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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여성 시점으로 들여다보는 테크 업계와 서비스의 이면
조경숙
휴머니스트 2023.06.12.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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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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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_세상을 바꾸는 건 기술이 아니라 관점이다

1부. 전지적 여성 시점으로 본 IT 서비스

01. “이거 안 되는데요?” 개발자 ‘독성 말투’의 이면
‘비전공자’가 테크 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스트레스 관리마저 일하는 사람의 몫이라니
‘압박을 견뎌내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의 함정

02. IT 서비스에도 중립은 없다
문제는 서비스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디지털 성폭력을 조장하는 IT 서비스들
새로운 서비스에는 새로운 위험성이 따른다

03. 신비롭지 않은 기술들
서비스 장애보다 그 후의 태도야말로 치부다
기술이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04.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젠더데이터가 필요하다
신당역 여성살해 사건이 드러낸 젠더데이터 공백
데이터 사이로 들리는 여성들의 외침
이런데도 왜 젠더폭력이 아니란 말인가

05. 이미지에도 젠더편향이 있다
성차별에서 시작된 이미지 기술의 역사
검색 결과는 ‘성적 대상화’입니다
이미지는 사회를 인식하는 참조점이다

06. 낙관하기도 비관하기도 이른 인공지능
감정노동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사수, 챗GPT
기계의 윤리적 태도를 위해 희생되는 건 누구일까
우리는 챗GPT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07. 누구를 위한 웹 접근성인가
‘누구나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념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찾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나의 해방이 당신의 해방과 연결될 수 있도록

08. 서비스에도 끝이 있다
서비스를 닫을 때도 사용자를 고려해야 한다
사라질 서비스를 아카이브한다는 것의 의미

2부. 업계 한복판에서 체감하는 테크 노동의 현실

09. ‘개발진’으로 시선을 옮길 때 드러나는 존재들
여성들이 현업에 있어도 가려지는 현실
개발자에서 개발진으로 시선을 옮겨야 할 때

10. 48시간 정도, 안 잘 수 있나요?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
서비스의 연속성을 위해 삶의 연속성을 희생해도 괜찮은가
‘야간작업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11. ‘네카라쿠배’라는 새로운 입시
“네카라쿠배 입사시켜드립니다”
말이 사전과제지 실상은 무급노동
누가 실력을 규정하고 이용하는가

12. 왜 테크 업계는 대량해고를 밥 먹듯 할까
정리해고가 일상적인 테크 업계의 풍경
낙관주의의 결과를 감당하는 건 누구인가

13. 불안과 시간빈곤이 그리는 러닝커브
열정착취의 다른 이름, 러닝커브
시간조차 사람마다 평등하지 않다
불안에 잠식된 시간을 이제는 끝낼 수 있을까

14. 유연근무제는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될까
마미트랙이라는 허상과 차별
재택근무가 만능일 수 없는 이유
유연근무가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15. 커뮤니티는 나의 힘
페미니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
나의 외연을 넓히는 커뮤니티
우리의 장르는 성장물이 아니니까

나가며_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유지보수한다

저자 소개 1

게임에 빠져 유년기를, 만화에 묻혀 청소년기를 보낸 서브컬처 마니아. 테크-페미 활동가, 만화평론가로 활동하며 글을 쓴다. 『닌텐도 다이어리』의 글을 쓰고, 이소해의 그림 마감을 독촉하는 역할도 맡았다.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교란하는 인스타툰: 수신지 작가론(스포로이드 진 3호)』, 『아무튼, 후드티』를 썼고, 『웹툰 내비게이션』, 『웹툰 입문』을 함께 썼다. 만화 평론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인문만화교양지 ≪SYNC≫에서 그래픽노블 리뷰를 연재했다. 2015년부터 ≪주간경향≫ ‘만화로 본 세상’ 칼럼을 통해 사회에 대한 다양한
게임에 빠져 유년기를, 만화에 묻혀 청소년기를 보낸 서브컬처 마니아. 테크-페미 활동가, 만화평론가로 활동하며 글을 쓴다. 『닌텐도 다이어리』의 글을 쓰고, 이소해의 그림 마감을 독촉하는 역할도 맡았다.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교란하는 인스타툰: 수신지 작가론(스포로이드 진 3호)』, 『아무튼, 후드티』를 썼고, 『웹툰 내비게이션』, 『웹툰 입문』을 함께 썼다.

만화 평론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인문만화교양지 ≪SYNC≫에서 그래픽노블 리뷰를 연재했다. 2015년부터 ≪주간경향≫ ‘만화로 본 세상’ 칼럼을 통해 사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다룬 만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제5회 게임비평상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01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만화평론 공모에서 기성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8년 독립 연구를 위한 ‘연구자-후원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박희정 기록활동가와 함께 ‘코믹스 페미니즘: 웹툰 시대 여성 만화 연구’를 썼다. 저서로 『아무튼, 후드티』(2020)가 있으며, 만화 평론가 동료들과 함께 합정만화연구학회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개발자로서 IT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몇몇 회사를 거쳐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IT지원단 women do IT팀 활동가, 테크-페미 액티비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연구자로서 합정만화연구학회를 꾸리는 만화평론가이기도 하다. 꽤 복잡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 후드티 입은 여자는 어디든 간다’ 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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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20g | 135*200*18mm
ISBN13
9791160807554

책 속으로

“이건 어차피 안 돼요.” “이것도 몰라요?” “아무튼 못 합니다.” 때로 어떤 개발자는 타인과 소통을 거부한 채 이런 식의 말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실제로 기술이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고, 혹은 안 되는 이유를 개발지식 없는 이에게 설명하기 어려워 단칼에 끊어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런 말은 듣는 이에게 오해와 불쾌감을 남긴다. 동료를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방식은 매우 잘못되었고 분명 개선되어야 할 언어습관이다. 그런데 그런 습관이 단지 개인의 문제인 걸까?
---「01. “이거 안 되는데요?” 개발자 ‘독성 말투’의 이면, p.30~31쪽」중에서

새로운 서비스에는 새로운 위험성이 따른다. 인스타그램에 장소 태그가 생겨나면서 사이버 스토킹의 위험이 생겨나고, 페이스북에 ‘함께 아는 친구’가 노출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 이슈가 떠오른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사진을 합성해 직접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도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모든 서비스가 처음부터 이런 사건에 사전 대응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면 어떻게든 조치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순간, 서비스 제작자에게도 책임이 생긴다.
---「02. IT 서비스에도 중립은 없다, p.45~46쪽」중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if를 묻고 있다. ‘만약 카카오가 다중화를 제대로 설계했다면’이 아니라 ‘만약 카카오가 독식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말이다. 2022년 5월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대리운전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결정했고, 카카오모빌리티와 티맵모빌리티에 대한 사업 확장 제재를 권고한 바 있다. 대기업이 선진적인 기술력을 무기 삼아 돌격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중소기업뿐만이 아니라 그 아래 계약된 개별 노동자다. 플랫폼은 이용자에게는 일상의 편리를 돕는 순풍이지만, 해당 산업이나 생태계에는 파괴적으로 몰아치는 폭풍이다. ‘공동 성장’은 테크 업계가 아니라 그들이 침투한 생태계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플랫폼 노동자가 된 모든 이를 향한 단어여야 한다.
---「03. 신비롭지 않은 기술들, p.54~55쪽」중에서

젠더데이터 공백은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가 가해자를 고소하자 검찰은 즉각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구속영장은 왜 기각됐을까? (…) 그러나 관행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법원은 스토킹 범죄가 무엇인지, 왜 피해자들이 두려움에 떠는지, 가해자를 구속시키는 것이 왜 필요한지 ‘증명’하지 못한다. 여성 대상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가늠할 만한 데이터가 사실상 공백에 가깝기 때문이다. 젠더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아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보고되었지만 수집하지 않았기에 없는 영역이다.
---「04.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젠더데이터가 필요하다, p.66~67쪽」중에서

손택의 문장은 지금까지 논의한 이미지 기술의 맥락으로 가져와도 손색이 없다. 여성은 가정주부로, 남성은 직장인으로 표현하는 홍보물이나 길거리라는 키워드에 여성의 불법촬영 사진을 노출시키는 포털은 이 사회에서 성차별이나 편견, 불법촬영과 같은 것이 충분히 통용될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든다. 포털이 고스란히 노출하는 이미지가 이용자들이 여성을, 나아가 사회를 인식하는 ‘일종의 참조점’이 되는 것이다.
---「05. 이미지에도 젠더편향이 있다, p.87쪽」중에서

우리는 인공지능 챗봇으로부터 예의 바른 대답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챗봇이 생성하는 안전한 답변은 다른 사용자나 노동자가 겪는 폭력적 상호작용에 대한 대가다. 제3세계 데이터 레이블러뿐만 아니라 폭력과 소수자성에 민감한 이들이 앞서 상처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안전한 챗봇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안전은 무엇을 기반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과연 윤리적인지.
---「06. 낙관하기도 비관하기도 이른 인공지능, p.101쪽」중에서

어떤 이는 접근성을 기존 기획에 더해야만 하는 플러스 알파처럼 여긴다. ‘그들’을 위해 할 도리를 했다는 식으로. 그러나 접근성은 특정한 소수 그룹을 향해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경계에 선 고통까지도 포괄한다. (…)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벌여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생겼기에 유아를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도, 나이가 많아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사람도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접근성은 장애인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다.
---「07. 누구를 위한 웹 접근성인가, p.115~116쪽」중에서

서비스의 종료 시점과 방법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개발진은 많지 않다. 모두 자신의 서비스가 성공하고 영속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비스를 어떻게 닫아야 하는지 고민해두지 않으면, 어렵사리 쌓아올린 사용자와의 신뢰를 쉽게 저버릴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웹진이 문을 열고 닫으며 얼마나 많은 콘텐츠가 공중분해되었는지 우리는 여러 차례 목도해오지 않았는가.
---「08. 서비스에도 끝이 있다, p.125쪽」중에서

개발자가 아니라 개발진으로 인식의 범위를 확대할 때, 개발진의 성비는 어떻게 달라질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처참한 개발자 성비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만 다르게 셈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확장을 꾀하는 일이다. 우리는 테크 산업 안의 여성들을 더 다채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일터에 있는 여성들을 지워 내지 않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도록.
---「09. ‘개발진’으로 시선을 옮길 때 드러나는 존재들, p.145~146쪽」중에서

나는 가끔 우리 사회의 편리함이 너무 매끈하다고 생각한다. 저녁에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택배가 도착하고,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디지털을 매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자동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모든 편리함은 수동이고 누군가의 노동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세상이 멀쩡하다면, 자는 동안 우린 그만큼 다른 이의 노동에 빚진 것이다.
---「10. 48시간 정도, 안 잘 수 있나요?, p.159쪽」중에서

실력은 만능을 요하는 마법의 단어다. 여기에는 어떤 문제든 척척 풀어내고 회사가 요구하는 과제를 모두 제출할 수 있는 능력, 열정과 승부욕, 도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금방 회복하는 성격까지 포함된다. 조직이 준비할 건 연봉계약서라는 레드카펫뿐이다. 개인들은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갈려 나가고, 때로 도태되는 자신을 책망하고 원망한다. 실력이라 이름 붙은, 혹독한 자기계발과 자기책망의 굴레다.
---「11. ‘네카라쿠배’라는 새로운 입시, p.174쪽」중에서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말에는 좀 더 복잡한 속내가 들어 있다. 테크 업계는 사회가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항상 접속해주기를, 무언가 올려주기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를. 방향성은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는, 일단 서비스가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는 낙관주의에 맹목적인 한, 우리는 서비스가 불러일으키는 영향력에 무감해지고 무책임해진다.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테크 업계 노동자들조차 마찬가지다.
---「12. 왜 테크 업계는 대량해고를 밥 먹듯 할까, p.186~187쪽」중에서

얼마 전에 내가 속한 온라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한 주니어 개발자가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데 실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져 개발을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야근이 많고 통근시간이 길어 평일에 공부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이미 모든 시간이 꽉 차 있는 듯 보여서 할 말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잠을 줄여라.” “통근시간을 활용하라.”고 조언하는 걸 보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미 그들도 그렇게 잠을 줄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12시간 일하고 2시간 통근하지만 잠을 조금씩 줄여 개발을 공부하고 주말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이런 일상이 정말 괜찮은 걸까?
---「13. 불안과 시간빈곤이 그리는 러닝커브, p.199쪽」중에서

유연근무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선택지가 아니다. 개개인이 돌발상황에서도 생활을 지켜내기 위해서 유연근무는 필수다. 그러나 유연근무가 그 자체로 보다 나은 삶을 담보하는 건 아니므로, 그것이 삶과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깊이 논의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돌봄노동과 근로를 동시에 해내는 노동자 모두 슈퍼히어로가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14. 유연근무제는 일·가정 양립에 도움이 될까, p.217쪽」중에서

커뮤니티는 내게 다른 이를 만나 나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작게는 새로운 책을 소개해주거나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때로는 직장을 선택하는 경로에 도움을 주며, 나아가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시야를 트이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커뮤니티가 확장의 왕도라거나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저마다 맞는 방법이 있을 테니 그것을 찾아 나가면 좋겠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게 성장으로 나아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소년만화가 아니고, 우리의 장르에 성장물만 있는 건 아니니까.
---「15. 커뮤니티는 나의 힘, p.228쪽」중에서

아무도 컵을 씻지 않는다면 어떨까. 누구도 거리를 청소하지 않는다면.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사람도,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고치는 사람도 없어진다면. 대륙을 끊임없이 횡단하는 설국열차조차 어린아이가 노동하지 않으면 금세 멈춰버릴 만큼 허술하지 않았나. 어쩌면 나는 바로 그런 장면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유지보수되지 않아 모든 것이 멈춰 섰을 때, 우리가 미처 몰랐던 노동을 발견하는 한순간을, 노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로소 떠올리는 시간을.

---「나가며_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유지보수한다, p.238쪽」중에서

출판사 리뷰

1. 기술은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 ‘전지적 여성 시점’으로 본 IT 서비스


지은이는 SI(시스템 통합) 업무를 진행하는 기업에 입사해 개발자의 길로 들어섰다. 전공보다 현장에 대한 이해와 고객사와의 소통능력을 우선시하는 채용 방침에 따라 들어온 테크 업계는 날 선 말투, 이른바 ‘독성 말투’가 횡행하는 곳이었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개발자라고 할 수 있나요?” “이건 어차피 안 돼요.” “아무튼 못 합니다.” 업무 중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압박을 견뎌내는 것’도 모두 능력이라면서 개발자들의 독성 말투를 당연시했다. 지은이는 실적 중심, 남성 중심의 직군에서 드러나는 독성 말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이를 무조건 개인의 인성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압박을 견뎌낼 것을 강요하는 개발자 문화와 이에 동조하고 활용하는 성과 중심의 조직이 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IT 서비스가 젠더 문제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IT 서비스를 어떻게 설계해야 성평등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보다, 수익성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중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랜덤채팅 앱이 대표적으로, 익명의 사용자와 무작위로 매칭하는 이 서비스는 위기청소년을 꾀어내 성착취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또한 현재 IT 서비스의 핵심적인 자원이라 할 수 있는 데이터도 편향적으로 걸러지고 있다. 2022년 신당역 여성 살인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했지만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가해자가 얼마든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발생했다.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한 데는 사회문화적인 편견도 작용했겠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데이터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범죄를 예방해야 할 국가기관이 젠더데이터를 충실하게 모으고 정리했다면, 판사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엄밀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면 사건을 막을 가능성도 높아졌을 것이다.

이처럼 서비스를 어떤 관점에서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의 해법이 도출된다. 문제는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챗봇은 방대한 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장을 생성한다. 공개 초기에 소수자 차별·혐오발언 문제를 노출했던 인공지능 챗봇은 이제 자체적인 윤리 규정을 두고 혐오발언을 걸러낸다. 그런데 부적절한 언어를 걸러내는 데이터 레이블링 작업에 제3세계 노동자가 동원될 때, 폭력과 소수자성에 민감한 이들이 챗봇을 사용하면서 상처받을 때 비로소 ‘안전한 챗봇’이 가능해진다는 걸 생각하면 난감해진다. 그렇다면 IT 서비스가 발생하는 문제를 외면하거나 완벽한 서비스는 없다고 체념해야 하는 것일까. ‘모두를 위한 기술’을 위해서는 결국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서비스에는 새로운 위험성이 따른다. 인스타그램에 장소 태그가 생겨나면서 사이버 스토킹의 위험이 생겨나고, 페이스북에 ‘함께 아는 친구’가 노출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 이슈가 떠오른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사진을 합성해 직접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도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모든 서비스가 처음부터 이런 사건에 사전 대응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면 어떻게든 조치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순간, 서비스 제작자에게도 책임이 생긴다. - 〈02. IT 서비스에도 중립은 없다〉, 45~46쪽

젠더데이터 공백은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가 가해자를 고소하자 검찰은 즉각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구속영장은 왜 기각됐을까? (…) 그러나 관행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법원은 스토킹 범죄가 무엇인지, 왜 피해자들이 두려움에 떠는지, 가해자를 구속시키는 것이 왜 필요한지 ‘증명’하지 못한다. 여성 대상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가늠할 만한 데이터가 사실상 공백에 가깝기 때문이다. 젠더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아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보고되었지만 수집하지 않았기에 없는 영역이다. - 〈04.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젠더데이터가 필요하다〉, 66~67쪽

2. 48시간 정도, 안 잘 수 있나요?
― 업계 한복판에서 체감하는 테크 노동의 현실


우리는 보통 개발자 하면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남성 노동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개발 작업에는 예상보다 많은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기획, 디자인, 프로젝트 운영과 관리까지 시야를 넓히면 여성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난다. 개발 영역에서 남성의 비중이 높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오직 남성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편견이다. 지은이가 개발자에서 ‘개발진’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테크 업계의 남성 중심성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정작 현업에 있는 여성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를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존재감이 테크 노동의 현실에서 흐릿해지는 데는 테크 업계의 너무나 열악한 근로조건도 한몫한다. 한 회사의 사내시스템 운영부서에서 면접을 본 지은이는 그날 들은 한마디를 잊지 못했다. “48시간 정도, 안 자고 깨어 있을 수 있으신가요?” ‘크런치 모드’라 불리는, 말 그대로 명줄을 갈아 넣는 고강도 노동을 하지 않으면 경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압박은 대규모 채용과 해고를 반복하는 업계의 관행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라 불리며 국내 테크 업계 서열의 상층부에 자리한 기업들은 ‘실력’을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구직자들에게 실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코딩테스트와 사실상 무급노동이나 다름없는 사전과제를 요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겨우 입사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테크 기업의 경영자들이 낙관주의에 빠져 사업의 비전을 주장하고 난 뒤, 부진한 실적과 악화되는 재정을 만회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 결국 대량 해고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중단되는 서비스의 시간주기가 테크 업계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셈이다.

그럴 때 테크 노동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끊임없는 공부다. 수시로 바뀌는 개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개발언어를 강박적으로 학습하고, 테크 컨퍼런스에 꼬박꼬박 출석해 정보를 공유한다. 개인시간의 50%를 업무 관련 자기계발에 쓰는 사람, 컴퓨터공학 전공을 이수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등록하는 사람도 있다. 개발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이토록 분투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는 만성적인 시간빈곤에 시달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확산된 유연근무제는 얼핏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를 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연근무는 일과 가정을 양립시킨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여성 노동자가 일-가정-학습을 ‘삼립’해야 하는 상황을 고착시킬 뿐이다. 테크 노동의 현실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개발자가 아니라 개발진으로 인식의 범위를 확대할 때, 개발진의 성비는 어떻게 달라질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처참한 개발자 성비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만 다르게 셈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확장을 꾀하는 일이다. 우리는 테크 산업 안의 여성들을 더 다채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일터에 있는 여성들을 지워 내지 않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도록. - 〈09. ‘개발진’으로 시선을 옮길 때 드러나는 존재들〉, 145~146쪽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말에는 좀 더 복잡한 속내가 들어 있다. 테크 업계는 사회가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항상 접속해주기를, 무언가 올려주기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를. 방향성은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는, 일단 서비스가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는 낙관주의에 맹목적인 한, 우리는 서비스가 불러일으키는 영향력에 무감해지고 무책임해진다.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테크 업계 노동자들조차 마찬가지다. - 〈12. 왜 테크 업계는 대량해고를 밥 먹듯 할까〉, 186~187쪽

3. 시스템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유지보수하는 마음


IT 서비스와 테크 업계의 이면을 여성의 시선으로 들여다볼수록 그 속에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지은이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 정말로 더 가치 있는 일이냐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만 몰두할수록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진다는 사실이다.

서비스의 생산주기가 빨라질수록 노후화된 개발언어도 서비스도 늘어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유지보수다. 낡은 부분을 손보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을 높이는 작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은이는 오래전 선배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한다. 시스템은 그릇이기 때문에 개발자는 그릇에 무엇이 어떻게 담기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이미 만들어진 서비스라는 그릇을 깨끗하게 다듬으면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고려를 넘어 사회적인 영향력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진이 새로운 상품의 개발이라는 측면만 볼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생산물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할 때, 무엇보다 소수자의 관점으로 서비스를 개발하고 점검하며 유지보수할 때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서비스가, 더 나아가 모두를 위한 기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컵을 씻지 않는다면 어떨까. 누구도 거리를 청소하지 않는다면.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사람도,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고치는 사람도 없어진다면. 대륙을 끊임없이 횡단하는 설국열차조차 어린아이가 노동하지 않으면 금세 멈춰버릴 만큼 허술하지 않았나. 어쩌면 나는 바로 그런 장면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유지보수되지 않아 모든 것이 멈춰 섰을 때, 우리가 미처 몰랐던 노동을 발견하는 한순간을, 노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로소 떠올리는 시간을. - 〈나가며_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유지보수한다〉, 238쪽

추천평

벅차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니 살아볼 만한 세상이다. 기술과 여성이 만나면 이런 비판과 통찰 그리고 이런 희망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IT 서비스와 노동 현장의 현실에 ‘전지적 여성 시점’과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더해지니 세상에 둘도 없는 책이 탄생했다. IT와 여성, 개발자 문화, 한국 테크 산업, 기술과 사회의 관계…. 무엇에 관심 있든 이 책이 가장 첨단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이번 생이 안 된다면 다음 생에 여성 개발자로 태어나 쓰고 싶던 책이 바로 여기 있다. 추천을 안 할 도리가 없다. 책을 덮고 나면 세상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위험에 눈감고 앞으로 내달리는 기술도 있지만, 묵묵하게 우리를 돕고 일상을 지켜주는 기술 그리고 그것을 매만지는 수많은 이가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것이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허세 가득한 인공지능 책은 잠시 내려놓자.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원한다면 이 책부터 읽어야 한다.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지은이,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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