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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제1부 ‘아빠’라는 말 잘못을 보고 배우게 겨레의 앞날이 걱정되는 아이들 무엇을 어떻게 쓰게 할까 글쓰기 교육에 대한 기본 견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우리 모두의 살길은 여기서 찾아야 아이의 글쓰기와 어른의 문학작품 쓰기가 어떻게 다른가 모국어, 어디로 가는가 ? ? ?- 아이들의 글을 통해서 본 우리말의 위기 ? 제2부 오늘의 현실과 아동문학 우리의 아동문학은 어떤 어린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까 무엇을 쓸 것인가 ? ? ?-아동문학의 주제와 소재 전래동화의 문학적 가치 박해당하는 어린이와 아동문학 현실, 그 무한한 창조의 원천 ? ? ?-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삶과 문학 ? 제3부 ‘세계명작’ 어떻게 읽힐까 교사와 아동문학 문학 교육 어린이에게 책을 읽히려면 좋은 책을 골라 주는 방법 ? ? - 어머니와 책 선택 어린이 책의 편집 ? 그림 ? 문장 어린이 마음의 문학 ? ? ?- 이원수 선생의 문학에 대하여 지방에서 글을 쓰는 분들의 모임에 바라는 것 ? ? ?-〈안동문학〉에 붙여 ? ? 제4부 삶을 가꾸는 교육 자기 목숨 자기가 지켜야 일하기 중심의 교육과정 농촌의 문화와 교육 농촌의 삶을 인정해 주는 교육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 전문대학의 교육을 생각한다 ? 제5부 자랑스런 우리의 고전 ? ? ?-이원수 동시 전집에 붙여 인간과 생쥐의 대화로 엮은 철학 ? ? ?- 권정생 동화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읽고 에밀과 우리의 아이들 ? ? ?- 성내운 지음 〈인간 회복의 교육〉에 대하여 처음으로 나온 교사 중심의 교육 무크 ? ? ?- 〈교육 현장〉 서평 동심의 사상 ? ? ?-크리슈나무르티의 〈삶의 진실〉에 대하여 국토의 민중, 민중의 국토 ? ? ?-박태순의 〈국토와 민중〉에 대하여 |
李五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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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삶이 있는가?
이오덕 선생은 이 책에서 평생을 연구하고 사유한 글쓰기 교육의 이념을 천명한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글을 쓰는 특별한 기술이나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키워가고 가꾸는 데 있다. 사람을 위한 문학만이 참 문학이 되듯이, 삶을 가꾸는 노력에서만 참 글이 씌어 진다. 그러면 참된 삶이란 어떤 삶인가? ① 참된 민주적 삶을 실천하는 어린이. ② 어린이다운(사람다운) 감능, 사고, 행동을 가진 어린이. ③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파악하고, 참 이치를 생각하는 어린이. ④ 겸손하고, 양보할 줄 알며, 남을 도와주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어린이. ⑤ 약한 자, 불행한 자의 편에 서는 어린이. ⑥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감을 갖는 어린이. ⑦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높이 보고, 일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어린이. ⑧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어린이. ⑨ 어려운 일을 참고 이겨내는 어린이. ⑩ 창조적 태도를 가진 어린이. ⑪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어린이. ⑫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어린이. ⑬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어린이. ⑭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이 열 네 가지 항목에 공통되는 목표를 추상해서 짧게 말하면 ‘자유를 지키고, 평화를 사랑하고, 평등을 염원하는 어린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글쓰기 교육의 이념에 비추어, 글쓰기는 국어과의 한 부분이 아니고, 아이의 글쓰기와 어른의 문학작품 쓰기가 다른 까닭을 밝힌다. 또 아이들이 너무 표준화 규격화 된 말을 쓰고, 삶에서 멀어진 말, 글에 나타난 거짓말, 줄어든 어휘, 말의 획일화 현상, 모방의 말, 지나친 경어 쓰기, 글자 또는 글자말이 입말을 지배하는 현상, 말의 경박화 현상, 말을 틀리게 쓰는 현상, 순수한 우리말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진단하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겨레의 혼이 담겨 있는 말을 쓰도록 가르쳐야 하고, 그 방법으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말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 교육에서 문학이 있는가?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교육은 문학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아이들의 삶을 보여 주는 문학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교육이 된다. 삶을 보여주고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성스런 어린이 모습을 그린 아동문학 작품으로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를 꼽는다. 그리고 바람직한 아동문학의 길을 밝힌다. 아동문학 작가는 어떤 어린이의 모습을 그의 작품에서 창조해야 하는가? 어른의 삶을 중심으로 본 어린이 모습, 어린이를 장난감으로 즐기는 어린이 모습을 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할 여지가 없다. 어린이의 마음과 삶을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어린이의 편이 되어서 어린이를 그려야 하는 것이다. 이기심에 뿌리를 내린 달콤한 개인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그리거나, 헛된 명예심, 경쟁심을 부채질하고 입신출세주의를 지향하는 어린이를 그리고는 그것을 동심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물욕ㆍ명예욕ㆍ지배욕ㆍ승리욕ㆍ이기주의 ? 이런 것은 본래 어린이들에게는 없었는데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시켜 몸에 붙여 놓은 인간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의 생태가 이렇다면서 이런 어린이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어린이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자기와 함께 언제나 남을 생각하고, 거짓을 모르고, 불의와 부정을 미워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마음, 이것이 어린이 마음이다. 이런 어린이 마음을 동경하는 사람은 어린이 편이 될 수 있고 아동문학 작가가 될 수 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에게 주는 사랑의 문학이다. 이 사랑의 문학은 어린이에게 터무니없이 달콤한 꿈을 꾸게 하는 문학이 아니다. 어린이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어 보이거나, 우리의 현실과는 단절된 남의 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보여 주는 것을 동심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 아니면 기만이다. 그러한 착각과 기만은 게으른 어른들의 정신적 타락과 퇴영 상태를 보여 주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실상 오늘날 이러한 엉터리 동심의 문학작품들은 마치 온갖 새로운 색소와 방부제와 감미료를 넣어 만든 식품처럼 범람해서 어린이들의 정신을 해치고 있다. 온갖 비인간적인 환경과 불순한 외래문화의 탁류 속에서 우리 겨레의 말과 그 말에 담긴 겨레의 정신을 찾아 지키는 노력이 그대로 어린이의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된다면 그것이 바로 아동문학이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를 살리고 겨레를 살리는 희망의 문학이다. ‘세계명작’ 어떻게 읽힐까 외국의 문학을 어떻게 읽히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인간 교육’이란 관점에서 문학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교육을 하는 데는 편의상 두 가지 관점을 들 수 있다. 하나는 보편적 인간, 곧 세계인을 기르는 일이고, 또 하나는 우리 겨레의 한 사람이 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국내 작가의 창작물이 대체로 겨레의 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과 삶을 몸에 붙이도록 하는 문학이 되어 있어야 하는 데 대해, 다른 나라의 문학은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깨닫고 느끼고 가져야 할 세계를 가르치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외국의 문학을 모르고 자라난 사람의 정서와 생각과 앎의 세계는 어쩔 수 없이 좁고 빈약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현대에서는 그렇다. 외국의 문학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이들 교육에서 크나큰 손실을 가져온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을 알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마음을 심어 주기 위해서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나온 동물문학의 고전들을 아이들에게 읽혀야 하겠다. 소위 세계명작이라는 동화들은 또 그릇된 세계관과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해 주는 것이 많다. 흑인이나 인디언에 대한 편견, 백인은 우월하며 황인종 등의 유색인종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줄 위험성이 큰 것이다. 서구 중심의 수많은 동화들이 그런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백인은 우수하고 이지적이고 정의로운 듯이 표현되는데 흑인이나 황인들은 비열하고 야만스럽고 우둔하게 표현된 내용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의 문학을 아이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의 말로 쓰인 남의 나라의 문학이다. 그것만 가지고는 온전한 문학 교육, 온전한 인간 교육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의 겨레가 되게 하자면 우리의 전통을, 역사를 이 땅의 자연을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전해 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창조한 문학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이 땅에 전해 오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앞날의 역사를 창조해 나갈 사람다운 바탕과 바른 정신을 가진 겨레의 아이들로 자라나게 하는 동화와 소설과 수필과 시를 우리의 손으로 써서 읽혀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우리의 문학 작품과 외국의 문학 작품을 아이들에게 주는 비율이 6대 4쯤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집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고 하는 부모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이를 참된 사람으로 길러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100점만을 기대하면서 점수 따기 경쟁으로 몰아붙이는 부모라면 독서 교육을 할 수 없다. 독서란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는 것이 아니며, 눈앞의 점수 따기를 위한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서란 훌륭한 생각, 참된 지식,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혜, 아름다운 정서, 그 밖의 학교의 교과서나 시험공부로서는 얻을 수 없는 귀한 마음의 양식을 얻는 책을 읽는 공부다. 굳이 점수 따기로 말한다면 독서는, 아이들이 앞으로 한평생을 두고 겨루는 인생의 경쟁장에서 우승자가 될 수 있는 확실한 힘을 기르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가장 유리한 인생 공부의 점수를 딸 수 있는 공부라 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책을 읽히려면, 책을 읽을 시간을 주어야 하고. 읽을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고, 좋은 책을 골라 주어야 한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책, 감동을 주는 책이다. 좋은 가르침이 담겨 있는 책이다. 문장이 읽기 쉽고 친절하며, 정확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면서 감상문을 꼭 쓰라고 하고, 써 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더구나 독서 감상문을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그리고 별나게 쓰도록 하여 교육 잘 시킨 것처럼 내보이려고 아이들에게 무리한 숙제를 내는 짓은 장사꾼이나 할 노릇이다. 이래서 아이들은 감상문을 쓰기 위해 책을 억지로 읽게 되고, 감상문 걱정이 앞서서 책 읽는 기쁨을 모른다. 그러니 감상문 쓰기를 결코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쓰고 싶은 것까지 쓰지 말라고 할 필요는 없으니, 단 한 줄이라도 쓰고 싶으면 일기장 같은 데 자유롭게 적도록 내버려 둘 일이다. 이원수 선생의 문학에 대하여 오늘날 동심이란 말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과연 그 동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동심을 팔고 있는 문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린애들의 말 흉내나 내고, 온실 속 화초 같은, 세상모르는 어린이의 허상만을 제멋대로 그리면서 혼자 기분 좋아하는 것이 아동문학의 동심이라고 알고 있는 철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하기 어려운 때일수록, 문학정신은 어디다 팔아 버리고 장사꾼 정신만 붙들고 살아가는 문인들만이 득실거리는 세상일수록, 우리 모두 이원수 선생의 문학을 다시 찾아 깊이 음미하여 그 속에서 참된 어린이 마음의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간직함으로써 우리 아동문학뿐 아니라 민족문학 전반에 걸쳐 그 바탕을 다지고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이원수 선생의 아동문학,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온 세계에 당당하게 자랑할 우리 겨레의 문학입니다. 인간과 생쥐의 대화로 엮은 철학 - 권정생 동화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읽고 이 동화집은 조그만 시골 예배당 문간방에 더부살이로 있는 종지기 아저씨와 그 아저씨 방에 들락날락하는 한 마리 생쥐와의 대화로 엮어진 15편의 연작동화이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가 밝히려고 하는 것이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그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허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위선적 삶이다. 앞의 문제에서 작가는 오늘날의 정치ㆍ종교ㆍ교육 등이 덮어쓰고 있는 허울을 용서 없이 벗겨 보이며, 뒤의 문제에서는 사악한 인간의 범죄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거짓 놀음을 버리고, 욕망과 아집을 버리고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선하고 참된 삶이며, 그것만이 인간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오늘날의 아동문학이 아이들을 온실 안에 가두어 놓고 어른의 장난감으로, 병신으로 만들거나 서양아이로 만들어 놓는 것이 될 수 없고, 참된 인간의 마음, 민족의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면, 마땅히 이 책은 모든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읽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에밀과 우리의 아이들 - 성내운 지음 『인간 회복의 교육』에 대하여 이 책은 ‘에밀의 교육 이념과 실천’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즉 에밀에 나타난 루소의 교육 사상과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명저의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에밀을 통해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말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아이들을 훌륭한 인간으로 기르는 일에 대한 너무나 많은 지혜로운 성찰의 말들이 가득 차 있다. 동심의 사상 - 크리슈나무르티의 『삶의 진실』에 대하여 인간의 삶은 얼마나 아름답고 폭넓고 놀라운가. 이러한 삶을 가지려면 욕심과 전통과 두려움에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교육은 시험에 합격하고 직업을 구하고 돈벌이에 몰두하도록, 즉 참으로 보잘것없는 울안에 갇혀 살아가도록 훈련하는 것이 되어 있다. 진정한 교육은 삶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삶은 단연코 직업만이 아니다. 삶은 놀라울 만큼 깊고 넓은 그 무엇이며, 하나의 위대한 신비이고, 우리들 자신이 그 안에 인간으로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나라이다. 돈벌이를 하는 데서 우리가 그친다면 우리는 삶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삶을 이해하는 일은 시험을 보고 수학이나 물리학 기타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우수해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 욕망(사악한 것)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두려움 없는 자유스런 환경에서 살도록 하며, 모방하지 않고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좋아서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지 않고 언제나 당신 자신으로 남아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할 일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의 자리는 동심의 세계에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 책을 아직 반도 안 읽었는데, 지금 읽은 데까지의 동심이란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이분은 분명히 동심으로 살고 동심 같은 순수를 고집하는 분이란 느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