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상실함으로써 얻게 된 더 크고 예리하고 따뜻한 시각 뿌리 뽑힌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이슬람 아프리카인들의 실존
소년 유수프의 성장을 통해 그려낸, 부재하는 낙원의 초상
독일인들이 아프리카 내륙의 고지대로 가는 철도 건설을 위한 기지로 삼으며 신흥도시로 부상한 카와. 하지만 벼락경기는 빠르게 지나갔고, 기차는 이제 목재와 물을 싣기 위해서만 그곳에 멈춰 선다. 유수프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침대 네 개를 갖춘 허름한 호텔을 운영해 생계를 유지하며, 도시 전체가 못쓰게 되어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집 마당에서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 있던 열두 살 소년 유수프는 이따금 아버지의 손님으로 집에 찾아오는 아지즈 ‘아저씨’를 흠모한다. 아지즈 아저씨가 며칠씩 집에 머물다 떠날 때면 그의 손에 동전을 넉넉히 쥐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다시 아지즈 아저씨가 유수프의 집에 찾아와 며칠 머물다 떠나려던 어느 날, 유수프의 기대와 달리 용돈은 주어지지 않고, 눈물을 보이는 부모로부터 아지즈 아저씨의 카라반을 따라 여행을 가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아버지의 빚을 대신할 볼모로 유수프는 부모와 이별해 집을 떠나오게 된다.
유수프는 세세한 것들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아지즈 아저씨 밑에서 일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갚고 나면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기 전에 그들이 알려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유수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고향이 그립고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그가 그들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점점 덜 그리워했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과 헤어진 것이 그의 삶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슬퍼했다. 그는 그들에 대해 알아야 했거나 그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던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격렬한 싸움들. 바가모요를 떠난 후 물에 빠져 죽었을 두 소년의 이름. 나무들의 이름. 그런 것들에 대해 그들에게 물어볼 생각만이라도 했더라면, 스스로 너무 무지하다고 느끼거나 그토록 위험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주어진 일을 했고, 칼릴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완수했으며, 그 ‘형’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락을 받을 때면, 정원에서 일했다.
아지즈 아저씨를 따라 도착한 그의 본거지에는 유수프처럼 집안의 빚을 대신해 먼저 팔려와 있는 칼릴이라는 청년이 있다.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엄격한 사수처럼 유수프를 가르치고 보살피는 칼릴은 아지즈를 ‘아저씨’라 부르지 말 것을 유수프에게 경고하며, 유수프가 짐작하지 못하는 아지즈의 정체에 대해 알 듯 말 듯한 말들을 흘린다. 아지즈가 장기간의 카라반 여행을 떠날 동안 유수프를 맡겨둔 상인 하미드와 그의 아내 마이무나, 이들의 이웃 칼라싱가와 후세인 등과 생활하며 유수프는 처음으로 글을 읽는 법을 배우고, 아지즈의 저택에 자리한 신비스러운 나무와 관목들이 가득한 정원을 가꾸며 성장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술탄국으로 떠나는 아지즈의 카라반 여행에 유수프도 동행하게 되고, 술탄의 횡포로 위기에 처한 원정대는 유수프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긴 여행 끝에 돌아온 유수프는 집안에서 결코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는 아지즈의 아내에 대한 비밀과 칼릴 및 아지즈의 비밀을 알게 되며 커다란 혼란에 휩싸이는데……
‘말하지 않음’을 통해 ‘말하기’
- 정교하게 쌓아올린 은유와 묘사, 폭발하는 결말
소설 『낙원』은 오렌지나무와 석류나무, 온갖 향기로운 꽃나무와 관목들이 신비롭게 자리한 작품 속 ‘정원’을 닮았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을 배경으로 인도양에 위치한 스와힐리 해안에서 탕가니카 호수와 콩고를 거쳐 그 너머의 깊숙한 내륙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카라반 여행의 모험을 줄기로 삼고 있는 길고 긴 이야기에 ‘식민주의’ 혹은 ‘식민지’ 혹은 ‘제국주의’ 같은 직접적인 표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영국군과 독일군의 임박한 전쟁의 기미가 소년 유수프의 눈을 통해 곳곳에 암시된다.
유수프는 성난 표정의 검은 새가 그려진 노란 깃발 외에, 은빛 테두리의 검은 십자가가 그려진 또다른 깃발을 보았다. 그들은 고위층 독일군 장교들이 기차로 이동할 때에만 그 깃발을 달았다.
열두 살 소년 유수프가 열일곱 살로 성장하기까지를 그린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는 시종일관 신비로운 것을 향한 소년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같이 촉촉하다. 소년은 버려짐을 겪었으나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가는 힘으로 삼을 줄 아는 청년으로 자라고, 중요한 순간마다 스스로를 혼란에 빠뜨리는 자신의 비겁을 한 걸음 떨어져 관찰자처럼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터득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는 소년의 현실공간 주위를 맴돌고 급기야 의식공간에까지 출몰하는 ‘개들’이 있다.
때로는 밤이 되면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이 그들을 괴롭혔다. 개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그림자와 수풀 속에서 뒤엉켜 싸우면서도 펄쩍펄쩍 뛰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리 와. 너, 사이드께서 아침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너는 우리와 같이 가서 장사를 하며 문명과 야만의 차이에 대해 배우게 될 거다. 지저분한 가게에서 노는 대신에…… 이제 좀 컸으니 세상이 어떤지 돌아볼 때가 되었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수프의 악몽 속에서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떠오르는 약탈자의 얼굴이었다.
“한번 더 여행하고 나면 너는 쇠처럼 단단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의 개들이 모든 곳에 있으니 더이상 여행은 없을 것이다. 우리와 갈라설 때쯤 그들은 우리의 몸에 난 모든 구멍에 그 짓을 했을 것이다. 완전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그 짓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먹이는 똥보다도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악은 우리의 것, 우리와 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의 것이 될 테다. 그래서 벌거벗은 야만인조차 우리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두고 봐라.”
“다층적이고 격렬하며, 아름다우면서도 낯설다” “여러 의미로 정교하게 쓰인 소설”이라는 평에 걸맞게, 소년 주위를 맴도는 개들의 은유가 차곡차곡 쌓아올려져 가리키는 지점은 너무나 분명하며, 이러한 단호함을 통해 “아프리카는 구르나의 소설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묘사”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