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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1부 시 2부 짧은 시 3부 산문 -시와 토마토 -연꽃 먹는 사람들 발문 -이제는 ‘귀향의 시’를 | 정수일 역자 후기 -바위에 새긴 말 |
Zakaria Moham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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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리아 무함마드는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아랍권 전체에서 손꼽히는 시인이다. 『알 카멜』을 비롯한 아랍의 유수한 문예지들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해외 언론매체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고발하는 논평을 활발히 발표해왔다. 그런데 그의 예리한 붓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자살폭탄 공격 방식에 대한 반대도 분명히 했으므로, 그는 이슬람 율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했다. 2002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의 행정도시 라말라를 폭격하고 탱크로 유린할 당시, 그는 이스라엘군 수색조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양측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전체를 둘러싼 8미터 높이의 시멘트 장벽에 이르면, 급기야 언어는 무화하고 증발되어버린다. 유엔은 일찍이 2004년에 이 분리장벽이 국제법에 위배된다며 해체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스라엘도 장벽도 끄떡하지 않았다. 또 유엔은 팔레스타인 자치영역 안에 확산되는 이스라엘 정착촌의 불법성을 수차례 지적해왔고 2016년에는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도 채택했으나, 도리어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에 박차를 가했을뿐더러 이 땅들을 자국 영토로 합병할 계획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시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언어도단의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더,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시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 천천히 돌지만 철저하게 가는 시의 맷돌을 꾸준히 돌렸고, 가장 단단한 바위 위에 인간의 길을 집요하게 새겼다. 간결하고 차분하다. 그런데 울림이 대단히 크다. 나는 내 시가 바닷속에서 폭발해서, 수면에는 단지 거품만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그 거품을 보고 독자들은 저 깊은 데에서 큰 폭발이 있었음을 알아챌 겁니다. 좋은 시는 독자들 앞에서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산문 「연꽃 먹는 사람들」에는, 시인이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강연하는 장면이 있기도 하다. 그의 시는 때로 단 한두 줄이기도 하지만, 저 밑에 엄청난 폭발이 있다. 소년은 보았다. 검정말 이마에 흰 별 찍힌 검정말은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한 발을 땅에서 들었다. 이글대는 태양 아래 초원은 짙푸르고 말의 앞 갈기 아래 별은 하얗게 타올랐다. 말에게 굴레는 없고 입에 재갈도 물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말은 씹고 또 씹었다. 머리를 채면서 입술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도록. 소년은 놀랐다. 검정말이 뭘 씹고 있는 거지? 혼잣말로 물었다. 뭘 씹지? 검정말은 씹고 있다. 기억의 재갈을 녹슬지 않는 강철로 만들어져 씹고 또 씹어야 할 죽을 때까지 씹어야 할 기억의 재갈을. -「재갈」 전문 인간과 인간 사회를 떠받친다고 믿어졌던 원칙들이 무너질 때, 현실이 너무나 무도해서 그런 것들은 말짱 다 거짓말처럼 보일 때, 그때도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문명의 빠진 주춧돌을 메울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카리아 무함마드가 시를 지키고 있는 것에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바위에 새겨진 전언과도 같은 그의 시가, 비록 번역의 한계가 뚜렷할지라도, 한국 독자들에게도 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_‘역자 후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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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은 달걀을 하나만 낳는다’는 전설 속의 금기를 단숨에 깨고 지금까지 여덟 권의 시집을 상재한 데 이어, 이번에 한국어판 시집까지 펴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 선생의 파격적인 담력과 남다른 시재(詩才)에 높은 경의와 축하를 보낸다. 아울러 이번 시집이 한국과 팔레스타인 두 나라 문인들 사이에 이미 놓인 ‘우정의 다리’에 또 하나의 무쇠 교각을 세워놓았음에 더더욱 고맙고 흐뭇하다. 우리 두 나라는 지금껏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동병상련의 나라다. 분단과 추방이라는 타율에 의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향(離鄕)과 그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하는 실향(失鄕)과 이산(離散)의 아픔과 서러움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겪은 터라서 서로가 가엾게 여기고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수십 성상 우리의 지성들과 문인들은 숱한 실향민 민초들과 더불어 강요된 이 운명의 먹이사슬을 끊고, 자자손손 오순도순 살아오던 고향으로 귀향(歸鄕)하기 위한 몸부림을 한시도 멈춘 적이 없다. 이향과 귀향은 우주의 원초적 섭리다. 동물의 귀소성(歸巢性)이나 식물의 낙엽귀근(落葉歸根)이 바로 이러한 섭리일진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있어서야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 필자는 지난 세기 50년대 카이로대학 유학 시절 이웃한 팔레스타인 학우들로부터 이 섭리를 절감했었다. 그들 모두는 언젠가 오고야 말 귀향에 대비해 지덕체를 열심히 담금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2차 중동전쟁(1956년 10월)으로 귀향의 꿈이 좌절되자 연일 분노와 비애에 울부짖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훗날 그들은 이향의 2세대답게 귀향사의 앞머리를 빛나게 수놓았다. 이향과 귀향이라는 화제가 큰 물줄기를 이룬 팔레스타인의 현대사 흐름에는 숱한 ‘현실 참여적’인 지성의 시인들과 문인들의 기여가 올올이 배어 있다. 이스라엘군 초소를 향해 분노의 작은 돌을 던진 일화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 그는 『오리엔탈리즘』으로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전환점을 연 세계적 석학이다. 작은 돌팔매질이 펜만큼이나 강한 여운을 남긴 그는 이 시대의 참 지성의 표상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인은 이 시집에 수록된 산문에서 ‘이제 무슨 시를 더 쓸 것인가’와 ‘시와 사회의 관련성 여부’에 관한 두 가지 고민과 더불어 ‘시를 쓰느니 토마토를 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시의 유사 무용론까지 덧붙인다. 천식(淺識)으로 섣불리 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응분의 주목에 불급했다는 사정과 주제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제부터라도 밝고 희망찬 귀향 시의 시작에 문운(文運)을 건다면 이러한 고민은 말끔히 가실 것이다. - 정수일 (문명교류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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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와 산문은 축사에 갇힌 채 드넓은 들판을 갈망하는 말의 눈동자를 떠오르게 한다. 강철로 만들어진 기억의 재갈을 씹고 또 씹는 검정말. 그러나 어떤 굴레와 밧줄로도 그의 영혼을 묶어둘 수 없다는 것을 이 시집은 잘 보여주고 있다. 25년의 긴 망명 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재갈 물린 시간 속에서도 선인장 꽃처럼 간결하고 눈부신 시를 피워냈다. 아랍 문화의 신화적 상상력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수난이 함께 아로새겨진 이 고통의 만다라에서는 깊은 상징성과 함께 예언자적 품격과 아우라가 느껴진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여기 주민이오”를 외치며 검문소 앞에 서 있는 사람. 팔레스타인인이 여전히 건재함을 하루하루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 슬퍼도 울지 못하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후두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러면서 부싯돌을 켜듯 언어의 빛을 간신히 그러모아 글을 쓰는 사람. 그와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얼마나 다행인가, 시의 문간에는 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죽음의 그림자를 매 순간 사랑의 전언으로 바꾸며 살아왔으니. 자카리아의 그 수많은 밤과 낮을 향해 경의와 우정을 전한다. -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