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동 중 상당 부분은 인지 능력 바깥에서 비롯된다. 이미 성인이 된 부모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반복하는 나쁜 습관은 물론이고, 무서울 때, 당황할 때, 억울하고 화가 날 때 우리가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지 떠올려보자. 이것들은 의식적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뇌와 신체가 긴밀하게 주고받는 신경계 피드백에 의해 벌어지는 반사적인 반응에 가깝다. 따라서 아이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의 뇌와 신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해야 한다.
---p.9 「서문 - 훈육이 필요한 아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중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계획적이거나 의도적으로 행동을 통제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나는 유아들이 ‘울고불고 떼쓰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비결을 알려준다는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00만 이상을 달성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유아들은 일부러 막무가내로 떼를 쓰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떼쓰는 행동은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의 뇌와 신체의 연결이 갑자기 큰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취약한 상태라는 신호다.
---p.27 「1장 - 아이의 신경 플랫폼을 이해하다」 중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심지어 태아일 때부터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안전과 위협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감지한다. 예를 들어, 내 아이 중 하나는 조산아였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위 상황에 위협이 감지될 것 같으면 즉시 예민하게 반응했다. (…) 내 딸은 감각 과민반응, 즉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느끼는 감각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증상이 있었다. 아이의 안전 감지 시스템은 누가 봐도 안전한 환경에서도 위협을 감지하곤 했다. 그 결과, 아이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거나 아니면 아이 바로 옆에서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말을 걸 때처럼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이는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그 당시 나는 내 목소리가 아이의 몸에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pp.57-58 「2장 - 안전감과 사랑에 관한 탐구」 중에서
안전 감지 시스템이 너무 힘든 도전이나 위협을 감지하면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평온한 녹색 경로에서 좀 더 방어적인 적색 경로로 이동한다. 뇌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생물 행동 반응’은 감지된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도록 서둘러 행동하라고 다그친다. 행동한다는 것은 움직임을 말한다. 화가 나서 정신없이 고래고래 소리치거나, 사람을 때리거나, 거칠게 밀거나 심지어 도망치는 행동도 포함한다. 그 과정에서 행동과 감정 통제를 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교감신경계라는 적색 경로로 들어서서 ‘투쟁 혹은 도피 행동’을 일으킨다. 게임을 그만하고 저녁을 먹으라는 부모의 말에 큰소리로 욕을 퍼붓고 쿵쾅거리며 방을 나가버린 루카스의 행동이 투쟁 혹은 도피 행동의 한 예다.
---p.93 「3장 - 아이의 마음을 보여주는 3가지 행동 신호」 중에서
재키의 충동적인 감정 폭발은 아이가 자기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키의 부모는 재키의 폭발적인 반응 때문에 난처했고 화가 났으며 당황할 때가 많았다. 부모는 재키가 가족 모임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거나, 예상과 다른 상황이 벌어져도 침착할 수 있기를, 살다 보면 흔히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일들 앞에서 부모의 간단한 요구 사항에 잘 따라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재키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때가 많았고,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불쑥 내뱉곤 했다. (…)
재키는 말을 잘했고 아는 것도 많아 부모는 재키가 이미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키는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재키의 부모와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불충분한 양육, 일관성 없는 훈육이나 애정 결핍 때문에 재키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키는 버릇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보다 재키는 여섯 살이지만 자기 조절력이 아직 형성되는 중이었다. 동생과 할머니와 벌인 몸싸움처럼 파괴적인 행동은 재키가 아직 자신의 감정과 행동 통제력을 개발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pp.131-132 「4장 - 아이의 자기 조절력 키우기」 중에서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고 처음 몇 년 동안을 매우 중요한 시기로 여긴다. 그래서 아이를 사랑하고 깊이 연민하는 엄마들일수록 그 시기에 아이의 요구에 제때 반응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성장할 기회는 절대 닫히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과거에 아이와 나눈 상호작용 방식이 걱정스럽다면, 먼저 자신을 따뜻하게 다독여주어라. 그리고 현재 관계의 힘이 미래에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아이들과 유대 관계를 맺을 새로운 기회, 아이들과 자기 자신을 연민하는 마음을 찾을 기회는 매일 찾아온다. (…) 육아의 중심에는 우리 자신의 행복이 자리한다. 우리 플랫폼은 아이들의 행동을 이끌듯이 우리의 육아 행동도 이끌어준다. 조절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도록 뇌와 신체를 보살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pp.172-173 「5장 - 부모도 돌봄이 필요하다」 중에서
머리를 감는 일처럼 별것 아닌 경험에도 지나치게 반응하는 아이들이 많다. 머리를 감는 경험은 아이로 하여금 울고불고 부모를 밀어내는 것처럼 적색 경로에서 나오는 행동을 촉발시킨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아니면 아이가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야단법석을 피운다고 혼내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반응 모두 아이의 위험감지 시스템을 더욱 자극할 뿐이다.
아이가 저항한다고 머리를 감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그 결과 아이의 신체 예산이 치러야 하는 주관적인 경험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접근하라는 말이다. 경험을 존중하고 아이의 플랫폼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번 장의 핵심이다. 아이의 몸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파악해 심리를 들여다보자.
---pp.214 「6장 - 아이는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중에서
아기들은 욕구가 충족되면 건강히 잘 자라지만,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는 필요한 것을 말로 알려줄 수 없다. 그러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알아내야 한다. 나는 유아 정신 건강을 공부하는 동안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비결은 ‘반응형 육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반응형 부모들은 다음 세 가지를 잘한다는 특징이 있다.
1.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관찰한다(하품하고 눈 주위를 비빈다).
2. 그 신호를 정확하게 해석한다(아기는 지금 졸리고 휴식이 필요하다).
3. 아이의 요구 사항을 즉시 충족시켜준다(아기를 낮잠 재우려고 내려놓는다).
연구원들은 부모가 아기의 욕구에 적절히 반응하면 아기는 잠을 더 잘 자고, 무서움을 덜 타며, 자라서 건강한 식습관을 갖게 되고, 스트레스를 덜 겪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는 유치원 생활에 더 순조롭게 적응하고, 성급한 행동과 충동을 최대한 자제하며, 다른 사람과 협동을 더 잘할 가능성이 크다.
---pp.263-264 「7장 - 0~1세, 기쁨과 혼돈의 나날들」 중에서
유아들이 우리가 원하는 예의 바른 시민처럼 행동할 능력이 아직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기대하는 바가 바뀌고 좌절하는 일도 줄어든다. 유아들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할 때 우리는 그 아이들이 만약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일부러 ‘나쁜’ 행동을 하고 ‘버릇없이’ 군다는 메시지를 잘못 전달하게 된다. “진정하지 않으면 오늘 놀이는 이제 끝이야!” 같은 말을 할 때를 잘 생각해보라.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에게는 잘 통하겠지만, 한창 떼쓰는 유아들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리 없다. 그 대신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감정 조율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위협을 느껴서 진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화를 낸다. 우리도 그렇듯이 그럴 때 유아들도 당황하고 수치심을 느끼기 쉽다. 이런 일들은 아이의 자아상에 영향을 미친다.
---pp.299-300 「8장 - 유아기,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들」 중에서
부모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아이의 정신 건강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특성을 키워줘야 한다. 그것은 바로 변화하는 삶의 요구와 도전에 대응하는 능력인 유연성이다. 유연성은 회복탄력성을 구축하는 기본 토대다. 어린 시절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면 부모님은 두려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날 안심시키려 했다. 부모님 세대의 다른 많은 부모처럼 두 분은 부정적인 감정을 주의해야 할 중요한 신호로 여기기보다는, 다른 생각을 해서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나는 아이들과 공동 조절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큰 소리가 들리면 당연히 나도 무섭다고 아이들에게 솔직히 인정했다. 친구와 같이 놀지 못하고 거부당했다며 슬퍼하면 아이에게 공감하며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결과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은 내가 저들 나이였을 때보다 사고가 훨씬 유연하고 회복탄력성이 뛰어나다.
---pp.335-336 「9장 - 학령기, 마음의 힘을 배우는 시기」 중에서