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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

사냥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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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88g | 140*225*30mm
ISBN13 9788960902688
ISBN10 8960902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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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서른하나는 분명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 일단 시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운동선수에게 제일 먼저 신호를 알리는 게 다리라면 전투기 조종사에게는 눈이다. 극한의 범위에서 전투기를 식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해도 얼마간은 손도 흔들림이 없고 판단력도 좋을 수 있다. (…) 그러나 종국에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되고 만다. 더욱이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무겁게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때 함부로 써버린 내일을 이제는 하루하루 손꼽아 세게 된 것이다.
--- p.21~22

한국의 해안을 지난 것은 정오가 가까웠을 때였다. 클리브는 수송기 날개 밑에 앉아 초조하게 밖을 내다보았다. (…) 객실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고개를 뺀 채 깨끗한 겨울 하늘 아래 잔해처럼 고요하게 펼쳐진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쟁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은 많지 않았다. 보드라운 눈밭이 시야 닿는 곳마다 흩뿌려진 가운데 강물이 정맥처럼 흐르고 있었지만 클리브가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어머니 대지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조종사의 눈이었다. 적대적인 산줄기며 랜드마크가 없는 지형, 위급한 상황에서 불시착할 수 있는 평평한 땅이 그의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가 불과 한 시간 만에 날아온 거리를 보병들은 몇 주에 걸쳐 사투를 벌이며 걸어왔을 것이다.
--- p.29~30

애벗은 한때 유럽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세월은 과거의 영웅에게도 거스를 수 없는 흔적을 남겨놓았다. 살도 찌고 늙은 데다 어쩐지 억지로 달려온 길 어딘가에 서 있는 인상을 주었다. 비행단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임무를 중도에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가 모는 비행기는 매번 결함이 생겼고, 그가 임무를 완수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도 그나마 비행이 가장 쉬울 때뿐이었다.
--- p.38

“똑똑하게 처신하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해. 어떤 놈과 마주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모자라는 놈도 많지만 케이시 같은 자를 딱 맞닥뜨릴 수도 있지.”
“누구?”
“케이시 존스.”
“그게 누군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데즈먼드가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난 처음 들어. 러시아의 챔피언이야”
“정확히 누군지는 나도 몰라. 까만 줄이 그어진 비행기를 모는데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띄지. 이밀 대령님께 나중에 한번 여쭤봐. 신나서 말씀해주실 거야. 전부 다 믿지는 말고. 언젠가 대령님이 기관포를 세 군데나 맞고 귀환한 일이 있는데,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었어. 조종석 바로 앞으로 구멍이 뻥 뚫렸는데 머리통 하나가 드나들 만큼 커다랬지. 날개에도 그만한 구멍이 두 개나 더 나 있었어. 케이시 짓이었지. 사람들 말로는 케이시랑 대령님이 20분 남짓 교전을 벌였다는데 정작 대령님은 기관총 한번 제대로 못 쏴보고 돌아왔다는 거 아냐. 대령님이 조종석에서 내리는데 꼭 심장마비에 걸린 사람 같더라니까. 진짜야.”
--- p.52

“여기 또 오면 안 돼, 버트.” 클리브가 말했다. 그들은 삶과 죽음 사이, 존재의 고원에 있었다.
“왜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이니까.”
“어느 면에선 그렇죠.”
(…)
“자네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이곳의 모든 것은 완벽해야 하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우리는 다시없이 순수한 이곳에 왔어. 순수하다는 건 어찌 보면 인위적이라는 뜻도 되네. 우리가 그만큼 문명화되었으니까. 아주 깨끗한 공간에서 중세의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의 꿈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어른의 천국이기도 하지. 유일무이한 그 무엇, 실은 그게 뭔지 나도 잘 모르지만, 여하튼 그 소중한 것의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을 우리가 지금 몰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그건 심지어 왕에게도 너무 사치스러운 소일거리지.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네. 하지만 그것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자가 영웅이야.”
--- p.158~159

그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았다. 고통을 너무 오래 견뎌온 탓이었다. 고통은 그의 살갗에 새겨진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그는 괴롭지 않았다. 만족해서가 아니라 마침내 무감각 속으로 빠져든 것이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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