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첫 12일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머리와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한 개의 축복받은 태아로 쏟아져 들어와, 카마이클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을 유일한 후계자가 되었다. 13일째에 우리는 갈라졌다. 너무 늦을 뻔했다. 하루만 더 지나 갈라졌다면 서머와 나는 불완전 분리를 거쳐 샴쌍둥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중요 장기를 공유했을 것이고, 평생을 함께 붙어살지 분리 수술을 해 둘 다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지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 p.9
제일 가까운 붓꽃 화병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붓꽃은 향기가 없다는 걸 알지만 나와 이름이 같은 꽃을 보면 냄새를 맡는 게 평생 내 습관이었다. 늘 붓꽃도 장미처럼 좋은 향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꾸준히 바라기만 한다면 세상에서 뭐든 원하는 걸 차지할 수 있으리라 마음 한구석에서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p.44
내가 서머를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늘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결국 내가 스스로 여신이라는 걸 돌려서 표현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서머와 똑같이 생겼지만 혼자 떨어져 있을 때 나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사람들은 나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난 그저 예뻐 보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냥저냥 예쁘고 젊은 여자에 불과한 것이다. 서머는 애쓸 필요가 없다. 녹색 간호사 복장에 머리를 뒤로 묶고 얼굴에 화장기 하나 없어도 서머는 관심을 끌었다. 어딜 가든 서머는 아침 하늘의 태양이었다. 봄날 처음 피어난 장미였다. 그리고 나는 서머의 그림자, 닮은꼴, 최고의 액세서리였다. --- p.61
나를 서머로 만들 것이다. 서머를 다시 살려낼 것이다. 언니를 되살려내기 위해 내가 해내야 할 유일한 일은 언니처럼 상처를 만드는 것뿐이다. --- p.160
나는 마치 선물 가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살아온 인생을 샅샅이 뒤지면서 뭔가 보관하고 싶은 것을 찾는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날 위해 울어줄 사람조차 없다. 어머니는 늘 서머와 더 가까웠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어쩌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건 동생 벤이다. 하지만 벤 입장에서 나를 잃는 것과 서머를 잃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 p.164
나는 모든 사람을 속였다. 애덤, 타르퀸, 애나베스. 그들은 전에도 우리를 분간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마치 내가 원래부터 서머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