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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멜랑콜리
〈대구지하철 참사〉 후유증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 애도 멜랑콜리 사랑과 욕망 〈정육점 안주인의 꿈〉 결핍 사랑과 증오 거울 단계 〈도식 L〉 소외 「편집증 환자 슈레버」 S.R.I. 라캉의 두 꿈 분석 내입과 투사 멜랑콜리와 우울증(Depres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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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작업은 마치 이미 생물학적으로 죽은 사람을 기억 속에서 지우는, 다시 말해 다시 죽이는 것처럼 진행된다. 어른들은 종종 〈죽은 사람은 빨리 기억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래야 귀신도 제 갈 길을 가고, 구천을 떠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금슬이 아주 좋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부인이 아주 열녀였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소에 가서 곡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1년여, 어느 날부터인가 까마귀가 산소 주위를 맴돌더니, 급기야 그 열녀에게 위협적으로 날아와 공격을 하더란다. 부인은 질겁하여 산을 뛰어 내려와, 동네 어르신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 “거 봐라, 네가 그렇게 무덤을 자주 찾아가니까 혼령이 무덤을 지키려고 제 갈 길을 떠나지 못하는 거야. 저승으로 갈 사람은 빨리 가게 내버려 둬야지, 그렇게 자꾸 산소에 가서 울면 혼령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지.” 이 이야기는 정신분석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많은 문제를 제공해준다. 어쩌면 열녀를 공격한 까마귀는 새끼를 갓 낳은 어미 까마귀로, 부인의 방문을 위협으로 받아들여 공격했는지 모른다. 또 어쩌면 남편을 기억에서 떠나보내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이 까마귀 환상을 만들어냈을지 모른다.(까마귀는 죽음을 상징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무튼 죽은 자를 살아남은 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하려면―즉 기억 속에서 죽이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바웃 슈미트(About Schmidt)」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우수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죽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겠지!” 그렇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생물학적으로 죽고, 다른 한 번은 죽은 자를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 속에서 죽는다. 후자는 전자의 생물학적인 죽음과 대비되는 상징적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라캉은 인간 존재를 〈두 죽음 사이(entre-deux-morts)〉의 존재라고 정의한다. 서정주 시인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이라는 시에서,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이라고, 〈두 죽음 사이〉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이라는 불교의 구천(九泉)도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살아남은 자의 기억 속에 있는 〈두-죽음-사이〉의 공간이다. 라가슈(Lagache)라는 프랑스 정신분석가도 애도를 〈죽은 자를 죽이는 것(tuer le mort)〉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애도는 이렇게 기억 속에서의 대상 살해이자, 대상에 대한 기억 자체의 살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