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12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624쪽 | 776g | 152*225*35mm |
ISBN13 | 9791195686889 |
ISBN10 | 1195686889 |
발행일 | 2017년 1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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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24쪽 | 776g | 152*225*35mm |
ISBN13 | 9791195686889 |
ISBN10 | 1195686889 |
개정판 서문 12 추천의 말 22 감수의 글 26 초판 서문 30 1. 양육은 환경과 같은 말이 아니다 37 2. 본성과 양육의 증거 53 3. 본성, 양육, 그리고 제3의 가능성 77 4. 구분된 세계 105 5.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137 6. 인간의 본성 161 7. 우리 대 그들 195 8. 아이들 무리에서 225 9. 문화의 전달 275 10. 성별이 결정한다 321 11. 학교와 아이들 351 12. 성장 383 13. 역기능 가정과 문제아 415 14. 부모가 할 수 있는 일 467 15. 심판대에 선 양육가설 497 부록 1: 성격과 출생순서 515 부록 2: 아동발달이론의 검증 535 감사의 말 551 옮긴이의 말 552 미주 554 참고문헌 581 찾아보기 617 |
아내가 임신한 후부터 태교, 육아에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꽤 많이 읽은 것 같은데요(50권 이상?), 실용서도 있지만 자녀교육, 정신건강의학, 심리학 등의 분야도 있습니다. 사실 실용서나 자녀교육서보다는 정신건강의학, 심리학 분야의 책이 더 도움이 되었어요. 그건 부모로서 힘들 때, 또는 암담할 때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부모로서 제가 잘 하면 아이도 올곧게 잘 자랄 것이고 미래도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투자하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 했었죠.
하지만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책들을 보고는 다소 충격을 받아서 여기에서도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책 중에 <개성의 탄생>을 먼저 읽었고, 이 책에서 전작인 <양육가설>이 계속 언급되어서 이 또한 읽게 되었는데요, 순서상으로는 <양육가설>을 먼저 읽는 것이 나을 것 같고, 여력이 되시면 <개성의 탄생>도 같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육가설'이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부모의 양육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해요.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를 내팽겨쳐두는 경우는 없겠죠.
하지만 저자는 그 믿음이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통해 그것을 설득력있게 주장하는 한편, 그동안의 발달심리학에서의 오류도 조목조목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발달심리학에서 부모-자녀관계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는 이유는 그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기 보다는 제일 쉬워서라고 하는군요.
저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집안이 아닌 집 밖에서의 아이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아이의 모습과 행동의 차이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탐색합니다.
아무튼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건 무리고, 책을 통해 느낀 소감만 얘기해볼까 합니다.
전반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부모가 아이 양육에 그렇게 매달리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핵가족화 이후에 개인화가 심화되었고, 가족과 자녀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아이의 성향(성격)은 유전적인 요소로 반 정도를 설명할 수 있고 나머지는 아주 작은 요소로 환경, 그리고 더 큰 요소로 타인 혹은 집단과의 관계형성이 차지한다고 합니다. 특히 또래집단이 부모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여기에서의 또래집단은 좁은 의미가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비슷한 연령대의 집단을 의미합니다. 원문에서는 'peer group'이라고 되어 있네요.
아이가 유아기 때부터 사회화 과정을 겪고 나면 그 이후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또래 집단 내에서 위치,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해나가게 됩니다. 그건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인데도 부모들은 그것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간접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아이의 또래 집단을 선택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래서 부모들이 학군을 중요시하고, 더 나은 집단이 있는 곳에 속하려고 애쓰는 것이겠죠. 그 선택이 기대에 부응할지는 별개로요. 또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또래 집단이 있을 수도 없고요. 부모가 선택해 준 것은 외형적인 것일 뿐, 그 속에서 아이는 나름대로의 집단에 들어가게 되고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부모가 보기에 완벽한 자녀처럼 보인다면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에게 보여지는 것과 그 외의 대상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다를 수 있죠. 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그런 게 있죠.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네요." 과연 그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믿음일까요 아니면 부모 자신에 대한 믿음일까요.
결국 부모의 통제는 아이가 사춘기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내고 맙니다. 이미 아이는 또래 집단을 통해서 부모의 영역 이외의 영역을 확장했고, 그 영역간 충돌은 불가피하니까요. 다만 미성년자인 자녀에 대한 책임과 양육권이 여전히 부모에게 있기에 한계에 봉착하더라도 계속 (더 좁은) 울타리를 쳐 둘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부모의 노력이 아이의 성공과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가 있기에 그것을 인정하고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도 없고,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만들 수도 없고요.
다만, 아이의 성향이 포지티브라면 계속 포지티브쪽으로 이끌어 주고, 네거티브라도 포지티브쪽으로 이끌어 줄 필요는 있겠습니다. 포지티브를 네거티브로 만들거나, 네거티브를 계속 내버려두는 건 부모의 책무를 버리는 것일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단단한 지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위에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아이의 몫이고요.
그러니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강박감은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이의 미래는 부모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즉,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p.s.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대리만족의 대상도 아닌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일까요.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와 부모의 책임에 달려 있다"는
우리 문화의 가장 견고한 믿음에 의문을 던진 독립연구자
그는 이 믿음을 양육가설이라고 부른다
부모의 양육은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 로 자라날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사회화되지 않는다
양육가설은 신화이며 이를 뒷받침하던 대부분의 연구는 가치가 없다
부모의 관리와 통제가 아닌 아이가 만들어 나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또래집단과 함께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을 우리가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부모 ㅡ 자녀간 문제 또는 교육의 문제에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육가설은 절대 진리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식도 아니다
우리문화가 낳은 일종의 미신일 뿐이다
양육가설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언어를 포함해 문화적인 지식을 자녀에게 전수하고 남은 생애를 사회의 부족함 없는 구성원으로 살아갈 준비를시키는 사람은
바로 부모다
집단은 클수도 작을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두 명이상으로 구성된다
둘로 구성된 모임을 지칭하는 기술적 용어는 양자 관계라고 할 때의 양자다
둘이면 짝이 되고 셋은 무리가 된다
한살에서 세살 사이에 나타나는 또 다른 사건은 진정한 의미으 우정형성이다
아이들은 여러 또래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관계의 작동 모델을 형성하고
특별히 더 좋아하는 친구도 결정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관찰한다면 아이들이 날마다 함께 노는 친구가 대개
정해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연령대가 다양한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대체로 동갑내기들과 무리를
형성하려 한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이 같은 아이들이 무리로 묶이는 경향이 있다
다섯살 무렵이 되면 아이들 무리는 거의 단일한 성별로 이루어진다
놀이친구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은 양육가설에 대한 믿음과는 달리 세계 어느곳에서나 발견되었다
사회가 산업화되고 도시화되기 전에는 아이들이 주위에서 함께 놀 또래를 찾기가 힘들었고
오늘날에도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렇다
아이들의 남녀관은 여전히 구시대적이다
어른들의 생각은 바뀌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지난 세기 동안 어른들의 문화는 성평등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성차별적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남녀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
사람들은 흔이 이런 성차별적 태도가 부모나 교사,더 나아가 사회전체의
잘못된 인식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 사회가 어른들 사회보다 더 성차별적이라면 어른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독자들이 지금까지 이야기를 잘 따라왔다면 어떤일을 내릴지 눈치 챘을텐데 어른들 탓이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 차별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동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적 인식을 부모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들이 결과적으로 모두 부실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행동이 아들과 딸의 차이를 야기한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에 대한 부모의 반응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