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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지식을 찾아서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5

1. 성막의 구조 / 15
2. 번제단 (놋제단) / 21
3. 물대야 / 26
4. 빵 차리는 상 / 36
5. 금촛대 / 41
6. 금 향단과 향로 / 50
7. 지성소 / 59

저자 소개 1

피터 S. 럭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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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S. Ruckman

피터 럭크만 박사(1921-2016)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
피터 럭크만 박사(1921-2016)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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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80쪽 | 110g | 153*223*15mm
ISBN13
9788992164665

책 속으로

3. 물대야 : 놋제단을 지나 앞으로 가면 물대야를 보게 된다. (다음 그림 참조.) 그것은 직경 10피트 정도 되는 굉장히 크고 우묵한 통이다. 거기에는 맨 아래로부터 물을 받을 수 있는 작은 꼭지들이 있고, 그 대야의 밑바닥에는 다리가 있다(출 38:8). 그 다리는 바닥으로 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받치고 있다. 놋대야의 크기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것에 대한 치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놋대야가 얼마나 많은 물을 담고 있든지 간에 그것은 “영원”한 것을 묘사한다. 거기에는 아무 치수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물대야가 상징하는 것은 “정결케 하는 것”이다. 자, 이것을 우리의 구원에 적용시켜 보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구원받을 때, 우리는 갈보리에서 흘리신 그분의 피를 통해 구원받는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값을 치렀으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형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셨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이제 우리는 그분의 피값으로 구원받고 거듭났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제 필요한 것은 “씻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들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갈 때, 그들이 물로 씻어야 죽지 않으리니... 그들의 손과 발을 씻으면 죽지 않으리니...』(출 30:20-21). 주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죽지 않으리니”라는 말씀을 13번이나 하셨다. 이 사실을 주목하라. 구원받을 때 온 몸은 씻겨진 것이지만 손과 발은 매일 매일 씻을 필요가 있다(요 13:10). 그것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망에 이르는 죄”(요일 5:16)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또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롬 8:13)라고 말씀하신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들을 예표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 아론과 그 아들들, 아론과 그 아들들”이라는 말씀을 열두 번이나 하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성막에 들어와서 기다리며 나를 섬길 때 너희 발을 항상 깨끗케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성막에는 마루가 없기 때문이다. 마루가 없다면 맨 땅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매일 성막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먼지 때문에 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발이 더러워지면 씻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경을 읽을 때 바울 서신만 읽지 말라.)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 발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내가 너희 발을 씻길 것이다.”라고 하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께서 나의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할 것이니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만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렇다면 머리, 몸, 그리고 모두 다 씻겨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처럼 베드로는 주님 사랑하는 것을 멈춰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주님을 사랑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 번 목욕했으면 깨끗해진 것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 받았는가? 그렇다면 씻으러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당신은 깨끗하다. 그러나 당신의 발은 늘 더러워진다. 당신은 세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산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 동안 먼지낀 거리를 오갈 때 당신의 발은 더럽혀진다. 그렇다고 옛날 구원받기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구원받을 필요는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지 당신의 “발”을 씻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발을 씻는 것은 “말씀에 의한 물”이다(엡 5:26). 예수님께서 일찌기 제자들과 함께 지내실 때 그들에게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을 통하여 깨끗해졌느니라』(요 15:3)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시편에서는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정결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조심할 것이니이다』(시 119:9)라는 말씀이 있고,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하실 때에도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당신이 순례자의 길을 통과하며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은 성경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말씀이 없이는 절대로 순결하게 살아갈 수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된 적도 없겠지만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성경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깨끗한 삶을 절대로 살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성경을 책상 선반 위에 던져 놓고 먼지가 쌓일 때까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면, 결코 깨끗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 성경 없이 성결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핍박과 불경건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과 음담패설들이 난무한다. 세상은 십년 전보다 더 악해졌다. 십년 전에는 이십년 전보다, 이십년 전에는 내가 어렸을 때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보다 더 악했다. 성결한 삶을 유지하기 원하면 가서 발을 씻으라. 얼마나 자주 씻는가? 물론 날마다 씻어야 한다. 당신이 한 번 전체적으로 씻김받았으면 당신의 몸은 깨끗하다. 하지만 당신의 발은 매일 씻겨져야 한다.

성막에는 마루가 없다. 그래서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먼지가 있다. 거룩한 물건들이 그냥 맨 땅 위에 있다. 타일도 없고, 대리석도 없으며, 마루바닥도 없다. 제사장들이 성막에 출입할 때마다 그는 더러워져서 다시 발을 씻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때때로 피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자백하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을 그만두는 이유이다. 반복되는 죄로 주님께 되돌아가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이 말은 죄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일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님, 제가 주님께로 오는 것이 피곤하네요.”라고 말하겠는가?

“저, 주님, 저를 사랑하신다면요, 저를 좀 승리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주님께 자꾸 오지 않아도 되잖아요.” 하지만 그러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네게 그런 실패를 주지 않는다면, 너는 그나마 지금만큼도 내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 아니냐?” 모든 개들에게는 자기들이 개라는 것을 상기시켜 줄 만큼의 벼룩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죄인임을 상기시켜 줄 만큼의 죄를 지니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 정결케 하는 물이 여기 있다. 성막을 드나들 때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 p.26~32

출판사 리뷰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를 다룰 때 “성막”에 대한 부분을 빼 놓을 수 없다. 성막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정해 주신 때부터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으며,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모아주는 중심 장소였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성막의 모양이나 제도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많은 영적 진리들을 깨달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성막을 통해서 신약 구원에 대한 모형을 볼 수 있다. 성막은 분명히 구약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성막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아니다. 성전도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아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는 다름 아닌 성도들의 몸이다.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의 몸을 성전삼아 그 안에 계시는 것이다. 이처럼 성막은 구약에 속한 내용이고, 구약의 교리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구약에 나타난 내용들은 하나의 모형이 되어서 신약 교리를 조명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전서 10장과 로마서 15장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로마서 15:4에는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한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을 당시에는 신약성경의 대부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기록된 것”과 “성경”이란 창세기부터 말라키까지를 의미한다. 즉, 구약성경의 내용들은 신약 성도들에게 교훈과 위로와 인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시대의 성도들인 우리들에게 구약의 모든 것들을 교리적으로 다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서 분명히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11에서도 바울 사도는 구약에 있었던 일들이 “우리에게 권면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즉, 구약성경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고, 교훈하며, 꾸짖고, 바르게 인도하며, 빛을 준다는 것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구약과 신약은 너무나도 분명히 나누어지기 때문에 구약은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약성경에서도 각 책들은 분명하게 나누어져서 유대인과 교회에게 각각 적용되므로,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바울 서신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리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구약은 율법에 속하고 신약은 은혜에 속한다. 따라서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피흘려 죽으시기 전의 일들이 기록된 사복음서는 아직 구약적인 내용이 많이 남아 있다. 반면 바울 서신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향한 위대한 계시들을 받은 후에 교회를 위해 기록되었기에 교회시대의 교리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바울 서신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교리”에 대한 부분이다. 성경은 교리를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있지만 결코 교리만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성경은 교리를 위한 것 외에도,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한 책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하게, 또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할 수 있는 책이다(딤후 3:16,17).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려면 먼저 교리를 바로 알아야 하지만, 성경으로 책망도 받고 바로잡히기도 하며 의로 훈육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바울 서신 만이 아니라 신구약 66권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틀린 것이며, 우리는 구약 성경을 통해서도 많은 영적 진리들을 얻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막이며, 성막은 우리에게 매우 많은 것들을 알려 준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3-4에서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 커다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교리적으로 어디에다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만 할 것이다. 사실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도 아주 대단한 교리가 담겨져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때때로 구약 성경을 읽을 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본문들을 대할 때가 많이 있다. 성경을 완독하기로 시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창세기와 출애굽기 중간까지는 재미있게 읽어가다가 출애굽기 중반부에 가서부터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십큐빗에 다섯큐빗 반”, “보석들”, “걸쇠들”, “고리들”, “연결하는 끝단” 등 성막을 다루는 부분에 와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지며, 레위기에 가서는 성경읽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포기해버리면 그는 몇 달간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러다가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다시 한 번 성경통독에 도전한다. 그리고 그는 창세기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창세기는 재미있게 읽어내려간다. 하지만 출애굽기 중간 쯤에 이르러서부터는 먼저 때와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이렇게 하기를 수 차례, 그는 결국 창세기에 대해서만 박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완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도 쉽사리 지겨워지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성경 66권을 읽고 또 읽고 지금도 계속 읽고 있지만, 사실 출애굽기에 다다르면 완전히 진력이 나버린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의아해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실제적인 책이다. 그것은 인생과도 같아서, 인생의 많은 부분이 지루하듯이 성경도 많은 부분이 지루하다.

지루하다는 바로 그 자체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문제가 된다. 그들은 열렬히 응원하고, 척척 움직이며, 빵빵 쏘고, “윽”하고 죽고, 안아 달라, 뽀뽀해 달라 등 이런 것들이 난무하는 텔레비젼을 보며 생활한다. 그들은 인생이란 온통 경찰과 도둑처럼 쫓고 쫓기는, 흥미진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실제 삶이란 기저귀통, 바퀴벌레들, 막힌 변기통과 같은 것이다. 즉 삶의 많은 부분이 따분한 것처럼 성경의 많은 부분도 따분하다는 뜻이다. 역대기상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나가는 것이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면 그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형제여! 성경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말씀하신다(마 4:4).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지루한 성경 본문들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성막을 다룬다. 어떻게 보면 성막에 관한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지루한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막을 통하여 성경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할 가장 귀중한 진리들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것들인데, 구원과 관련된 가장 위대한 진리들 중 몇 가지는 로마서에서 발견되지 않고, 바로 여기, 출애굽기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바로 이 구원에 관한 진리들을 우리는 성막에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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