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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정신분석
두 가지 현실 반쯤-말하기 심리적 현실과 실재계 아이가 불에 타 죽는 꿈 「지붕 위의 기병」과 「터미네이터 II」 투케와 아우토마톤 성 정체성 동성애 남자 동성애 성전환증 여자 동성애 어머니와 매춘부 행동화(acting 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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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그의 마지막 논문,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에서 정신분석의 목표를 진실과 연결시키고 있다. 즉 그에 따르면, 분석 치료의 목표는 진실에 대한 사랑이고, 그러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곧 정신분석 치료 과정이다: “분석적 관계는 진실에 대한 사랑, 즉 현실의 인식에 기초해야 하며, 온갖 위장과 속임수를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진실과 동격으로 쓰인 현실은 물론 심리적 현실이다. 그것은 외적 현실과 구분되는 심리 내적 현실이다. 분석 치료는 그러한 심리 내적 현실로서의 진실을 위장하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실은 「일말의 부분」만 드러날 뿐, 그 전체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진실은 허구로서 구조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분석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사실 라캉은 분석자가 최종 분석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거짓말하고 있다」는 말뿐이라고 말한다.
분석자(analysant)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거짓말하고 있다」는 말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이야말로, 분석가로부터 「너는 비로소 진실을 말하고 있다」(또는 「그 말만이 진실이다」)는 말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그 말이 가능한 것은 언어논리학자들처럼 객관적 위치에서 진실의 전모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은 허구를 통해 부분적으로만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신분석의 끝에 할 수 있는 잘-말하기(bien-dire)는 「나는 거짓말하고 있다」와 같은 반쯤-말하기(mi-dire)이다. - 임진수, 「거짓말의 정신분석」 이렇게 「반쯤-말하기는 진실이 반쯤만 말해진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기법이다.」(라캉, 『다른 글들(Autres Ecrits)』, Seuil, p. 394.) 그 결과 「다른 나머지 반은 더 나쁘게 말해지고,」(라캉, 『세미나 XIX: ...ou pire』, 1971년 12월 8일 세미나) 정신분석가의 치료 작업도 완치의 측면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진실에 대한 사랑」 운운하는 것도, 라캉의 표현을 빌리면, 「무력감에 닻을 내리는 사랑」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