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여성 인권과 관련해 북한은 2016년 2-4차 보고서에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과 폭력을 금지하고 있어, 여성의 인권이 증진되고 있다고 보고했지만, 여전히 여성은 성 역할의 정형화와 제한적 사회 진출, 남성 세대주 중심의 가정생활, 가사 노동과 사회 노동의 이중 부담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전히 여성은 가정 폭력과 성 착취 등 다층위 여성 폭력에 쉽게 노출되지만, 그와 같은 폭력으로부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나 보호 장치가 없는 현실을 또한 밝히고 있다. 특히 국가에 의한 여성 인권 침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탈북 여성의 강제 송환 과정에서 자행되는 강제 낙태와 신체적·성적 폭력 등 비인도적 처우였다. 여성들이 조직적인 인신매매 피해자로 고통받고 또 중국에서 가정 폭력과 성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지만, 어떠한 보호나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 p.22, 「시작하는 글」 중에서
가부장제 가족 국가의 다층위 여성 폭력 중 가정 폭력은 여성과 아동의 인권 침해 실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상화된 폭력이다. 가정 폭력은 내밀한 폭력이면서 공공연한 폭력으로, 쉬쉬하면서도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폭력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대부분 가족 환경은 가부장제 위계질서가 매우 뚜렷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마치 가족 환경은 가부장적 가장이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남자의 왕국’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가족들은 배급 제도에 의해 구조적으로 가장인 남편 또는 아빠의 부양가족으로 등록되어 경제적으로 종속된다. 또한 모든 가정사를 주도하고 다스리는 가장의 지배하에서 신체적·정서적으로도 종속된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는 가장의 지배욕은 폭력성을 수반하며 가족을 비인격화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가장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가부장적 가족 환경은 도덕적인 가정을 세워가려는 아버지의 권위, 책임 있는 행동으로 정당화한다. 좋은 가족 구성원으로 개조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교육 수단 또는 애정 표현으로 왜곡되기 일쑤이다. 그곳에서 가장의 질서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일탈적 반응이나 행동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낙인찍히고 용납받지 못한다. 이렇게 국가 폭력의 자양분을 빨며 기생하는 가정 폭력은 확실하게 그 나름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 p.56~57, 「서장 한반도 트라우마」 중에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라고만 믿어왔던 여성이, 나약하고 순종적인 존재라고만 여겨왔던 여성이, 시장 경제를 주도하며 당차고, 올차게, 여성만의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만성적인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서 ‘삼부자’ 체제의 고질적인 불안과 동요, 민심 이반으로 충격적일 정도로 허약해지고 있다. 김정은은 최고 존엄의 권위와 무소불위 권력의 영속적 확립을 위해 철옹산성 같았던 선대 시대의 전체주의 감시 통제 처벌 체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류의 유통과 소비, 마약 생산과 유통, 밀주 제조와 유통, 유언비어와 불평불만의 소비와 유통, 기독교와 민간 신앙의 유통 등 비공식적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흐름이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다. 장마당 경제의 주체 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여성 의식이 깨어나면서 정체성 또는 세계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일부 여성은 북한의 ‘여자다움’을 깨고 당차게 양성적·평등주의적 성 역할을 몸으로 실천하며 돈주(개인 기업가)로 부상했고, 북한의 사회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이렇듯 장마당을 중심으로 여성은 탄탄한 경제력을 쌓아가며 돈과 자유, 권리 등과 같은 자본주의 가치와 여성 인권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 오늘날의 북한 여성은 ‘삼부자’ 체제를 유지하고 확립하는 정치적 도구인 ‘여자다움’을 서서히 해체하며 심각한 여성 인권 침해의 잔해를 보고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 p.107, 「1장 가부장제 지배에 묶인 몸」 중에서
북한 아이 만들기 교육 과정은 철저하게 상과 벌 체계와 조직 생활을 통한 구속과 억압 등과 같이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와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지배적·종속적 환경에서 이뤄진다. 이 교육 환경은 아이의 주도성·자율성의 욕구를 거세하며 장군님의 뜻만을 복종하고 따르는 심성과 행위를 습득시키려는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갖추어진 환경이다. 5~6세 아동에게 해야만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과정은 강화 학습의 형태로 이뤄진다. 가령 아이가 어떤 행동을 취할 때마다 상벌의 보상이 주어짐으로써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떠한 행동을 취할 때 벌을 받게 되는지 몸으로 익히게 만드는 것이다. 반복적인 상과 벌의 학습을 통해 아이는 점차 북한 아이 면모를 갖추어가게 된다.
--- p.135~136, 「2장 북한 아이 ‘항상 준비!’」 중에서
‘삼부자’ 체제에서 가정은 국가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기층 조직으로 정치화되어 있다. 아내는 결혼과 함께 주민등록상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세대주 남편에게 종속된다. 한국의 결혼 등록 제도는 신고 행위를 기반으로 한 관료제이지만 북한의 결혼 등록 제도는 가족 통제 기제로서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보안서에 결혼 등록 및 출생 등록을 한 가족 구성원은 남편 혹은 아버지의 부양가족으로 세대주를 통해 배급표를 받게 된다. 세대주는 직장에서 가족 수에 따라 배급표를 받아 오고, 그 배급표가 가족의 식량을 보장하는 표지가 된다. …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세대주는 남성이다. 이와 같은 세대주 중심의 배급 제도는 가정에서 남편의 지배와 통제를 정당화하는 토대가 되었고 여성과 남성을 훨씬 더 위계화했다.
--- p.208, 「3장 결혼 생활 트라우마」 중에서
‘삼부자’ 가족 국가의 모진 가정 환경에서 불안한 부모 슬하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가 아동 학대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명한 일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아동 학대와 방임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특별하지 않다. 특히 아동에 대한 가정 교육, 학교 교육에서 신체적·정서적 책벌은 편재성을 띤다. 고분고분한 ‘착한 아이’로 키우려는 양육자의 체벌 혹은 ‘혁명의 기둥’으로 키우려는 교육자의 책벌은 사랑의 표현으로, 옳은 교육 방법으로 합법화된다. 그렇게 일상화의 폭력에 갇혀 자란 아이가 오늘날 선군 시대-핵 강국 시대 아빠 엄마 들이다. 오늘날의 아빠 엄마는 어젯날 그네들의 아빠 엄마가 그리했듯이 혁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느라 몸과 마음이 짓무른다. 특히 고질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가족의 생계까지 짊어진 엄마, 게다가 일상화의 여성 폭력에 내몰리는 엄마의 스트레스는 헤아릴 수 없다. 엄마의 신체와 마음은 거대한 짐에 눌려 아스러뜨려진다.
--- p.226, 「4장 조선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 중에서
북한은 탈북민의 길을 최고 존엄을 배신한 반혁명의 길, 반역의 길이라고 낙인찍는다. ‘고난의 행군’ 시, 탈북민 대부분은 죽기 살기로 이밥(쌀밥) 한번 배불리 먹고 싶어 두만강을 건넜다. 많은 여성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인신매매에 팔렸다. 더 나은 미래를 자녀에게 열어주고 싶어, 자유를 누리고 싶어 두만강을 건넜다. 한때 김정일은 대규모 ‘탈북민 현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탈북민은 반역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잠시 길을 벗어난 이탈자라고 말했다. 그들의 해이하고 썩어빠진 사상을 교양 개조해 당의 품에 다시 포섭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 해결을 위한 그들의 생존 분투를 역적 행위로 몰아갔다. ‘삼부자’ 체제의 참혹한 피해자들을 오히려 정치범으로 몰아가며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탈북민이 강을 넘다가 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살되고 있다. 많은 탈북민이 북송되어 ‘반역자’, ‘반동’의 수모를 겪으며 고초당하고 있다. 정치범으로 낙인찍혀 수용소로 끌려가 흔적도 없이 지워지기도 한다. 이렇듯 국가 폭력의 피해자에게 보상은커녕 적반하장으로 국가를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하는 불가사의한 북한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258~259, 「5장 두만강 기억」 중에서
2023년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탈북민은 3만 4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남쪽은 탈북민을 ‘자유 귀순 용사’로 규정하고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동시에 ‘적성국 시민’이라는 불신과 함께 무차별적 감시 통제가 시행되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탈북민 국내 입국이 급증하면서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탈북민은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라는 차별 공간에 구별되고 분리되어 있으면서 주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탈북민에 대한 ‘분에 넘치는’ 관심과 각종 복지 혜택이 오히려 구별을 심화하며 탈북민끼리만의 커뮤니티로 분리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그렇게 차별적 관심과 특혜를 받으며 ‘탈북자’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탈북민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북한 사람’에 영구적으로 갇힐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탈북민은 자기 자신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식하기보다 ‘북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북한 사람일까? 남한 사람일까?’ 갈팡질팡하는 그들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삼부자’에 대한 애정으로 정치화하기도 한다.
--- p.311~312, 「6장 ‘탈북자’에 갇힌 여성의 기억」 중에서
‘삼부자’ 체제의 포로병처럼 무력하게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왔던 탈북 여성이 어느 날부터 주체적·능동적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의 도전을 의미한다. 그녀 스스로 남한살이 하루하루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에 겨운 일이다. 가령 여기 남, 「나라에서 난생처음으로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은 탈북 여성에게, 이제껏 살아오면서 500원짜리 양말 한 짝도 스스로 골라본 경험이 별로 없는 탈북 여성에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라는 ‘선택’이 생소하고 혼란스럽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두렵기까지 하다.
--- p.332~333, 「6장 ‘탈북자’에 갇힌 여성의 기억」 중에서
북한 사람은 ‘생명을 위협’하는 지독한 전체주의 폭력 환경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일찍이 일상의 저항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는 ‘고난의 행군’ 훨씬 이전부터 공식적인 배급 공급 체계와 비공식적인 암시장 경제로 형성된 생계형 먹이 사슬이 공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구축된 공식적인 장마당 경제 체제는 바로 이러한 비공식적 암시장이라는 하부 정치의 강렬한 전주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장마당 경제 발달은 소리 소문과 유언비어, 험담하기, 비방하기, 불법의 일상화도 함께 생성하며 비공식적 사회관계 망을 넓혀가고 있다. 매일매일 일상의 저항을 주도하는 세력이 바로 여성들이다.
--- p.358, 「종장 여성과 북한 민주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