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강력추천
공유하기

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08이동
리뷰 총점8.4 리뷰 24건 | 판매지수 684
베스트
장르소설 top100 1주
정가
12,000
판매가
10,800 (10% 할인)
YES포인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이 상품의 수상내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MD의 구매리스트
더뮤지컬 미니 에디션 1월호
〈부서진 대지〉 3부작 완결 『석조 하늘』 출간!
작은 출판사 응원 프로젝트 <중쇄를 찍게 하자!>
1월 전사
현대카드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2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543쪽 | 827g | 160*240*35mm
ISBN13 9788982735622
ISBN10 8982735623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탐구가 만들어낸 SF의 명저
구 문학계에서 '만약 SF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는 어슐러 K. 르 귄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문학성이 뛰어난 르귄의 장편 SF소설. <어둠의 왼손>과 함께 헤인 시리즈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소설이다. 1975년에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했다. 꼼꼼하고 성실한 번역이 눈에 띈다.

쌍둥이 행성인 우라스와 아나레스는 서로 상반된 체제 아래 유지되고 있었다. 200년 전 우라스의 빈부 격차와 남녀차별에 반기를 든 혁명가 오도에 의해 시작된 아나레스의 아나키즘 실험은, '평등하고 모순되지 않는 사회'라는 목표를 지향하며 계속되고 있었던 것.

그러나 관료체계와 집단주의에 의해 유지되던 아레스는 한계 상황에 이르고, '자발적 조직'이라는 단체의 주도 아래 물리학자인 쉐벡이 두 행성의 교류와 발전을 위해 우라스로 향한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우라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국가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다른 음모였다.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헤인 인은 전 우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류 전체의 조상이다. 몇 만 년 전, 혹은 몇 백만 년 전... 정확히 언제부터 문명을 일구고 우주를 여행하며 식민지를 개척했는가 하는 점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아득한 과거 어느 땡니가 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아 전 우주로 퍼져나갔다. 테라,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역시 그런 식민지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당시 그들에게는 광속보다 빨리 상호 소통을 가능케 할 통신 수단이 없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민지 상호간에 연락은 끊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헤인을 잊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행성의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혹은 자연적인 변화가 아니라 헤인 인의 실험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예를 들어 <어둠의 왼손>의 배경이 되는 겨울 행성 게센에서 인류는 더 이상 양쪽 성을 갖춘 생명체가 아니며 상대에 따라 여성 혹은 남성으로 변하는 종족이다. 또 행성 로캐넌에서는 분명 인간처럼 보이지만 날개가 달린 종족이나, 중세 유럽의 전솔 속에 등장할 법한 난장이 요정들도 듲아한다.

그렇게 각 행성이 따로 고립되고 긴 세월이 흐른 후, 헤인 인은 다시 우주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옛 식민지를 찾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다. 이 때 테라(지구) 역시 헤인과 맞닿뜨렸다. <빼앗긴 자들>에 등장하는 테라 인 외교 대사의 입을 빌리면, 당시 테라는 전쟁과 환경 파괴로 끔찍한 고갈 상태에 있었고, 헤인의 도움을 받아 우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헤인과 테라는 손을 잡고 함께 다른 행성들을 찾아다니며 전 우주에 평화로운 연합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우주선과 통신 수단이 광속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각 행성이 서로의 존재를 안다고는 해도 연합이 결성되기에는 장애가 많았다. 이런 상황은 세티 항성계에서 마침내 광속을 뛰어넘는 통신 수단인 <앤서블>이 발명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헤인의 작품 세계 중에 이 시기를 명확하게 그린 소설은 없으나 앤서블의 발명 이후 헤인과 테라를 중심으로 <아홉 개의 알려진 세계> 사이에 우호적인 우주 연합이 성립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적>이 나타났다.

이 <적>에 대해 분명한 설명은 없다. <로캐넌의 세계> 같은 경우에 평화로운 연합이 적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음을 잠깐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로캐넌의 세계>에서는 분명 어떤 전투에 대한 언급이 있고, <유배 행성>에는 고향 행성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에 고립되어 버린 외계인들 사이에, 먼 옛날 언젠가 있었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지만, 그들이 우주선과 앤서블을 잃고 다른 행성에 유배되어 있다는 점을 빼면 정확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헤인이 아무런 조건도, 제약도 없이 만나는 행성마다 자신들의 문명과 기술, 우주선을 제공했으며 철저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온한 반란자들이었다는 설도 있고, 외 우주로부터 온 적 같은 것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 혹은 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에 따라 헤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각 행성들간의 소통은 끊어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600여 년 후, <적>은 사라지고 헤인은 다시 우주를 탐사해 나가며 새롱누 연합을 결성하려 한다. 이 시기에는 새로이 탐사와 연합을 주도하는 행성 <에커먼>이 등장하며, <어둠의 왼손>에서 겨울 행성 게센과 동맹을 맺기 위해 파견된 대사 겐리 아이는 에커먼 인이다. 단편집 <세계의 탄생일>에는 에커먼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도 몇 편 수록되어 있다.

헤인 시리즈란 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세계관과 배경을 공유하면서 각기 다른 세계와 시대, 인물과 이야기를 다루는 일련의 장 단편 소설을 일컫는다. 이 시리즈는 1966년, 르귄의 첫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한 <로캐넌의 세계>를 시작으로 하여 가장 최근에 발표한 단편집 <세계의 탄생일 The Birtheday of the World >에 이르기까지 어슐러 르귄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르귄은 이 헤인 시리즈로 SF 문단 최고의 상이라 할 수 있는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합이 일곱 차례나 수상하기도 했다.

사실 헤인 시리즈에 속하는 어느 작품도 헤인 인이나 헤인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각 소설은 로캐넌, 게센, 에큐멘, 웨렐 등의 각기 다른 행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대개 다른 행성과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 사고 방식이 다른 사람들 간의 충돌과 이해를 주로 다룬다. 줄거리 속에서 헤인과 우주 연합의 역사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언급만 있을 뿐이고, 때로는 이 소설에서 이야기된 바와 저 소설에서의 언급 사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득한 선사시대에 대한 기억은 종종 잊혀지고, 왜곡되고, 전설로 바뀌며 같은 사건이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설정이야말로 소설에 한층 현실적인 배경을 부여한다고 하겠다.

<어둠의 왼손>과 함께 헤인 시리즈 최고의 장편으로 손꼽히는 본서는 헤인과 테라가 우주 연합의 결성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 세티 항성계의 대조적인 쌍둥이 행성 우라스와 아나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주 연합을 가능케 한 앤서블의 이론적 아버지인 주인공 쉐벡은 고향 아나레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지되어 있던 우라스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현명하게 관리하고 있는 우라스는 우리의 눈에 낙원이나 다름없는 행성이지만, 쉐벡의 여정은 이런 낙원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오도니안 사상(이는 작가 본인도 말했다시피 아나키즘의 변용이다)에 기반하고 있는 행성 아나레스는 환경은 황폐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진정한 평등과 자유를 실현한 또 다른 유토피아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달이자 그림자인 이 두 행성의 설정은 본서가 출간된 시기가 히피 문화와 반전 운동, 아나키즘의 부흥이 일어난 1970년대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자유와 평등, 진정한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소설 속의 질문 역시 그와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내용상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헤인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본서에 잠시 등장하는 헤인 인 케토가 1966년에 나온 첫번째 헤인 시리즈 <로캐넌의 세계>에서도 얼굴을 내민 인물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다.
- 이수현
벽이 있었다. 그렇게 중요해 보이는 벽은 아니었다. 다듬지 않은 돌에 대충 모르타르만 발라 쌓은 벽이었다. 어른 키에는 미치지 못하고 어린아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는 정도 높이에, 문이 나 있기는 하지만 구색만 갖춘 것일 뿐, 그 벽은 벽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선, 하나의 경계선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실재였고 중요했다. 일곱 세대에 걸쳐 그 세계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벽이 다 그렇듯 그 벽도 양면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안이고 어느 쪽이 밖인가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었다. 한쪽에서 보면 벽은 아나레스 우주항이라고 하는 60에이커짜리 황야지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안에는 커다란 캔트리(미사일이나 로켓의 조립, 조작용 작업탑-옮긴이) 크레인 몇 대와 로켓 착륙대 하나, 창고 세 채와 트럭 차고 하나, 그리고 숙소 한 채가 있었다. 튼튼해 보이는 숙소는 때묻고 음침한 데다 정원도 아이들도 없었다. 아무도 살지 않았거나, 살았더라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사실상 격리였다. 벽은 착륙지만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내려오는 우주선들을, 그리고 우주선에 타고 오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보낸 세계를, 나머지 우주 전체를 차단했다. 그 벽은 아나레스를 바깥에 남겨둔 채 전 우주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 7~8

회원리뷰 (24건) 리뷰 총점8.4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빼앗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q******f | 2020.09.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아무도 살지 않았거나, 살았더라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사실상 격리였다. 벽은 착륙지만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내려오는 우주선들을, 그리고 우주선에 타고 오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보낸 세계를, 나머지 우주 전체를 차단했다.공상 과학소설인줄 알았는데 단순한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잘 쓰여진 소설이다.;
리뷰제목

아무도 살지 않았거나, 살았더라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사실상 격리였다. 벽은 착륙지만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내려오는 우주선들을, 그리고 우주선에 타고 오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보낸 세계를, 나머지 우주 전체를 차단했다.

공상 과학소설인줄 알았는데 단순한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잘 쓰여진 소설이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구매 [빼앗긴 자들] 현실에 기반을 둔 SF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c*******0 | 2020.04.0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행성. 정치 체계가 서로 상반됐다. 현실에 바탕을 둔 에스에프인데, 세계관이 정말 세밀하고 인물들도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어느 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두 행성을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슐러 르 귄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사 두었다. <어둠의 왼손>을 읽는 중인데 그것보다 나는 이 책이;
리뷰제목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행성. 정치 체계가 서로 상반됐다. 현실에 바탕을 둔 에스에프인데, 세계관이 정말 세밀하고 인물들도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어느 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두 행성을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슐러 르 귄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사 두었다. <어둠의 왼손>을 읽는 중인데 그것보다 나는 이 책이 더 좋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파워문화리뷰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게* | 2020.01.23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이 소설은 상당히 사회 정치적인 소설입니다. 훌륭한 SF 들이 그렇듯이 르귄의 소설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사고 실험을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없습니다. 완전히 대립되는 사회 시스템을 가진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있습 니다. 그들은 서로의 달을 지켜보며, 그 달의 세계는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제됩니다;
리뷰제목

이 소설은 상당히 사회 정치적인 소설입니다. 훌륭한 SF 들이 그렇듯이 르귄의 소설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사고 실험을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없습니다. 완전히 대립되는 사회 시스템을 가진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있습 니다. 그들은 서로의 달을 지켜보며, 그 달의 세계는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제됩니다. 생각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두 행성은 200년전부터 착취적 무역을 제외하고는 서로의 왕래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냉전중이었던 70년대 미국과 소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스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대편의 시스템이 형편없다고, 여기가 낙원이라고 학습되었습니다. 한 체제가 변했던 건 지구라는 단위의 피할 수 없는 연결, 영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에서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들이 있을까요. 일부는 아직도 그들의 배고픈 세계가 낙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을 우상화하고 관료체제를 이상화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미 혁명은 실패한 것이지요. 착취자는 자본가에서 관료로 이동했을 뿐 더 큰 권력이 민중의 삶을 흔들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자본과 소유가 주는 윤택함까지 빼앗기고 그 윤택함에 오염될까 폐쇄된 사회에 유폐된 그들의 사회가 우리 눈엔 디스토피아로 보입니다. 이렇게 스탈린식의 무력 통치 체제는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가장 대표적이죠.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거기에 이슬람적 극단적 여성 차별주의가 결합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슐러 K 르 귄은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선/악 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합니다.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추구하는 사회는 극단적 아나키즘과 극단적 자본주의를 닮아 있지만, 그 두 개의 사회가 지향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앞에서 본 디스토피아들과는 다릅니다. 각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단지 좋다 나보다로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층위의 속성들이 존재합니다. 오도니즘이라 불리는 아나키즘은 아나레스의 황폐하고 삭막한 행성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오도니즘은 말하자면, 공산주의 체계의 통찰을 제시한 마르크스의 이념을 맑시즘이라 일컫는 것처럼, 아나키즘의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쌓고 실천적 삶을 살아간 여성 혁명가 오노의 이름을 딴 사상입니다. 실제 아나레스라는 자신의 이상이 실현된 사회를 보지 못했지만 후대의 세대들은 그의 사상을 쌍둥이 행성에 집단 이주하여 그들만의 '낙원'을 건설함으로써 오도의 사상을 실천한 '유토피아'를 실현합니다.

이론적으로 오도니즘은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도 아름다운 사회이듯이요. 공산주의에 부패한 관료와 학살을 취미로 삼는 전제 정권이 마치 필요충분처럼 따라다니지만, 오도니즘에는 소유도 권력도 정권도 법률도 그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오도니즘의 이상에 부합하도록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소유격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의 이름이 주민번호처럼 유일합니다. 이름은 중앙컴퓨터에 의해 주어지고, 그 이름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남녀 구분 없는 이름을 받고, 똑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제도라는 것이 없으니 결혼도 없습니다. 섹스는 남녀 남남 여여 등 자유로우며, 두 사람이 서로 함께 살기로 하면 반려가 됩니다. 반려 관계는 단지 둘 사이의 관계로 아무 제약없이 언제든 깨질 수 있습니다. 일은 PDC라고 불리우는 중앙통제 센터의 컴퓨터에 의해 할당받습니다. 자기가 원하면 승낙하고 원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유지될까요? 죄를 규정하고 심판하는 법률과 제도가 없다면, 어떻게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러한 사회가 가능이나 할까요? 이렇게 많은 질문에 대해 르귄은 매우 상세하게 이러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설계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회가, 조직이 혹은 그룹이 그들 범죄자들을 자연적으로 축출해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강간을 저지른다면 그는 마을 사람들 중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혹은 집단에게 맞습니다. 그래서 범죄자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소'라는 곳에 유치시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이 소유를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도둑질이나 사기 같은 것은 범죄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옷창고에 가면 옷이 있고, 식사는 공동체에서 제공합니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명 생활을 하기 위한 모든 노동활동은 디브랩이라는 중앙할당 기관의 컴퓨터가 할당하고 힘든 일은 자원하거나, 1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순번제로 배당됩니다. 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함께 살지 못하게 되지만 말이죠.

물리학자인 쉐벡은 오도니즘의 사상에 조금의 의심도 없는 시스템에 충성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외롭습니다. 그의 이론을 이해하는 유일한 노학자는 노쇠했고, 그가 몸담은 중앙연구센터에서는 그의 동시성 이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를 발탁해서 중앙연구소에 데려온 사불은 정부도, 권력구조도 없는 이 아나키스트 사회 시스템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뻔뻔하게 우라스에서 몇십년전 출간된 논문을 표절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나레스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고, 쉐벡을 자신의 소유처럼 만들어 그의 아이디어와 이론을 훔칩니다. 쉐벡이 저항하자 그를 내칩니다. 권력 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이곳 중앙연구소에서 사불은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권력 구조가 없는 사회에서 그는 어떻게 그 권력을 획득했을까요. 그의 권력은 공공의 견해라는 인간 정신의 비겁함에서 힘을 얻는 것이라고 쉐벡의 친구는 데세르는 단언합니다. 그 공공의 견해는 개인의 정신을 억압함으로써 오도니안 사회를 지배하는, 공인된 적도, 용인될 수도 없는 정부입니다.

상호의존과 자발성에 기반한 사회는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아나레스 행성에서 물질적 결핍보다 더 큰 결핍은 그 사회 전체에 만연된 폐쇄적이고도 일관적인 배타성입니다. 친구의 영향과 중앙연구소의 관료주의를 겪으며 그는 서서히 깨달아 갑니다. 오도와 그의 이념을 따른 초기 이민자들이 세운 생각의 벽에 아나레스 전체가 매몰되어 있다고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원했던 오도의 저작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여 읽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애초 오도가 이상화했던 사상과 완전히 대치된다는 것을요.

사불에게 밉보인 쉐벡의 동시성 이론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불 역시 그의 새로운 이론이 비실용적이라고 출판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쉐벡의 반려는 그를 사불과 공동저자로 하도록 설득합니다. 설전끝에 논문은 사불의 칼날로 누더기가 된 채로, 사불의 이름과 함께 출간됩니다. 이 누더기 논문은 우라스 행성의 학계에 보내는데, 쉐벡은 손상되지 않은 원본을 필사하여 자신과 편지로 의견을 교환했던 우라스의 과학자 아**에게 보냅니다.

대기근 동안 사랑하는 반려와 갓 태어난 딸과 헤어지는 시련은 결속에 의해 지탱되는 이 사회에 대한 그의 시각에 영향을 줍니다. 그들의 자유,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원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 거부할 자유, 이 모든 자유들이 실상은 인간 결속과 상호 협력에 기반한 오도니즘 사상이 뿌리박힌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발성의 원천이 자발적 거부로 인한 피해, 혹은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자발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기근으로 인한 약 두 달간의 자원 요청에 응할 때만 해도, 그는 굳건히 믿고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딸과 반려 타크베르와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 하고, 멀리 떠나야 하는 일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라고요. 거부할 수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요.

"생존하기 위해, 삶이 계속되게 하기 위해 아나레스 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어디에라도 달려가 필요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습니다. 대기근으로 인한 인원감축에서 사불의 영향력은 쉐벡을 밀어냈고, 반려는 또다른 자원을 위해 행성의 반대편으로 떠났습니다. 남겨진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라고요. 쉐벡은 절망합니다. 반려가 있는 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습니다.

눈물나게 절절한 이별과 아픈 재회의 장면은 아름다울 만큼 가슴아픈 닥터지바고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만 헤어져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잠시의 일을 끝내고 왔을땐 반려가 떠난 후였습니다. 왜! 어째서 광속의 우주 여행이 가능한 시대에 아무리 낯선 행성의 털북숭이 인간이라고 하나,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커녕 유선 전화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이별은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게 행동하는 개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 그러한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사회규범과 만나 강제되고 있었다는 걸 참담한 이별의 끝에서 깨닫게 됩니다.

"탓할 사람은 없었다. 그 점이 최악이었다. 타크베르가 필요했던 것이다. 굶주림을 막는 일에…… 그녀의, 그의, 사딕의 굶주림을 막는 일에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는 그들의 적이 아니었다. 그들을 위한 것,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사회가 곧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포기했고 사랑과 아이까지 포기했다.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포기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쉐벡은 서서히 아나레스 행성이 스스로를 가둔 벽을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그 벽을 부수기로 작정합니다.
"억압해 눌러서 아이디어를 으깰 수는 없어. 무시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지.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변화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하고 있는 짓이 바로 그거란 말이야!"

그들은 개인의 행동을 비판할 때 '소유주의자'라는 말을 일종의 욕처럼 씁니다. 인공 언어인 그들의 언어에는 욕이 없습니다. 소유주의자, 착취자, 그들의 언어가 부정적일 때는 늘 우라스 사회의 특성들을 향해 있습니다. 혁명이란, 진정한 오도니즘은 타성을 깨고 현재 상태를 전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쉐벡은 그렇게 믿습니다. 그와 그의 반려 그리고 몇 안되는 자발적 '조직'은 소외되고 무시됩니다. 같은 종족이지만 대이주 이후 8(확인)백년간 한 번도 상호 접촉이 없었던 두 행성의 주민이 처음으로 벽을 깨고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도착합니다. 아나레스의 달, 200여년 전 갈라져나온 아나레스의 착취자들이 여전히 소유를 위해 인간을 착취하는 야만적인 곳,

우주선 승선부터 쉐백은 넘쳐나는 물질, 포근하고 부드러운 잠자리와 의류, 매끌매끌하고 반짝거리는 벽을 비롯한 그 모든 풍요로움에 큰 충격을 받습 니다. 이 소설은 아나레스와 우레스를 교차하며 쉐벡의 삶과 의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우라스와 아나레스 사이를 왕복하는 화물 우주선에 승선하여 우라스로 향하는 장면이 처음 장면입니다. 이질적인 환경과 문화에 처음으로 접한 후 불안하고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상을 내리고, 연구직을 주고 하인이 딸린 호화로운 방을 내주고 환대하는 과학자들과 지내면서, 점차 자신이 이곳의 모순, 책에서만 보았던 호화로운 물질 세계의 허망함과 착취자들의 모습 속에 자신이 갇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동시성 이론과 연속성 이론을 합쳐 새로운 일반 시간 이론을 완성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착취자들의 나라에 호락호락 그 이론을 풀어놓지는 않습니다. 그의 일반 시간 이론은 앞으로 헤인 시리즈의 주요 기기인 앤서블을 완성할 혁신적인 이론입니다. 이것을 손에 쥐는 자가 우주를 재패할 것입니다. 그를 초청한 나라는 누가 봐도 북미를 모델로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게다가 그 나라는 오도니즘의 사상을 잇는 탄압받는 민중의 평화적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쿠테타 정권이 지배하는 벤빌리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쉐벡은 분노합니다.

“당신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당신네 보잘 것 없는 ‘법률’과 총이나 폭탄의 ‘힘’을 엔트로피의 법칙이나 중력의 힘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까? 그보다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요.”

“전체를 볼 수 있으면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행성, 삶……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돌멩이가 보이겠지. 그리고 매일 매일 삶은 힘겨운 일이고, 당신은 지치고 패턴을 잃어버리지. 거리가, 간격이 필요한 거야.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달로 보면 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죽음이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보는 거야.”

“시간의 흐름이 인간 의식의 산물이라면, 과거와 미래는 마음의 기능이다. 선(先) 연속성론자, 케렘초 가라사대.”

"오도가 쓰기를 ‘소유의 죄의식과 경제적 경쟁의 짐에서 벗어난 아이는, 필요한 일을 하려는 의지와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능력을 지니고 자라날 것이다."

댓글 0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9.4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추천합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q******f | 2020.09.30
구매 평점5점
우리 현실을 잘 보여주는 SF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c*******0 | 2020.04.08
평점4점
르 귄,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도저한 철학과 상상력.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게 추천.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b*******e | 2018.05.22

이 책이 담긴 명사의 서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0,8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