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와 스토리는 다르다. 데이터는 일어난 일들을 열거하고, 스토리는 그 일이 어떻게, 어째서 일어났는지 표현한다. 데이터는 수량과 빈도에 따라 사실의 목록을 작성하고, 스토리는 이런 사실의 이면과 배후에 놓인 인과 관계를 드러낸다. 스토리는 관련 없는 것들을 배제하고 역동적인 변화에 집중한다. 그렇게 사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원인과 결과의 사슬에 따라 점진적으로 사건이 펼쳐지는 구조를 새롭게 빚어내는 것이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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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들은 독자에게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광고의 크기, 디자인, 폰트, 배열 등을 바꿔 가며 실험을 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가장 효과적인 광고 전략인즉, 독자가 기사 스토리를 읽는 도중에 광고를 넣어 버리는 ‘끼어들기(interruption)’ 작전이었다. 일단 기사 스토리로 독자의 흥미를 끈 다음 중간에 브랜드 메시지로 흐름을 끊어 놓는다. 독자의 사고 흐름에 갑자기 끼어들어 브랜드 메시지를 소비자의 의식 속에 강제로 주입하는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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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광고가 논리인 양 내세우는 것이 사실은 ‘수사(修辭) ’일 따름이다. 수사는 증거를 제시하고 결론을 도출하며 과학을 흉내 내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과학은 도출된 명제를 뒷받침하는 것이든 거스르는 것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증거를 따져 본다. 하지만 수사는 제 주장을 거스르는 점은 모두 무시하거나 반박하고 오로지 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내세워 주장을 편향되게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수사는 승리를 추구한다. 본질적으로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이 제품의 특성이 다른 제품을 능가한다고 설득하는 수사적 논쟁의 공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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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란 정확히 무엇인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스토리에 필수적인 핵심 사건은 단 세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갈등이, 삶을, 바꾼다. 그러므로 최선의 정의는, ‘인물의 삶에 유의미한 변화를 야기하는 갈등 중심 사건들의 역동적 상승’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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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허구 중 무엇을 전달하든 최상의 스토리는 유의미한 정서적 경험으로 관객을 만족시킨다. 이제껏 웃기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보며 웃게 되고, 이제껏 비극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놓고 울게 된다. 특히 중요한 점은 두 경우 모두 이제껏 몰랐던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감정들이 그런 통찰을 감싸고 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의 융합이 우리 내면의 삶에 크든 작든 일정한 풍요를 더해 준다. 아름답게 말해진 스토리는 그 세계에 들어갈 때보다 더 성숙한 인간으로 우리를 내보낸다.
--- p.129
잡스는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원하지만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던 바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독특한 정체성, 즉 스스로를 반항적이고 창의적인 엘리트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그래서 잡스는 아름다움과 촉감과 우아함으로 이런 특징을 표상하는 기기를 만들어,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책상에서 주머니로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잡스가 꿈꾸던 휴대전화는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무언의 욕구에 말을 걸었다. 애플은 그의 비전을 탁월한 광고 시리즈로 스토리화했고, 그렇게 브랜딩의 역사를 새로 썼다. 내 스토리의 타깃 욕구를 찾고 싶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자. “무엇이 내 고객을 괴롭히는가?” “고객이 필요로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 “해법을 요구하는 감춰진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
--- p.138
부정 공포증(Negaphobia 은 마케팅 교육의 부산물이다. 비즈니스스쿨이 생겨나고 마케팅이라는 특이한 과목이 커리큘럼에 포함된 이래, 마케터들은 ‘가로되 긍정성을 강조하고 부정성을 제거하라.’는 훈련을 받아 왔다. 처음에는 상식과 교양처럼 보이던 것이 일종의 정서적 전염병으로 전이되어 이제는 대외 브랜딩부터 대내 팀 구성까지 기업 활동의 전반을 감염시키고 있다. 가령 요즘은 “저 사람은 너무 부정적이야.” 하는 말이 직원들이 서로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악의 평가로 여겨진다.
--- p.163
베조스 같은 선각자들은 자신의 사업 전체를 스토리화한다. 그들은 스토리 형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들의 소통은 세계와 회사, 두 방향 모두를 향한다. 스토리를 활용해 밖으로는 상품을 내놓고 판매하며, 안으로는 경영적 사고를 구체화한다. 데이터가 아닌 스토리를 도구 삼아 그들은 팀을 구축하고, 제품을 디자인하고, 전략을 분석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판매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을 수행한다.
--- p.249~250
기업들이 광고비로 지출하는 6,000억 달러에서 대부분의 돈을 떼어 내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꾸준히 쏟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무엇보다 마케터들이 더 이상 돈으로 관객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 p.298
미국 인구 통계(US Census 에 따르면, 1억 3,900만 명의 미국인 노동자들이 출퇴근 운전에 쓰는 시간은 일일 평균 52분이다. 전체적으로 그 시간을 따져 보면, 《워싱턴포스트》 산정 2014년 미국 통근자들의 통근 시간은 총 1조 8,000억 분이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296억 시간, 날짜로는 12억 일, 햇수로는 3,400만 년이다. 이렇게 보면, 향후 10년간 가장 위력적인 기술혁신은 스토리의 경험을 바꿔 놓는 것이 아니라, 운전 시간을 스토리 시간으로 바꿔 놓는 기술이 될 것이다. 오늘의 운전자가 차량들 사이를 운전하며 팟캐스트를 즐긴다면, 내일의 운전자는 최적 경로로 안내하는 자율주행차에 몸을 맡기고 즐겨 보는 넷플릭스 시리즈나 어느 새로운 브랜드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몰아 보기로 감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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