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라임이랑 서준이가 사귄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너무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아.
라임이랑 서준이가 사귀는 게 진짜인가 봐. 라임이의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그래서 나도 라임이한테 곧바로 농담이지? 하고 묻지 못했어. 그래도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서는 안 되잖아! 근데 맞더라. …… 서준이도 밉고, 라임이도 미워. 다 미워. 차라리 지구가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아, 미치겠다, 정말.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 p.37
언니에게 답메일은 오지 않았다. 메일을 보낸 지 3일도 더 지났는데 말이다. 수신 확인을 클릭해 보니 언니가 읽긴 했다. 뭐, 답장을 받으려고 메일을 보낸 건 아니다. 그날은 마음이 어쩌지도 못하게 마구 부풀었고,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풍선처럼 펑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말하는 건 자존심 상했고 엄마나 아빠한테 말해 봐야 이해 못 할 것 같았다. 결국 떠오른 사람은 언니였다. 핸드폰이 고장 났다고 해서 톡 대신 메일을 보냈다. 뭐, 언니가 톡이 가능했어도 그걸로 보내진 않았을 거다. 가족 단톡방을 빼고 언니와 단둘이 톡을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게 두 달도 훨씬 전이다.
--- p.53
“너는 형제 없으니까 비교 안 당해서 좋긴 하겠다.”
이나는 주나와 비교당하는 일이 많았다. 워낙 이나와 주나가 다르기에, “동생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주나는 어렸을 때 큰 수술을 받았기에 조금만 잘해도 칭찬받았다. 주나는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받고, 피아노를 잘 친다고 칭찬받고, 친구들을 잘 사귄다고 칭찬받고, 말을 잘한다고 칭찬받았다. 한번은 이나가 “주나는 아파서 좋겠다”라고 말했다가 엄마한테 엄청 혼나기도 했다.
--- p.75
“독일에서는 공무원 되는 거 안 어려워?”
“한국만큼 어렵지 않아. 그리고 공무원 원하지 않아.”
“왜”
“좀 지루하다고 할까?”
주나는 순간 빈센트가 다른 세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공무원을 지루하다고 표현하다니. 물론 빈센트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맞긴 하다. 하지만 그 행성이 다른 게 아니라 고작 나라가 다른 것뿐인데. 비행기 타고 10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에서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 p.93
어렸을 때 이나는 주나와 무수히 많이 싸웠다. 주나는 이나가 하는 건 다 따라 했고 이나가 가진 건 무조건 똑같이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 언니니까, 언니니까, 언니니까.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나가 양보하고 참아야 할 때가 많았다. 고집부리고 떼쓰는 주나를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았다. 그래, 내가 언니라서 참는다 치자. 도대체 너는 동생이라서 하는 게 뭐야? 누가 언니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나?
--- p.106
자라면서 연년생 언니와 나는 ‘1일 1전쟁’을 치렀다. 동네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먹질을 하며 싸우기도 했고, 말다툼을 하다가 밤을 새운 적
도 여러 번이다.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도 그렇게 싸웠다.
하도 싸우다 보니, 엄마가 우리 둘의 머리카락을 묶어 뒀다. 이나와 주나 자매 사이에 일어난 일 가운데 많은 에피소드가 실제 경험담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