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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말-왜 ‘정신’인가
두 ‘악마’의 만남 상호의존 정신의 지도 티베트의 분신 사태 큰 ‘우리’ 마음의 과학 지팡이도 미움도 없이 빈부의 격차 비폭력의 실천 단호하고 용감하게 과학의 진보와 정신의 진보 정신적 민주주의 유엔 개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 주(註) 옮긴이의 말-두 그루 거목과 만나다 |
Dalai Lama,본명:텐진 가쵸, Tenzin Gyat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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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는 여러 종교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 수준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른 차원, 즉 세속 윤리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세속’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속의 윤리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며, 종교를 믿지 않을 권리를 지닌 비종교인도 똑같이 존중합니다. ---p.20쪽
스테판 에셀: 신이 있다고 보건 없다고 보건, 우리는 인간으로서 책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1948년 인권선언에서 언급된 것처럼 인간 가족에 대한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상호의존’이란 종교를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와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 새로운 형제애를 자연에 발휘해야 합니다. 1948년 인권선언을 만들 당시에는 미처 이 책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자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초목, 태양, 동물들이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도록 행동을 취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나라들이 세우는 목표이자 커다란 도전이 이제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21 달라이 라마: 우리의 미래는 현재에 달려 있고, 어떤 계획이든 그것을 추진할 때는 장기적인 결과를 생각하면서 해야만 합니다. 1,000년 후까지는 못 내다본다 해도, 최소한 10년 후는 내다보아야지요! 숱한 파업, 그리스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 등을 보십시다. 만약 엄격한 조치를 단번에 난폭하게 강요하지 않고 조금씩 점진적으로 취했더라면 과연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이런 것을 저는 ‘전일적(全一的) 관점의 결핍’이라고 부릅니다. 정신의 지도(地圖)가 없는 셈이지요. ---p.23 달라이 라마: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종교적 주제를 갖고 설법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우리의 일상과 각종 계획들을 이끄는 주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누가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가고자 한다면, 지도를 길잡이 삼는 것이 당연지사겠지요. 마음의 일부인 연민, 용서 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신의 지도를 지녀야 합니다. ---pp.27-28 스테판 에셀: 사람에게 주요한 두 가지 힘이 사랑과 미움이지요. 어떻게 하면 미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순간에든 증오심을 품게 마련이거든요. ---p.41 달라이라마: (……) 저와 가까운 과학자들과 빼어난 인물들이 저마다 기술과 지식을 나누어준 덕분에, 저는 그분들과 함께 공부하여 마음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뇌의 활동은 1,000분의 1초 단위로, 1밀리미터 단위로 관찰 가능합니다. 일단 마음의 풍경이 명료하게 밝혀지고 통제되면 우리는 연민, 용서 같은 긍정적 감정들까지도 키워갈 수 있고, 그래서 분노, 멸시, 두려움, 증오 같은 파괴적 감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즉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이것은 종교 교육이 아닙니다. 단지 ‘마음의 과학’입니다. ---p.41 달라이 라마: (……) 우리 불교의 수행법 중에는 ‘적(敵)이 최고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거듭 외는 방법도 있습니다. 결연함을 잃지 않는 데에 아주 유용한 품성인 관용과 인내, 그것을 실천하는 법을 적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없이 열심히 실천한다 해도 인내가 한계에 이르면 미움, 두려움, 의심이 들게 마련이지요. 관용은 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힘의 징표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관용의 마음이 더욱 우러납니다. 화를 내는 것은 취약하다는 표시입니다. ---p.44 달라이 라마: (……)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경제제도의 주체들이 우리 사회에서 무시무시한 정도의 권력을 장악하고, 빈곤이 계속 곳곳에 절망을 흩뿌리고 있으니 우리 모두는 우리의 경제를 공감에 기반을 둔 경제로 변모시킬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공감 기반 경제’란 존엄성과 정의라는 대원칙을 ‘세계인권선언’이 명시한 대로 누구에게나 적용시키는 경제입니다. ---p.46 스테판 에셀: 인권 수호 활동은 스스로 비폭력적인 활동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권 침해 사례들은 폭력을 낳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존중’이라는 개념이 개입합니다. 이 개념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관용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나의’ 인권이 침해되었으니 나는 폭력에 의존해도 된다”라고 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개인적 이익 한 가지를 수호하기 위한 분노는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분노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모두와 관계된 인간적 가치의 이름으로 분노하자는 이야기입니다. ---p.49 달라이라마: (……) 폭력과 비폭력을 나누는 구분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동기’입니다. 현대 세계에서 그야말로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부패, 이것은 폭력의 한 형태라고 저는 자주 말합니다. 부패의 동기는 속임수와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부패는 본질상 폭력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p.49 달라이라마: (……) 현재의 많은 문제들이 과거에 우리가 할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폭력과 비폭력의 커다란 차이를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힘을 사용하면 결과는 극단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쪽으로 갑니다. 최악의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폭력의 결과는 예측도 통제도 되지 않습니다. 최근 이라크와 리비아의 예에서 보듯이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비폭력은 비록 결실을 맺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려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극히 적고, 그 본질상 결과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pp.56-57 달라이라마: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저는, 각국 정부 수반들이 아니라 신망 있는 인사들(……)로 이루어진 기구가 출범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구야말로 유엔 사무총장 산하에서 전 인류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 인류의 보다 일반적인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이 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유용할 것입니다. ---pp.70-71 스테판 에셀: 제 생각도 성하의 의견과 같습니다. 이제는 권좌에서 놓여나 오직 인류의 안녕에만 관심을 두는 고르바초프 같은 인물들로 구성된 ‘현자(賢者) 위원회’, 그런 것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유엔 사무총장에게 “거부권을 없애시오. 사람들을 모으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한 분들로 구성된 위원회 말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 우리에겐 젊은 세대도 필요합니다. 곳곳에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런 식으로 통치받는 것을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우리는 진정으로 민주 정부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젊은 세대 말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거리에 많이 모인다면, 그제야 비로소 정부들은 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든가 아니면 젊은이들을 억압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억압하고 싶지 않다면, 현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편이 그들에게도 이로울 것입니다! ---pp.70-71 달라이 라마: (……) 저는 경제발전의 필요성과 인권 존중의 필요성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고 봅니다. 문화와 종교의 풍부한 다양성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인간의 기본권 강화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인간 가족의 구성원으로 우리를 이어주는 가치와 열망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문화적 차이는 어떤 경우에도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없습니다. ---pp.7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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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의 대세는 ‘정신의 귀환’
이제 ‘분노’를 넘어 ‘정신의 지도’를 그리자! 불의와 타협하기를 단호히 거부하는 90대 노투사 스테판 에셀,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자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거목이 세계 시민들에게 전하는 ‘정신의 진보’에 관한 메시지 민주주의, 이는 ‘사람들’입니다. 특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가 도처에서 최상층 부자들과 극빈자들의 기막힌 격차를 목도한다면, 민주주의는 뭔가 행동하고 또 해야 하며, 극빈층이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정치는 이런 것을 위해 하는 것이며, 우리는 여기서 정신적 영역을 회복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 간 소통, 그리고 여러 나라의 참여입니다. 전 세계를 위한 민주적 리더십, 비폭력과 공감을 계발하는, 종교와 무관한 정신 수련과 상통하는 그런 리더십입니다. - 스테판 에셀 우리는 정신의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그 지도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 감정에서 저 감정으로 이행하는 법을 알 수 있고, 이곳에서 시작된 감정이 어떻게 다른 감정을 자아내며 그 감정은 또 어떻게 다른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도가 있다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활동들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일이 아닙니다. - 달라이 라마 지금 왜 ‘정신’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오늘날, 30여 년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는 세계 경제위기 앞에 서서히 잦아들고 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슬람-아랍권 지역에서는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의 물결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상당수의 나라에서 최고지도자를 새로 선출하는 중대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와 경제 부문의 민주화를 동시에 부르짖는 이런 현실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에 빨간불이 들어와 새로운 신호등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질과 정신 양축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이 그동안 지나치게 물질적 토대 쪽으로만 기울어지다 보니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 것이다. 이에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물질의 진보를 추구해온 서양과 정신의 보고(寶庫)인 동양을 대표하는 두 인물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가 서로 만나 21세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는 ‘정신의 진보’라는 점에 완벽히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 그 극적인 세기의 만남 2010년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래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3,500만 부 이상 팔리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분노하라』(한국어판 2011, 돌베개)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올해 96세(1917년생)로 지팡이도 없이 다니는 정정한 노인이다. 스테판 에셀 앞에서는 자신이 새파란 젊은이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텐진 가쵸)는 에셀보다 열여덟 살 연하인 1935년생으로, 이 두 인물은 큰 나이차 외에도 서양인과 동양인, 세속인과 종교인, 기혼자와 독신자 등등의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과 인품에 매료되어 이 대담을 계기로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함께 만나기 쉽지 않은 이들이 노구를 이끌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인권 수호에 헌신해온 스테판 에셀의 비폭력적 저항정신이 중국의 모진 핍박과 탄압에 비폭력적 투쟁방법을 고수해온 달라이 라마의 정신과 상통하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인 인권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전 세계가 진정한 평화의 시대, 상호의존과 연민을 바탕으로 한 ‘큰 우리’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의 진보’를 추구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에 뜨겁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대담은 2011년 8월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행복의 기술’을 주제로 열린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스테판 에셀이 참석함으로써 첫 윤곽이 그려졌고, 4개월 후인 2011년 12월 프라하에서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주도로 열린 동남아시아 인권에 관한 토론회 ‘포럼 2000’을 통해 본격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1박 2일에 걸친 이 대담은 1948년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날부터 지금까지 과연 새로운 보편적 가치들이 도출되었는가, ‘정신의 진보’가 세계인권선언 제27조에 명시된 ‘과학의 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비롯해 마음의 과학, 티베트의 분신 사태, 현대 교육의 문제, 비폭력의 가치, 좀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유엔의 개혁문제 등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두 거목이 말하는 ‘정신의 진보’란?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가 힘주어 강조하는 ‘정신의 진보’란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고 종교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몸과 정신이라고 말할 때의 그 ‘정신’을 이제는 과학/물질의 진보 못지않게 현대 교육체계 속에서 적극 계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보다 차원 높은 민주주의(‘정신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뿐 아니라 자연 전체에 대해서도 사랑, 공감, 연민, 비폭력, 관용 같은 인간적 감수성을 키우고 발휘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국 정부 수반이 아니라 오직 인류의 안녕에만 관심을 두는 신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현자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대담에서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정신’은 그동안 서양을 굳게 떠받쳐온 ‘이성’의 맥락이 아니라 고대 인도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동양 특유의 ‘마음’을 가리킨다. 동양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인 ‘정신수행’, ‘마음공부’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스테판 에셀 또한 이 부분에 적극 공감하며 지대한 관심을 표한다. 이제 ‘정신’이란 말은 동서양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말로 그 외연이 확대된 것이다. ‘진보’라는 단어 또한 단순히 물질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한 몸, 내 가족, 내 나라만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모두가 지구에 사는 ‘한 형제’라는 큰 틀에서 더 바람직하고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유독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좌·우파라는 단어를 ‘진보·보수’라는 말이 대체해온 지 오래된 데다 근래 통합진보당 사태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보’라는 단어가 갖는 진정한 함의가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다시금 ‘진보’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고 그 참뜻을 살려나가야 할 때다. 지상에 굳건히 뿌리박은 두 현자의 이야기 이 대담의 의의는 동서양 두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처음으로 ‘정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한 내용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달라이 라마가 보여준 ‘세속 윤리’의 정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이 대담이 세계 시민들에게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임을 입증한다. 달라이 라마는 세속 윤리만이 보편적일 수 있으며, 동서양 두 세계의 많은 대표자들이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으려면 이러한 세속 윤리가 먼저 정립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이에 화답하듯 스테판 에셀은 ‘정신적 민주주의’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는 가까운 정신과학자들과 함께 이루어낸 ‘정신의 지도’를 사용하자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이 대담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시대의 진정한 두 어른이 그들의 깊은 성찰을 더없이 두터운 체험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 이후 살해당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감금되어 죽거나 굶어 죽은 티베트인들이 100만 명 이상이고 1959년 3월부터 1960년까지 라싸 지역에서만 8만 7,000명이 사망한 끔찍한 일을 겪는 상황에서도 항상 비폭력의 길을 택해왔고 차츰 그 열매를 맺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티베트인들이 중국 정부 지도자들보다 훨씬 강한 정신을 지닌 결과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런 강한 정신은 티베트의 문화를 말살되지 않게 지키려는 노력으로 나타나 전 세계의 의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테판 에셀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붙잡혀 죽음의 문턱 바로 직전까지 갔던 극한 상황에서도 적에 대해 전혀 증오심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평소 그가 강한 정신과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지상에 굳건히 뿌리박은 두 현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과연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가 자명해진다. 시대를 바라보는 두 인물의 깊은 통찰과 고뇌, 사상은 정치적 격변기에 놓인 한국 사회에도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더불어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거목을 차례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번역자의 상세한 후기를 통해 대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두 인물과의 만남에 관한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덤으로 들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