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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_더 넓고 더 깊은 강원도 : 정선 아리랑의 가락을 타고 넘어가는 땅
1 강릉이라 경포대는 관동팔경 제일일세 : 바다가 동쪽 끝이라 가없이 멀고 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하는 곳 | 산수 경치가 천하의 첫째인 강릉 | 풍악이 등에 있고 오대산이 겨드랑에 있는 운금루 |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 선교장과 임영관 삼문 | 세월은 가락이 되어 | 이단아 허균의 고향 강릉 |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인민이다 | 쌍한정의 달은 만고에 길이 빛나리라 | 강릉단오제 | 범일국사와 굴산사지 | 고려 때의 효자 김천 2 하늘 아래 고을 삼척과 태백 : 천 길 푸른 석벽이 겹겹이 둘러 있고 삼척에는 오십천이 흐른다 | 맑은 흐름을 굽어보는 죽서루 | 바다를 잠재운 허목의 노래 | 관동대로상에 있는 소공대비 | 새 왕을 낳을 명당 | 신선의 땅 태백의 상징 황지 | 한강의 근원 검룡소 |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 | 오징어 만국기가 걸린 묵호항 3 동해에 연한 설악산 아래 고을들 : 어디가 험하다 말하리 남대천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 | 설악산 자락의 진전사지 | 아름다운 폐사지 선림원지 | 순응법사가 창건한 절 | 남북으로 오가는 나그네 얼마나 많았던가 | 봄에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에 눈이 많다 | 금강산 자락의 고성군 | 실향민의 도시 속초 | 속초를 지키는 두 개의 눈동자 | 설악산에 눌러앉은 울산바위 | 영원히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설악산 | 설악산에서 이인을 만난 김창흡 4 동강의 아름다운 열두 경치 : 사시사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이웃집 닭이 살쪄도 훔쳐가는 이 없는 정선 | 세속의 티끌마저 끊어진 곳 정암사 | 떼돈을 번다는 떼꾼들은 사라지고 | 떼꾼들의 무덤 된꼬까리여울 | 칼 같은 산들이 얽히고설킨 영월 | 단종의 슬픔을 품은 관음송 | 휘돌아 흐르는 강물 따라 | 소나무숲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절 | 마음도 몸도 머물고 싶은 계곡 | 하늘이 낮아 고개 위가 겨우 석 자 | 다섯 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 신앙 | 자장이 지은 옛 절에 문수보살이 있으니 | 봉평에 메밀꽃이 피면 | 율곡의 태몽을 안은 마을 5 국토 정중앙 청정 고을 : 멋스러운 풍류는 평양 땅을 압도하고 『월인석보』가 있었던 홍천 수타사 | 무궁화를 보급한 남궁억 | 설악산 아래 인제가 있다 | 오세암에 머물렀던 매월당 | 봉정암 가는 길은 순례자의 길 |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 생태계의 보고 대암산 용늪 | 한계산의 아름다움 | 내륙의 외딴 섬 양구 |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린 화가의 고향 | 맥국의 터였던 춘천 | 관광지로 다시 태어난 남이섬 | 오봉산이 아닌 청평산 | 지상에 구현된 고요한 선계 | 소양강 물길 따라 사람이 모이고 누정이 흐르니 | 방석을 가른 고개 석파령 | 오르는 데 10리, 내려오는 데 10리 6 동쪽엔 치악이 서리고 서쪽엔 섬강이 달린다 : 옛 절에 튼튼하게 감추고 강릉과 원주의 서로 다른 풍속 | 동쪽에는 치악산, 서쪽에는 섬강 | 남한강변에 자리한 법천사 | 진리가 샘물처럼 솟아나는 절 | 날아오를 듯한 운룡 | 또 하나의 폐사지 거돈사 터 | 치악산 텅 빈 산속에 한 줄기 맑은 바람 | 3도의 물이 모이는 흥호리 부근 | 물 푸르고 산 평탄한 횡성 | 선시대 풍수원이 있던 곳 | 박혁거세에게 쫓겨온 태기왕의 흔적이 남은 곳 | 소를 생구로 여겼던 횡성 사람들 | 횡성 가서 잘난 체하지 마라 7 궁예의 꿈이 서린 철원 : 잊혀진 국가의 심장 그 쇠둘레의 땅 철원 | 궁예의 한이 서린 궁예도성 | 철의 삼각지대 | 한탄강 푸른 줄기는 고석정을 적시고 | 푸른 산이 사방의 이웃인 화천 | 한국전쟁 때 군사 요지였던 적근산 | 삼일정에 얽힌 내력 | 은둔 선비의 삶터 곡운구곡 | 산천은 손해가 많다 8 관동팔경이 어드멘고 : 속세는 간데없이 온갖 선경이라 조선 제일의 경승을 품은 관동 | 17세기 사대부들의 답사지 | 네 신선이 노닐던 삼일포 | 관동제일루 경포대 | 한명회가 잔치를 베풀었던 시중호 | 조물주의 솜씨 자랑 | 의상대사가 만난 관세음보살 |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청간정 | 망양정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보니 | 소나무숲 너머로 달이 떠오르고 | 수로부인 설화 | 모래가 울고 해당화가 만발하던 화진포 | 정동진에 모이는 사람들 | 천하의 절경 학포와 국도 |
辛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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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성 근처의 거진巨津은 조선시대에 초가집 몇 채가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는 조그만 어촌이었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던 어느 선비가 해안이 활처럼 휘어들어 간 땅의 형세를 보고 마치 ‘클 거巨’ 자와 닮았으니 앞으로 큰 나루가 될 것이라고 말한 뒤부터 큰 나루라는 뜻으로 거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제 강점기에 고성군 일대를 중심으로 정어리가 많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고깃배가 몰려들어 거진은 제법 큰 항구가 되었다. 그러나 광복이 될 무렵 정어리가 사라지며 침체 일로를 걷다가 함경도 지방에서 주로 잡히던 명태가 잡히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명태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다.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라 한다. 특히 간성읍 진부리에서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에서 노란빛을 띠며 마른 것은 황태라고 한다.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조선시대 함경도 명천明天 지방에 살던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가 어느 날 이름을 알 수 없는 고기를 많이 잡았다. 어부는 처음 보는 고기라서 그 고을 수령을 찾아가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수령이 그 고을의 이름 첫 글자와 어부의 성을 합해서 명태라 이름했다.
--- p.160, 「봄에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에 눈이 많다」 중에서 강릉은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고장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조선의 위대한 인본주의자 이이는 중종 31년(1536) 강릉시 죽헌동에 자리한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검은 용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 그런 연유로 이이의 어릴 적 이름은 현룡玄龍이었으며, 산실産室은 몽룡실夢龍室이라 하여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어머니가 사망한 뒤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여 고뇌하던 이이는 19세 되던 해 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했다. 그 무렵 이이가 친지들에게 보낸 글에서 그의 마음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기氣’라는 것을 타고나는데 이 기를 잘 기르면 마음이 주재하는 대로 기가 복종하여 성현이 될 수 있으나, 만일 기를 기르지 못하여 그와 반대로 마음이 기에 복종하게 되면 모든 정욕이 문란하게 되어 어리석은 미치광이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옛날에 맹자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기를 잘 기른 예라고 하겠다. 도리를 깨치고 본연의 천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기를 기르는 수밖에 없다. 공자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거니와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의 기를 기르는 방법은 산과 물을 버리고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 --- p.46,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중에서 성마령星摩嶺은 정선군과 평창군 사이에 있는 고개로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고을의 관문이었다. 어찌나 높은지 ‘그 마루에 서면 별을 만질 수가 있을 듯하다’는 뜻에서 성마령이라고 불렀다 한다. 정선군 북면 유천리 양짓말에서 갓거리로 넘어가는 가물재는 몹시 가팔라서 재 밑을 내려다보면 정신이 가물거린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고, 자족령이라고도 부르는 칠족령은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에서 평창군 미탄면 마사리 뇌룬으로 넘어가는 고개다.꽃베리는 강릉에서 정선읍으로 오려면 반드시 지나야 했던 베리, 곧 벼루(벼랑)였다. 조선시대에 어느 관리가 가마를 타고 지나면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자 가마꾼에게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고 몇 차례를 물었는데, 그때마다 가마꾼들이 곧 베리가 끝난다고 했던 데서 ‘곧베리’가 되었다가 나중에 ‘꽃베리’로 바뀌었다. --- p.194,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중에서 그래서 생긴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에 설악산 유람을 왔던 울산 부사가 이 울산바위의 전설을 듣고 신흥사를 찾아가 주지를 불러 세우고, “울산 땅의 바위가 너희가 관장하는 사찰림에 와 있는데 땅세를 물지 않으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땅세를 내놓아라” 했다. 억울한 일이긴 하나 주지는 마지못해 매년 산세를 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에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서 “이제 세금을 주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시오” 하자, 이에 화가 난 울산 부사가 “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라고 했다. 재로 새끼를 꼴 수 없으니 계속해서 산세를 받겠다는 심보였다. 그러자 꾀를 낸 동자승이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지금의 속초 시가지가 자리한 땅에 많이 자라던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맨 뒤에 그 새끼를 불로 태워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 당연히 울산 부사는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고 세금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그 후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지역을 한자로 ‘묵을 속束’, ‘풀 초草’ 자를 써서 속초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p.178, 「설악산에 눌러앉은 울산바위」 중에서 청평사에는 원나라 공주의 전설이 서려 있다. 원나라 순제에게는 꽃보다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공주에게 반했으나 신분 차이 때문에 맺어질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사병으로 죽은 청년은 상사뱀이 되어 잠을 자던 공주의 몸을 칭칭 감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뱀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공주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함부로 떼어 낼 수도 없었다. 공주는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고 소문은 자꾸만 퍼져 나갔다. 신하들이 공주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으나 황제는 사랑하는 딸을 죽일 수가 없었다. 황제는 생각 끝에 부처의 힘을 빌리고자 공주에게 나라 안 이름난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리게 했다. 중원의 이름난 절을 찾아다녀도 효험이 없자 마침내 공주는 고려 땅에까지 이르렀다. 원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금강산을 찾아가던 공주는 도중에 지금의 청평사 자리를 지나다가 이 산의 골짜기를 흐르는 영천의 물이 하도 맑아 목욕을 하고 나서 불공을 드리고 싶었다. 그러자 갑자기 뱀이 요동을 치며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공주는 뱀을 달래며 “내가 너를 만난 지 10년이 되었는데 네 뜻을 저버린 일이 없지 않으냐. 그러니 너도 내 소원을 들어주어야 마땅할 터. 같이 목욕을 하기 싫거든 여기서 기다려라”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뱀이 똬리를 풀더니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에 비친 공주를 본 뱀이 공주가 물속에 있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뱀에게서 놓여난 공주는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절을 찾았다. 때마침 승려들이 법당에서 가사불사袈娑佛事(가사를 짓는 일)를 하다가 공양 때가 되어 나가고 비단 조각에 바늘만 꽂혀 있었다. 공주가 눈물을 와락 쏟으면서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 바늘을 꿰맸을 때 갑자기 벼락이 치며 비가 쏟아졌다. 이때 공주를 기다리던 뱀이 그 벼락에 맞아 죽고 재만 남게 되었다. --- p.311, 「지상에 구현된 고요한 선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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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 경관과 역사적 유물이 가득한 강원,
‘21세기 김정호’ 신정일이 두 발로 쓴 강원도의 지리, 역사, 사람 이야기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 ‘강원’ 편이 출간되었다.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지은 강원도에는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등의 명산뿐만 아니라 낙산사, 장호, 용화, 경포대, 화진포를 비롯한 해수욕장이 즐비하다. 또한 부산에서 두만강으로 이어지는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인 아름다운 동해 바닷길이 ‘해파랑길’로 선정되어 울창한 소나무숲과 함께 수도권을 비롯한 온 나라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중환은 “이름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아서 높은 데 오르면 푸른 바다가 넓고 멀리 아득하게 보이고, 산골짜기에 들어가면 물과 돌이 아늑하여 경치가 나라 안에서 참으로 제일이다.”라고 평했다. 이 책은 마치 입담 좋은 해설사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답사하는 것처럼 강원도 지형과 지세, 각 지역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 전해 내려오는 설화들, 지명의 유래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여주며 한반도 전역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인문지리학적 통찰을 준다. 더 넓고 더 깊은 강원도 정산 아리랑의 가락을 타고 넘어가는 땅 - 강원도는 한민족의 근간으로 추정되는 예맥족이 살던 땅으로 고구려 태조 때 고구려 땅이 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부터 신라에 속했으며, 조선 태조 때 ‘강원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 대관령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온 지방 사람들이 모여서 한바탕 벌이는 굿판이 강릉단오제다. 무당들은 밤새워 무가를 부르며 굿을 하고, 사람들은 그 굿을 보면서 단오떡을 얻어먹어야 한 해의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여겼다. -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는 물이 솟아 나오는 굴속에 검룡이 살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강원도 지방에서 널리 쓰이는 말로 ‘횡성 가서 잘난 체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횡성 사람들이 영리하다는 뜻도 있지만, 지역 의식이 강하여 타 지방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라는 뜻이 크다. - 단종의 능은 영월읍 영흥리 동을지산 기슭에 있다. 왕릉은 한양에서 100리 이내의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관례이나 조선 왕릉 중에서 유독 단종의 능만이 한양에서 이렇게 먼 곳에 있다. - 한강 지류의 하나인 섬강 언저리 문막읍에는 기름진 문막평야가 펼쳐진다. 예로부터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문막평야에서 나는 쌀은 양도 많았지만 품질도 뛰어났다.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렇듯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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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책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던 그의 발이 쓴 국토 교과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 이덕일 (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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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의 현장정신을 계승한 책이 신정일의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인 신정일 선생은 30년 넘게 전국의 산천을 답사한 전문가이다. 아마 이중환보다 더 다녔으면 다녔지 못 다닌 것 같지가 않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가본 산천이 없다. -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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