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10,000
10,0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목차

역자 서문
승부의 종말

저자 소개 2

사무엘 베케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Samuel Beckett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사무엘 베케트의 다른 상품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여 현대희곡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배우의 화술], [예술강국, 문화대국], [연기화술클리닉] 등의 저서와 여러 권의 고등학교 연극 교과서를 집필하였으며,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과 시집 [사형수],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수업], [의자], [왕은 죽어가다], [살인놀이], 장 아누이의 [반바지], 스트린드베리의 [줄리아씨], 하벨의 [청중],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 베케트의 [승부의 종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여 현대희곡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배우의 화술], [예술강국, 문화대국], [연기화술클리닉] 등의 저서와 여러 권의 고등학교 연극 교과서를 집필하였으며,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과 시집 [사형수],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수업], [의자], [왕은 죽어가다], [살인놀이], 장 아누이의 [반바지], 스트린드베리의 [줄리아씨], 하벨의 [청중],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 베케트의 [승부의 종말],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 등 여러 작품을 번역하였고, [우리 읍내], [체홉의 수다], [술로먼의 재판], [갈매기], [타이터스], [보이첵], [오 행복한 날들]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1996년 가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1999년 순천향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연극무용학과 교수를 지냈다. 2007~2008년 한국연극교육학회 회장과 2005~2012년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5년 한국연극교육학회 산하 분과학회로 한국화술학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맡고 있다.

오세곤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49*211*10mm
ISBN13
9788957867211

출판사 리뷰

『승부의 종말』은 베케트가 불어로 써서 1957년 런던 로열코트 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불어 원제는 『Fin de partie』인데 ‘partie’는 ‘부분, 일부’의 뜻부터 ‘시합, 승부, 경기’와 ‘놀이, 오락’ 등까지 의미의 폭이 상당히 넓다. 그런데 베케트 스스로 번역한 영어본의 제목은 ‘(체스·경기의) 최종회, 막판’의 뜻부터 일반적으로 ‘최종단계’와 군사적으로 ‘적의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기만하는 수단의 일종’을 가리키는 ‘Endgame’으로 되어 있다. 물론 요즘에야 미국 영화 ‘Avengers: Endgame’이 귀에 익겠지만 사용의 원조는 베케트인 셈이다.

『승부의 종말』에는 모두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앞을 못 보는 데다 하반신마비로 바퀴의자에 앉아 있는 햄과 앉지를 못하는 불편한 몸으로 햄의 시중을 드는 클로브, 그리고 커다란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햄의 부모 나그와 넬이 그들이다. 이렇게 움직임이 어렵거나 좁은 공간에 갇힌 인물들은 베케트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연극』에서는 인물들이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있으며,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럭키는 끈에 묶인 채 등장하고 1막에서 럭키의 주인으로 나왔던 포조는 2막에서 시각장애자가 되어 오히려 럭키에게 종속된 상태로 등장한다. 또 『행복한 날들』에서 위니는 1막에서는 허리까지, 2막에서는 목까지 땅에 묻힌 상태이며 그 남편 윌리는 기어서 이동한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클로브는 햄의 아들일 수도 있다. 설령 친아들이 아니어도 나그와 넬, 햄, 클로브는 각기 조부모로부터 손자에 이르는 3대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상태는 오랜 세월과 함께 쇠락해가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죽음을 맞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한번 요양원으로 들어간 노인들이 다시 나오지 못하고 결국 거기서 생을 마치는 요즘의 세태를 생각하면 연극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징은 양쪽에 난 창문이 각각 육지와 바다로 향하고 있다는 설정과 어우러지며 이 공간을 세상 또는 우주 그 자체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햄의 대사 중에는 이것이 하나의 게임이나 놀이임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주기적으로 나온다. 결국 인생이란 정해진 순서에 따라 게임이나 놀이를 하다가 때가 되면 끝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연극 전체가 극중극처럼 미리 짜여 있는 거고, 어쩌면 매일 똑같은 순서로 반복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처음과 같은 자세를 취하는 햄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다.

통상 이러한 베케트의 작품을 어렵고 난해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독자나 관객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번역자에게 어렵고 연출과 배우에게 어려울 뿐 독자나 관객들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서는 곤란하다. 물론 희곡을 읽은 독자나 공연을 본 관객들이 깊은 고민에 빠질 수는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다만 그 고민은 작품의 겉 이야기를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속뜻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관객들이 품게 되는 속뜻은 제각각 다를 것이 틀림없다.

베케트는 1989년에 작고했다. 올해로 30년 전 일이다. 그런데 기국서 연출이 원저작권자 측과 공연저작권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작품에 음악을 쓰지 말라는 주문이 왔다. 단순한 주문이 아니라 아예 각서까지 요구하였다. 베케트는 생전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형을 가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는 증언이 있으니 후손들의 과잉 해석은 아닐 테지만 연출로서 그런 조건은 무척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국서 연출은 그 약속을 지켰고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음악이 없음으로 해서 공연 중 관객들은 배우의 대사에 완전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희곡을 읽는 독자들도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 주기 바란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