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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05
거머리 같은 전도자금 10 애기업게로 가다 26 누구 종 노릇인가? 35 야학에 다니며 56 해녀 입문식 69 애기해녀 되다 78 들고 일어선 해녀들 92 빗창 들고 투쟁한 제주해녀 98 제주도사가 약속을 어기다 111 붙잡혀간 해녀들, 그 후 119 제주해녀항쟁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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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해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굳어진 말입니다.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수많은 자료조사와 현지답사를 통해서 결정된 것이니 선정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주도의 해안가 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직업으로서의 해녀 외에 해녀문화까지 속속들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할머니의 테왁」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 조사하러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해녀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전시되어있는 사진과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중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해녀항일투쟁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멀지도 않은 곳에 살면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녀문화와 일본의 만행을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각종 관제조합을 통해서 일본의 수탈정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 관제조합 가운데서도 해녀조합의 수탈이 더 심했습니다. 해녀들을 보호하겠다면서 설립한 해녀조합은 1920년대 들어서 제주도의 행정 책임자인 제주도사가 해녀조합장을 겸직하게 되면서 수탈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해녀조합에서는 일본인 상인 한 사람에게만 독점권을 주어서 자유 판매를 못 하게 하고 턱없이 내린 값을 지정가격으로 정했습니다. 더군다나 지정 상인의 저울 속여먹기, 불법적 매수 행위를 보호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겨울부터 1932년 여름까지 1년 반 동안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과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등장인물 중에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세 명의 대표 해녀는 실존 인물입니다. 어찌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이 이들 셋뿐이겠습니까? 이 외에도 고차동, 김계석 해녀를 비롯한 수많은 제주해녀들의 굳센 의지와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결된 힘이 있었습니다. 제주해녀의 훌륭한 점을 알려야겠다는 섣부른 생각만으로 이 글을 쓰려고 욕심을 부렸다가 여러 번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미흡하나마 완성하게 된 것은 해녀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김순이 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집에 불러 강의도 해주고 자료도 챙겨 주고 선생님이 알고 계신 지식도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 살펴봐 주신 장혜련 선생님과 까다로운 제주어 표기를 꼼꼼하게 살펴보아 주신 김창집 소설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농사에 바쁜 중에도 글 쓰는 나를 배려해주고,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끙끙 앓는 저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신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으로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제주해녀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 「작가의 말」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