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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이주혜 | 창비 | 2022년 07월 2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4건 | 판매지수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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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2년 07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40g | 128*188*30mm
ISBN13 9788936438814
ISBN10 8936438816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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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간을 통과해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불화와 분투 속에서도
결코 부서지지 않을 ‘우리’를 발견하는
강인하고 눈부신 이야기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해 첫 장편소설 『자두』(창비 2020)에서 가부장제와 마찰하는 여성의 현실을 예리하게 묘파하여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 이주혜의 첫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가 출간되었다. 문지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포함해 6년간 써온 아홉편의 단편을 엮은 이 소설집은 여성이 한국사회 가족 안에서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분열, 분노와 절망을 진솔하게 꺼내놓는 동시에 그렇게 욱신거리는 삶만이 성취할 수 있는 위로와 연대의 풍경을 담아낸다. 아울러 대부분의 작품이 아직 한국문학장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중년여성의 삶을 심도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번 소설집은 한국문학의 여성서사를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주혜는 『자두』에 이어 또다시 “독자를 단번에 타인의 삶 한가운데로 데려간다.”(추천사, 김혜진) 일상적 폭력과 편견으로 분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필연적으로 비틀리고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면면이 핍진하고 강렬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활자로 된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열렬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단지 자신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신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부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오늘의 할 일
아무도 없는 집
여름 감기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물속을 걷는 사람들
꽃을 그려요
봄의 왈츠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해설│황정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겨울이 자매의 집에 머물다 간 시간은 정확히 얼마였을까? 겨울이 사라진 뒤로 자매는 한번도 그 존재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살면서 한번쯤은 문득 조그만 머리통이랄지 말랑한 볼 같은 것을 떠올린 적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잡초 뽑듯이 기억을 털어내버렸다. 자매는 각자 어른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겨울에 관한 기억은 고향집 다락방에 처박아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는 떠올릴 일이 없는 기억이라고. 아니, 거짓말이다. 자매는 각자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서 엉뚱한 사람을 통해 겨울을 만난 적이 적어도 한번은 있다.
---「오늘의 할 일」중에서

튼튼이, 개똥이, 은총이 같은 태명으로 불리는 태아들이 규의 눈에는 몰개성의 추상체에 불과했다. 자기야, 우리 장군이 심장 소리 좀 들어봐. 웅장웅장웅장, 이렇지 않아? 장군감 맞나봐. 앳된 임부가 옆에 선 남편의 손을 꼭 쥐고 달뜬 목소리로 말했을 때 정작 규의 귀에는 그 소리가 총성총성총성으로 들렸다. 부부가 뿜어내는 행복의 아우라가 규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밭은 기침을 했다.
---「아무도 없는 집」중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파주였는데,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교외이기도 하고 뜨개질이나 독서 모임을 하기 좋은 넓은 카페와 음식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렸다. 하늘이 잔뜩 찌푸렸거나 비가 흩뿌리거나 미세먼지가 심했다. 수라 언니의 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릴 때 우리 옆을 따라오는 임진강 물빛도 늘 잿빛이었다. 파주와 날씨의 상관관계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농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지. 우리가 파주에 갈 때마다 날이 흐렸던 건 운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고작 세 사람이 약속을 잡는 것인데도 날씨는 우리가 고려해야 할 변수에 들지 못했다.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중에서

저기 휴게 건물 뒤쪽, 뒷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책로에서 소희 언니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었지. 그래서 너는 다리를 벌렸니? 저쪽 공장 건물 옆 흡연실에서 창립기념일 공짜 술에 취한 천중만 씨가 내 손을 함부로 잡으며 지껄이기도 했다. 미쓰 구는 몸만 와. 내가 미쓰 구 허물 다 덮어줄게. 나는 미쓰 구만 있으면 돼. 소희 언니는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었고 천중만 씨는 근무 태만으로 잘렸다. 둘 다 오래전 일이다. 공장 건물 바닥에 매일매일 쌓이는 톱밥과 대팻밥만큼 흔한 이야기다.
틋.
픗.
나무 익는 소리보다 쓸데없는 헛소리들이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중에서

선남은 1남 3녀 중 셋째 딸이었다. 두 언니와 선남은 딱 2년 간격으로 태어났지만 선남과 남동생 일주는 터울이 6년이나 벌어졌다. 선남과 일주 사이에 동생이 될 뻔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선남은 안다. 그 아이들이 왜 온전하게 태어나지 못했는지도 안다. 병원에 다녀온 엄마가 며칠씩 자리에 누워 지낼 때가 있었다. 그러면 옆 동네에 사는 할머니가 와서 밥을 해주었다. 할머니는 굳은 얼굴로 며칠 동안 계속 미역국만 끓여주었다. 어린 선남이 비릿한 미역 냄새가 싫다며 국그릇을 밀어내면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어린 선남의 머리통을 때리며 쏘아붙였다. 미역국이 싫으면 사내 동생한테 터를 팔았어야지! 어쩌자고 내리 기집년들한테 터를 팔아?
---「봄의 왈츠」중에서

이게 저승길을 환히 밝혀준다네. 이렇게 일주일 간격으로 봉숭아 물을 들이면 손톱에 불이 들어 나중에 죽으면 저승길을 밝혀준다네. 내 팔자에 저승길을 마중 나올 살뜰한 부모도 없고 애틋한 남편은 더더욱 없으니 내 저승길은 내가 미리 밝혀야지 싶어서. 돈도 안 들고 얼마나 좋으냐? 안 그러냐, 이년아? 그러면서 엄마는 또 징그럽게 깔깔 웃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뭔가를 참으며 엄마의 손에 둥글게 빚은 봉숭아 반죽을 하나씩 올렸다. 그때 내 안에 치밀어 올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순도 높은 분노만은 아니었기를, 백반 가루 같은 연민이 조금은 섞인 마음이었길 바랄 뿐이다.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가족’이라는 환상 아래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이들


표제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기준으로 전반부에 해당하는 앞의 네 작품은 ‘가족’을 둘러싼 환상과 통념을 한겹씩 벗겨내 그 아래 자리한 씁쓸한 현실과 가슴 아픈 비극을 드러낸다. 책의 첫머리에 실린「오늘의 할 일」이 그 출발점이다. 소설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치른 세 자매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식을 넷 낳아 사계절을 뜻하는 한자를 하나씩 넣어 이름을 지어주는 게 꿈이었”지만 딸 셋밖에 얻지 못했다. 다정하나 무능했고 태평해서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둘씩 이끌려 나오다가 셋째의 돌연한 물음으로 뚝 끊긴다. “겨울이는 잘 살고 있을까?” 어느 날 아버지가 집 밖에서 낳아 데려온 사내아이 ‘겨울’은 세 자매가 영원히 인생 깊숙이 “처박아두고” 잊고 싶었던 존재다. 그들은 아버지가 집 안에 방치한 ‘겨울’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봤”지만 또 각자의 방식으로 버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억울함과 죄책감 사이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무도 없는 집」은 대학생 때 해부학 실습을 하며 가까워진 해부학자 ‘녕’과 산부인과 의사 ‘규’, 그리고 그들이 결혼해 낳았지만 열여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원’의 이야기다. 해부학의 불문율은 ‘왜’라고 물어보지 않는 것이지만 규는 늘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결혼·임신·출산·육아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규는 ‘엄마 됨’을 의문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신 집을 떠나 아프리카 난민 캠프 봉사활동에 몰두한다. 원이 목숨을 끊었을 때도 타국에 있던 규에게 녕은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라고 판에 박힌 비난을 하지만, 결국 깨닫는 건 “규가 원을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원이 서툴기 짝이 없는 부모를 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여름 감기」는 자신이 “무해”하다고 믿는 남자 ‘오종’의 이야기다. 어느 날 산책길에 나선 오종은 폭우를 만난다. 몸이 흠뻑 젖은 채 귀가했을 때, 아무도 없어야 할 집에서 침입자의 낌새를 감지한다. 그 정체는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직장 후배 ‘제이’이다. 억압적이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제이의 일화를 아내에게서 수없이 들어 알고 있는 오종은 제이의 “하수구 같은 가정사”가 자신의 “순백의 가정”을 침범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순백”을 자처하는 오종의 서술이 결국 기만임이 폭로되며, 아내가 “여름 감기”를 앓는 제이에게 잠시 침대를 내준 이유가 동정심이 아니라 동질감 때문임이 드러나는 순간이 쓰라리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베일을 걷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불화와 상처로 얼룩진 “폐허”의 정경이겠지만, 그 “폐허를 정화시”키는(해설, 황정아) 뜨거운 연대의 풍경 또한 있다.「여름 감기」에서 남성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만 가늠할 수 있었던 가정 내 여성들의 우정은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에 이르러 ‘나’, 수라 언니, 미예, 세 여성의 우정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을 통해 친해지게 된 세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유자녀 기혼 여성으로 살아가며 매 순간 느끼는 고립감을 긴밀히 공유하며 더없이 가까워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그 관계는 막을 내리고 만다. 팬데믹에 홀아버지를 여읜 미예를 위로하고자 오랜만에 만난 자리가 수라 언니의 코로나 확진으로 불화의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제든 “형편없는 엄마” “한가롭게 놀러 다니는 유한부인”이라는 비난에 휩싸일 수 있는 그들에게 코로나 확진은 ‘엄마’와 ‘아내’로서 자격미달이라는 가차 없는 심판이다. 그러니 덩달아 확진 판정을 받은 미예가 수라 언니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것은 일견 그럴 만해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정 빛나는 지점은 그들의 분열에 주목하기보다는 끝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에 집중한다는 데에 있다. “자꾸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고 “고립시키”는 “이 바이러스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질문하며 “우리는 함께 이 병을 앓을 것”이라고 결심하는 ‘나’의 모습은 ‘우리’의 분노가 정말 향해야 할 곳과 ‘우리’의 다음이 닿아야 할 곳이 각각 어디인지를 정확히 가리켜 보인다.

삶의 통증을 생의 박동으로 바꾸어내는
이주혜의 소설만이 지닌 올곧고 미더운 힘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오십대 여성 ‘구은정’이 수술대에 누운 몸에서 유체이탈 하여 그간의 세월을 반추하는 이야기로, 스무살부터 ‘처녀 가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가정사, 회사생활 중 알게 된 ‘소희 언니’와의 우정이 깨어지는 과정, 그리고 회사 사장이 ‘은정’에게 “부려놓은 소문”에 관한 일화가 담담히 이어진다. 사장은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은정을 늘 일본 출장 수행원으로 대동했는데 이로 인해 은정은 근거 없는 추문에 시달렸다. 사장이 ‘은정’을 수행원으로 대동한 진짜 이유가 이후 밝혀지지만, ‘은정’을 오해한 ‘소희 언니’는 이미 돌아선 지 오래고 일본 출장에서 만나 잠시 마음을 나누었던 한 사람과도 멀어진 뒤다. 그렇게 무언가 자꾸만 잃어온 것만 같은 삶이라도 그 삶으로 돌아가는 결말이 슬프지만은 않다. “빈자리”에도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는 은정의 깨달음이 은정의 삶을 상실감으로부터 구해내기 때문이다. 은정의 회상을 함께한 독자 또한 저마다의 상실을 돌아보고 또 거기서 작으나마 구원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속을 걷는 사람들」은 90년대 초반 학생운동이 등장하는 여성 연대기다. ‘나’는 학생운동 당시 불의에 함께 저항하면서도 결정적 순간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무거운 수치와 곤혹을 짊어져야 했던 경험을 오래 잊지 못하고 있다. 친구 ‘기역’은 그런 ‘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도 하지만, ‘나’에겐 그 영화도 미처 담을 수 없는 통증의 역사가 있다. 소설은 아직도 혼자 “물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나’가 혼자 과거를 헤매게 두지 않는다.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어머니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딸 ‘준’과 “묵직한 발걸음”에서 벗어나 “경쾌하게 걷는” 다음 세대 여성 ‘하리나’를 지켜보며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렇듯 상실을 상실로만, 통증이 통증으로만 그치게 내버려두지 않으면서 이주혜의 소설은 스스로 미더움을 증명해 보인다.

소설집의 후반에 다다르면 앞서 문제 삼은 ‘가족’의 대안을 제시하는 소설들이 등장한다.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인 「꽃을 그려요」는 동네에서 모종의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소년의 집 담벼락에는 ‘사탄, 괴물, 꺼져’같은 글씨가 매일 빼곡하게 나타난다. 날마다 더 선명해지기만 하는 그 글씨를 여느 때처럼 지우고 있던 어느 날, ‘오주’라는 이름의 여자가 찾아와 말한다. “지우지 말고 칠하지 그래요? 다른 색으로 덮어버려요.”

이 한마디는 뒤이은 두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다. 「봄의 왈츠」와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속 인물들에겐 담벼락의 글씨처럼 매일 더 선명해져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봄의 왈츠」의 ‘선남’은 그저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 때문에 “나를 낳고 엄마는 기뻤을까?” 같은 의문에 시달려왔다. ‘리온’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에 관해서도 무식”할 만큼 가정에 무관심했다. ‘미호’는 정육점을 하는 아버지에게 소 정강이뼈로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그들은 그런 과거를 완벽히 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더 눈부신 미래로 덮어버리는 쪽을 택한다. 이제 ‘봄’의 세 엄마가 되어 새로운 일가를 이뤄나가는 그들의 따스한 모습은 ‘가족’과 ‘모성’에 대해 다르게 상상해볼 것을 권한다. 친구 사이인 ‘온’과 ‘나’, 그리고 ‘나’의 딸 ‘율’이 북해도를 여행하며 겪는 일련의 사건을 그린「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또한 ‘나’와 온, 두 여성이 과거 서로에게 입힌 깊은 상처와 그 상처를 피할 수 없게 만든 기존의 관습을 넘어 진정한 연대의 미래를 향해 발을 딛는 순간을 포착한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를 만나
우리의 이야기로 단단해질 수 있다면”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적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그 현실의 대안적 전망까지 충실하게 아우르는 이번 소설집『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여성으로 사는 일’을 통찰하는 이주혜의 시선이 확장되고 날렵해지는 궤적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이 ‘여성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이주혜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채롭고 흡인력 있는 서사로 그려내 독자를 폭넓게 매혹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적 현실로 인해 고통받는 삶을 실감 나게 재현하면서도 그 삶의 놀랍도록 강인한 면모와 가능성을 끝내 발견해내고야 만다. 그 끈질김과 진지함이 오롯이 담긴 이 소설집은 다른 미래를 성실히 상상하고 꿈꿔야 할 지금, 가장 울림이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말

내게 닿은 최초의 이야기들은 늙은 여자들에게서 왔다. 그들은 어린 내 몸을 토닥이며 개울에 떠내려온 복숭아 이야기를, 큼직한 연꽃이 열리며 여자아이가 나타난 이야기를, 밤이면 다락에 숨어들어 살강살강 알밤을 갉아 먹는 새앙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이야기의 틈이 벌어지며 또다른 이야기가 굴러 나왔고, 같은 듯한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며 새로운 이야기로 변모했다. (…) 실을 자아내듯 이야기를 자아냈던 그 늙은 여자들 자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을 때 그들은 이미 내 곁에 없었다. 그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소설 곳곳에 내가 숨어 있는 걸 발견했다.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어온 줄 알았는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구나, 깨달았을 땐 어딘가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싶었다. 여전히 어리석고 비겁한 내가 문장 뒤에 숨어 있었다. 눈만 가려놓고 온몸을 감췄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웅크린 내 옆에는 나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이야기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주었다. 미숙한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를 만나 우리의 이야기로 단단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2022년 여름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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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의 소설은 독자를 단번에 타인의 삶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문장을 지표 삼아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거닐게 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내면을 산책하는 일과 다름없음을 깨닫게 한다. 사랑하고 보살피는 여성들, 혼돈의 순간을 넘어서는 여성들, 불안과 상실 속에서도 서로를 책임지는 여성들. 마침내 비밀스러운 생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이들. 이주혜 작가는 문학의 언어가 얼마나 진실하게 존재의 내면에 가닿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아홉편의 소설을 통해 만나는 것이 허구의 인물들만은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지극히 문학적인 방식의 이 산책은 책을 덮은 후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 김혜진 (소설가)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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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R**a | 2022.10.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는때로는 딸, 자식을 잃은 엄마,아내, 학부모, 여성운동가, 무의식적 여성이라는 편견,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예술로 승화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 동성애 등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묶은 소설로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현실감있게 쓴 내용들이 겪지 않으면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 들이라;
리뷰제목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는
때로는 딸, 자식을 잃은 엄마,아내, 학부모, 여성운동가, 무의식적 여성이라는 편견,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예술로 승화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 동성애 등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묶은 소설로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현실감있게 쓴 내용들이 겪지 않으면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 들이라 학부모이자 주부, 직장인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이번 Zoom 북토크에서 이주혜작가님 현재 장편소설을 연재 중이신데 출간을 할 수 있다고 하셔서 듀근듀근 기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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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들을 읽고 기억에 남은 문장과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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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할 일>
아버지의 소원대로 어머니가 넷째 동생을 낳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자매는 늘 짝을 맞춰줄 겨울을 찾아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인형이 겨울이가 되기도 했고 아버지가 어디서 얻어 온 겅아지가 한동안 겨울이로 불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끼는 마당의 모란꽃이 피면 겨울아, 인사했고 태풍이 불 때마다 덜컹거리며 저절로 열리곤 했던 문짝을 향해서도 겨울아, 했다. P21

**넷째 동생 겨울이의 그리움과 미움이 공존하는 소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남아선호사상으로 아들 낳지 못한 여성의 설움과 아들과 차별로 상처받은 여아들의 이야기는 짠하다.

<아무도 없는 집>
규는 그때 알았다. 하나의 우주가 이렇게 요란하게 폭발하는구나. 짐을 들고 현관에 서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마음에 담아두기라도 하겠다는 듯 한동안 집 안을 눈으로 훑었다. 원이 없는 집. 녕의 마음이 떠난 집. 어쩌면 이 집을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규 자신일 것이다. P61

**아들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이의 탄생은 여성의 희생이 따라야 하고 아이의 죽음은 엄마의 문제로 화살을 향한다. 육아는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님에도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여름 감기>
지구의 자전 방향을 거슬러 걷고 싶었다. 발끝에 힘을 주어 걸으면 지구가 도는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을 거슬러 아내가 제이를 모르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이루었다고 자부해온 순백의 가정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P87

**아내는 후배 제이를 걱정하고 제이의 삶에 맞춰 자신의 일상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아내가 자신을 바라봐줬으면하는 마음과 제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여름 감기 앓듯 지나가 자신과의 가정만을 꾸렸으면하는데 사실 아내는 외로운거다! 나는 아내의 그 마음은 주인공 남편이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허리를 중심으로 몸통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었다면 각성 상태로 밤을 꼬박 새웠다. 시간이 묵직한 내 몸뚱이를 희롱하며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느끼며 그 밤을 겨우 통과했다. P105

아유, 왜 저러고 사냐? 그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공원을 메운 소음과 사람들의 움직임과 부유하는 공기의 흐름이 하얗게 소거되었다. 그 말은 아이와 나를 광장 한복판에 결박했다. 아니, 결박당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아이는 계속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P108

**아이들로 인해 친해졌지만 외부적으로 보이기 위한 모임은 서로 간의 쌓인 감정들을 쌓게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라 부를 수 있는지 조차 불분명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인해 병에 걸린 사람은 죄인이 된듯한 취급을 받았고 낫고 나서도 회피 대상이 되었다. 학부모 모임, 그 연대가 생각보다 탄탄하다는 것을 학부모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쓸모를 유예당한 빈 자루 같달까. 확실히 쓰레기통에 처박히지는 않았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챙김을 받은 것도 어닌, 어정쩡한 상태로 창고 한구석에 방치된 빈 자루. 그렇게 생각하니 내 몸에 너무 가혹한 비유를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P127

엄마는 아버지가 마음을 다친 거라고, 마음을 다친 사람도 몸을 다친 사람만큼이나 알뜰히 보살피고 치유해야 한다고 나와 두 남동생을 달랬다. 하지만 외가 식구들에게 돈을 빌려 생활하는 처지에 온갖 보양식과 보약을 일년이 넘도록 해다 먹여도 아버지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자 아버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마음을 다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쓸모없는 빈 자루가 되어 집 안 아무 데나 부려졌다. P131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었다. 구루미 라떼 아로니아 바로네즈 3세랍니다. P153

**알고보면 강하게 살아야만 했던 고단한 여성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이었음을 느끼는 주인공은 이런 폭력들이 차곡차곡 쌓여 여성의 모습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속을 걷는 사람들>
이거 신고 가요. 나는 괜찮아요. 나는, 정말로, 괜찮아요.
아예 허리를 굽혀 스니커즈를 신겨주는 미래의 하리나.
과거의 하리나가 신고 있던 왼쪽 운동화는 자신이 신는다. 두 사람은 다시 몸을 세우고 마주 본다. 미래의 하리나가 충동적으로 과거의 하리나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살아남아요. 꼭, 살아남아. P174

**기역. 나은. 디귿. 히읗. 주인공 이름들이 특이했는데 과거 자신을 만나는 장면은 판타지인가? 싶었다. 하지만 90년대 초 학생운동하는 여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유독 요실금, 방광염, 오줌 이라는 내용들이 많은데 여성 연대를 설명하고자 사용한 것 같다.

<꽃을 그려요>
동굴 속을 밝히는 횃불이었던 것이 주먹보다 조금 더 큰 꽃봉오리로 스르르 변한다. 세 사람의 얼굴을 들어낸 자리에 다섯개의 뾰족한 꽃잎을 위로 힘껏 밀어 올린 주먹 꽃 세송이가 피었다. P211

**세상의 비난에 오주는 벽화에 소년의 어둠을 가리기보다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게 해주었다. 소년은 물감으로 손자국을 찍은 그림들이 꽃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어둠 속에서 빛을 꺼낸 것일까.

<봄의 왈츠>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그 얼굴이 말해주었다. 씩씩하게 잘 버티는 척했지만 사실 선남은 외롭다는 것을. 아무도 필요 없다고, 간섭도 오지랖도 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선남에겐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P223

지하철역 출구 아래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봄과함께 세 여자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왈츠를 추는 기분이었다. 오래도록 참은 포옹은 달고 시원했다. P246

**참으로 특이한 가족 구성이었다. 여성 동성애 부부와 미혼모. 3명의 엄마를 둔 봄은 이름처럼 따뜻하게 자라길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을 받았었나 보다. 외부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봄을 키우면서 힘을 얻고 사랑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소설이지만 꼭 어딘가에서도 존재할 것 같았다.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나는 이곳에서의 모든 인연을 끊고 깨끗하게 서울로 탈출하고 싶었다. 그날 나는 온을 버렸다. 온이 결국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받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온에게서 직접 들었다. P277

동영상 속에는 율의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흔적도 없었다.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찍을 거야. 그러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윙크를 박제하는 거지. P282

**학창시절 친구는 시간이 지나 만나도 못만난 기간이 통째로 날아간 듯 그 때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런 친구라도 시샘, 질투가 드는데 그러한 마음이 소설에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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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자*련 | 2022.09.27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글에 나를 대입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상관없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야기는 내 것이 된다.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가려 다른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는 비평가가 아니기에 그저 작가가 원하는 바를 읽지 않아;
리뷰제목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글에 나를 대입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상관없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야기는 내 것이 된다.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가려 다른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는 비평가가 아니기에 그저 작가가 원하는 바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독서 일지도 모른다. 모든 책의 마지막에는 독자가 있으니까.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읽으면서 여성 독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소설 속 인물이 놓인 어려움이 고스란히 내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주혜는 장편소설 『자두』에서도 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림자 노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돌봄의 주체인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전히 차별적인 여성의 지위에 대해 들려준다. 첫 단편집에서 수록된 9편의 단편에서도 여성의 삶을 다룬다.

 

가족 안에서 딸, 아내, 어머니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여성의 위치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불편하다. 세 자매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치르고 모인 「오늘의 할 일」에서 자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세 딸을 둔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아들로 이어진다. 어린 동생을 향한 자매의 감정을 충분히 알 것 같은 건 오빠를 두고 아들 하나를 더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낳았다. 우리 자매에게도 남동생을 돌봄과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아들만 대우를 받았던 시대는 지났지만 많은 여성이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엄마 되기를 강요받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해부학자 ‘녕’과 결혼한 산부인과 의사 ‘규’도 다르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이기에 낙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규’는‘원’을 출산 후 엄마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집을 떠나 아프리카 난민 봉사활동에 전념한다. 친정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열여섯 ‘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 때에도 곁에 없었다. ‘원’의 죽음을 두고 ‘녕’이 ‘규’를 비난하는 건 옳은 것일까. 누가 엄마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에서 한 번 더 묻는 질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된 시점,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세 엄마의 우정이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엄마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수라 언니’,‘미예’는 엄마라는 이유로 친해졌다. 기혼 여성이 학부모로 만나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친밀 그 이상을 지닌다. 셋 역시 그러했다. 팬데믹의 상황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미예를 위로하는 자리가 코로나 확진으로 이어졌다. ‘수라 언니’의 확진으로 밀접 접촉자인 나’와 ‘미예’는 물론 가족까지 검사를 받는다. 가족 일부가 확진되고 치료를 위해 생활치료센터로 떠나거나 자가 격리를 한다. 코로나 확진의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도 쏟아진다. 아이를 키우는 고충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맘충이나 유한부인이라 비난을 받아야 했다. 3년 차인 현재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3년 전으로 돌아가면 사회 전반의 시선이 소설과 다르지 않다.

 

무엇이 자꾸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까? 우릴 자꾸 고립시키고, 왜 저러고 사나 싶게 만들고, 경멸하기 좋은 얼굴로 변모시키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압박을 가하는 이 병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재난의 한복판에서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아이를 업고 달리는 (그러나 달리지 못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걸까? 이 바이러스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120~121쪽)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가장의 역할도 맡았다.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속 주인공 ‘은정’이 그러했다. 자궁 적출을 위한 수술대 위에 오른 몸에서 유체이탈한 영혼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쓸쓸하다. 결혼하지 않은 않고 일하는 여성을 향한 온간 소문과 추문은 한결같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이주혜가 보여준 소설 속 인물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실재하기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엄마와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제시하는 「봄의 왈츠」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봄이 여자친구인 ‘나’에게 세 명의 엄마를 소개한다. 혼자 봄이를 낳은 선남, 선남의 오랜 친구 리온, 리온의 연인 미호는 모두 봄의 엄마다. 그들은 각자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무시와 학대를 받았다. 선남, 리온 , 미호는 봄의 가족으로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봄을 돌보며 봄의 엄마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전 한 어린 사람을 이 세상에 환대해주어 내가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여자들을 만나서,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봄을 한번 와락 안아주었다. (「봄의 왈츠」, 243쪽)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속 ‘나’와 ‘온’과 ‘율’도 다르지 않다. 이혼한 ‘나’가 딸인 ‘율’에게 미처 챙기지 못하고 알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나의 친구인 ‘온’이 채워준다. 과거 ‘나’와 ‘온’이 각자의 엄마에게서 받지 못하 애정과 사랑을 ‘율’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야 자신이 알지 못한 엄마의 상실과 외로움을 알게 된다.

 

이주혜의 단편집은 여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여성으로 사는 일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따뜻한 배려와 연대에 대해 말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 과거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다정한 시선, 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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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먹* | 2022.08.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작품 전반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중되는 '어머니', '딸'로서의 임무,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을 때의 핍박, 죄책감 등이 자연스레 묻어있다. 여성이 이러한 운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갈등의 요소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저자는 끊임없이 무대 위에 가부장제를 재현하여 날 것의 모습으로 올려다 놓는다. 그래서인지 단편집 속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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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반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중되는 '어머니', '딸'로서의 임무,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을 때의 핍박, 죄책감 등이 자연스레 묻어있다. 여성이 이러한 운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갈등의 요소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저자는 끊임없이 무대 위에 가부장제를 재현하여 날 것의 모습으로 올려다 놓는다. 그래서인지 단편집 속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상처 딱지 하나 정도는 달고 있는 것 같다. 나름의 방향을 찾은 인물들도 심장에 새겨진 타원오목 흉터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정말 다 재미있었는데 그중 몇가지만 꼽자면.. <여름 감기>와 <우리가 파주에 가면 날이 꼭 흐리지>, 이 두 단편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배치 순서가 좋았다고 느낀 게, <여름 감기>가 남편 '오종'의 시선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아내'와 '제이'의 연대는 거의 감춰져있다. 아내는 가부장적인 남편에 짓눌리며 사는 제이에게서 (아마도) 저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고, 종국엔 침실 한 켠까지 내어줄 정도로 기꺼이 그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그러나 오종의 시선에선 아내가 단순 동정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아마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에는 두 가정이 데칼코마니 형식으로 똑닮아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질투가 많고, 약간은 조악한(? 남편이라는 감상이었는데, 늦게 귀가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빈 식탁'을 노려보았다고 하는 부분부터.. 이 집 남편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선망, 로망만 가득한 허수아비로군, 하고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너무 올곧게 봐줬다는 생각에 분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생략된 두 여성의 연대가 이 다음의 <우리가 파주에 가면 날이 꼭 흐리지>에서 '수라', '미예', '지원'의 우정으로 연결되어 앞서 느꼈던 타들어가는 갈증을 달래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는 세 사람의 우정, 그 복잡한 내면의 구조를 이토록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음에 놀랐다. 기혼 여성으로서 맞이하는 코로나19는 어땠을까. 학교의 역할, 놀이터의 역할, 친구의 역할. 그 모든 것들이 마비되면서 집안의 여성이 감당해야 할 돌봄의 무게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거치며 자신이 '진짜 엄마'와 '좋은 아내'가 맞는지, 그 기준에서 탈락하지 않으려 아둥바둥 애쓰는 걸 보면 방향 잃은 원망만을 내지르게 된다. 실체가 너무나 두터워서 코앞의 상대만 바라보게 될 때, 모든 것의 끝에 '그럼에도, 이해는 된다'라는 말을 놓으려 해 보자. 그 얄팍한 공감마저 사라진다면 벽에는 핏자욱만 낭자할 테니까.

 

* 본 게시물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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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의 첫 단편집.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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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자*련 |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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