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7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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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40g | 128*188*30mm |
ISBN13 | 9788936438814 |
ISBN10 | 8936438816 |
포함 소설/시 2만원 이상 구매 시,〈아버지의 해방일지〉 북에코백 (포인트 차감)
발행일 | 2022년 07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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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40g | 128*188*30mm |
ISBN13 | 9788936438814 |
ISBN10 | 8936438816 |
오늘의 할 일 아무도 없는 집 여름 감기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물속을 걷는 사람들 꽃을 그려요 봄의 왈츠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해설│황정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글에 나를 대입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상관없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야기는 내 것이 된다.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가려 다른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는 비평가가 아니기에 그저 작가가 원하는 바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독서 일지도 모른다. 모든 책의 마지막에는 독자가 있으니까.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읽으면서 여성 독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소설 속 인물이 놓인 어려움이 고스란히 내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주혜는 장편소설 『자두』에서도 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림자 노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돌봄의 주체인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전히 차별적인 여성의 지위에 대해 들려준다. 첫 단편집에서 수록된 9편의 단편에서도 여성의 삶을 다룬다.
가족 안에서 딸, 아내, 어머니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여성의 위치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불편하다. 세 자매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치르고 모인 「오늘의 할 일」에서 자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세 딸을 둔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아들로 이어진다. 어린 동생을 향한 자매의 감정을 충분히 알 것 같은 건 오빠를 두고 아들 하나를 더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낳았다. 우리 자매에게도 남동생을 돌봄과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아들만 대우를 받았던 시대는 지났지만 많은 여성이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엄마 되기를 강요받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해부학자 ‘녕’과 결혼한 산부인과 의사 ‘규’도 다르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이기에 낙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규’는‘원’을 출산 후 엄마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집을 떠나 아프리카 난민 봉사활동에 전념한다. 친정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열여섯 ‘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 때에도 곁에 없었다. ‘원’의 죽음을 두고 ‘녕’이 ‘규’를 비난하는 건 옳은 것일까. 누가 엄마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에서 한 번 더 묻는 질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된 시점,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세 엄마의 우정이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엄마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수라 언니’,‘미예’는 엄마라는 이유로 친해졌다. 기혼 여성이 학부모로 만나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친밀 그 이상을 지닌다. 셋 역시 그러했다. 팬데믹의 상황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미예를 위로하는 자리가 코로나 확진으로 이어졌다. ‘수라 언니’의 확진으로 밀접 접촉자인 나’와 ‘미예’는 물론 가족까지 검사를 받는다. 가족 일부가 확진되고 치료를 위해 생활치료센터로 떠나거나 자가 격리를 한다. 코로나 확진의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도 쏟아진다. 아이를 키우는 고충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맘충이나 유한부인이라 비난을 받아야 했다. 3년 차인 현재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3년 전으로 돌아가면 사회 전반의 시선이 소설과 다르지 않다.
무엇이 자꾸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까? 우릴 자꾸 고립시키고, 왜 저러고 사나 싶게 만들고, 경멸하기 좋은 얼굴로 변모시키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압박을 가하는 이 병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재난의 한복판에서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아이를 업고 달리는 (그러나 달리지 못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걸까? 이 바이러스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120~121쪽)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가장의 역할도 맡았다.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속 주인공 ‘은정’이 그러했다. 자궁 적출을 위한 수술대 위에 오른 몸에서 유체이탈한 영혼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쓸쓸하다. 결혼하지 않은 않고 일하는 여성을 향한 온간 소문과 추문은 한결같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이주혜가 보여준 소설 속 인물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실재하기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엄마와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제시하는 「봄의 왈츠」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봄이 여자친구인 ‘나’에게 세 명의 엄마를 소개한다. 혼자 봄이를 낳은 선남, 선남의 오랜 친구 리온, 리온의 연인 미호는 모두 봄의 엄마다. 그들은 각자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무시와 학대를 받았다. 선남, 리온 , 미호는 봄의 가족으로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봄을 돌보며 봄의 엄마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전 한 어린 사람을 이 세상에 환대해주어 내가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여자들을 만나서,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봄을 한번 와락 안아주었다. (「봄의 왈츠」, 243쪽)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속 ‘나’와 ‘온’과 ‘율’도 다르지 않다. 이혼한 ‘나’가 딸인 ‘율’에게 미처 챙기지 못하고 알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나의 친구인 ‘온’이 채워준다. 과거 ‘나’와 ‘온’이 각자의 엄마에게서 받지 못하 애정과 사랑을 ‘율’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야 자신이 알지 못한 엄마의 상실과 외로움을 알게 된다.
이주혜의 단편집은 여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여성으로 사는 일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따뜻한 배려와 연대에 대해 말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 과거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다정한 시선, 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아름답다.
작품 전반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중되는 '어머니', '딸'로서의 임무,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을 때의 핍박, 죄책감 등이 자연스레 묻어있다. 여성이 이러한 운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갈등의 요소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저자는 끊임없이 무대 위에 가부장제를 재현하여 날 것의 모습으로 올려다 놓는다. 그래서인지 단편집 속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상처 딱지 하나 정도는 달고 있는 것 같다. 나름의 방향을 찾은 인물들도 심장에 새겨진 타원오목 흉터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정말 다 재미있었는데 그중 몇가지만 꼽자면.. <여름 감기>와 <우리가 파주에 가면 날이 꼭 흐리지>, 이 두 단편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배치 순서가 좋았다고 느낀 게, <여름 감기>가 남편 '오종'의 시선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아내'와 '제이'의 연대는 거의 감춰져있다. 아내는 가부장적인 남편에 짓눌리며 사는 제이에게서 (아마도) 저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고, 종국엔 침실 한 켠까지 내어줄 정도로 기꺼이 그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그러나 오종의 시선에선 아내가 단순 동정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아마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에는 두 가정이 데칼코마니 형식으로 똑닮아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질투가 많고, 약간은 조악한(? 남편이라는 감상이었는데, 늦게 귀가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빈 식탁'을 노려보았다고 하는 부분부터.. 이 집 남편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선망, 로망만 가득한 허수아비로군, 하고 삐딱하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너무 올곧게 봐줬다는 생각에 분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생략된 두 여성의 연대가 이 다음의 <우리가 파주에 가면 날이 꼭 흐리지>에서 '수라', '미예', '지원'의 우정으로 연결되어 앞서 느꼈던 타들어가는 갈증을 달래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는 세 사람의 우정, 그 복잡한 내면의 구조를 이토록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음에 놀랐다. 기혼 여성으로서 맞이하는 코로나19는 어땠을까. 학교의 역할, 놀이터의 역할, 친구의 역할. 그 모든 것들이 마비되면서 집안의 여성이 감당해야 할 돌봄의 무게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거치며 자신이 '진짜 엄마'와 '좋은 아내'가 맞는지, 그 기준에서 탈락하지 않으려 아둥바둥 애쓰는 걸 보면 방향 잃은 원망만을 내지르게 된다. 실체가 너무나 두터워서 코앞의 상대만 바라보게 될 때, 모든 것의 끝에 '그럼에도, 이해는 된다'라는 말을 놓으려 해 보자. 그 얄팍한 공감마저 사라진다면 벽에는 핏자욱만 낭자할 테니까.
* 본 게시물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