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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말라야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산 감수성 / 장벽을 넘어서는 그녀들을 위하여 / 눈 맑은 존재들의 나라 / 걷는 이유 / 랑탕으로 가는 길 / 시작, 샤브루베시 / 샤브루베시 - 라마 호텔 / 히말라야 트레킹의 명과 암 / 라마 호텔 - 랑탕 마을 / 로지의 밤 / 모두 안의 소수자성 악착같이 달라붙던 이름, 엄마 / 랑탕 마을 - 캉진곰파 / 캉진곰파 - 체르코리 / 흔하지만 서러운 나의 퇴사기 / 나는 나비 / 캉진곰파 - 라마 호텔 - 샤브루베시 / 핫 워터의 진실 / 다시 쓰다 마르디히말, 다시 찾은 히말라야 / 운희가 집을 떠났다 / 여전히 몰랐던 엄마들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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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히말라야를 간다고요? 그동안 애는 누가 보고요?” “아니 굳이 왜 그렇게 힘든 곳을 가려고 해요?” 심지어 “남편이 허락을 해줘요?”라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 p.37, 「장벽을 넘어서는 그녀들을 위하여」 중에서
사회는 나와 같은 소위 경력단절 여성이나 전업주부를 향해 ‘소비만 있고 생산은 없는 삶’이라고 규정했다. 나름 이해할 거라고 여겼던 주변 사람들도 사직한 나를 위로한답시고 “일 안하고 남편 카드로 살아서 편하겠다.”는 말을 툭툭 내던졌다. 동네 단골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 드리며 안면을 튼 할머니들조차 “아기 엄마는 집에서 노느냐?”고 물었다. --- p.41, 「장벽을 넘어서는 그녀들을 위하여」 중에서 운동할 시간, 경제적 여유는 그저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 키우느라 건강 돌볼 틈이 없다고 하면 “밥은 밥통이, 빨래는 세탁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다 키워주는데 무슨 엄살이냐.”는 식의 반응은 지금도 여전하다. 게으른 변명처럼 치부되는 것이다. 반대로 운동을 하겠다는 엄마들에게는 “애 다 키워놓고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 돌아온다. 대체 어쩌라고. --- p.64, 「걷는 이유」 중에서 언제부턴가 길을 잃고 산다고 여겼다. 불안하면서 억울했다. 길을 찾기 위해 악을 쓰며 버텼는데 갑자기 모든 게 사라지고 모르는 길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으니까. --- p.129, 「로지의 밤」 중에서 엄마에게 들이미는 사회의 잣대는 가혹하고 이중적이었다. 엄마 외의 정체성을 내세울라치면 엄마 자격이 없는 것으로 취급하며 비난을 쏟아냈다. 일로 만나는 이들마저 대화의 물꼬를 아이와 육아로 시작했다. 마치 그것이 예의라고 대동단결한 듯했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아이는 누가 키우나?”,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 “저출산이 참 문제다.”로 이어지는 익숙한 참견과 훈계가 꽂혀왔다. --- p.144, 「모두 안의 소수자성」 중에서 기억하려 한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선의로 무장한 채 “최선을 다하라.”며 섣부른 말을 건네지는 않았는지.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는 때때로 응원이 아닌 오만함이요, 상대에겐 고통과 억압의 경구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엄마로 살아온 나의 지난날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날들이었음을 말이다. --- p.172, 「캉진곰파-체르코리」 중에서 속이 끓었다. 야속했다. 운희가 마치 “10년 넘게 너를 참아주고 살았으면 됐잖아. 난 이제 자유를 위해서 내 마음 가는 대로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날 선 자격지심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표현하지는 못했다. 혼자서 서운해 하면서 그녀가 떠나는 날까지 여행 목적을 공감하지 못했다. 심적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그릇은 딱 그만큼 이었다. 그렇게 아내는 추웠던 2017년 1월, 네팔의 히말라야 랑탕으로 홀연히 떠났다. --- p.259, 「운희가 집을 떠났다」 중에서 10년간 주변의 여러 여자 성우들이 엄마가 되었다. 임신 출산의 두려움에 부닥친 그들은 내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두려움까지 떠안고 있었다. 그러자니 어떻게든 공백기를 줄이고 싶어 했다. 출산 전엔 최후의 순간까지 마이크 앞에 섰고, 출산 후에는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다음 일을 다시 시작했다는 연락을 돌렸다. --- p.266, 「여전히 몰랐던 엄마들 세상」 중에서 히말라야는 최선을 다한다고 모두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며, 최선만이 해답은 아니니 이제는 자신을 돌보자고 다짐하기 위한 장소가 됐다. 앞선 랑탕행이 불안에 맞서는 용기, 느슨한 연대를 향한 여정이었다면 두 번째는 침잠이 목표였다. 입과 귀를 닫고 내 안으로만 파고들어 꼬치를 트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법 단단해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약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도닥이고 싶었다. --- p.246, 「마르디히말, 다시 찾은 히말라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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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엄마로 사는 일은 왜 이리 비정한가.”
‘경력단절여성’이 된 후, 나를 잃고 불안을 얻은 엄마가 떠난 첫 여행이 남긴 것 “엄마로 살아온 시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날이었다.” 2020 출판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엄마, 히말라야는 왜 가?》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이 최초 제정된 지 30여년이 흘렀다. 고용평등은 물론 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구호에 머문다. 정부와 각 지자체가 지역소멸론을 거론하며 내놓는 저출생 해법이 유명무실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사회구조. 임신, 출산, 육아는 노동과 밀접하다. 양육자가 아이를 낳고 기를 시간과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그만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는 모든 책임을 개인, 특히 여성에게 전가시킨다. 고작 ‘수당’ 몇 푼에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고, 돌봄의 의무를 지운 다음 선택을 강요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든지, ‘자발적’ 퇴사를 하든지 둘 중 하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주장하던 기자였던 저자는 아이가 만 세 돌이 되던 해, 독박육아를 멈추고 소위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되었다. 살림은 빠듯한 집이었지만, 주체적이고 할 말은 하는 아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학생 가슴을 만지는 선생에게 “야, 이 XXX아!”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중학교 때, 농띠(노는 아이)의 전형, 숏컷에 5:5 가르마를 고수했다. 무채색 구두와 운동화가 학칙이었던 고등학교 때, 흰색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빨강 운동화를 신고 등교했고, 대학 때는 무지개 레깅스에 광택 나는 분홍 블루종과 빨간색 스커트를 입었다. 삶의 고비마다 산을 오르며 단단하게 살아가던 저자가 여성으로서의 약자성을 인식하게 된 ‘페미니즘 모멘트’는 기자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기자는 물론 취재원의 성별과 연령의 쏠림 현상이 심한 기자 사회에서 기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자기 검열과 자기혐오를 자연스레 체화했다. 이는, 기혼 유자녀 여성 정체성이 더해지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 것인데 주부, 전업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비경제활동인구 통계 속 ‘숫자’로만 존재하는 듯 자연스레 숨죽이고 살았다. 점차 사회적 연결망이 사라졌다. 자기만의 언어도 잃어갔다. 대신 불안을 얻었다. 예측 불가능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안온하고 안전한 양육환경을 만드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불안과 끝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육아에서, 나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육아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찾아왔다. 엄마 정체성을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그렇게 엄마가 되고난 뒤 처음으로 여행길에 나섰다. 늘 꿈꿔왔던 곳, 히말라야. 엄마, 여행. 한번 달라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는 이름 엄마, 떠남의 가장 적극적인 행위 여행.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요원한 조합인가. 《엄마, 히말라야는 왜 가?》는 사회가 부여한 가짜 엄마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자 했던 한 개인의 성장기와 더불어, 위태롭고 불안한 우리 사회의 기혼 유자녀 여성, 특히 경력단절여성의 소수자성을 담아냈다. “약자성에 머무르지 않고 교차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 “엄마로 살아온 모든 시간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날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우리들 각자의 노력이 변화를 이끄는데 기여했으리라는 긍정도 중요하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통해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돌봄을 사회적 의제로 전환하고, 착취와 차별, 혐오를 넘어선 사회를 위한 연대를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많은 엄마들, 여성들, 약자들이 세상에 나와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모두가 발화의 주체가 될 때 우리 생이 더 다채로워지리라 믿는다. 투쟁은, 글쓰기는 계속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