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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_4
제1부 경계·13 탄생·14 낙화·16 어떻게든·18 밥·20 눈 온 아침에·22 붉은 꽃·24 아침이 되는 길·26 무논·28 겨울 강·30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32 냇물이 흐르는 쪽·34 제2부 길·39 풀·40 아름다운 꽃밭·42 강가에서·44 바닥에 대하여·46 무너지는 시간·47 인간의 길·48 희뿌연 벌레·50 고속도로·52 거리에 갇히다·54 8월·56 강·58 제3부 잠들지 않는 생활·61 만국의 노동자여, 분열하자·62 공장 밖이 위험하다·64 우리는 이렇게 왔다·66 잃어버린 다이너마이트·68 마지막 남겨진 말·70 2008년 6월에 쓴 시·72 싸움의 끝·74 죽음에게는 먼저·76 심장의 빛깔·78 제4부 우리의 희망·83 전라도·86 더러운 시·88 집구석·90 악몽·92 육 년 동안·94 새해 아침에·96 죽음들·98 묘비명·100 노래에 대하여·102 제5부 꽃·107 詩·108 냇물·110 무화과나무로부터·112 소음의 정체·114 먼지·116 자화상·118 입동·120 더부살이하는 책·122 오어사·124 아프지도 않고·126 살을 앓다·128 벽·130 해설 침묵과 심연 | 고봉준·133 |
황규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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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앞에 서면 물결이 되고
숲에 들면 나무가 되는 순간이 있다 어깨를 들썩이며 모든 시간이 울먹이고 꽃잎이 바람이 되는 어찌할 수 없는 노래가 있다 멍든 가슴이 깨질 때 목마른 짐승이 밖으로 뛰쳐나와 들판을 달릴 때 언어가 조각나는 여리디여린 몸뚱이가 있다 절정은 사막인데 사막이 피안이 되는 순간이 있다 싸움과 변명과 누적된 신음이 켜질 때 사랑과 믿음과 고독에 모두를 맡길 때 미지의 심연이 반짝이는 찰나가 있다 어두운 물질에 웃음이 번지는 기적이 있다 --- 「탄생」 중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8월의 숲은 처음 보는 여자의 머릿단 같다 이건 물론 내 느낌일 뿐이지만 언젠가 모르게 내면이 되어버린 사건 없이, 뜨거운 태양이 있겠는가 사소한 몸살도 당신과 마주친 흔적이었다 쓰나미 이후에 남은 문명의 쓰레기가 우리를 어지럽게 할 때 그건 우리가 거품을 마시고 셈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왔기 때문 어젯밤 얼굴을 붉히며 웃던 매끄러운 허벅지의 틈새에서 더더욱 믿음이 단단해졌다 그러니까 사랑은, 8월의 숲처럼 바람에 빠짐없이 소스라칠 것! 이렇게 나는 나이를 먹고 눈물을 다시 배운다 왜냐면 오늘은 처서 전날이고 후회는 현재를 더럽히므로― --- 「8월」 중에서 꽃은 내가 모르는 어두운 세계에서 오고 나라는 의미는 꽃이 피운 것 그러나 동시에 무지이므로 나는 첩첩산중의 불빛 한 점, 위태로운 숨결이다 여기까지 온 것도 꽃의 침묵, 그게 나를 떠나게 한다 나를 머물게 한다 그리고 저물게 한다 --- 「꽃」 중에서 흘러가는 냇물을 보아라 얼굴이 없는 시간을 보아라 바람 따라 흐느끼는 버드나무 그림자를 보아라 흘러오는 냇물을 보아라 물잠자리가 떠나지 않는 생명의 수프를 보아라 물새의 눈빛만으로도 허물어졌다 다시 태어나는 모래섬을 보아라 소용돌이치는 냇물을 보아라 물결을 제 몸에 새기는 돌멩이를 보아라 허리가 부러진 꽃송이가 제 씨를 허공에 내보내는 안간힘을 보아라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는 냇물을 보아라 머물렀다 떠나는 햇빛을 보아라 떠났다 다시 오는 어둠을 보아라 단지 출렁이고 출렁이는 뜨거운 번뇌를 보아라 --- 「냇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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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신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노래하다! ‘실천시선 197’(실천문학사)로 2011년 간행됐던 황규관의 시집이 재출간됐다.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은 이명박 정권 때 벌어졌던 4대강 사업과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 같은 사건들을 표현한 작품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사건들과 싸우면서 시를 썼지만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았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고봉준에 의하면, “황규관의 시 세계는 이미 ‘노동’이라는 제한적인 영역을 벗어나 ‘몸’과 ‘살’을 오가는 일종의 우주론적·생태론적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며 “그는 인간과 자연을, 비루한 일상과 우주론적 사유의 연속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가난’의 문제와 밥벌이의 고단함에 관해 노래해왔다”고 한다. 사실 황규관 시인은 그러한 국가가 일으킨 사건들에 대한 반응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파과와 차별 등에 예민한 인식을 이 시집에서 펼쳐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자연을, 비루한 일상과 우주론적 사유의 연속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증거일 것이다. 오늘날의 시가 지나치게 맥락 없는 시뮬라크르에 치중해 있다면, 황규관의 시는 구체적인 사물과 사건에 집중해 있다. 여기서 시인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어느 독자의 평처럼 “시단이 점점 ‘쇼단’이 되어가는 시대에” “견결하고 담대”(‘알라딘’ 독자 100자평)하게 남아 있다. 초월하지 않지만 날아오르기를 의지하고 날아오르기를 의지하지만 땅에 발을 딛고 살려는 작품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지금 느끼는 현실의 고통이 어디에서 연원하는지 사고의 길잡이를 해준다. 시인의 말 시가 단순한 현실의 반영이 아니듯이 삶도 현실의 노예가 아니어야 할 텐데 감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몸이 아프다. 현재가 과거에 속박되어서는 안 되지만 과거는 현재의 심층에서 언제나 운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게 시간의 속성이라면 미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참담한 시절에 부끄러운 내면을 내보이며 요설이 삶을 더럽힐 수도 있음을 생각해본다. 다만 엄청나게 두꺼운 시간 속에서 내가 한 올 한 올 풀어지고 있는 지점에 와 있음을 부정하기는 이제 어려울 듯싶다. 퇴락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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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에서는 어떤 면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랑을 말할 때도 그렇고 가족과 노동을 말할 때도 그렇다. “느리게 걸을” 때도 그렇다. 흐르는 강에도 면적은 있는데 그는 한사코 거부하는 듯하다. 사실, 고도화된 자본의 시대에 모든 지배적 가치는 면적에서 나온다. 면적은 영토이고 부동산이고 권력이며 배제의 힘이다. 비물질적 면적도 작동하는 방식은 같다. 하지만 모든 면적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쉼을 허락하고, 위안을 주고, 생명의 부화를 위한 “눈부신 정적”이 있는 곳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으로 강을 들어내고 산과 나무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도륙해버리는 시대에 자본주의 생산노동 역시 안식을 위한 수단들이 결코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적 삶의 가치와 그 뿌리를 뽑아내어 버리는 힘으로 그는 인식한다. 그러기에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게 된 것이다. - 백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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