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읽어야 한다. 몸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는지, 몸을 통해 어떻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지, 나아가 몸은 우리에게 어떻게 권위를 선사해주는지 느낄 수 있다. ‘필’이 온다면 꾸준히 연습해보자. 몸을 우리의 ‘쉼터’이자 ‘에너지 발전소’로 바꿀 수 있다. 엄마의 존재가 아이를 품어주고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것처럼 몸은 우리에게 ‘엄마와 같은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다. 상상해보라. 이 세상에 내가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내 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자기돌봄이다.
---「문요한 - 추천의 말」중에서
엄마와의 피부접촉은 아기에게 심리적 보호막이 된다. 아기는 엄마품에 안겼을 때 따스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엄마품이라는 심리적 싸개가 있을 때, 아기는 자신을 안전하게 감각하면서 마음껏 놀 수 있고, 아기의 생체리듬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배고프면 젖 달라고 외치고, 졸리거나 불편하면 달래주는 손길을 요구하고, 깨어나면 놀아달라고 졸라댄다. (…) 이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피부접촉이 필요하다. 이렇듯 생애 초기, 엄마품은 아기의 피부를 감싸주는 것이고, 아기의 몸을 흔들어주는 것이며, 아기에게 온기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 사랑은 결코 관념적일 수 없다. 사랑은 누군가의 접촉과 온기, 그리고 시선이다.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관념적인 말이 아니라 모성적 접촉, 즉 누군가의 손길과 온기, 그리고 눈빛이다. 이처럼 우리를 치유하는 모성은 몸에서 나온다. 본래 고통을 진정시켜주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접촉하고 달래주는 손길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 있을 때, 열 마디의 말보다 따뜻한 터치와 침묵 속 응시가 더 진한 위로와 치유이다. 상처의 회복은 혀끝의 말이 아니라 내 몸의 피부로 와 닿을 때 일어난다.
심리적 분리는 자신의 감각이 타인의 감각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곧 몸의 경계boundary를 아는 것이다. ‘한 몸’ 이슈에서 벗어나야 감정적 동일시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나와 상대의 몸이 다르듯이 나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 또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구분하는 것은 심리적 독립과 성장을 위해 중요한 인생의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건강health의 어원은 온전함wholeness에서 왔다. 온전함이란 몸과 마음이 분열되지 않고 조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몸에서 태어나서 정신을 발달시켜가고, 몸이 건강할 때 정신은 몸에 닻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살면서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은 몸의 감각에도 상처를 새기고, 그 상처의 조각들은 우리의 의식선상에서 부정되고 밀려난다. 결국 전체성이 깨지면서 고통은 자기소명을 가지고 되살아난다. 따라서 우리가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체감각과 감정의 관계를 인식하고, 마음이 몸이라는 집home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핍의 상처는 우리 몸에도 오롯이 새겨진다. 특히 유년기에 겪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의 경험은 고스란히 몸의 상흔으로 남는다.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라도 몸의 무의식은 기억한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 그 마음의 상처를 자신의 몸으로 드러낸다. 어떤 이에게는 피부로, 어떤 이에게는 위장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두통으로 말한다. 또 피부가 발진을 일으키고, 운동성을 잃어버린 위가 무력시위를 벌이고, 통제력을 상실한 대장이 아무것도 담지 못하면서 몸은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상을 통해 강력하게 항변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다른 몸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느낌과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몸과 의식이 어떤 상태에 계속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죽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움직이는 존재이다. 출렁이는 바다는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불안도 습관이듯 즐거움도 습관이다. 작은 습관 하나가 몸의 감각이나 기분을 지속적으로 변형시킨다면 일상의 리듬도 새롭게 바꿔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감각이 반복적으로 달라지면, 삶에 대한 태도 또한 달라진다. 자존감은 단지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근육의 힘이야말로 진정한 자존감의 실체가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