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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임할 땐 후드티를 입는다
내 하루하루의 증인 후드티가 신분증이 될 때 B급 개발자의 워너비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싶어서 마음도 옷장도 하나씩 하나씩 이제는 오답 노트를 버려볼까 후드티 입은 여자는 어디든 간다 우리는 가깝지만 느슨하게 덕질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없어도 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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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서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취향이 있기에 나는 다른 세계에 접속되어 있었고, 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존속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만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마저 표현하지 않으면 극도의 외로움에 나 자신을 통째로 잃어버릴 것 같았다.
--- 「전투에 임할 땐 후드티를 입는다」 중에서 그러니 후드티에 대해 쓴다는 건,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나를 지켜온 친구에 대해 글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 어쩌면 그 후드티를 입고서 통과한 나의 삶, 자랑할 것도 없고 어찌 보면 분주하기만 한, 아직 무언가 완성형이 아닌 채로 하루하루 채워가고 있는 나의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할것이다. --- 「내 하루하루의 증인」 중에서 내 후드티 안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룸미러로 힐끔 바라보면서 새삼 내가 누군가의 양육자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아이가 몹시 사랑스러우면서도 두려웠다. 내 사랑 내 행복인 너를 나는 보호할 수 있을까. 이 칠흑같이 어둡고 혼탁한 세상에서 네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난 뭘 할 수 있을까. ---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싶어서」 중에서 나에게는 언제나 대전제가 있었다. 내가 뭘 얼마나 열심히 하든 나는 늘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라는 것. 매일 그날의 업무를 마치고 나면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점검했다. 다른 이들에게 말실수하진 않았는지부터 시작해서 하루를 다시 곱씹느라 내가 그날 견디고 지켜온 성취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이들이 뭐라 말하든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갈 수 있었는데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이제는 오답 노트를 버려볼까」 중에서 내가 입는 옷에 이런저런 취향을 담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재밌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취향의 캔버스로 후드티가 이용된다는 사실도 정말 흥미롭다. 후드티는 본래 단체의 로고를 담아 제작하는 단체복으로서 등장하지 않았나. 그런 후드티가 이제 개인들의 취향을 담아낸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걸 하나의 서사로 대치하자면 출생의 원천을 뒤집어 엎고 정반대의 세계로 이행하는 후드티의 모험담이 되려나. --- 「덕질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중에서 나도 오랫동안 후드티 안에 숨어 지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번째 회사에서 나는 육아휴직 중에 사표를 냈다. 사실상 권고사직이었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나에 대한 자괴감이 뒤엉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마음이 온통 흙빛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바로 직장을 구했다. 1년은 육아휴직하며 아이를 돌까지 키우고 싶었는데 당장 어디라도 출근하지 않으면 경력 공백이 길어지게 될까 봐서였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긴 채 새 직장에 출근했다. 아이가 생후 6개월 때였다. --- 「‘없어도 되는 사람’」 중에서 |
후드티 하나하나에 담긴,
썩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애쓴 마음들의 기억 옷장을 정리하려다 당황하곤 한다. 이건 한없이 힘들 때 나에게 주는 선물로 산 옷, 이건 중요한 날 갑옷을 입는 심정으로 입고 출근한 옷…. 옷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있어 작아져도, 낡아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옷은 자기 자신의 역사다. 아무튼 시리즈 서른여덟 번째는 그 옷 중에서도 머리를 덮는 쓰개가 달린 옷, 후드티 이야기다. ‘후드티 애호가’로 통하는 저자는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는 틈틈이 만화를 연구하고 글을 쓰는 만화평론가, 기술을 기반으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다. 『아무튼, 후드티』는 바로 그 한 사람의 역사, 그 역사의 순간순간에 함께한 후드티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게 중요한 건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대개의 오늘, 나는 후드티를 입는다. 후드티는 하루를 견디게 할 뿐 아니라 여기저기 터져나가는 내 온갖 호기심을 끝없이 지탱해준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날들, 가장 잘 해내고 싶은 날,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있는 날까지 나는 후드티와 함께였다.” 후드티 입은 여자는 어디든 간다! 최상위 부유층이 후드티를 입고 단상에 오른다. 자유로움, 혁신을 내세우고 싶을 때 어떤 이들은 그렇게 후드티를 입는다. 누군가는 후드티를 입고 거리를 다닌다는 이유로 경찰의 총에 맞는다. ‘함께 모였다’ ‘함께 도모한다’, 후드티는 여럿이 함께 입고 모이는 자리에도 제격이다. 모자 달린 이 옷은 그야말로 정체성이 다양하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나의 후드티의 역사’ 또한 다채롭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대학생 시절 만난 노란색 후드티 무리, 신분증처럼 후드티를 입고 출근하는 개발자들, 스스로 B급 개발자라 여긴 저자가 어렵게 꺼낸 발표를 경청해준 여성 개발자들, 몸에 대한 부끄러움과 강박에서 벗어던지고 싶었을 때 노브라의 강력한 지원군이 되어준 후드티…. 맹목적으로 사랑하다 마음이 길을 잃을까 봐, ‘오답 노트’를 기록하듯 모자란 것, 못하는 것만 스스로에게서 찾게 될까 봐 두려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좋아하니까 해봤고, 해보니까 좋았다. 그렇다면 이제 마음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뿐하게 출발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후드티 입은 여자는 어디든 가니까. 후드티 한 벌이면 충분하니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