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교육과정 편제 규정에 의거, 각 교과의 시수표를 정확하게 작성하는 것은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서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① 학교와 학년 차원에서 교육의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토론하는 일보다 기계적으로 시간을 끼워 맞추는 사소한 행정 행위를 우선한다면? ② 교육과정을 계획·수립·검토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논의해야 할 교사 개개인의 교육철학을 배제한 채, 법과 규정에 명시된 연간 안전 교육 시수니 학교폭력 예방 교육 시수니 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입력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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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수업과 학생 관리’라는 고정적인 일과에 따르는 교육 업무를 매일 반복해서 수행하는 직종이다. 일과표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학생이 쉬거나 식사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지, 교사가 쉰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생이 학교에 있는 한,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교사는 학생 관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직종과 다르게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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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교원 임용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전 학년 전 과목의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 교수·학습 방법론을 꿰뚫기는 불가능하다. 매일 별도의 시간을 들여서 다음 날 있을 수업 목표와 내용을 확인해야 하고, 필요하면 교수·학습 자료를 새로 개발하거나 학생들의 현재 성취 수준을 고려하여 발문을 준비해야 한다. 같은 과목, 같은 차시의 수업이라도 학생들의 수준, 특성에 따라 수업 체계나 교수·학습법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서를 한번 쓱 훑어보는 것으로 수업 연구를 대체하거나, 학생의 성취도만 확인하는 형성 평가로 평가를 하는 둥 마는 둥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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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수업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제도를 막무가내로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마치 공부할 시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학생에게 우수한 문제집만 들입다 풀라고 해놓고 성적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런 제도들은 학교 현장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또 다른 불필요한 행정 업무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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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출신이라면 누구나 ‘교대신(敎大神)’이라는 그림을 알고 있다. 인도 힌두교의 여신인 두르가(Durga)의 모습에서 따온 그림이다. 본래 두르가는 8개의 팔에 활과 화살, 칼, 투창 등의 무기를 들고 있는데, 교대신은 이러한 무기 대신에 교육과정 총론, 배구공과 피아노 건반, 팔레트, 단소 따위를 들고 있다. 한술 더 떠서 발에는 축구화를 신고 축구공까지 밟고 있다. 즉, 교대생들이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기능을 대학에서 배우고 있음을 희화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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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때로 인사 담당자가 된다. 방과 후 강사나 기초학력 강사, 보조 강사를 선발할 때 담당 교사는 채용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채용 공고를 올리며,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서 인력을 선발한다. 이력서, 신체검사서 같은 채용 서류를 받는 것도 교사이며,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대체로 교사가 한다. 학급 운영과 더불어 갖가지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인사 업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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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은 부서별 업무 기준안은 만들었지만, 아직 직종별 업무 표준안을 제안하지는 못한 상태다. 앞으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만, 그래도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첫 걸음을 내디뎌주었다. 이미 한 단계 물고를 튼 만큼 부서별 업무 기준안을 뛰어넘어 직종별 업무 표준안도 만들고, 이 모델이 다른 시·도 교육청에도 보급되기를 기대해본다. 모든 시·도 교육청이 이런 식으로 부서별 업무 기준안을 제공한다면, 행정실과 교무실 사이에 역할 분담을 놓고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교사들은 수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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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교에서는 전성기 교사들에게 수업에 대한 전문성보다 행정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안의 작은 관료제, 즉 ‘평교사→보직 교사→보직 교사 중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교감→교장’이라는 사다리 구조에서 아이들 교육에 한창 빛을 발해야 할 교사들에게 “이제 학교 일 좀 해야지?”라며 다른 길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학교의 구조가 30~40대 교사들이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기르고, 그 전문성을 동료 교사들과 긍정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다져져왔다면, 지금 학교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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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교의 교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교육 시설도, 교육정책도, 평가 방법도 아니었다. 교사, 관리자, 지원팀이 행정보다 교육을 최우선에 두고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었다. 승진 체계가 아니라, 또 행정직이니 교직이니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 교육을 위해서 협력하고 힘을 모으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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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교사가 마치 미래에 사라질 1순위 직업인 것처럼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AI가 교사를 대신하고, 온라인으로 교육을 하며, 학교라는 공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2020년 초,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위기 상황을 겪으며 모두가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학교가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었나 하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을 통해 우리는 학교가 비단 교과 지식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사회성을 기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건강한 영양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무엇보다 안전한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며 종합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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