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건조하고 이슬은 깨끗했으니 팔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물은 흐르고 산은 고요했으니 북한산은 아름다운 명승이다. 온화하고 유쾌하며, 순수하고 잘생긴 두세 명의 군자는 모두 아름다운 선비들이다. 이런 분들과 이런 명승지에서 노닐었으니 어떻게 유람이 아름답지 않으랴? 자동(紫?)에 들르니 아름다웠고, 세검정에 오르니 아름다웠고, 승가사 문루에 오르니 아름다웠고, 문수사 문에 오르니 아름다웠고, 대성문(大成門) 위에서 조망하니 아름다웠고, 중흥동(重興?) 어귀를 들어가니 아름다웠고, 용암봉(龍岩峰)에 오르니 아름다웠고, 백운대 아래 기슭을 굽어보니 아름다웠고, 상운산(祥雲山) 동구가 아름다웠고, 염폭이 매우 아름다웠고, 대서문(大西門)이 아름다웠고, 서수구도 아름다웠고, 칠유암(七游岩)은 극히 아름다웠고, 백운동과 청하동(靑霞?)의 입구도 아름다웠고, 산영루가 매우 아름다웠고, 손가장도 아름다웠고, 정릉(貞陵) 동구도 아름다웠고, 동대문 밖 모래톱에서 말들이 떼 지어 달리는 것을 보니 아름다웠다. …… 요컨대 그윽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상쾌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툭 트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위태로워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담백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화려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조용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쓸쓸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고, 어울려 있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나는 말한다.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이런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 「북한산 유기_이옥」 중에서
이튿날은 진헐대(眞歇臺)에 올랐소. 남여(藍輿)를 버리고 걸어서 개심대(開心臺)로 올라갔지요. 일만의 봉우리가 눈 아래 빼곡한 모습을 뭐라 형용할 수가 없었소. 우뚝 솟아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은 그대가 빼어난 자태로 홀로 서 있는 것만 같았고, 비스듬히 기울어 무너질 듯한 모양은 그대가 술에 취해 옥산(玉山)이 무너지는 듯한 모습과 방불했다오. 이것을 마주하고서야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지요. …… 이때 만약 그대가 함께 있었다면 이 사이에 지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시주머니 속에 마땅히 많았을 것이오. 형께서 이 말을 듣는다면 반드시 크게 유쾌해하고 또한 크게 안타까워할 것이오.
벼슬길을 향한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하고, 세상 사는 맛은 씀바귀인 양 쓰구려. 조용히 지내는 즐거움이 화려한 벼슬살이보다 낫거늘, 어찌 즐겨 나의 편안함을 버리고 남을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단 말이오. 다만 먼 데 벗을 향한 생각이 속마음에 얽혔어도 땅이 멀어 만나기가 어려운지라 회포를 다 풀 수가 없구려. 가을 날씨가 점점 차지니 양친을 잘 모시고 양지(養志)를 다하기 바라오.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하오. 이만 줄이오.
--- 「금강산 유람길에서_허균」 중에서
초여드레 갑신일. 날이 맑았다. 정사(正使)와 함께 한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를 가서 산모롱이 한 줄기를 돌아서자 태복(泰卜)이 갑자기 허리를 굽신하더니 내달려 말 앞으로 나가서는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고 큰 소리로 “백탑(白塔)이 현신(現身)하여 아룁니다!”라고 외쳤다. 태복은 정(鄭) 진사(進士)의 마두(馬頭)다.
하지만 산모롱이가 아직도 가로막아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말을 채찍질하여 서두르자 수십 걸음을 채 가지 않고 산발치를 막 벗어나자마자 안광(眼光)이 어른어른하고 갑자기 검은 공 한 덩이가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나는 오늘에야 처음 인간의 삶이란 본래 어디에도 의탁한 데가 없이 오로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울기에 딱 좋은 곳이로다. 울어도 좋겠구나!”라고 말하였다.
--- 「울기 좋은 땅_박지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