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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 7
한머리 / 103 숨소리 / 195 작가의 말 / 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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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천수만에서 유년을 보냈다. 양지편 대나무 언덕으로 파도가 출렁거리던 바다는 리아시스식으로 촘촘해서 얼핏 저수지처럼 아담했다. 대부분 논두렁밭두렁에 파묻히다가 농한기가 되어서야 갯바구니 들고 오그르르 바다로 나가던 풍경들이 아스라하다. 모든 마을마다 바다가 있는 줄 믿고 있던 유년이다.
철 이른 객지 생활의 습성일까, 갯마을 향수병에 시달리던 사춘기를 보냈다. 원효로 골목길 자취방 앉은뱅이 밥상에 고개 박으면 원산도 어디쯤 갈매기 날갯짓이 끼륵끼륵 어깨를 누르는 것이다. 그 기억들이 활자로 박히던 것도 운명이다. 성장소설의 배경을 착한 쪽으로만 뼈대를 맞추기도 했다. 깊은 밤, 모래밭에서 머리카락 쓰다듬던 이웃들의 하얀 이빨 떠올리며 아픈 상처를 아름답게 묘사하려 공을 들였던 것 같다. 『닭니』와 『꽃 피는 부지깽이』 그리고 몇 개의 출산물들이 대개 그랬다. 문득 그 ‘착함’의 캐릭터가 바리게이트 되어 문장들을 가로막지 않았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 그 틀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 후 산업화 시국 전후의 아리고 시린 사연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싶다, 권력자나 그 끄나풀들이 그랬듯이 민초들 사이의 그물망도 더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싶은 것이다. 글판에 몸을 담은 지 수십 년. 최루탄 연기 자욱하던 아스팔트 청춘들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이제 초로의 시점이다. 그랬다. 소금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상처 속에 피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던 젊음의 언저리 즈음이다. ‘민주주의와 빵과 통일과 사랑’의 문장으로 이 땅의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싶었다. 36년간 몸담았던 교단을 떠나니 몸이 새털처럼 가벼우면서도 허허로움을 감추기 힘들다. 국어교사라는 마크는 나의 업보이면서 삶의 자존이었고 우렁각시처럼 통장에 숫자를 찍어주었다. 상처를 받았고 싸우는 방법도 터득하면서 사람을 만났고 삶의 뼈대를 만들어주었다. 등이 굽고 잇몸이 도미노 현상으로 허물어지던 몸의 변화에 익숙해졌다. 괜찮다. 번번이 조명을 피해가던 그늘진 일상도 기실 견딜만하다. 지금껏 벗들의 후광으로 살아왔듯이 이 글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 「작가의 말」중에서 여우의 눈빛이다. 어미 여우와 새끼 여우의 눈빛이 새벽을 뚫고 한꺼번에 빛을 쏘아댄다. 루스키 전투에서 다리와 귀를 잘린 채 도망치던 들짐승을 여기서 만난 것이다. 지금은 다리 잘린 어미 여우가 갓 난 새끼 여우 두 마리를 품에 끌어안고 밭은 신음을 쏟아내는 중이다. 그들의 터래기 움직임 하나까지 너무 섬세하여 오래도록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미는 새끼들을 껴안으면서도 여차하면 틈입자를 할퀼 듯 나머지 한쪽 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다. 보호막 솜털조차 보송보송 아름다운 모정의 사랑이다. 용석은 배낭에서 주먹밥을 꺼내어 코앞에 밀어주고 조심조심 일어난다. 어미 여우가 성한 다리로 주먹밥을 아슴아슴 끌어가더니 새끼들 입에 넣어주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 삼국유사에서 본 혜통 스님의 일화를 아주 잠깐 떠올렸을 뿐이다. --- 「나팔꽃」중에서 하천 건너 팔촌 열일곱 사춘기끼리 일을 저지른 건 시멘트 다리를 완공하기 직전이다. 재홍이 형은 갈마리 서낭당 너머에 살았고 정자 누나는 뽕나무 많은 진둔벙 옴팡 집에 살았으니 걸어서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이다. 돈이 없어 중학교에 못 간 정자 누나 혼자 무럭무럭 열일곱 처녀가 되었을 즈음이다. 개울 건너 밤마실 나온 재홍이 형 그림자가 비추면 모처럼 활짝 웃기도 하는 게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았다. 정자네 사랑방에서 묵 내기 화투나 팔뚝 맞기 뽕으로 죽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재미로 서낭당 언덕 너머 징검다리 건너며 억새풀 밤이슬 스치는 것이다. 성만이 형도 딱 한 번 오긴 했으나, 재홍이 형 혼자 오는 횟수가 늘어나고 더러는 막걸리 주전자 소리도 떨꺽떨꺽 들리는 낌새가 어째 수상하긴 했다. 묵 내기 화투를 치거나 팔뚝 때리기 윷판을 벌여도 식구끼리니까 하냥 그런가 보다 했다. 어스름 달밤 지나고 자정이 지나도 각자 둥지 찾아 등허리 눕히는가 보다, 하며 안방 어른들은 까맣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 「한머리」 중에서 날개 꺾인 천재, 큰삼촌의 그 투석인 줄 알았다. 가분수 체질답게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마치자마자 명문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니 ‘개천에서 솟아오른 용’이었다. 아버지는 큰삼촌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반복하며 회상했다. 큰 가방을 메고 서울행 버스를 타는 대학생 동생의 뒷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단다. 그러나 대학생 배지를 단 지 반년 후 큰삼촌은 집안의 기대를 깡그리 날려버린 큰삼촌이다. 무슨 사상 서적과 사상 동아리를 접하면서 투석전(投石戰)에 몸을 던진 것이다. 머리통이 실제로 금이 간 철학도 출신 큰삼촌 얘기는 따로 풀어도 한 보따리다. 신입생 초기에는 ‘분단 시대 한반도 젊은이’란 문장을 되뇌면서 눈시울 적시곤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 어둠을 사르는 불빛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 일어서야 한다’고 결의를 보일 때는 어린 나까지 두 주먹 불끈 쥐어졌었다. ‘독재 타도’, ‘인간 해방’, ‘군중들의 함성’ 같은 문자를 말할 때까지는 그냥 용감한 학생인 줄만 알았다. --- 「숨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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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소년의 삶
강병철의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소년이거나 청소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천진함이 세 편 모두에 흐르고 있다. 소년기 특유의 천진함으로 시대와 역사를 살아가는 탓인지 아프고 슬픈 시간들인데도 고통만 전경화 되지 않는다. 소용돌이 같은 시대 속에서도 소년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싸우고, 사랑하고, 웃으며 살아간다. 표제작이기도 한 「나팔꽃」은 일제 말기 즉 일본제국주의가 일으킨 태평양전쟁 시절을 사는 조선 학생의 초상들이다. 소설의 말미는 징병으로 끌려간 용석이 탈영한 와중에 해방을 맞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소설의 재미는 그 이전 이야기인 일본 학생들과의 갈등에 모아져 있다. 석별 이전에 악수와 깊은 포옹으로 마무리했으니 청년다운 결기다. 별들이 밤하늘에 그물처럼 출렁이는 천변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부스스 등을 보였고 나머지 구경꾼들도 몸을 털며 일어섰다. 관전자들끼리도 서로 어깨를 적당히 두들기고 반대 방향으로 따로따로 술청을 찾았다. 그리고 퇴학생 김수복의 이름이 한동안 용주고보에 전설처럼 남기도 했다. 용주고보의 딱 한 명뿐인 여성인 서무과 김수미 양도 눈물을 글썽거렸다는 소문이 얼핏 들렸으나, 그것뿐.(32) 일본 학생이든 조선 학생이든 소년들은 민족 감정 이전의 의협심으로 현실을 본다. 일본 학생 아라기의 도발로 조선 학생들이 ‘후쿠로 다다키’를 친 후과로 정학 내지 퇴학을 당하자 양쪽의 싸움군 도요토미와 김수복이 ‘맞짱’을 끝내고 헤어지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식민주의가 소년들의 영혼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조선 소년들의 눈으로 본 비참한 자기 현실이다. 싸움꾼 김수복도 전쟁 앞에서는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인데, 슬프게도 김수복은 죽고 용석은 살아 탈영을 감행한다. 탈영한 용석이 두만강 너머의 온성 땅에 도착하자 일본이 패망해 해방이 되지만, 용석이 본 것은 “소련군 탱크 부대가 그릉그릉 오는” 장면이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는다. “완전히 끝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소년의 눈으로 본 1960년대의 삶 그렇다면 「한머리」는 ‘불길한 해방’ 이후를 다루는가? 연작소설이 아니니 당연히 그럴 필요는 없다. 「한머리」는 1960년대 중반이 시간적 배경이다. 여기서도 아홉 살 소년 동희의 가족사와 동희가 사는 지역의 대소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주인공은 소년인 동희이다. 어떻게 보면 성장소설에 가까운 것도 같지만 동희의 눈을 빌어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때가 1960년대 중반이니 전쟁의 그림자가 없을 리 없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1960년대가 전쟁의 자식이었음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원조 백모’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시체 더미를 피해 고사리 숲 철길로 올라서니 억새풀 사이로 헤아릴 수 없는 시체가 있었다. 생강밭 고샅을 넘었을 때 거기서도 젊은 남자의 시체 몇 구가 쓰러져 있었다. 힘 있는 젊은 사람이 이판사판 도망가니까 군인들이 뒤쫓아 가면서 총을 쏜 것이다.(128)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 수복 이후 세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그 후 공 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리개로 두들겨 맞는 대가를 치렀으니 인과응보이다. 특히 백부가 가장 노발대발하여 그의 아랫도리를 번쩍 들더니 개울에 쑤셔 박았다. 그나마 외동딸 순임이 하나라도 낳은 게 신기한 일이지 생식능력을 잃은 것도 그때 당한 멍석말이가 이유라고 수군수군 입방아 찧기도 했다.(141) 앞 인용 구절은 ‘원조 백모’가 시집오기 전 경험한 노근리 학살에 대한 언급이고 뒷부분은 전쟁의 복판에서 있었던 좌우 갈등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년 동희의 눈을 통해 부모 세대들이 여전히 전쟁을 앓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작가의 의도가 여기에 있다면 「한머리」는 「나팔꽃」의 후속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용석이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아 「한머리」에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할까. 동희 세대도 그 나름대로 삶이 있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에피소드 중 압권은 정자 누나에 대한 성만이 형의 짝사랑 이야기이다. 성만이가 ‘풍덩’ 자맥질하여 손에 잡힌 피라미를 검바위로 집어던지면 성순이와 정자가 동시에 박수치며 보조개 웃음을 까르르 피웠다. 강아지풀에 꿴 민물고기 꾸러미 비늘 파편이 햇살 받아 파닥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성만이 형은 정자의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검바위 물속으로 무던히도 알몸을 담궜다.(149) 하지만 정자 누나는 “살붙이”인 재홍이 형과 정분이 났고, 소문은 마을 전체에 퍼졌다. 재홍이 형은 강원도 원주로 도망쳐 혼자 남은 정자 누나는 재취 자리를 마다하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일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소설은 낡은 가치들과 새로운 가치들이 충돌하는 장면들을, 또는 암시들을 여러 곳에 매복시켜 놓는데 이것이 또한 이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아무튼 「한머리」를 통해 작가는 한 시대의 초상을 박진감 있게 그려 놓았다. 시대적 의미에 미치지 못하는 한머리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1960년대 중반,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씩 걷혀가면서 나타나는 모습들을 강병철은 이야기꾼의 눈으로 포착하고 있다. 성장소설이면서 역사소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번 소설집에 실린 세 편의 중편소설의 주인공과 화자들을 소년으로 설정 했을까.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그동안 써온 성장소설에 “‘착함’의 캐릭터가 바리게이트 되어 문장들을 가로막지 않았나”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동시에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 후 산업화 시국 전후의 아리고 시린 사연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싶다”고 한 점을 고려해보면 ‘착한 캐릭터’를 벗어나기 위해 ‘착하지 않은’ 시간대를 택한 듯싶다. ‘착한’ 시공간에서 ‘착하지 않은’ 캐릭터를 창조하려면 얼마간 위악적이어야 하지만, 시대적 조건이 착하지 않다면 ‘착하지 않은’ 캐릭터는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강병철의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착하지 않은 소년들은 역설적으로 ‘착하지 않은’ 역사적 시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병철의 새 소설집 『나팔꽃』은 성장소설의 외피를 두른 역사소설에 가깝다. 그런데 역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 세 편 공히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소년들의 변화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소설집은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역사소설이든 성장소설이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야기의 재미남인데, 특히나 툭하면 싸우고 또 화해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지극히 평범한 소년들의 입장에 작가가 섰기 때문에 그 재미는 가능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