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무슨 일이든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삶보다, 정말 어딜 가나 비슷하구나 깨닫고 체념하는 삶보다, 지금처럼 고인 채로 매일 짜증 내며 조용히 썩어가는 삶이 최악이다. 박수원은 내가 어디에서도 지금만큼 인정받지는 못하리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나는 박수원의 믿음이 역겨웠다. 그가 나를 얼마나 경멸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 『내가 되는 꿈』中에서)
'그렇다면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은 저런 식이었다. 또 있다.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처럼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상대를 증오하는 방법으로 정신없이 화를 내며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하는 식의 문장들. 불안, 분노, 짜증, 냉소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내가 감흥을 받은 문장. 애쓰지 않아도 좋아. 포기할 수 있다면 할 것. 간단명료한 말을 찾아가며 읽었다.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라는 두루뭉술한 말이 아닌 그동안에 쌓여 왔던 회사에 대한 울분을 써내는 장면에 책갈피를 했다. 『내가 되는 꿈』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손주들에게 공평하게 200만 원씩 남겨 줬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태희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한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 중이었다. 직장 상사라는 박수원 부장은 매번 태희의 실수를 지적해 내고 망신을 줬다. 할머니가 남긴 편지도 있으니 한 번 내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짜증을 낸다.
하필이면 전화를 받은 곳이 회사여서. 사직서든 편지든 무언갈 써야 정리가 되는 상황인데 태희는 기획서나 쓰고 있다. 번번이 까이고 퇴짜를 맡고 반려를 당하는 기획서를 쓰느라 할머니의 죽음 이후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200만 원은 그냥 엄마 쓰라고 했다. 엄마는 일단 고마워해야 하는 마음이 먼저 아니냐고 했다. 태희는 실수와 잘못을 연달아 하는 자신의 삶이 실망스럽다. 다음 장에서는 태희의 과거가 나온다. 부모의 별거로 외갓집에서 이모와 한 방을 나눠 쓰며 살아가는 중학교 이후의 삶.
어른이 된 태희와 아이였을 때의 태희는 편지로 연결된다. 과거의 태희가 없었다면 현재의 태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긴밀한 듯 때론 단절된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걸 어른이 된 나들은 잊고 산다. 애초에 과거 따위는 없다는 듯 현재의 구질구질함은 전부 지금의 내가 잘못 살아서 만든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말이다. 아이였을 때. 내가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 보면 싫고 비참하고 슬프다. 어른의 보호는 없었고 어떻게든 성인으로서의 삶만이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는 자랄 수 있나. 어른으로 클 수 있나. 그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른. 안타깝게도 어른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어른.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어른. 책임감과 의무감이 소량으로라도 몸 안에 있는 어른이 아이의 곁에 있어야 한다. 태희의 곁에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태희는 그 시간들을 감당해야 했다. 엄마는 매주 찾아오다가 뜸해지고 아빠는 취조식으로 질문을 하고 이모는 혼란한 연애를 한다.
직업으로서의 꿈만을 꿈이라고 여겼다. 꿈이 있는 아이는 구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나만 빼고 훌륭해 보였다. 그림을 잘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날씬하고 예쁘고 글짓기를 잘하는. 내게 없는 아이들의 장점을 동경하면서 살았다. 어중간했다. 겁이 많아서 비행을 저지르지도 재능과 노력이 없어서 공부도 못 했다. 그저 내가 가질 수 없는 누군가의 눈부신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학대했다.
『내가 되는 꿈』의 아이 태희와 어른 태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삶이었다. 뭣 같은 직장에서 과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부장 박수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라고 부를만한 이도 없이 야근과 야근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책상을 치우고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고 바람피운 애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그 모든 일들을 어른 태희는 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어른 태희에게 편지 온다. 아이 태희가 보내온 과거에서 도착한 편지.
어떤 날에는 꿈이 현실이 되지 못한 것에 괴로워하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 같은 소설을 읽고 나면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니라 꿈을 옆에 놔두고 있다는 소설의 이야기에 안심이 되기도 하는 날. 나를 미워하다가 나를 위로하다가. 내가 싫다가 내가 괜찮다가. 확실한 주관 없이 살아가면서 남의 말에 쉽게 내 존재를 밑바닥으로 분류하다가도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거라고 미지는 말했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이런 문장을 발견하면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게 등신 같은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할수록 꼭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할수록 포기하면 지는 거야 선언할수록 나는 내가 되지 못했다. 내가 아닌 남이 되어 갔다. 규율과 관습과 평범으로 만들어진 삶으로. 어른 태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로 방을 치우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애인과 이별했다. 바틀비의 선언은 꼭 필요하다.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도전을 말하고 패기와 용기 없음을 비난하는 어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기 싫은 건 제발하지 마.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아. 네가 그만둔다고 해서 네 인생이 끝장나지도 않지. 일단 살고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