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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 양장 ]
리뷰 총점9.6 리뷰 32건 | 판매지수 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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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미니 에디션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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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54g | 125*190mm
ISBN13 9791162730652
ISBN10 116273065X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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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삐딱하게 되묻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담담히 설파하던 칼럼계의 아이돌, 무심한 듯 세심한 에세이스트, 요즘 가장 핫한 지식인 김영민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가 돌아왔다.

“반짝반짝 ‘아침’의 멀쩡한 정신으로 생각의 근육을 써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고민”해보라며 첫 산문집을 펴낸 지 1년 만이다. 새 책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논어’ 이야기다. “실패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 실패를 향해 나아간” 공자라는 이름의 한 사람, 그리고 여럿이 어울려 사는 세상사 속 ‘사람됨’과 ‘사람살이’에 대한 고민이 담긴 『논어』라는 텍스트를 사유한 흔적이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삶과 세계라는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것”의 가치와 저력을 특유의 멋스러운 유머, 번뜩이는 지혜로 일깨우는 잠언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1.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왜 구태여 침묵했는가
자유주의 송편
모순과 함께 걸었다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2.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 ― 仁
미워하라, 정확하게 ― 正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 欲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알았던 사람 ― 禮
우유부단함은 중용이 아니다 ― 權
실연의 기술 ― 習
완성을 향한 열망 ― 敬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 知

3.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

자성,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고통 ― 省
“빡센 삶, 각오는 돼 있어?” ― 孝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 ― 無爲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니 지배당하는 거다 ― 威
너의 존재는 거짓이 아니다 ― 事
지구의 영정 사진 찍기 ― 再現
돌직구와 뒷담화의 공동체 ― 敎學

4.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새 술은 헌 부대에
계보란 무엇인가
‘유교’란 무엇인가

*에필로그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상사의 역설은 어떤 생각이 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즉 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공들여 역사적 콘텍스트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을 때에야 비로소 고전 속에 죽어 있는 생각들은 “죽은 연인의 흰 목을/마지막으로 만질 때처럼/서먹하게”(진은영, 『불안의 형태』 중에서) 온다. 고전이 담고 있는 생각은 현대의 맥락과는 사뭇 다른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기에 서먹하고, 그 서먹함이야말로 우리를 타성의 늪으로부터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상상의 지평을 열어준다.”
--- p.15,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중에서

널리 알려진 바대로 인(仁)은 『논어』에서 자주 쓰이는, 『논어』의 세계를 대표할 만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렇지만 공자가 인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조방(趙?)과 같은 학자가 지적했듯이, 인이라는 용어는 전국시대의 문헌에는 흔히 나타나지만, 그 이전 서주시대 문헌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즉 인은 기원전 5세기께 이르러서야 한층 더 자주 쓰이게 된 용어이다. 공자는 바로 그 시대의 사람, 즉 인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기 시작한 세대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대는 바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신의 가호에 의지하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의 무정함을 깨달은 당시 사람들이 신의 가호에 대한 대안으로, 즉 일종의 자구책으로, 인간의 사랑[仁]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 p.83,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의 사랑 - 仁」중에서

진정 감탄스러운 것은 나이 일흔에도 여전히 공자는 욕망의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보니 욕망이 사라진다고 말하거나, 오랜 수양 끝에 욕망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은 욕망을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해도 여전히 궤도 위에 있는 기차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공자는 영생하는 신이 아니었기에,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부터 거리를 둔 사람이었기에, 『논어』가 전하는 이러한 공자의 페르소나는 실로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이벤트에서 끝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람, 과잉을 찬양했던 사람, 노년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는 배움이라는 긴 마라톤에 출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사람. 『논어』는 그렇게 분투한 사람에 대한 재현이다.
--- p.105,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 慾」중에서

공자에 따르면, 주나라 초기 문화는 죽은 조상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혈통보다는 덕성을 중시했고, 과도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예를 수행하는 것을 강조했고, 허례허식보다는 진심어린 태도를 구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찬란했던 문화로 돌아가야 한다. (…) 허나 자신의 거친 피부를 그대로 보고하는 것이 졸업 사진의 목적이 아니듯이, 주나라 문화를 실증적으로 보고하는 것이 공자의 목적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후대의 모범이 될 만한 모델을 주나라 문화라는 이름으로 재현할 것인가가 공자의 목적이었다.
--- p.213, 「너의 존재는 거짓이 아니다 - 事」중에서

“저명한 사회과학자 시다 스코치폴은 ‘새 와인은 새 통보다는 이미 있는 통에 담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 사람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주석을 읽다 보면, 같은 대상도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관점이 당대의 편견이나 선입견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된다.”
--- p.243, 「새 술은 헌 부대에」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칼럼계의 아이돌 서울대 김영민 교수
클라스가 다른 인문 에세이스트로 돌아오다


“고전 텍스트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인문의 품격과 에세이의 감성을 아우르는 김영민의 신작

“위트를 타고 삶의 미시와 거시 사이를 활강하는 글쓰기”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생각거리를 차원 높은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요즘 가장 핫한 지식인, 서울대 김영민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새 책이 나왔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논어’에 대한 에세이다. 2017년에서 2019년에 걸쳐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삐딱하게 되묻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무심히 설파하며, 우아한 마이너 감성을 지닌 힙한 아재 캐릭터로 젊은 세대의 팬심을 사로잡은 그다. 이번에 존재의 정체성을 향해 던지는 돌직구는 ‘논어’를 향한다.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 17쪽
-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중에서

도입부에서 선언하듯이, 저자는 ‘불후의 고전’을 ‘살아 있는 지혜’로 포장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그의 희망은 소박하다. 고전을 매개로 하여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몸담은 삶과 세계라는 텍스트일 터, 2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살아남은 ‘논어’에 수많은 이들이 주석을 달고 지금까지도 해설을 덧붙이는 이유이자 김영민만의 시선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고전 ‘논어’라는 헌 부대에 지금 ‘세상’이라는 새 술을 붓고, 자신만의 주특기인 본질적인 질문 던지기와 자유롭고 독창적인 글쓰기를 버무려 전혀 새로운 장르를 발효해냈다. “유쾌하면서도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식”을 늘 고민한다고 저자는 말한 바 있다. 인문 에세이란 무엇인가에 제대로 답하겠다는 듯 거침없고 아름다운 이 책에 취하는 즐거움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 삶과 세계를 정밀하게 독해하려면


공자는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영민은 『논어』 텍스트 전체가 “발화한 것, 침묵한 것, 침묵하겠다고 발화한 것”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본다. 침묵을 매질로 삼은 메시지는 그에 걸맞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요구한다. 따라서 이러한 분류를 염두에 두고 의도된 침묵마저 읽어낼 자세로 『논어』를 탐사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공자는 노나라 사구(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직장을 관두고 떠나버린 일이 있다. 그는 왜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보란 듯이 예를 어기며 부랴부랴 떠났고, 왜 구태여 침묵했을까?

“공자가 자신이 떠나는 진짜 이유에 대해 침묵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자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공자가 내심 너무너무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자신에게 고기를 주지 않자 그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공자가 고기에 대해 중독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추론도 합리적이리라. 그러나 공자는 고기에 관하여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 55쪽

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공자가 고기라면 무조건 먹으려 드는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음을 옛 문헌들을 뒤져가며 예의 진지하게 증명한다.(55~57쪽) 그리고 독자는 그 독특한 유머와 리듬에 빠져 하릴없이 키득거리다가 어느새 다음 문장에 도달한다.

“만약 공자가 특정한 도덕률에 고집스럽게 매달리는 협애한 도덕가였다면, 그는 그저 특정 도덕 기준을 들어 자신의 조국을 가차 없이 매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기에는 공자는 노나라라는 정치공동체에 무관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공자가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집단에 대해 무비판적인 충성을 일삼는 사람이었다면, 무조건적으로 조국의 편을 들어 어떤 흠이라도 눈감아 주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니 고기가 이르지 않은 상황을 계기로 공자가 떠나버린 일은 그가 조국을 사랑하되 그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에 마주하여 그 나름의 해결책을 자신의 행동에 담고자 섬세하게 선택한 사려 깊은 행위였다.” - 59쪽
-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중에서

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 공자를 통해, 단순한 침묵이나 생략으로 보이는 것들이 갖는 전복적인 성격을 간파하기. 이렇듯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는 위트와 아이러니로 직조한 글쓰기로 해당 텍스트를 넘어 보다 넓은 콘텍스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어떤’ 텍스트를 읽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었느냐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
: 이토록 고단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김영민은 공자의 제자들이나 『논어』의 편집자가 유려한 예식의 집전자로서의 공자만큼이나 현실에서 실패한 선생의 모습을 사랑한 데 주목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허나 결함이 있더라도 자신의 결함을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화해하기 어려운 모순적 열망이 공존한 사람 공자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이 생에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진 않을까. 그가 자주 이야기한 가치들, 그 역사적 맥락,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를 메타 시선으로 통찰하여 실마리를 풀어내볼 수 있지 않을까.

공자는 결코 폭력을 배제하지 않았다. 인(仁)한 사람은 단순히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 이상의 폭력은 행사하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전쟁마저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지하철의 쩍벌남에 대해서 공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논어』에서 딱 한 번 공자가 직접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양이라는 이가 길가에 무식하게 틀어놓은 유행가처럼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자, 공자는 그에게 “사람들에게 해만 끼치는 놈이다”라고 일갈하며,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마치 정확한 미움을 실험하는 것처럼. - 96쪽
- “미워하라, 정확하게 - 正” 중에서

공자가 살던 시대는 만성적인 전쟁의 시대. 전국시대에 이르면 진나라 통일 전까지 적어도 590회의 전쟁이 일어났다는데, 공자가 그때까지 살았던들 그 추세를 되돌릴 수 있었을까. (…) 공자나 그의 제자들은 무력에 의존해 천하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차라리 지속적으로 실패하기를 선택한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말했듯, 그들은 승리하기보다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하기를 선택한다. 새를 맞히지 못할지언정 자는 새를 쏘지 않는 이의 위엄, 자청해서 실패를 선택하는 이의 위엄, 기어이 성취를 포기하는 데서 오는 위엄이 그들에게는 있다. - 117쪽
-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알았던 사람 - 禮” 중에서

중용은 단순히 산술적 중간을 의미하거나 극단적 행동을 회피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견 과한 행동처럼 보여도, 상황에 적절하기만 하다면 중용일 수가 있다. 중용이란 예상하기 어려운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도 적절성을 찾아내는, 그러기 위해서 기존 규범이나 예상으로부터 적절히 이탈할 수 있는 차원을 포함한다. (…) ‘음식 맛없게 만들기’ 매뉴얼을 따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높은 수준의 맛없음’을 구현하기 어렵듯이, 예의 매뉴얼을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이상 사회가 자동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변치 않는 규범에 대한 고집보다는 임기응변이나 융통성이 필요할 때가 있다. - 124쪽
- “우유부단함은 중용이 아니다 - 權” 중에서

공자가 극기복례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 극복 대상이 된 3인칭의 자아뿐 아니라, 대상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1인칭의 자아가 동시에 있다. 메타 시선을 장착한 사람은 대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발언을 삼가는 사람, 자신이 알 수 없는 큰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 공자의 제자 증자는 죽음이 다가오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삶의 고단한 책임을) 면하게 됨을 알겠도다.” “나는 이제 삶의 책임과 걱정을 면한다”고 기뻐 날뛰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제 삶의 책임과 걱정을 면함을 ‘안다’”고 말한다. 즉 삶의 긴장, 구속, 고단함을 면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그 사실 자체를 메타 시선으로 바라보아 ‘안다’는 선언이다. - 156쪽
-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 知” 중에서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
: 서로 다른 인간끼리 어울려 살기 위하여


정치학, 철학,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정치사상사를 공부한 김영민은, 인간은 어떻게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지 질문을 던지는 게 정치철학이고, 과거의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어떤 답을 해왔는지를 파악하는 게 정치사상사라고 설명한 바 있다. 『논어』가 지금 여기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근심이 이 책에 스며 있는 이유이다.

공자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집안에서 자기 부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섬길 것인가 혹은 자기 자식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효성스러운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앞서 말한 삶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나누어 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 일상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위생, 교육, 복지, 육아, 노인 돌봄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사자, 가족, 사회, 국가 가운데 누가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나누어 맡아야 하는가. 이는 공자의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인류가 고민해온 문제이며 매 시대 조건은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시대마다 새로운 답을 요구한다. - 182쪽
- “빡센 삶, 각오는 돼 있어? - 孝” 중에서

재현의 관점에서 진정으로 뛰어난 정치 행위는, 관련된 민의를 모사하는 것보다는 그 열망을 정책에 얼마나 입체적으로 잘 구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뛰어난 대의 정치인은 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사람들이 미처 정의하지 못하고 구체화되지 못한 일까지 탐구하고 정책으로 번역해낸다. (…) 『논어』 속 공자는 신의 뜻을 재현하는 데 골몰하던 제사장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당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들에게 이제 재현해야 할 대상은 신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상상했던 주나라 건국 시기의 문명이었다. 동시에 공자는 그 고대 문명을 되살려 공동체에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은 자기에게 결국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전진한다. - 223쪽
- “지구의 영정 사진 찍기 - 再現” 중에서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 죽어야 사는 것들에 대한 시의적절한 질문들


공자는 “경천동지할 혜안을 가진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마주한 당대의 문제와 고투한 지성인”이었고, “국가가 설정한 위계적인 구획을 넘어, 친족 네트워크를 넘어, 타인과 비전을 함께 나눈 공동체의 카리스마 넘치는 스승”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심한 듯 사려 깊게, 불확실성 속에서도 풍요로운 만남을 꿈꾸는 선생 김영민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이 엿보인다면 저자는 손사래를 칠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떠들썩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말한다. “공자는 족보 같은 걸 만들어가며 친족을 대규모로 관리하라고 주장한 적도 없고, 조상신 덕 보라고 한 적도 없”으며, “자신의 친아들보다는 제자를 더 사랑했다”고. “유교”라는 말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도맷값으로 넘기는 데” 남용되는 세태에 대해 “보다 복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저자가 구상하는 논어 프로젝트를 담담히 기대해 본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논어 에세이는 내가 구상하고 있는 논어 프로젝트의 일부에 불과하다. 논어 프로젝트는 총 네 가지 저작으로 이루어진다. 1. 『논어』의 주제를 소개하는 ‘논어 에세이’, 2. 기존 『논어』 번역본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논어 번역 비평’, 3. 『논어』 각 구절의 의미를 자세히 탐구하는 ‘논어 해설’(총 10권), 4. ‘논어 번역 비평’과 ‘논어 해설’에 기초하여 대안적인 논어 번역을 제시하는 ‘논어 새 번역’. 따라서 이 논어 에세이는 논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다. - 272쪽

회원리뷰 (32건) 리뷰 총점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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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초* | 2019.12.09 | 추천33 | 댓글34 리뷰제목
김영민 교수는 그의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글은 거칠었지만 품격이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또 다른 책을 쓰게 된다면 그의 글쓰기가 달라지지 않기를 기대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신문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책이;
리뷰제목

김영민 교수는 그의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글은 거칠었지만 품격이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또 다른 책을 쓰게 된다면 그의 글쓰기가 달라지지 않기를 기대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신문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글들이었다. 새삼 신문을 다시 구독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어느 신문에 어떤 칼럼을 쓸지 모르기에 한낱 상상에 그칠 뿐이다.

 

이 책은 [논어]에 대한 에세이라고 한다. [논어]라면 공자의 말을 기록한 책으로 대표적인 동양고전으로 꼽힌다. 또한 [맹자], [중용], [대학]과 더불어 사서의 하나로써 전통시대부터 우리의 말과 행동을 규정짓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논어] 혹은 그 주역서를 읽으며 뜻을 새기고 삶의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젊어서는 멋모르고 읽은 [논어]이기에 다소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알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과연 [논어]를 어떻게 읽을까? 호기심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먼저 ‘만병통치약을 표방하는 고전해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동양고전에 대한 상대적으로 정확한 지식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전시하는 지적권위에 대한 화급한 욕망, 사회인들의 전방위적 멘토가 되어보겠다는 허영, 그리고 무엇보다 지성계에 광범위하게 뿌리 내린 허위의식이다.’(10쪽)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은 아마 [논어]를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조금은 삐딱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동양고전을 읽을 때 역자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전을 해석할 수 있다면 별개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역자의 해설과 그의 해석이 반영된 번역물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읽는 [논어]에 대한 기대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어서 저자는 ‘고전 텍스트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다.’(17쪽)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니, 그럼 이제까지 우리가 읽어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대로 된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논어]는 알다시피 공자의 글과 말을 후대의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그러기에 [논어]에 나와 있는 글들은 공자의 생각이 맞기도 하겠지만 서술한 사람들의 기대치와 사상 또한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논어]라는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논어]의 주제에 대해 읽기 전에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를 살펴본다. 그렇게 공자를 읽으면 [논어]에 드러난 공자의 입장이 당대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춘추시대라는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72쪽)한다고 말한다.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와 달리 주나라 왕실에 대한 존왕양이의 명분을 우선시했지만 후기로 가면서 차츰 명분보다는 실리, 도덕보다는 현실을 중시했기에 그 시대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또 공자를 읽으면서 그의 침묵에 주목한다. ‘다른 사람이 침묵을 선언할 때, 진짜 침묵하는 사람은 침묵하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있다. 침묵을 선언하는 사람은, 선언하는 만큼 침묵하지 않는 셈이다.’(32쪽) 논어속의 공자가 불필요한 과장을 비판하고 삼가 말하기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그의 의도된 침묵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자를 읽은 저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텍스트를 읽는다. 그는 [논어]를 관통하는 여러 주제들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라는 제목아래 仁(인), 正(정), 欲(욕), 禮(예), 權(권), 習(습), 敬(경), 知(지)라는 주제 속에서 공자의 모습을 읽는다. 저자는 공자를 두고 기적과는 인연이 멀었던 사람,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에 ‘매료된 이들은 텍스트를 남기고, 남겨진 텍스트는 상대를 불멸케’(107쪽)하기에, 필멸자로서의 육체를 가진 공자는 사라졌지만 텍스트를 통해 편집된 공자의 페르소나는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아는 것은 물론, 해도 안되는 줄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실패하기를 선택한 공자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다른 하나의 분류는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란 제목으로 省(성), 孝(효), 無爲(무위), 威(위), 事(사), 再現(재현), 敎學(교학)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정치공동체에 대해 공자와 [논어]의 편집자들이 가졌던 생각을 읽는다.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와 후대인들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정치공동체의 그 모습이 달랐기에 [논어]는 해석과 재해석의 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논어]가 다양한 이들에 의해 기록된 파편들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취합된 불균질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논어]는 공자가 등장하는 많은 고대 문헌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 [논어]가 고전의 지위를 누리게 된 다음부터 [논어]의 중심성이 역사적 사실이 되었고, [논어]는 어느 순간부터 내용 때문이 아니라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논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268쪽)라며, 그 지점이 바로 이 책 논어 에세이가 서있고 싶은 지점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유교라는 말로 지칭하건, 유학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그 대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기에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유교본질 같은 것은 없지만, 유학이라는 말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도맷값으로 넘기는데 남용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논어]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가 구상하고 있다는 논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전작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글쓰기에 반했다. 글의 품격이란 말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인문 에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동서양은 물론 2500년 전 춘추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어]의 주제를 찾아 시공을 넘나드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철학이나 사상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고 잘 알지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어떤 텍스트를 읽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었느냐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는 그의 말을 가슴에 담고, 다시한번 [논어]를 읽어봐야겠다. 모처럼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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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0***6 | 2021.09.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김영민 작가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리뷰입니다 논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 같아 교양을 좀 쌓을 겸 구입했습니다 논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술술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십니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예시들에서 논어의 개념으로 연결지어 설명해주는 부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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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작가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리뷰입니다

논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 같아 교양을 좀 쌓을 겸 구입했습니다

논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술술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십니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예시들에서 논어의 개념으로 연결지어 설명해주는 부분들이 정말 감탄스러웠어요 그런 부분들이 논어에 대해 전혀 모르던 저 같은 사람도 지루하지 않고 지치지 않게 이끌어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녹아있는 자연스러운 유머들과 적절한 예시로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개념들이 '논어'라는 것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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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20210220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심****거 | 2021.02.2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들. 토 리뷰.   간신히라는 부사가 와닿았다. 그 노력이 보상받지 못함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조금은 애처로운 마음. 아래에서는 와닿았던 문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 앞으로 올 사랑. 나는 사명감으로 꼼꼼하게 책을 다시 읽고 질문지를 준비했다. - 다행이도 내 임기응변을 선보일 필요가 없었다. 넌 왜 이렇게 안정되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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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들. 토 리뷰.

 

간신히라는 부사가 와닿았다. 그 노력이 보상받지 못함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조금은 애처로운 마음. 아래에서는 와닿았던 문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 앞으로 올 사랑. 나는 사명감으로 꼼꼼하게 책을 다시 읽고 질문지를 준비했다.

- 다행이도 내 임기응변을 선보일 필요가 없었다. 넌 왜 이렇게 안정되어 보이는 거니. 내가 대답했다.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좋아하는 마음으로. 

- 흑사병의 비극 속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가 14세기 이탈리아에 있었다면 코로나 시대 한국에는 김영민이 있다. 그들은 10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대에 맞게 변주하고 전개했다. 디스토피아 시대에 유토피아적 열정으로 사랑을 말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비슷한 슬픔과 희망을 품었다.

- 미래인지 감수성이란 무엇일까. 기후위기시대에 진입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저항은 무엇일까. 끔찍한 세상에서도 끔찍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이 디스토피아를 디스토피아로 만들까. 뉴노멀 뉴로맨스 뉴러브의 모양은 어떨까. 책은 어째서 말을 하는 상처일까.

- 누구의 목소리가 잘 안들리지? 더 크게 들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목소리는 너무나 많다. 아버지는 뉴스에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욕을 하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저러느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런 아버지에게 장덕준이 물었다. 아버지, 제가 죽어도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이제는 그 물음에 진짜로 대답을 해야 한다.

- 우리는 허무할 겨를이 없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한 사람은 결코 허무하지 않다. 앞으로 와야 할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사랑에 무엇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너를 위한 나의 변신이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바꿀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 슬픔과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미래를 꿈꾼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와야만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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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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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논어 에세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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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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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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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 |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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