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둘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위인들의 수명과 비교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쉰이 될 때는 사십 대 후반에 사망한 시인 김수영이나 카뮈보다 더 오래 사는구나 하는 감회가 있었고, 환갑을 넘길 때에는 베토벤이나 도스토옙스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상에서 보냈다는 감회가 있었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인류에 기여한 위인들은 대체로 지금의 나만큼도 살지 못했다.
--- p.53, 「예순둘이 된다는 것」 중에서
대학에 들어갔을 때 신입생이 읽어야 할 필독도서 목록이 있었는데 늘 빠지지 않는 책이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그런데 이 책은 마르크스나 헤겔의 책과 함께 검찰이 시국사범을 검거하여 재판할 때 증거로 제시하는 책 중 하나였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이 책을 쓴 E. H. 카가 공산주의자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를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의 집적集積으로 보는 상식적인 역사관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역사는 사실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의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역사가의 가치관은 시대정신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므로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가 변함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역사는‘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관제 교과서로 고정된 역사를 배운 그 시대의 학생들에게 이런 상대적 역사관은 하나의 충격이었고 역사와 사회에 관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당시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이를 의식화의 시작으로 보았던 것 같다.
--- p.60~61, 「과거가 현재를 규정한다」 중에서
몇 년 전 서울시에서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시도한 것도 그들에게 단순히 무료급식을 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신영복 교수의 말대로,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의 이유로 살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바로 인문학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이 강좌는 1995년 미국에서 시작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강좌인 클레멘트 코스를 본뜬 것이다. 클레멘트 코스의 주창자인 얼 쇼리스의 말에 따르면 그가 위 강좌를 구상하게 된 것은 중범죄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 재소자와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빈민들이 가난과 범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오랫동안 다른 재소자들을 관찰한 결과로 얻은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하였다. “그들에게 부유한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에 데리고 다녀 주세요. 그러면 그들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 p.70~71, 「가난한 사람들의 인문학」 중에서
서울에 볼일이 있어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만 원을 주고 가방에 쏙 들어가는 예쁜 우산을 샀다. 점심을 먹고 건물의 1층에 있는 은행 앞 ATM기에서 송금을 하느라고 끙끙대는 사이에 뒤의 의자에 두었던 우산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서울 사람들은 손이 참 빠르다.
저녁에 일을 다 보고 다시 육천 원을 주고 지하슈퍼에서 우산 하나를 샀다.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렸는데 비가 오고 있어 보니 우산을 열차에 두고 내렸다. 다시 동대구역 매점에서 오천 원을 주고 또 하나 샀다. 집 앞 맥줏집에서 생맥주를 한잔 하면서 계속 우산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다시 살 일이 없겠지.
하루에 우산을 세 번씩이나 사는 건 참 기이한 일인데, 나를 잠깐씩 스쳐간 우산들을 생각하면서 큰고모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데 있어도 있고, 누가 써도 쓴다마!”
--- p.124, 「큰고모」 중에서
차를 몰지 않고 육류 섭취를 줄이는 행동이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적응이 되고 습관이 되니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아졌다. 걸어 다니면 늘 다니면서도 보지 못하던 곳을 보게 되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과 뜻밖에 부딪히게 된다. 고기도 오래 먹지 않으니 몸이 요구하지 않게 된다. 고통받다 죽은 동물의 시체를 적게 섭취하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느낌이다. 이제는 정육점에 걸린 붉은 살코기를 보면 불쾌한 마음이 들고 SNS에서도 붉은 살점을 뜯어먹는 것을 자랑처럼 자주 게시하는 사람들을 꺼리게 되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온실가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축산 육류에 관하여는 별 말이 없다. 인류가 발전한 것은 아직 세상에 없는 후세들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줄일 줄 알았기 때문이리라.
--- p.131, 「동물을 먹는다는 것」 중에서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룬 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권력의 의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회를 그리워하고, 이와 다른 생각과 행동은 모두 불온한 것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우리는 세상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생각이 서로 존중받으면서 대화와 설득을 통하여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군사정권 아래서 배우고 인격을 형성한 우리 세대가 모두 물러나고 난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
--- p.164, 「내 마음속의 파시즘」 중에서
법정은 신성하고 공평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법정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법관이 판단하는 대상은 보통 사람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생활관계이며, 이것을 무결점의 진공 상태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 찌든 평균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오늘날 법관에게 부족한 것은 좋은 머리나 법률적인 지식이 아니라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의 팍팍한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좋은 법관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고독한 수도승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몸담고 살아가면서 세속적인 욕망에 고민하고 회의하는 생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창수 대법관은 취임사에서 법관으로서의 임무에 관하여 말하면서 “사건마다 그 배후에 놓인 생활관계의 속살을 생생하게 직관할 수 있도록 정신의 탄력을 잃지 말고, 상상력과 감수성을 예리하게 연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 p.193, 「세상 속에서의 법원」 중에서
검사도 실수할 때가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일반 공무원들과는 달리 검사는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데에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는 가을 서리같이 매서운 검찰이 자기 식구들의 잘못에는 봄바람처럼 부드럽다면 누가 검찰이 정의롭다고 할 것인가.
검찰이 기소했지만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경우에 담당 검사의 과실이 있는지를 심사하여 근무평정에 반영하는 무죄평정제도가 있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검사의 과실이 인정된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기소된 개인이 무죄의 확정판결을 받기까지는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난 고통을 겪고 기업이 도산하는 경우까지 흔히 보지만,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는 대부분 법적 책임은 고사하고 근무평정에서의 불이익조차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권력은 남용되고 오용되기 마련이다. 지금 일부 정치검사들이 보이는 오만과 독선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잘못을 저지른 검사 개개인의 형사적·민사적 책임을 놓치지 않고 엄하게 추궁하는 제도와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검찰의 횡포를 막기는 어렵다.
--- p.250, 「책임지지 않는 권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