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없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이런 소박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런 본질적인 의문을 끄집어낸 것은 철학자나 사상가도 아니고, 또 과학자도 아니다.
---「머리말」중에서
〈차사본풀이〉에서는 까마귀와 뱀, 두 동물이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데 관여한다. 강림차사가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를 가지고 가다가 까마귀에게 맡긴다. 그런데 까마귀가 이를 잃어버리고 “아이 올 때 어른 와라. 어른 올 때 아이 와라.”라고 멋대로 외 치고 다니는 바람에 죽음의 순서가 뒤죽박죽되고 만다. 그리고 그 적패지를 뱀이 주워 먹으면서 뱀은 계속 허물을 벗으면서 영생을 누리는 동물로 거듭난다.
---「죽음을 전하는 뱀과 카멜레온」중에서
신이 제시한 조건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새로운 생산, 곧 출산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죽음기원신화에서 세상에 출산만 있고 죽음이 없으니 세상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혼돈에 빠지고, 그 해결책으로 어쩔 수 없이 죽음이 출현하는 양상을 보았다. 이 신화는 세상에 생명의 생산과 소멸이 공존해야 비로소 세상이 안정되게 돌아간다는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녀를 얻게 된 대가의 끝은」중에서
그런데 이 꽃밭에는 인간 수명을 옮겨놓은 꽃들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수레멸망악심꽃, 싸움싸울꽃, 웃음웃을꽃 등 인간에게 벌을 주고 고통을 내리는 꽃이 있는가 하면 뼈살이꽃, 살살이꽃, 도환생꽃 등 죽어서 육신이 해체되어 뼈만 남더라도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꽃도 자란다. 제주도 신화로 전해지는 꽃밭의 주인, 할락궁이부터 만나보자.
---「서천꽃밭,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중에서
몽골에는 뱀이 신이 내린 인간의 영생을 빼앗아가듯이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마황 등 상록수가 인간 대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신이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려고 새에게 시켜 인간에게 영생수를 갖다주게 했는데, 그것을 들고 가던 새가 실수로 어느 나무 위에 떨어뜨려 그 나무가 상록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젊음을 가져다주는 샘물」중에서
인간에게 죽음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히 사는 것을 갈망했다. 아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달을 보며 죽음 후의 재생을 꿈꾸었다. 인류 초기부터 달은 최초로 죽은 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달의 죽음은 소멸이 아닌 재생을 위한 죽음이다. 그래서 달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롤 모델이 되었다.
---「초승달이 다시 차올라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중에서
인도 신화에는 특이하게 신도 원래는 죽는 존재였으나 감로수를 얻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신화가 있다. 태초에는 신이나 악마 모두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으나 비슈누 신이 나눠준 불사의 감로수를 먹고 신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신과 사람을 구별하는 죽음」중에서
아프리카 수단 누에르족에게 전하는 신화로, 태초에는 사람들이 밧줄을 타고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왕래했다고 한다. 더구나 하늘에 올라가면 젊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늘과 땅을 이어주던 밧줄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두 공간의 왕래가 중단되었다는 내용인데, 이 때문에 죽음이 생겨난 것이다.
---「갑자기 단절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길」중에서
〈신과 함께〉라는 웹툰과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존재인 강림차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웹툰과 영화에서는 저승 가는 길을 장황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승차사는 망자를 저승에 데려다줄 뿐만 아니라 저승의 시왕들에게 심판받는 일을 도와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강림차사, 우리를 저승에 이끌다」중에서
사람이 죽으면 저승까지 인도하는 존재가 있다고 여기는데, 이들이 바로 저승차사이다. 보통 강림차사, 일직차사, 월직차사 세 명이 짝을 이뤄서 다니기에 저승 삼 차사라고도 한다. 이들은 보통 조선시대에 착용했던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입은 행색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복장이 반드시 조선시대의 차림새를 바탕에 둔 것은 아니다. 저승차사는 본래 불교의 시왕신앙에 의거해서 등장한 인물형이다.
---「저승차사는 정말 검은 갓에 검은 도포 차림일까」중에서
‘저승신에게 뇌물을 주어 죽음을 피한다.’ 이런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신화가 우리에게 있다. 그것도 지역별로 다양한 모습으로… ‘죽음의 세계로 인간을 데려가기 위해 내려오는 저승차사에게 뇌물을 써서 죽음을 막아보면 어떨까?’ 이런 황당한 사고를 담은 신화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하고 있다. 그중에서 충청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장자풀이〉를 살펴보자.
---「뇌물을 바쳐라, 너의 수명을 늘려주마」중에서
환생을 하기 위해서는 전생과 현생을 단절시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 설화에서는 주막이 그런 기능을 한다. 망각의 술을 먹여 전생의 기억을 없애야 혼란 없는 내생이 가능하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내용이 많다.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이승의 기억을 잃게 하는 ‘망각의 차’가 나온다. 저승차사는 “이 생에서 수고 많았어요. 조심히 가요. 다음 생으로.”라고 말하며 차를 건네고, 망자는 그 차를 마신다. 그리스 신화에는 레테의 강이 등장한다. 그 강물은 마시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망각의 물이다.
---「환생, 저승 다녀오겠습니다!」중에서
죽음이 생기기 이전 세상에는 오직 잠만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신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잠과 다르지 않았던 죽음이 영원한 죽음 형태로 바뀌었다. 즉, 잠으로부터 죽음이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과 죽음, 그 같음과 다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