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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역사

벌들의 역사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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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08쪽 | 734g | 130*205*35mm
ISBN13 9788972758020
ISBN10 8972758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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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려 북쪽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끝을 볼 수 없이 수많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과거에 사람들이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관광객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읽었다. 모두 내겐 생소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은 봄이 되어 날씨가 좋아지면 자연을 보고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선다고 했다. 꽃이 활짝 핀 과일나무들을 보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다. 그들의 눈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을까? 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꽃이 핀 과일나무들은 내겐 노동의 의미로 다가올 뿐인데…… 나무 한 그루는 수십 시간의 일을 의미했다. 나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을 볼 때마다 곧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꽃가루를 발라야 한다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과일나무들은 하루 온종일, 몇 달, 혹은 몇 년의 일거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무성한 과일나무 아래로 소풍을 나왔다. 그건 내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타오」중에서

아무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나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양봉인이 벌통을 잘 간수하고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해켄버그라는 자가 자신이 키우는 벌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그간 자신의 잘못은 모르는 채 남 탓만 하는 양봉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해마다 결과가 나쁘게 나올 때면 날씨가 유난히 더웠다거나 또는 추웠다고 입을 모았고, 때로는 꽃가루에 당분이 부족하다고도 했다. 솔직히 우리가 하는 일은 천체물리학처럼 어려운 일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벌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양봉인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자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지」중에서

스바메르담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불쌍한 스바메르담이 벌에 대한 연구를 끝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는 벌을 연구하다 결국 종교적 사색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벌의 완벽함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구를 하는 중에도 오직 신만이 완벽한 존재라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었고, 그의 연구와 사랑과 열정도 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신에게로 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벌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 세상에는 벌보다 더 완벽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는 신마저도 벌에 비길 수 없다는 생각조차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가 벌을 연구하기 위해 퍼부었던 5년이라는 시간은 그를 평생 망치게 된 계기가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청중들에게 도저히 이런 이야기까지 꺼낼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는 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전지전능한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마을 사람들의 경멸과 증오를 한 몸에 받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원고를 접었다. 내 얼굴은 수치심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연단을 내려오는 나는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내가 그 누구에게보다도 더 큰 감명을 주고 싶었던 람 교수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내 아버지를 연상시켰다. 피를 나눈 내 아버지.
---「윌리엄」중에서

마침내 벌들을 새집으로 모두 옮겼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흡족하게 벌들을 바라보았다. 새 벌통을 평가하는 것은 벌들의 몫이다. 벌들이 만족하게 받아들인다면 이제 새 벌통은 그들의 새 보금자리가 된다.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벌들이 여왕벌을 찾아 헤매며 낡은 벌통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낡은 벌통을 태워버리기 위해 외바퀴 수레에 얹었다. 머지않아 내게도 성공이 찾아오리라.
---「윌리엄」중에서

“왜 그러셨어요?” 톰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톰을 쳐다보았다.
“뭐가? 무슨 말이니?”
“왜 벌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시는 거죠?”
“뭐라고?”
“벌들 말이에요.” 톰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벌통을 세 개나 잃었어요. 그 벌통 안에 살던 벌들이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잖아요.” 톰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두 눈도 따라서 커졌다. 그는 무언가 잡을 것을 찾는 듯 두 팔을 가슴께로 올려 팔짱을 꼈다. “벌통을 트럭에 실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 그러면 벌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긴 아시나요?”
나는 아이의 심각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입술에 머금었던 미소를 웃음소리로 만들어보려 했지만, 목구멍을 빠져나온 웃음소리는 가식적이기 그지없었다.
---「조지」중에서

“그러고 보니 그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은 지가 꽤 오래됐어요.” 호텔 안내 직원이 나직이 말했다. “어쩌면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지도 몰라요. 어쨌든 우린 그 지역엔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거긴 병원도 있잖아요?”
“병원은 경계 지점에 있어요.” 그녀가 지도 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통제가 불가능한 지역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남쪽 지방으로는 아직 통행이 가능해요. 하지만…… 정말 그곳에 가실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내가 아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그 어떤 수치심이나 위험도 무릅쓸 수 있다는 부모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타오」중에서

나는 연달아 침을 꿀꺽 삼켰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상의 웅덩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몸을 일으킨 후 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삶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꽃가루를 모아 오고 꿀을 만들어내는 일.
---「조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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