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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집 양장
김기정윤봉선 그림
웅진주니어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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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유네스코 우리 유산

책소개

저자 소개 2

KIM,KIE-JOUNG

196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잠시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뒤늦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02년 《바나나가 뭐예유?》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멋진 이야기를 짓고 야 말겠다는 꿈을 꾸며 골방에 박혀 재미난 작품을 궁리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금두껍의 첫 수업》, 《명탐정 두덕씨 시리즈》, 《이선달 표류기》, 《기상천외한 의사 당통》. 《박각시와 주락시》 들과 같은 작품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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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윤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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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책에 꾸준히 그림을 그려 왔다. 쓰고 그린 책으로 『조금 다른 꽃눈이』 『세균맨과 위생 특공대』가 있고, 『넌 토끼가 아니야』 『씨앗 세 알 심었더니』 『지구 행성 보고서』 『세찌는 엄마가 셋』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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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1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2쪽 | 444g | 230*250*15mm
ISBN13
9788901155791

출판사 리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장경판전

장경판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장경판을 보관하는 전각을 이르는 말이다. 절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큰 절에는 장경판을 보관하는 전각이 있다. 그 가운데 해인사에 있는 장경판전은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건물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이 세계 문화유산이 된 것은 고려대장경을 750년이 넘게 온전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판은 나무의 특성상 습도나 온도가 조금만 안 맞아도 뒤틀리거나 곰팡이가 슬기 마련인데 8만 1,258장이 모두 어떠한 손상도 없이 온전하게 보존된 놀라움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1488년(성종 19)에 세워졌다. 덕종의 비 인수왕비와 예종의 계비 인혜왕비가 도목수를 보내 판전 30칸을 짓게 하고 보안당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장경판전은 수다라전, 법보전, 동사간전, 서사간전 4동으로 이루어졌는데 수다라전과 법보전을 합치면 30칸이 된다. 장경판전 안에는 국보 제32호인 고려대장경판과 국보 제206호인 고려각판이 보존되어 있다.

경판의 변형을 최소화하려면 온도, 습도, 통풍 같은 기후의 조절이 중요하다. 건물 안은 통풍이 원활해야 하고, 낮과 밤, 계절에 따른 온도와 습도의 변화는 적어야 한다. 또 일정한 공기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장경판전은 창을 이용해 자연적인 기후 조절을 하게 하였다. 통풍을 위하여 낸 창을 보면, 각 건물마다 앞면과 뒷면의 창이 크기가 다르고, 마주보는 건물의 창도 크기가 서로 다르다. 그럼으로써 창으로 들어온 공기는 건물 안에서 앞뒤로 흐르고, 판가에서는 아래위로 흐르기 때문에 판전 내부의 온도와 습도는 자연 고르게 분포된다

또 건물 안쪽 흙바닥 속에는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같이 섞어 넣었다. 흙바닥은 장마철이 되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보내도록 해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다. 자연적으로 습도를 조절해 경판의 변형을 줄일 뿐만 아니라 해충의 침입도 막도록 했다. 이런 과학적 처리는 고려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고려대장경의 또 다른 이름인 팔만대장경이 세계 기록유산이 된 2007년보다 앞서 장경판전이 1995년에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는데 장경판전의 우수성은 일찍 알려진 바이다.

팔만대장경의 위기

팔만대장경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장경판전의 과학적인 힘과 함께 팔만대장경을 지켜 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고려 말부터 사신을 보내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조선 초에는 토산물을 바치며 팔만대장경을 달라고 하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일본 사신들은 여러 종류의 많은 토산품을 받치며 팔만대장경을 청하였다. 이에 세종은 ‘대장경판은 우리나라에 오직 1본 밖에 없으므로 요청에 응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에 일본 사신들은 단식까지 하였지만 세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세종은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온 국보를 가벼이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일본이 계속 청구하는 것을 일일이 좇다가는 뒤에 줄 수 없는 물건을 청구할 앞날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팔만대장경은 해인사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 뒤 팔만대장경의 큰 위기는 임진왜란 때 있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은 보름 만에 경상도의 주요 읍성을 점령하였다.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는 일본군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이 지역을 지켰던 승병과 의병의 힘이었다.

팔만대장경의 마지막 위험은 화재이다. 목조로 지어진 건물은 늘 화재의 위험이 있다. 임진왜란 뒤에도 해인사에는 큰 불이 일곱 차례나 발생하였지만 다행히 장경판전에는 피해가 가지 않았다. 이와 같은 화재로 해인사의 건물들은 1817년 이후에 새로 지은 것이지만 장경판전은 그래도 남아 있게 되었다.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집』은 팔만대장경의 세 가지 큰 위기 가운데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싸움 잘 하는 장수, 장경판전의 문지기가 되다

임진왜란이 한창인 때 해인사 스님들은 걱정이 가득이다. 일본에서는 늘 팔만대장경을 갖고 싶어 하였고,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왜군들이 팔만대장경을 노릴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주지스님은 용맹한 장수의 이름을 듣게 되고 팔만대장경을 지켜 달라고 간청한다. 장수는 팔만대장경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큰스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 장경판전의 문지기가 되었다. 싸움터의 장수에게 장경판전은 그냥 창고일 뿐이었다. 마침내 가야산 근처에 왜군이 몰래 들이닥쳤고, 장수는 자기의 할 일을 찾은 듯 전장에 앞장선다. 왜군들은 혼비백산 도망을 가고, 해인사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장수는 심심하고 무료하다. 어느 날,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빼곡한 경판들 앞에서 어떤 경이감을 느낀다. 장수는 비로소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큰스님으로부터 두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장수의 얼굴에서는 무료함이 없어지고 기쁨과 호기심으로 가득해져 장경판을 인쇄하고, 그것을 읽는다.

큰스님은 장수한테 떠나도 좋다고 했는데 이제 장수가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이제 이름난 장수가 아니고 책으로 도통하게 되었다.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일을 했던 장수는 밤늦도록 대장경을 읽는다. 그리고 7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장수가 앉았던 그곳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우리는 그 팔만대장경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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