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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 선인장은 한문으로 ‘仙人掌’이라 한다. 말 그대로 ‘신선의 손바닥’이란 뜻이다. 아마 한자 문화권에서 부채선인장 가운데 하나인 ‘은세계’를 보고 붙인 이름인 듯싶다. 은세계는 시골 장독 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이고, 잎이 손바닥처럼 넓다. 그런데 그 손바닥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그래서 결코 신선의 손바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도 죽지 않고 사는 선인장의 질긴 생명력과 관계가 있는 듯싶다. 바로 그 생명력을 보고 신선의 장생불사(長生不死)를 떠올렸을 것이다. 또 선인장을 백년초(百年草)나 패왕수(覇王樹)라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선인장이라 하더라도 그 특징에 따라 게발선인장, 둥근선인장, 공작선인장, 기둥선인장, 새우선인장과가 있고, 그 안에 수많은 선인장이 있다. 크리스마스선인장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크리스마스선인장은 다른 선인장과 달리 성탄절 즈음에 꽃이 핀다고 해서 이름이 ‘크리스마스선인장’이다. 한 생명이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이 그림책은 이름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어떤 사람이 자기 이름을 철수에서 만식이로 바꾼다 하더라도 그 자신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으면 거의 다 자기 이름을 댄다. 철수가, 만식이가 자기 자신과 똑같은 어떤 것인 양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림책 본문을 펼치면 커다란 이파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이파리가 말을 한다, 아니 말을 건넨다고 해야 맞을 성싶다. “나는 선인인장입니다. 하지만 선인장이 내 이름은 아닙니다. 강아지가, 고양이가 이름이 아니듯. 나는 이름 없는 선인장입니다.” 봄이 되자 다른 선인장은 저마다 예쁜 꽃을 피운다. 하지만 이 이름 없는 선인장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 그래서 급기야는 “어쩌면 나는 선인장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의 끝을 놓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도, 그런 꽃이라 할지라도 꽃을 피우고 싶다고 속삭인다. 다른 꽃처럼 나비와 얘기하고 싶다고 소망한다. 하지만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갈 때까지도 꽃을 피우지 못한다. 마침내 겨울이 오고, 이제는 나비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몸도 점점 얼어 간다. 선인장은 지난날 나비에게, 동무들에게 짜증내고 상처 준 일을 떠올리고 후회한다. 그러자 뜨거운 것이 몸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울컥 솟아난다.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다. 하지만 둘레엔 아무도 없다. 자신의 꽃을 보아 줄 친구도, 나비도 없다. 이때 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꽃가게에 온다. 아이는 눈 속에 핀 선인장 꽃을 보고 신기해한다. 꽃가게 아저씨는 크리스마스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해서 그 이름이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고 일러준다. 드디어 선인장은 자신의 이름이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생명이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이 선인장은 내년 봄 다른 꽃들이 꽃을 피워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짜증도 내지 않을 것이다. 또 친구들에게 상처 주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겨울이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기에. 더구나 아무도 꽃을 피우지 않는 겨울에 저 홀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을 피울 ‘크리스마스선인장’이기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