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주 오크리지(Oak Ridge)
사이트 X, 킹스턴 폭파시험장, 클린턴 공병사업소, 특별구역이라고도 불렀다. ‘클린턴 공병사업소’라는 말은 테네시주의 사이트 X 전체를 가리키지만, ‘오크리지’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타운사이트(Townsite)’ 등의 비플랜트 주거 지역을 가리켰다. --- p.14
1942년, 이곳에 새로운 비밀이 생겨났다. 땅은 몸을 떨며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논쟁적인 무기를 만들기 위한 미증유의 군軍-산産-학學의 동맹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이 무기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 숨어 있는 힘을 끌어내서, ‘원자’라는 물질의 기본단위에 내재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 p.9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밴던 벌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전근 발령은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이고, 목적지는 일급비밀이라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 제가 하는 일은 뭐죠?” 그녀가 물었다.
이번에도 자세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는 말해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가?’ --- p.33
1942년 10월 무렵 측량사들이 토지 면적, 주택, 별채들을 평가해서 삶과 생계를 통계로 분해하였고, 뒤이어 주민들에게 통지들이 날아들었다. 취득 공고, 몰수 공고, 퇴거 요청이었다. 통지는 다양한 형태로 왔지만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불의의 일격을 당해 숨을 헐떡이면서 살길을 모색하는 느낌을 받았다. 때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소식을 전했다. 정부에서 우리가 다른 데로 이사 가서 살아야 한대요. 또 어떤 이들은 퇴근해서 아니면 들일을 마치고 돌아왔다가 문이나 나무에 통지문이―그 땅은 국유지이고 킹스턴 폭파 시험장을 만드는 데 써야 한다―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어떤 이들은 우편이나 인편으로 그 당황스런 소식을 들었다. --- p.51
페르미의 연구가 불완전하다고 본 그녀는 1934년 말에 “Uber Das Element 93(93번 원소)”라는 논문으로 페르미의 발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발표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을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다는 이런 종류의 실험을 하면 “이전까지 관찰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핵반응이 일어난다… 무거운 핵이 중성자 충격을 받으면 여러 개의 커다란 조각으로 갈라지는데, 그것은 알려진 원소의 동위원소이고 이웃한 원소는 아니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고 썼다. --- p.64
하지만 그렇게 계속 승진을 했는데도, 제인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남자들보다 자신의 봉급이 더 적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별구역 곳곳의 다른 여자들도 똑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제인은 그 일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공대 입학을 거절당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일도 역시 그 못지않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 p.191
CEW의 여가 활동은 타운사이트 유일의 직원식당에서 열리는 월요일의 ‘퀴즈 나이트’와 댄스파티로 시작해서 이내 맥줏집, 자동차 영화관, 미니 골프장, 롤러스케이트장, 트램펄린으로 번져갔다. 신문은 주민들에게 활동 제안을 촉구했다. 그러자 음악 감상, 재즈 음반 감상,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합창단, 연극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취미 분야의 활동 집단이 만들어졌다. 버지니아가 좋아한 것은 등산과 사진이었다. --- p.213
항상 그녀를 괴롭히는 젊은 경비병이 있었다. 그녀보다 더 심하게 당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경비병들이 막사 지역에서 하는 무례한 행동에 대해 이런 진정서를 썼다.
“유색인 여자 막사 지역에는 경비병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들어오고, 문에 노크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자들은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있다가 경비병을 맞기가 다반사입니다….” --- p. 263
그녀는 뉴욕시 스태튼섬에 있는 결혼한 언니의 집에 놀러와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자신이 떠나온 특이한 장소, 울타리 안쪽의 기념품이 도착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검열을 통과했을까?’ 제인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 하나는 그것이었다. 제인은 빙긋 웃고 계속 띠지를 당겨서 메시지를 읽었다.
‘물건’의 퍼센트를 정교하게 계산하는 데 쓰는 좁은 종이 위에 모두가 정성 들여 글을 썼다.
“지금 누구의 품에 안겨 있을까?”
“팀장님이 편지해달라고 했잖아요 지금은 새벽이에요 이제 퇴근이닷!”
제인이 근무조를 넘나들며 감독하는 100명 가까운 직원이 모두 거기 편지를 쓴 것 같았다. 그녀는 긴 띠지를 뽑고 또 뽑으며 행운을 비는 말, 그들만 이해하는 농담, 사내 소문, 날씨 소식을 읽었다. --- p.272
누구도 헬렌과 도로시에게 손잡이를 이렇게 저렇게 돌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설명해주지 않았고, 그들이 칼루트론을 운용했다는 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 CEW의 사람들은 이 새로운 정보를 통해서 그동안의 많은 이야기와 경험들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아직 오크리지의 정확한 역할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폭탄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원자폭탄의 연료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난해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세 내용은 일급비밀이었다. --- pp.387~388
폭격 자체에 대해서 그녀는 아직도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런 사람이 그녀만은 아니었다. 오크리지에서 일하며 그토록 엄청난 파괴 무기의 개발에 기여한 누구라도 스스로에게 그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전쟁이 끝난 것은 다행이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 특히 많은 민간인을 죽인 것은 너무 큰 대가가 아니었을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크리지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원폭이 일으킨 피해 규모는 아직도 확실히 파악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결정을 내린 트루먼 대통령의 입장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도 무거운 책임이었다. --- p.412
한 여자가 도로시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인 폭탄을 만든 게 부끄럽지 않은가요?”
실제로 도로시의 감정도 복잡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당연히 슬펐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은 모두 벅차게 기뻐했다. 이 사람들은 그 일을 잊었나? 물론 오크리지 사람들도 일본의 참상이 담긴 사진을 보았을 때는 고통스런 감정을 느꼈다. 안도, 두려움, 기쁨, 슬픔이 섞여 있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 그녀가 어떻게 프로젝트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오크리지의 삶은 고사하고 전쟁 자체를 겪지 못한 사람들에게? --- pp.449~450
원자폭탄 투하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의 정당성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그 부당함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내가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하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폭탄이 무엇이고, 그게 어떤 힘을 지녔는지를 안다. 그 날 히로시마에 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핵무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낙진’이나 ‘핵겨울’은 당시의 일상 용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그 시절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느꼈던 것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우리의 지식으로 그들의 기억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 p.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