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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상쇄
흰검정 내가 알던 A의 기쁨 코끼리 싸움 대위법 슬럼 새의 간격을 보며 낭만의 우아하고 폭력적인 습성에 관하여 카무플라주 겁과 겹 모카와 모카빵 검열 상태 방패 제2부 기형 기우 외곬 캐러멜라이즈 파수 정물 b의 당위 회복 생각되되 생각될 것 둘 조화 개미를 구별하는 취미 그릇되는 동안 미지 암묵 위하여 제3부 상대성 검은 돌의 촉감 청사진 임상연구센터 먼 밭 서정에 대하여 관조 환하고 더딘 방 이 사과는 없다 텍스트 주방장은 쓴다 지나가면서 법과 빵 모를 쐐기 잔여 제4부 투명 흰 벽 마당을 쓴다 잔잔한 붕어 낚시 위독 1 위독 2 투명에 투명을 덧대며 어쩌면 조금은 굉장한 슬픔 깨지기 직전의 유리컵 자정(自淨) 편집자의 시끄럽고 조용한 정원 연루 뭐 여름 귤 탱자나무 아래 노루잠 해설|전병준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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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2014년 세계일보 등단 후 출간하는 첫 시집입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최근까지, 책을 못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진심으로 다행스럽고,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를 버렸습니다. 시집을 엮는 과정이 시를 버리는 과정인지 담는 과정인지 모호했던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의미’가 아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쫓기고 도망 다니는 꿈에 익숙합니다. 이상한 건 잠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도망 다니는 꿈이 더 안락합니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진 몸에 맞춰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돈을 벌 궁리를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기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조금은 뻗대볼 생각입니다. -첫 시집을 엮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옳다는 논리에 갇히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생명은 쉽게 상처받고 방어기제를 통해 자가치유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치유의 기본은 괜찮다, 옳다의 논리입니다. 물론 매우 중요한 방어기제지만, 상처에서 비롯한 나의 옳음은 자칫 타인의 그름이라는 공격성으로 변형되기 쉽습니다. 각 부의 제목으로 활용한 ‘상쇄’ ‘기형’ ‘상대성’ ‘투명’은 시의, 그리고 저의 검열 언어입니다. 제대로 작용했는지, 하고 있는지, 할 것인지 모르지만 쉽게 판단하거나 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모두 아픈 손가락이어서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슬럼」인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을 이 시의 문구에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편집부와 함께 직관적으로 골라낸 시집의 제목이 지날수록 마음에 듭니다. 「슬럼」은 가장 연약했던 시기의 누군가를 그려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고,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되어가는 기분에 오래 놓여 있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지만, 그간 등한시했던 ‘생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궁리를 해볼 예정입니다.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도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미흡한 원고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 [책 속에서] 흔들리는 중의 물결을 어찌할 수 없다 높아지는 중의 건물을 어찌할 수 없다 당겨지는 중의 방아쇠를 어찌할 수 없다 결심 중의 결심 중의 결심 중의 결심을 어찌할 수 없다 견디지 않는 중의 상태를 견디는 중의 상태를 어찌할 수 없다 ―?상태? 부분 문장은 욕망의 한 방향에 놓여 있다고 본다 뭐,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욕망은, 욕망의 반대를 향해 있는 것 같다고 언뜻 생각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은 되고 만다 되는 것들에 굳이 관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고 또 생각하면서 썼던 문장을 지운다 지운 문장을 다시 쓰고 고친다 ―?암묵? 부분 건물을 올리며 네명이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명이 더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리자의 관리자의 관리자는 일곱이면 선방이라고 생각했다 7은 모나미 볼펜을 한번도 안 떼고 그릴 수 있는 형태다 ―?청사진? 부분 건강한 순응, 자연스레 아름다움은 기억된다 그리고 돌이킨다는 것, 이곳은 땅이었던 언덕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마땅히, 다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서정에 대하여? 부분 사람인 듯 보이는 사람은 앉은 듯 앉아서 생각인 듯 생각을 한다 한입 베어 문 사과를 옆에 두고 (…) 생각이 허락되지 않은 그는 사과가 놓였던 자리에 여전히, 존재인 듯 존재한다 ―?텍스트? 부분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 ―?주방장은 쓴다? 부분 -------------------------------------------------------------------------------- [추천사] ‘다른’ 시집이다. 달라서 ‘자리’가 있는 첫 시집이다. 다른 관점이 펼쳐 보이는 공간은 생경하고 사실적이다. 다른 방법론으로 써지는 문장은 치밀하고 여유롭다. 형이상학인 동시에 흥미진진한 서사다. 독특한 재미를 가졌다. 양립이 어려운 이 다른 대위법은 “존재에게 접속사를 더할 수 없다는 A의 신념”에서 탄생되었다. 유사 또는 차이, 사고의 중심이 되는 두 축 중에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상식과 다른 상식”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생각되되 생각될 것”이라는 “피동”의 강력하고 일관된 시선은, 다름에 “골몰”하던 기하학자로 하여금, “길게 삶는” 흰 국수 사이로 닭과 염소를 들락날락하게 하는, 이질적이고 “치열한 사랑을 구축”해내게 한다. 이영재의 첫 시집에서는 지는 곳으로부터 살아 귀환하는, “막을 닫는 건 힘”이라는 ‘복서들’을 만날 수 있다. 감겼던 붕대가 풀린 채 지평선으로부터 돌아오는, “강철에서 걸어나”왔다는, “견고한 결여”의 존재들을 대면하는 매혹을 느낄 수 있다. 이리 쓰고 있는 중에도 써질 문장은 이영재의 첫 시집은 읽어봐야 안다는 것. 그것도 여러번. “증조할머니”와 “상쇄”와 “박주사”와 “흰검정”이 여러번 여러 방향으로 읽히던 어느 순간, “자라지 않는 걸 키우기 위해 나는 멀리를 걸어왔다”는, 이 “외곬”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접속사 없이, 이영재의 “외곬”의 시는 주목되어야 한다. 이원 시인 ------------------------------------------------------------------------------- [시인의 말]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알고 싶었습니다.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르는 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내가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라는 걸 이제야 압니다. 내가 아니라, 시가 나를 기록해왔습니다. 시에 의해 기록된 내가 보고 생각하고 씁니다. 가한다는 건 뭘까요. 가한다는 건 무엇이어야 할까요. 가한다는 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도 무엇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시에 의해 이 꼴이 되고 있습니다. 타당해 보이는 핑계를 대면서 나는 된 것, 되는 것, 될 것 따위를 믿지 않습니다. 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시에 의해 구축된 내가 시를 구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내가 택한 건 아니지만, 시를 택하길 잘했습니다. 시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충분히 옳고 충분히 그르고 충분히 충분치 않습니다. 2020년 첫, 이영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