒤랑이라는 이름의 집사라지만, 사실은…….” “예? 에에에.” “뭡니까, 데스테 씨.” “이분은 폐하…….” 비명 같은 목소리였다.(제5권, 210~211쪽) 1791년 6월 20일, 루이 16세는 탈출 계획을 실행한다. 왕비의 연인으로 알려진 페르센의 계획에 따라 파리를 탈출한다. 국경도시 몽메디에서 의회를 해산하고 왕권을 다시 찾으려고 한 것이다. 봉건군주가 자신의 나라에서 탈출하려는 초유의 상황은 곧 익살극처럼 전개된다. 루이 16세는 페르센을 여정 도중에 버리고 오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 파리를 탈출할 때는 잔뜩 긴장했지만 샹토릭스를 지날 때는 스스로 왕임을 밝혀 추격의 단서를 제공했다. 주변 경치를 즐길 정도로 유유자적하던 그들을 막아선 것은 추격대가 아닌 생트므누의 역장 드루에였다. 루이 16세를 그냥 통과시켰다가 수상한 것을 깨달은 드루에는 바렌까지 루이 16세 일행을 쫓아와 발을 묶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바렌에 있던 판사 데스테가 루이 16세를 확인하면서 30여 시간 동안 전개된 왕의 도주극은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한편 의회를 좌지우지하던 삼두파는 왕의 도주 사건을 ‘불순한 세력이 저지른 납치 사건’으로 발표한다. 혁명과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인간 루이 16세’를 묘사하다 『소설 프랑스혁명 5권-왕의 도망』의 주된 내용은 루이 16세의 바렌 도주 사건에 관한 것이다. 몇 달에 걸쳐 전개되는 다른 권과는 달리 제5권은 약 30시간에 걸쳐 일어난 바렌 도주 사건의 전말을 루이 16세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루이 16세는 프랑스혁명의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혁명의 한가운데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인물이었다. 저자 사토 겐이치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 루이 16세가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였던 바렌 사건을 묘사한다. 우유부단한 왕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바렌 사건이 남긴 것은 무엇이가? 저자는 왕위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위협 때문에 루이가 움직였다고 본다. 그리고 왕의 도주가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군주제가 가진 허상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만큼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는데도 군중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했다. 며칠 동안 파리 시내에서 수없이 토해낸 욕설을 지금은 한 마디도 외치지 않는다. 외치기는커녕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지도 않아서, 샹젤리제는 구석구석까지 정적에 지배되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침묵이었다.(제5권 323쪽) 파리로 압송된 왕에게 시민들은 침묵으로 화답했다. 프랑스를 버리려 했던 왕을 보며 사람들은 군주제가 가진 허상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왕의 도망을 ‘납치 사건’으로 얼버무리려 한 의회로 인해 왕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왕의 부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왕이 없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이 16세는 바렌 사건으로 프랑스의 정치 현실과 대중들의 감정을 알게 되어 군주로서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프랑스는 바렌 사건으로 군주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루이 16세의 비극은 이때 잉태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