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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007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039 사랑의 관 073 그 정도 일이야 105 눈이 내릴 때까지 135 차가 너무 뜨거워 165 짐은 벌써 다 쌌어 197 사로잡혀서 227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257 작품 해설 289 역자 후기 299 |
Seiko Tanabe,たなべ せいこ,田邊 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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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 참을 수 없었다. 결코 증오심이나 질투가 아니다. 물론 질투, 부러움, 원망, 우울, 울분, 외로움 같은 것도 있지만 그런 것 말고도 가슴이 따스해지는 즐거움, 호기심, 두근거림, 흥분 같은 것이 있어서, 고즈에의 기분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았다. 어두운 색깔의 구슬들 중에 깨끗하고 반짝이는 구슬이 적당히 섞여 있어, 보기에도 아름다운 독소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
--- p.28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츠네오는 뭔가를 깨달았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 p.51 노랑과 검정이 만들어낸 강렬한 얼룩무늬가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받아 번득인다. 조제는 호랑이의 포효에 기절할만큼 놀라 츠네오의 옷자락을 잡는다. “꿈에 나오면 어떡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보긴 왜 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 p.66 ‘이중인격’을 가진 우네인지라, “뭐 하러 왔어? 빨리 돌아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잘 왔어, 천천히 놀다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네는 흉기를 숨긴 채 상냥한 태도로 유지를 맞았다. “아, 잘 어울리는데. 네 거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지는 마구 얼굴을 구기고 웃으며, “형 거야. 그냥 입어버렸어. 집에는 합숙 강습이라고 하고.” 구름도 안개도 없는 날이었다. 바다와 하늘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유지는 방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에 입을 쩍 벌리더니, 창가에 달라붙었다. 짐은 스포츠백 하나였다. “땀 흘렸지? 어서 씻어.” 우네는 유지의 넥타이를 풀어주면서, “왜 이렇게 비틀어졌니. 아직 매는 법도 몰라?” 하고 나무라듯이 말했다. 유지의 눈에 기쁨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 p.94~95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엷은 주근깨가 난 얼굴에 아름다운 꽃 무리가 떠올라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우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즐거운 기회는, 이 한 번으로 끝나야 한다고.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바닥없는 열락이 피어오를 것이다. “우리, 산꼭대기 검은 땅에 커다란 구멍을 파서, 남모를 사랑의 관을 묻나니.” --- p.102 커다란 덩치, 조금씩 배가 나오기 시작한 몸 위에, 조금 늘어진 듯한 동안이 매달려 있다. 서른둘치고는 순진한 표정에 성격도 온순하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비교적 인기가 있는 편이지만, 리에가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중심 뼈대가 없는 상냥함이다. 그것이 어린애 특유의 천진무구한 잔혹함과 통한다는 것을 리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른이라고 보기에는 결함이 많은 상품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옛날에는 그 어린애 같은 에고나 순진한 상냥함이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일단 일이 터지고 보니 역시 결함 상품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인간이란 정말 쉽게 맹종하고, 쉽게 헤매는 존재야.’ 리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 p.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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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을 가진, 그녀들의 멋지고도 잔혹한 아홉 빛깔 연애사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꿈속 같은 설렘, 그 뒤에 찾아오는 무심과 냉정, 달콤하지만 언젠가는 부서지고 말 냉혹한 연애의 본질을 담은 독특한 색깔의 단편소설집이다. 나오키상 심사위원, 단편소설의 명수, 간사이 사투리로 쓴 연애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작가 다나베 세이코는 이 아홉 편의 단편소설 속에서 인생과 연애를 향유하는 “멋진 이중인격”을 지닌, 때론 냉정하고 타산적이면서 은밀히 속내를 감춘 채 사랑에 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실로 흥미롭게 묘사해놓았다. 인간 본능을 관통하는 듯한 직선적이고도 절묘한 묘사는 절로 무릎을 치게 한다. 감칠 맛 나는 연극적 대사와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는 문어체의 서술문이 지그재그로 숨차게 바통을 넘기듯 이어진다. 단어 하나하나, 글 한 줄까지 특별한 리듬과 의미를 싣고 간다. 그리하여 그 뜨악하고, 사랑의 환상과는 거리가 먼 우리 일상의 연애사를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예리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작품 해설을 한 야마다 에이미조차도 이렇게 혀를 내두른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여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무릎을 치게 하고, 놀라운 탄성을 발하게 하고, 절절한 목소리로 ‘그래, 맞아’ 하고 소리치게 한다. 여자가 자신의 이중인격을 자각할 때, 자기혐오에 빠지느냐 아니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느냐는, 그 여자의 깊이에 달려 있다. 천박한 여자는 멋진 이중인격자가 될 수 없고, 이중인격을 자각하더라도 그것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없다. 그리고 여자를 멋진 이중인격자로 만드는 것은 멋진 남자다. 멍청한 남자는 여자를 멋진 배신자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여자도 멍청해서는 안 된다. 멋진 이중인격자다운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나베 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재능을 갖추고 있다. 그 재능이란 인생을 사랑하는 재능이다.” 주인공 여성들은 모두 연애를 ‘취미’로 즐긴다. 고급하고, 지적이며, 감각적이면서 소탈한 ‘취미’로서 연애를, 결코 그것을 생활이나 인생의 중심에 두지는 않지만 여가를 내 향유하듯 한다. 모두 자기 존재를 긍정하고, 모난 자신의 인격을 수긍하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런 삶과 연애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물고기같이 자유롭게 세상을 유영하는 존재들이다. 그녀들은 남자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심술 맞은 자기 성격과 결점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여성답고 사랑스러워 보이게 연출하는 특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기분이 든다. 생을 관통하는 듯한 유머에, 남자와 여자를 깊이 꿰뚫고 있는 듯한 관능적 묘사, 또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현들로 넘치는 아홉 편의 단편들은 제각각 색깔이 다른 연애사들을 연주해나간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는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는 두 살 위의 언니 고즈에가 주인공이다. 혼기를 놓치고 혼자 망상 속에 빠져 사는 철부지 노처녀. 그녀는 자기 방에서 손날을 휘두르며 혀 짧은 소리로 “얍, 얍!” “아, 깐딱이야”를 외치고, 소설을 읽다 울면서도 그 모습이 궁금해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취해 더 크게 우는 여자다. 레이스 달린 공주 같은 옷을 즐겨 입고, 동생의 애인을 제 애인인 양 꿈꾸며 주책스럽게 살아간다. 동생의 결혼을 앞둔 고즈에의 마음은 기쁘고,쓸쓸하고,슬프고, 신경질 나고…… 묘하다. 그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의 단상들이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문장 속에서 시종 웃음을 자아낸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주인공 조제는 장애인이다. 다리를 쓰지 못한다. 사투리로 내지르는 조제의 야유와 욕설은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니게 된 무기다. 버릇없고 제멋대로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오랫동안 느껴왔을 그녀만의 힘겨운 고독감이 묻어 있다. 조제는 언제나 온 힘을 다해 강한 척하면서 고독을 참으려 한다.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그녀에게는 부처처럼 달관한 느낌도 든다. 조제의 이상한 존재감에 이끌려 그 집을 드나들던 츠네오는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이 같이 찾은 곳은 호랑이 우리. 갇혀 있는 호랑이지만 조제에게는 두렵고 광폭한 세계 그 자체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용기를 얻은 조제는 호랑이 앞에 선다. 처음으로 호랑이를 가까이서 대면하는 조제의 모습은 자신의 장애가 각인시켜놓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폐쇄 본능을 극복하게 해주는 사랑의 힘을 상징한다. 또한 ‘물고기들’은 방 안에 갇혀 사는 조제가 자유롭게 세상을 헤엄쳐 다니고 싶은 욕망을 투영시키는 대상이다. 환상에 젖어 물고기처럼 사랑 속을 헤엄치는 조제. 그러나 조제는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영원이라는 낱말의 덧없음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자기에게 다가온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맑게 살아간다. 「사랑의 관」의 주인공은 이혼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29세의 우네. 그녀에게는 유지라는 19세의 젊은 조카가 있다. 열여섯 살 위 이복 언니의 아들이다. 유지는 섹시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우네 곁을 맴돈다. 우네도 이 젊은이가 귀엽다. 그러나 그만큼 우습다고 생각한다. 호의와 차가운 분석이 우네의 마음속에 저항 없이 양립한다. 뭔가를 기대하고 다가오는 속 보이는 그 저의를 마음껏 비웃는다. 그리고 그 사랑을 끄집어내듯 파내서, 흠뻑 취해보고는, 바로 차가운 땅 속으로 묻어버린다. 정념의 불꽃이 튀고, 그러고 난 뒤 죽을 때까지 그 비밀을 사랑의 관 속에 묻어버리기로 작정한다. 이중인격자 우네에게 있어 남자란 그저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릴 수 있는 우스운 존재일 뿐이다. 「눈이 내릴 때까지」는 아줌마 같은 소박한 노처녀가 즐기는 삶과 성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들은 알 수 없다. 여자를 이런 기분에까지 빠지게 하는 남자가 도대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이 정도로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즐기는 여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단편이다. 연애라는 것은 냉정을 잃고 속을 태우기도 하고 여차하면 맹목적이 되고 마는 일이다. 상대를 사랑하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단순한 자기애가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발휘되는 “봉사의 자기애”다. 결국 연애에 있어서는 여성이 어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멋진 이중인격을 가진 히로인들로 묘사된다. “엇갈릴 운명이기에 더욱 격렬하고, 짧은 인연이기에 더욱 강렬하게 혀끝에 남는 싸한 사랑의 맛. 사랑과 죽음과 이별은 모두 같은 맛”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들은 행복과 등을 맞댄 슬픔, 삶과 등을 맞댄 죽음, 그 모두가 하나가 되어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요,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요, 인간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